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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Jan 05. 2019

누군가 나에게 사랑의 정의를 서술하라 한다면

 누군가 나에게 사랑의 정의를 서술하라 한다면 나는 여름날의 독서실 창 밖부터 떠올려 내겠지. 열 아홉, 나는 고가 옆 건물 3층에 있는 독서실에 다녔다. 10시에 야자를 끝내고 독서실에 가서 남은 공부를 좀 하다보면 시간은 금세 열두시가 넘어갔다. 왼쪽 옆 벽에 달린 불투명한 쪽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김없이 편의점 파라솔 밑에 앉아 있던 우리 아빠. 내 아빠.


 창문을 열면 언제나 나를 향한 아빠의 시선이 나에게 와 인사했다. 마치 내가 언제쯤 창문을 여는지 알고 있는 것   처럼. 가볍게 손 끝을 흔들어 내려오라는 제스쳐를 보내고 팔짱을 낀 채 나를 올려다 보는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그려진다. 가방을 챙겨 엘레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면 건물 현관에 몸을 반만 빼꼼 빼낸 장난스러운 아빠가 보이고, 아빠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있다. 메로나. 내가 좋아하는 거.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8월의 여름 밤은 찌는 듯 더웠다.  그래도 굳이 한 쪽엔 아빠의 팔짱을 끼고 다른 쪽 손으론 메로나를 먹으며 집으로 걸어 가는 길. 몇번이고 됐다고 했지만, 늘 그렇듯 부득부득 우겨 내 가방을 빼앗아 든 아빠는 덥다고 내 팔짱을 좀 빼라고 한다. 그렇다고 진짜로 손을 빼 버리면 서운해 할거 내가 다 아는걸. 아빠의 왼쪽 어깨엔 나의 노란색 백팩이 달랑거리고, 오른쪽 어깨엔 쉼없이 조잘대는 내가 달랑거린다.


 풀벌레 우는 여름밤, 집까지 가는 길.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내내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아빠에게 이르듯 얘기하고, 반 친구와 말다툼이라도 섞은 날에는 내 편을 들며 “걔는 애가 이상하네~ 걔랑 놀지마.” 하는 아빠의 대답을 기어코 들어내곤 했다. 아빠는 늘 내편이잖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모르는 내 친구라곤 한 명도 없었다. 성격이 모난 못난이라 사람을 정말 많이 가리는데 , 그런 내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면 아빠가 모를리가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라면 그들의 성향과 취향, 그리고 거의 모든 근황을 아빠에게 브리핑 하곤 했으니까. 물론 사람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내가 드물게 싫어했던 애들도 주요 브리핑의 대상이 되었다. 아빠는 늘 내편이니까.


 아빠의 요리는 늘 수준급이었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던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아직도 아빠가 해줬던 반찬 얘기를 한다. 더 어릴적 친구들도 우리집에 놀러와서 먹고 갔던 아빠의 떡볶이 얘기를 종종 한다. 너네는 가끔 먹었지만 나는 매일 먹었지롱. 오로지 내 입맛에만 맞춰 만들어 주는 음식들. 나는 정말 사랑받았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특히 요즘에 더 그렇다. 이젠 독립해 나와서 살고 있는 내가 혼자 밥을 차려먹어도 그것이 ‘나를 위한 밥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걸 보면.



 아빠는 늘 내 친구들을 좋아했다. 10살때부터 내 영혼의 단짝인 J도, 205의 친구들도,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릴 때 동네 친구였던 애들까지도. 나는 이제 이름마저 기억속에서 사라진 그 친구들을 아빠는 아직도 가끔 궁금해 하곤 한다. 그런데 아빠는 딱 하나, 내가 만났던 남자애 하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었다. 내가 많이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아빠는 늘 탐탁지 않아 했다. 그 친구와의 꽤 긴 시간의 연애 동안 어쩌면 수십번쯤 아빠 마음에 못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대못은 아니었고, 아주 작은 애기 못 정도라고 믿고 싶은 나는 못난 딸.


 남자친구를 탐탁지 않아 하는 아빠를 뒤로하고,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나는 그 아이에게서 우리 아빠와 닮은 구석들을 찾아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아빠. 그리고 내가 너무 좋아했던 그 아이. 아빠는 아빠 같아서 얘를 싫어하나, 생각했을 정도로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그들 사이엔 퍽 닮은 구석들이 있었다.


 긴 연애는 몇 번의 반복되는 실망으로 막을 내렸고 나는 그제서야 다시 아빠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빠는 내게 조금 화가 나 있었고, 사실 나도 조금 토라져 있었다. 아빠의 팔뚝에 매달려 쉴새없이 조잘대던 딸의 입은 잠시 폐업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 덕에 후회 없는 연애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그때의 그 친구는 어렸고, 그래서 종종 실수를 하곤 했다. 그리고 그때의 나도 어렸다. 어려서 자꾸 실수를 못본 체 하려고 했고, 그것이 나의 가치관에 반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이미 신뢰가 무너졌음을 알았으면서도 애써 무시하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빠가 보내온 문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여름 밤이었다.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독서실 앞에서 고3이었던 나를 기다렸던 그 날처럼 아주 더운 여름 밤이었다. 직장인이 되어 혼자 나와 살기 시작한 이후였는데, 아빠가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에 딸이 잠을 설치지는 않는지 걱정이 되어 문자를 한 것이다. “더운데 잠은 잘 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이렇게 사랑받는 존재인데, 아빠한테는 내가 이렇게나 소중한 딸인데. 내가 더위가 아니라 틀렸다는걸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관계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음을 알면 얼마나 속상할까, 나 지금 진짜 불효를 하고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복잡했던 마음이 갑자기 평온해졌고, 더이상 고민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아온 사랑의 형태란 더우면 더울까, 추우면 추울까 말 그대로 애지중지 해 온 그런 것이었다. 연애를 한답시고 나 자신을 스스로 나의 우선순위 밖으로 밀어 내는 것은 아빠가 나에게 쌓아 놓은 사랑을 배신하는거나 다름 없었다. 내가 이 사람한테는 어떤 딸인데, 내가 이렇게 소중한 존재인데. 그런 내가 나를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건 아빠에, 그리고 아빠가 준 사랑에 대한 기만이라고.


 아빠가 나를 걱정 할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날이 춥거나 더워 힘이 들까봐,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밥 때를 놓치고 다니는건 아닌가 하는 사소한 것들 뿐이어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나에게 있어 사랑의 정의란 거의 아빠 그 자체다. 물론 아빠에게는 또 아빠 자신으로서의 인생과 모습이 있기에 또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아빠로서 보여준 모습만큼은 그렇다.


 나는 살다보면 생기는 사소한 트러블 가운데, 그것이 내가 의도치 않은 일 일때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내가 뭘? 그 사람이 싫다면 싫은거지, 나랑은 상관 없어’ 정도의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가끔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나를 신기하게 여기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묻곤 한다. 애정에 대한 욕심이나 욕구가 부족한 성격 탓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 같다. 이미 나를 충분히, 절대적으로, 온전히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든 간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게 아닐까.


 요 며칠, 물리적 거리 상으로는 50km 정도는 족히 떨어져 있는 아빠와 꼬박꼬박 한 시간씩 전화 통화를 하는데 예전 생각이 났다. 아빠 팔에 매달려 쉴 새 없이 재잘대던 열어홉의 나는, 스물 아홉이 되어 전화기에 매달려 여전히 아빠에게 하루 일과를 고스란히 읊고, 친구들의 근황을 전하며 뉴스에 나온 일들을 토로한다. 다만 달라진게 있다면, 아빠도 아빠의 일상을 나에게 토로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아빠의 일상 속에 출몰하는 소소한 적들을 내가 함께 욕해주기 시작했다는 거.


 아빠는 내가 이렇게 온라인에 글을 쓰는건 꿈에도 모를텐데! 언젠가 보게 될지도 모를 아빠에게 미리 안녕, 인사할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운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빠, 나의 팔할은 언제나 아빠로 이루어져 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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