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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재손금 Nov 09. 2024

미움받을 용기(1편)

다시 가자! 현장으로 !

친구야, 들어봐.

이번엔 내가 다시 현장에 복귀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해줄게.

지난번 이야기에서 말했듯이, 감사팀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팀장으로 승진하고 일선 소방서 119 안전센터로 발령이 나게 됐어. 사실 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입사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많이 빠른 편이야.


여기서 잠깐
소방관 계급을 알려줄게. 소방사(신입) - 소방교 - 소방장(내 동기들) - 소방위 - 소방경(나) - 소방령(과장) - 소방정(서장)이지.


겉으로 보면 내가 내근을 오래 해서 승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사실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아. 

하지만 나는 소방교, 소방장, 소방위까지 모두 시험승진을 통해 올라왔어. 


주 5일 근무하는 내근에서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공부하는 게 쉽지 않거든. 하루 종일 일한 뒤 지친 몸으로 책을 펼치는 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지. 승진시험 자격이 안 될 때는 관련 자격증 시험에 매달렸고, 승진 자격이 주어지는 연차가 되었을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어.


그리고 소방위로 승진했을 때도 바로 본부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또다시 막내 생활을 시작해야 했어.

그렇게 만 5년을 본부에서 보내야 했지. 사실 소방위 정도면 일선 소방서에서는 중간 간부 대우를 받지만, 본부에서는 그냥 실무자 1에 불과했거든.




아무튼 소방경으로 승진해서 일선 소방서로 그야말로 "영전"을 하게 된 거야. 처음에는 그냥 막 좋았던 것 같아. 소방서 근무라는 생각만 해도 기대되고 신이 났지. 왜냐하면 소방서 내근 팀장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 드디어 나도 팀장이다~ 팀원들 잘 챙겨주고 멋지게 팀을 이끌어야지, 이런 생각에 들떠 있었어.


그런데 인사 발령을 받고 보니, 내가 기대했던 소방서 내근 팀장이 아니라 소방서 직할 119 안전센터 팀장으로 발령이 난 거야. 직할 119 안전센터 팀장이라는 직책은 화재 진압의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하는 출동대장의 임무야. 말 그대로 화재 현장에서 가장 앞에서 지휘해야 하는 자리다 보니, 처음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어. 이렇다 보니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


게다가 인사 발령 공문에 적힌 실제 발령일까지는 고작 5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어. 그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지.


뭐 어떻게는 되겠지 하는 심정과, 그래도 소방본부 출신인데 다들 조금씩 도와주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발령받은 소방서로 출발했어. 하지만,


내가 너무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


가장 먼저 부딪힌 건 완전히 바뀐 생활 리듬이었어. 

내근 행정직에서 일할 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 5일제 근무를 했거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게 규칙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름의 생활 패턴이 자리 잡혔지.


그런데 발령받은 소방서 119 안전센터에서는 24시간 3조 2교대, 이른바 ‘당비비’ 근무 체제를 따라야 했어. 

낮밤이 뒤섞이는 교대 근무에 적응하려니 몸이 쉽게 따라주질 않더라. 한두 번 교대근무를 하다 보면 점점 피로가 쌓이면서 낮에는 피곤하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졌어. 


퇴근 후 그리고 주말마다 정리하던 내 생활 리듬이 완전히 깨져버렸다고 할 수 있지. 교대 근무에서 오는 체력적 부담이 생각보다 커서 매일 온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고, 일상적인 식사나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되니 신체 리듬도 다 흐트러지더라고. 예전의 규칙적인 생활과는 전혀 다른,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환경이었지.


또 하나의 큰 장벽은, 오랜만에 화재 진압 현장으로 복귀하면서 느끼는 두려움이었어. 

10년간 사무실에서만 일하다 보니 화재 현장은 더 이상 예전처럼 익숙한 장소가 아니더라고. 현장 출동 때마다 막연한 긴장감과 함께, 예전에 느끼지 않았던 공포감이 조금씩 스며들었어. 특히, 공기호흡기나 면체 같은 필수 장비를 착용하는 것도 예전만큼 자연스럽지 않았어. 


기억 속에서는 익숙했던 것들이 실제로 손에 쥐어 보니 어색하기만 하더라고. 출동 중 무전기를 사용할 때도 생각이 잠깐 멈춰서 ‘이게 맞나?’ 하고 확인해야 할 정도였지. 매번 화재 현장에 들어서기 전에 이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할지, 내가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가득했고, 화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 예전의 나와는 달리(예전에도 그리 잘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 ㅜ) 진압 장비 하나하나가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긴장감이 배가 되어 현장에서의 부담이 커졌지.


그리고 가장 힘든 건 바로 이거였어.

바로 팀장으로서 새로운 위치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이야.

비록 내가 팀장으로 발령이 나긴 했지만, 내 소방 경력보다 훨씬 오래된 선배들이 팀원으로 있는 상황이었거든. 내가 팀장으로 간 팀의 15명의 구성원 중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이 5명이나 있었고, 그중에는 띠동갑만큼 나이 많은 선배가 두 명이나 있었어. 또 입사 선배는 무려 8명이었지. 


그 선배들 중에는 내가 소방관으로 임용되기 훨씬 전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어서, 말 그대로 세월의 무게를 느낄 만큼 터줏대감 같은 사람들이었지. 그들과 함께 팀을 꾸려가야 하는 입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견고하게 자리 잡은 텃새가 느껴지더라.


내가 팀장으로서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싶어도, 조심스러운 눈초리와 선배들의 입김이 부담으로 다가왔어. 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주는 무게가 더해지면서, 권위를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감사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오히려 발목을 잡더라고.

발령받은 소방서의 직원들은 대부분 내가 감사팀에서 근무하면서 적어도 한 번, 많게는 두세 번씩 내게 감사를 받았던 사람들이었어. 그 시절에 내가 지적했던 내용이나 감사 과정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더라고.


또,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까지 퍼져 있었어. '지 혼자만 똑똑하고 의로운 척한다. 선배들에게 함부로 한다,,,'등등. 내가 괴상망측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탓에 누가 먼저 다가오지도 않고, 말을 걸어도 외면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지. 철저히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 속에서 외로움이 밀려왔고, 동료라고 느낄 만한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어. 감사팀에서의 업무 경험이 지금 119 안전센터의 위치에서는 득 보다 실이 된 셈이었지.


이렇게 적응이 어려워 힘들어하던 어느 날, 그러니까 발령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어.

출근을 했더니 우리 팀 주임님들(소방위) 두 분이 나를 청사 건물 뒤편 분리수거장으로 부르더라고. 그런데 직접 부르는 것도 아니고, 막내 직원이 와서, "팀장님, 아무개 주임님이 잠깐 오시랍니다..." 하고 전하는 거야. 순간,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일단 따라갔어.


부른 장소에 도착하니, 주임님 두 분이 담배를 피우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 분위기… 아마 남자들은 다 알 거야. 말하지 않아도 불편함과 압박감이 가득한 상황이었지. 어색하게 앞에 섰는데, 고참 주임님이 담배를 쥔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어.

“어이, 정팀장. 팀장이라고는 불러 줄게. 근데, 말이야. 난 정팀장한테 존댓말이나 ‘님’ 자는 못 붙이겠어. 어차피 정팀장도 여기 오래 있을 것도 아닐 테니까.”

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어. 주임님의 말은 계속됐어.


“우리 팀원들, 다들 좋은 애들로만 구성돼 있어. 분위기 흐리지 말고, 조용히 지내자고. 정팀장에 대한 소문 많이 들었어. 사람이 그러면 못 써!”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은 참담함? 자존심 상함? 뭐라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움이었어. 공무원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기지도 않았고. 한편으론 그동안 감사팀에서 근무할 때 나를 인정해 주는 것처럼 대해주던 사람들이 사실은 형식적인 인사만 건넸다는 걸, 이제야 뼈저리게 깨닫게 됐지.


그저 고개를 숙이며 한 마디 건넸어.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주임님.” 정중하게 인사하고 돌아섰지.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했어.


그런데 퇴근길에 차를 갓길에 세우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한참이나 꺼억꺼억 울었어.


한참 울고 나니 웃음이 나더라고. 이 울음이 어떤 감정인지,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외로움인지, 아니면 단순히 야속함인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더라. 


하지만 그 와중에 한 가지 결심은 또렷하게 자리 잡았어.


“그래? 좋아! 어차피 미움받을 거라면, 당당하게 미움받자. 억울하다고 변명해 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테니, 진짜 내 모습대로 6개월만 일해보자. 그리고도 나를 그렇게 평가한다면, 고충신청을 해서라도 이곳을 떠나자!”


응, 친구야!

그때 나는 미움받을 용기가 생겼어. 그것도 아주 큰 용기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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