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Sep 26. 2024

사건


불상이 모조리 사라졌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밤 중에 일어난 일도 아니다. 나는 이유를 찾으려 화장대에 앉았다가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화장대 앞이 휑했다. 금주라고 적혀진 핸드폰 배경화면을 쳐다봤다. 내가 이번 달 목표를 잘 지켰을까? 혹시 나도 모르게 술을 마신 거라면? 술을 마시고 기억을 잃었다면?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냉장고를 뒤졌을 수도 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


지난 여름날 밤 중에 돌아다닌 적이 몇 번 있었다. 다 내가 자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인이가 물마시러 나왔다가 나를 발견했다. 


“언니. 뭐해?”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자인이는 내가 냉장고를 마주보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눈은 반쯤 떠 있는데 대답은 안하더란다. 몇 번 물어도 대답이 없길래 욕을 했다는데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어서 방에 들어갔다고 했다. 나는 전혀 기억이 안났다. 언제 다시 방으로 돌아갔는지 눈을 떴을 때는 침대 위였다. 


두번째는 엄마가 나를 발견했다. 그 날 밤은 에어컨 앞에 서 있었다고 한다. 자인이가 냉장고 앞에서 나를 봤을 때랑 엄마가 에어컨 앞에서 나를 봤을 때는 날짜로 치면 한 이 주 정도 차이가 나니까, 아마 그 사이에도 몇 번 더 집안을 돌아다녔을거라고 추측했다. 어쨌든 그 날은 다같이 수박 반 통을 먹고 잤기에 제일 먼저 방광이 찬 엄마가 요의를 참지 못하고 새벽녘에 일어났다. 엄마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나를 못 봤다가 나오면서 나를 봤다. 


“지인아. 쉬 하고 싶어?” 


엄마는 내가 화장실 가고 싶어서 일어난 줄 알았을 것이다. 자인이가 말했던 것처럼 그 날도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어컨 앞에 얼마나 서 있었던 건지 코 끝이 얼음처럼 차가웠다고 했다. 자인이라면 그대로 방에 들어가서 잤을 테지만, 엄마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지 내 어깨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지인아! 더워서 그래?”


여기까지가 엄마의 구체적인 기억이다. 엄마는 한참 말없는 나와 씨름하다가 방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



“그거 몽유병이에요. 밤에 돌아다니는거.”


엄마는 엄마가 아는 유일한 의사인 윗집 아줌마를 불렀다. 엄마가 아끼는 육인용 대리석 식탁에서 의사와 보호자와 환자는 긴장한 채 삼자대면을 했다. 그는 내 눈 밑을 톡톡 두드려 보더니 다크써클이 심해졌다고 했다. 그즈음 어쩐지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피곤한 나날이 이어졌다. 엄마가 아줌마 앞으로 바싹 다가와 이것저것 물었다. 몽유병이 왜 생기는지,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뭘 먹여야 하는지 이런 것들이었다. 


“대중없어요. 일단 컨디션 회복이 우선이에요. 그런데 지인이가 일어나서 뭘 해요?”


“저번에는 냉장고 앞에 있었다고 했고, 이번에는 에어컨 앞에… 아이고. 시원한 곳을 찾나봐요. 그죠?”


두 사람은 몇 가지 추론을 내놨다. 윗집 아줌마는 최근에 받은 스트레스와 찬 곳을 찾는 게 연관이 있을 거라고 했다. 자기가 아는 정신과 지인한테 자세히 물어보겠다며 폰을 뒤적거렸다.


“정신적인 문제에요? 세상에.”


세상에…엄마의 끝 말은 메아리처럼 잔상이 남았다. 엄마는 알굵은 염주 팔찌를 한 알씩 굴려가며 불경을 읊조렸다.


“그…뭐… 스트레스가 다 그렇죠. 현대인들이잖아요.”


윗집 아줌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엄마의 낯빛은 어두웠다. 



-



그렇게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그날 밤 나는 한 번 더 잠결에 움직였다. 아무도 그 시간에 내가 뭘했는지 보지 못했지만 대리석 식탁 위에 빈 맥주캔들이 간밤에 일어난 일을 짐작케했다. 엄마는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몰래 술을 마셨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김지인…이 미친 것…! 거실에서 시작된 샤우팅이 방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환자가 밤새 술 마시고 잘한다 잘해 어찌된게 이 집에는 제정신인 사람이 없다 병자인거 자랑하니 이해받을 일을 해야지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술을 마셔어! 나는 잠에 골아떨어져있다가 귀를 때리는 우렁찬 소리에 비몽사몽 깨어났다. 나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해명을 했는데 그게 더 엄마를 화나게 한 모양이었다. 


“입가에 묻은 맥주거품이나 닦고 말해라!”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정말 거품 자국이 하얗게 남아 있었다. 머리가 살짝 어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또 자는 중에 나간 모양인데 이번엔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낸 것 같았다. 우리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자인이 밖에 없는데 자인이는 출장중이니, 범인은 역시 바로… 나는 구역질이 나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엄마는 한 숨을 푹푹 쉬며 빈 캔을 하나씩 찌그러뜨렸다. 나는 내가 의도를 가진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마시긴 했는데, 내가 의도를 가지고 마시려고 한게 아니야… 나 몽유병이잖아…기억이 하나도 없어 정말이야… 


엄마는 인상을 썼다. 무턱대고 화낸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시게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 답답하기도 했으리라. 엄마는 윗집 아줌마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이틀 연속이나 보다니 그 아줌마도 바쁘시지 않겠냐는 말에 엄마는 문 밖을 나가려다 되돌아왔다. 냉장고에서 착즙 주스 하나를 꺼내 종이백에 넣다가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너 그 아줌마 말 들었지.”


“뭐.”


“정신적인 문제라잖아. 너 이미 약 먹고 있는데 또 문제가 있다잖아! 집에서 허구헌날 노는 데도 스트레스가 있다잖아! 너 대체 뭐가 진짜 문제야.”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엄마는 물티슈를 던지듯이 건네고 나갔다. 나는 눈꼽을 닦으며 하품을 했다. 



-



엄마가 돌아온 건 저녁이 한참 지나서였다. 사람 상반신만한 박스를 힘들게 들고서. 일찍 들어온 자인이가 엄만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을 했다. 우리들은 엄마만 없으면 라면을 먹었는데 엄마는 다 큰 애들이 밥도 스스로 못 차려먹냐고 혼낼게 뻔했다. 나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바로 남은 컵라면 국물을 개수대에 버렸다. 황급히 부엌 창문을 열고 자인이것까지 정리하는데, 자인이가 어어 내꺼는 둬,라며 손짓했다. 내가 분주한 와중에 자인이는 도리어 엄마가 없어서 밥을 못 먹었다고 푸념을 했다. 엄마는 자인이와 나를 한 번 씩 째려보고는 거실에 박스를 놓았다. 


“웬거야? 선물?”


자인이는 대충 붙어 있는 테이프를 떼내서 박스를 열었다. 그는 박스 안에 머리를 넣고 잠깐 살피더니 김 빠진 채로 일어섰다. 아, 또. 또 이거네. 나는 자인이 뒤를 이어 박스에 손을 집어 넣었다. 힘을 한 번 주고 기합과 함께 들어올린 것은 불상이었다. 


엄마가 들고온 것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컸다. 아미타불인지 관세음보살인지 아는 바 없지만 다 비슷하게 생겼으니 그런 신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실눈을 뜨고 살짝 미소를 짓는 불상너머로 한결 온화해진 표정을 짓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윗집 아줌마를 만나고 절에 갔다가 새 불상을 사왔다고 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 옆에는 교회와 절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교회는 높은 첨탑에 익숙한 십자가가 달려 있어 교회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절은 달랐다. 도심에서 면적을 넓게 차지하는 한옥을 지을 수 없어 양식 건물을 올렸는데 옥상에 작은 기와를 붙여놔서 안맞는 모자를 쓴 사람같이 이상했다. 종교가 없었던 엄마는 아줌마들 따라 교회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뭔가 안 맞았는지 잔뜩 성을 내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향을 맡아야 되겠다며 절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제로 도움이 된건지 그때부터 엄마는 매일 마시던 술도 끊었다. 자인이와 나한테 간간히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박장대소하듯이 웃으면 웃었지 입꼬리가 호를 그리는 표정을 지어본 적 없는 엄마였다. 


엄마는 절에서 염주도 사오고 금가루가 붙은 액자도 사왔다. 급기야 손가락만한 불상을 귀엽다며 모으기 시작했다. 안방 화장대는 콧물 흘리는 동자승 무리와 나무나 돌로 만든 불상으로 채워졌다. 안방은 점점 작은 암자처럼 되어갔다. 


“어디 놔둘거야. 그 큰 걸.”


“안방에.”


“안방에 자리가 있어?”


“그럼 너네 방에 두겠니? 코딱지만한 거실에 두겠니? 그나마 안방이 크니까 여기에 둘 데가 있을거야.”


자인이는 남은 컵라면을 들고 제 방으로 갔다. 나는 엄마한테 업혀가는 불상을 바라봤다. 이 불상도 미소짓고 있었다.



-



이까지가 저번주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자인이와 엄마가 출근을 하러 나가고 나는 아침을 먹고 침대에 누웠는데, 일어나니까 안방 침대 위였다. 눈곱부터 떼고 기지개를 켜는데 방 안이 썰렁했다. 이윽고 화장대 앞, 안방 화장실 앞, 서랍장 위에 놓인 불상들이 모조리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커튼 사이로 쨍한 빛이 들어왔다. 한낮에 잠들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걸까. 집에는 또 나 혼자고. 용의자도 나 하나다. 이번에는 엄마가 정말 나를 죽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찾은 평화가 나로 인해 깨지고 있었다. 나는 에어컨을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숨 참고 다이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