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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재손금 Oct 12. 2024

불법 마사지 업소 합동 단속

홍등, 트라우마

친구야, 들어봐.

이건 좀 오래된 이야기야.

어느 상가 5층에 입주한 마사지 업소에서 불이 나 3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어. 화재는 수 분 만에 진화됐지만, 마사지 업소가 퇴폐 업소로 변질되면서 좁은 칸막이와 밀실 등을 설치한 게 피해를 키운 거였지. 난리가 났었어. 언론이 매일같이 보도하는데, 정말 어휴...


그래서 소방, 경찰, 시청이 대대적인 합동 점검을 실시하게 됐어. 우리는 비상구 폐쇄와 소방시설 정상 작동 여부를 점검하고, 경찰은 성매매 단속, 시청은 마사지 업소의 인허가와 불법 증축을 확인하는 업무를 맡았어. 나는 그 당시 소방특별조사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주요 업무가 건물의 소방시설을 점검해서 불량일 경우 과태료와 행정명령을 내리는 거였거든. 그래서 이 합동 점검에도 참여하게 된 거지.


소방 2명, 경찰 4명, 시청 1명이 점검조였는데, 각 구별로 점검조가 있었으니 정말 대대적인 합동 점검이었던 거야. 처음 며칠은 재미있었어.

그런데 그놈의 실적! 어느 점검조는 과태료 몇 건을 부과했다더라, 조치 명령을 몇 건 했다더라 하는데, 우리 조는 상사들 흉이나 보면서 룰루랄라 다녔던 거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더 이상 점검이나 단속이 안되더라고. 이미 합동 점검 소문이 퍼져서 업주들이 준비할 건 다 해놨던 거야.


무실적의 고통을 이어가던 어느 날, 마사지 업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다들 바빴는지 형사님들도 안 오시고, 시청 주사님도 안 오시더라고. 날도 춥고 무료해서 마사지 업소 바로 위층에 있는 라틴댄스 학원을 구경했어. 학원은 'ㄴ'자 형태였는데, 모든 벽에 거울만 둘러쳐 있을 뿐 구획된 실도 없고, 한눈에 다 들어와서 춤추는 모습을 재미있게 구경했지. 그러다 "못 오시나 보다" 하고 소방 점검만 얼른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마사지 업소로 갔는데, 업소가 'ㄴ'이 아니고 'ㅡ' 형태인 거야. 분명 학원처럼 공간이 더 있어야 하는 부분에 전신 거울이 설치된 벽이 있는 거야. 위아래 층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몰라. 마사지 업소는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었는데, 위층과 다른 구조가 너무 이해가 안 갔어. 그 벽에 가서 만져보고 두들겨 봐도 모르겠더라고. 천장에 CCTV가 달린 거 외엔 이상할 게 전혀 없었지.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업주가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하는 거야. "정말 이렇게 하셔야겠어요, 소방관님?" 인상이 좋던 분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더니, 한숨을 푹푹 쉬면서 혼잣말로 욕을 하더라고. 난 그냥 서 있기만 했는데 혼자 오해한 거지. 불안한 마음에 같은 조 형사님께 빨리 와보셔야겠다고 전화를 했어. 그러자 사장이 "하, X발 X 됐네" 이러면서 TV 리모컨 같은 걸 누르더니, 마주 보던 벽이 드르륵 거리면서 한쪽 방향으로 돌아가고 그 안에서 무섭게 생긴 아저씨 한 명과 대여섯 명의 외국인 아가씨들이 나오더라. 안쪽을 자세히 보니 복도 양옆으로 밀실이 주르륵 있는데, 모두 빨간 등이 켜져 있었어. 새로 합세한 아저씨와 업주가 무섭게 노려보며 뭐라 뭐라 말하는데, 무서워서 제대로 듣지도 못했어. 정말 무서웠어..


이 사건 덕에 적당한 실적도 올렸고, 같은 조원들에게 술도 얻어먹었지. 그런데 요즘도 빨간 등만 보면 등에 식은땀이 나고 불안해. 이런 걸 PTSD라고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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