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재손금 Nov 13. 2024

미움받을 용기(2편)

친구야, 들어봐.

이제 본격적인 119 안전센터 적응기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팀원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팀장이었지. 조금씩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이 되더라. 많은 시간을 고민하며 생각했던 것 같아.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고, 어쩌면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자리일 수도 있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정말 여러 가지로 궁리했었지.


그러다 내린 결론은 무언가를 억지로 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평소의 내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어. 일부러 착한 척, 멋있는 척, 올바른 척하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팀원들에게 들키게 될 텐데, 팀원들과 24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그걸 숨기는 건 불가능할 것 같더라고.


그리고 처음 두 달 동안은 24시간 3조 2교대, 이른바 ‘당비비’ 근무 체제에 적응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낮과 밤이 뒤섞이는 근무 방식이다 보니 생활 리듬이 완전히 바뀌어버렸거든. 규칙적이었던 내 일상이 한순간에 깨지면서 몸과 마음 모두 지쳐 갔어. 밤낮이 바뀌다 보니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그로 인해 낮에 억지로 잠을 자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야. 이렇게 낮에 자고 나면 또 밤에 잠이 오지 않고, 몸의 리듬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지.


특히 출근해서 근무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바로 출동벨 소리였어.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웃긴 이야기이긴 한데, 친구야, 만약 너도 119 안전센터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아마 그리 웃지 못할 거야. 무슨 말이냐면...


119로 걸려오는 모든 신고 전화는 먼저 119 종합상황실에서 접수돼. 그 후 각 소방서 관할로 출동 지령이 내려지지. 119 신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뉘어: 1. 화재 출동, 2. 환자 발생, 3. 구조 요청, 4. 생활 구조, 그리고 5. 민원 출동이야.


그런데 신기한 게, 출동 지령 벨소리가 출동 유형마다 다 다르다는 거야.


예를 들어, 화재 출동일 때는 "뾰~~~~ 옹!! 화재 출동!!!"이라는 경고음이 크게 울리면서, 상황실 직원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들려. “○○펌프, ☆☆ 빌딩으로 출동하세요!” 이렇게 구체적인 지시가 함께 나오는 거지.


어떤 경우에는 출동 지령이 아예 신고자의 다급한 목소리로 시작되기도 해. "119이죠? 여기 불났어요~~!!!" 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 목소리만 들어도 그 현장의 긴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그럴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긴장감이 확 몰려오지.


구조 출동은 "빰빰빰!!~ 구조출동 구조출동"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구급 출동은 "띠롱 띠롱~ 구급출동~" 하는 조금 차분한 소리가 나. 그리고 민원 출동의 경우는 "딩! 동! 댕!~~"이라는 가벼운 소리가 울려.

이렇게 출동 지령 소리가 다른 이유는 직원들 보호 차원이라고 하더라고. 


우리 안전센터와 구조대는 각기 다른 사무실을 쓰고 있고, 대기실도 2~3명씩 화재, 구급, 구조대로 나누어 사용하다 보니, 출동 지령이 출동 유형에 맞는 곳에서 울리도록 한 거지. 이전에 직원들의 요구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출동 벨이 울릴 때 직원들의 심장에 무리가 간다는 점이 지적되었대. 그래서 약 10년 전쯤에 지금의 시스템으로 바꾸게 된 거라고 하더라고.


근데 나는 이걸 구분하는 게 그렇게 어렵더라고.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출동벨이 울리길래 후다닥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뛰어왔는데, 알고 보니 우리 출동이 아닌 거야. 또 샤워 중에 벨이 울리는데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직원이 샤워장 입구에서 큰 소리로 "팀장님, 출동입니다~!" 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팀장 대기실에는 모든 출동 지령이 다 들려. 늦은 밤에 좀 쉬고 있으면 출동벨이 울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데, 정말 정신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더라고. 죽을 맛이었지.


한 번은 다른 팀장님에게 슬쩍 물어봤어. 그랬더니 그분은 다른 벨소리에는 아예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여쭤봤더니, 센터 생활만 30년 동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는 거야. 그러다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어. 나도 내근에서 근무할 때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 출동 지령이 울릴 때마다 센터 직원들이 뛰어나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거든. 그런데 그때 나는 그 출동 지령 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더라고. 결국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소리에 대한 긴장도 조금씩 줄어들고 더 차분하게 들리기 시작했어.


출동벨 소리에 허둥지둥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직원들이 처음엔 좀 비웃기도 했을 거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출동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좋게 봐준 것 같아. 왜냐하면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출동벨이 울릴 때마다 출동해야 하는지 아닌지 따로 내부 방송으로 알려주더라고. 그게 뭐라고, 진짜 고맙더라.


그러던 중, 그러니까 내가 안전센터로 발령받고 약 9주가 지났을 때 또 하나의 도전 상황이 발생했어. 


바로 내가 팀원 몇 명을 이끌고 우리 소방서 대표로 화재 진압 기술 경연대회에 출전하게 된 거야.


화재 진압 기술 경연대회는 각 소방서에서 대표 팀이 참가해 화재 진압 능력을 겨루는 대회야. 실제 화재 현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팀워크, 장비 사용, 신속하고 정확한 진압 능력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지. 소방관들에게는 자신들의 기술을 점검하고, 실전 감각을 높이는 중요한 기회라서 다들 굉장히 진지하게 임해. 더욱이 특진이 걸려 있어서 참가하는 직원들은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임하는 대회야.


지휘자, 운전원, 1번 관창수, 2번 관창수, 3번 관창수, 그리고 요구자로 구성된 6명이 한 팀이 되어 대회가 진행돼. 먼저 화재 진압 장비 검사를 시작으로, 복장 착용, 수관 굴리기, 1차 방수, 그리고 건물 3층까지 장비들을 로프로 묶어 올리기 등의 과정이 이어져. 이후 2차 방수, 동력 절단기로 문 절단하기, 5층까지 계단을 포복으로 올라가서 요구조자를 구해 내려오는 순서로 진행되는 거지.


여기서 내 역할은 지휘자로서 진압 복장을 착용하고 장비 검사를 한 후, 몇 번 구령을 하는 게 전부였어.

각 소방서에서 대표 선수들을 뽑아 약 두 달 가까이 훈련을 해. 근무 날에도 하고, 퇴근 후에는 임의의 장소에 가서도 훈련을 하지. 대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각 소방서의 서장님들과 간부들도 관심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만큼 중요한 대회였어.


친구야, 경연대회 결과는 어땠을 것 같아?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팀은 11개 소방서 중에서 11등을 했어. 나도 맡은 몇 안 되는 임무 중 하나를 깜빡하고 놓친 부분도 있었고, 팀원들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지.


친구야, 어이없지? 하하하. 나도 정말 황당하더라고! 나는 우리 조직 내에서는 항상 우수한 사람이었어.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각 계급 최단기간 승진이라던가, 각종 행정 업무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던 사람이었지. 하하하 그런데 꼴등이라니. 그날 대회에 참석한 선수들, 그리고 각 소방서에서 응원하러 온 수많은 직원들 앞에서 나는 당당하게 꼴등을 했어. 변명의 여지없이 나 자신과 우리 팀원들의 실수였기에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였지. 물론 모든 부끄러움은 대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의 몫이었지만.


그렇게 나는 안전센터 발령 후 완벽하게 바닥을 쳤어.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완벽하게 말이지.


친구야, 그런데 말이야. 엄청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 바닥을 치는 순간에는 민망함, 부끄러움, 분노 등 만감이 교차했는데(더욱이 소문은 왜 그리 빠른지 전 소방서에서 내가 꼴등 했다는 게 한동안 안주거리였다고 하더라) 그 경연대회 후, 오히려 센터 생활이 점점 더 즐거워지기 시작했어. 이제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경연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출전 선수들과 즐겁고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고, 그리고 꼴등한 이후에도 오로지 내 책임이라 생각하고 수습하려고 애쓴 것이 주효했던 것 같아.

결과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고, 남을 탓하지 않았으며, 모두 내가 부족했음을 시인하고 인정했어. 그런 모습이 30개의 눈동자 그러니까 우리 팀원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줬나 봐.


사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팀장, 그러니까 리더는 안 좋은 일에 팀원들을 대신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이건 군 장교로 임관해 소대장, 중대장으로 복무했을 당시에 체득한 교훈이기도 해. '성공은 부하에게 잘못은 내가'


경연대회가 이후로 7개월이 지났어. 그동안 안전센터에서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온갖 출동들이 있었어. 순찰 나간 직원이 과실에 의해 교통사고를 내기도 하고, 화재 현장에서 온갖 실수를 하는 직원도 있었고, 또 이런 일들로 높은 신분들께 불려 가 혼도 많이 나고 했었지. 이때도 모두 내 책임이고, 내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의 자세로 대응했지.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는 '경연대회'였기 때문이니까.('꼴등도 했는데 이게 뭐 대수라고'라는 마인드로)


그 외에는 센터에서 팀장으로서 무엇을 좀 더 잘하려고 안 한 거 같아. 그냥 팀의 일부로서 지내려고 했었어. 앗! 하나 있다. 직원 모두가 공적인 자리에서는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고, 명확한 직책과 계급으로 호칭하는 문화는 조금 잔소리를 했었네.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과 이름을 부르는 안전센터 문화를 조금 바꾸고 싶었거든. 물론 나도 철저하게 지켰고. 그러면서 입사 선배 팀원들에게는 존중의 자세로, 후배 직원들에게는 배려의 마음으로 대했어. 이런 것들이 차차 쌓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 팀원들과의 신뢰로 굳혀졌어.


여름이 왔을 때에는 우리 팀이 각종 훈련에도 대표로 많이 참석하고, 제법 큰 화재 진압 시범식 교육도 진행하면서 그로 인해서 칭찬도 많이 받았어. 이 정도 되니까 출근하는 것이 즐거운 순간이 오더라.


친구야, 나는 아직 119 안전센터의 팀장으로 근무 중이야. 내가 팀장으로서 완벽한 사람인지 아닌지 또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어.


그런데 이제 이건 확신해.

어떠한 출동에도 준비가 되어 있고, 어떤 화재 현장에서도 나와 우리 팀원들을 살려서 데려 올 거라는 거.





이전 18화 미움받을 용기(1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