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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차나 Sep 14. 2021

100억이 있어도 산재 신고합니다

Chapter 5. 호신술로 나를 구할 수 있을까요

두 어 달이 지나 나는 산재위원회에 참석했다. 절차상 문제로 4시간이 걸리는 심리검사를 두 차례 마친 후였다.


당일 대기하면서 나는 휴대전화와 수첩에 쓰고 또 쓴 ‘내 사건이 산업재해인 이유’에 대해 읽으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미 산재 요건에 부합하는 데다가 사업장에서 산재 발생을 인정했으며 의사 진단서와 소견서, 그동안의 정신과 치료내역도 빼곡했다. 완급조절이 필요했다. 근거를 갖췄으니 다시 한번 간절함을 내보이되 정중한 태도로, 너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듯 오버하지 않는 것이 핵심일 것이라 판단했다.


나는 이런 자리에서 꼭 필요한 말만 깔끔히 그러나 진심이 전달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의심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온 과정을 생각하며 나를 믿었다.


또 이 고난 속에는 나처럼 마음 아파해준 가족들과 친구들의 도움과 그들의 기도가 함께 했음을 믿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자살을 꿈꾸고 실행했던 내가 신을 언급할 면목은 없다만 지금껏 어렵사리 일이 풀려갈 때마다 이 고난이 신의 계획 아래 있다고 감히 믿지는 못 해도 하늘의 돌보심 아래에 있다고는 믿었다. 순리대로 될 것이다. 성호를 긋는 마음으로 회의장 문을 열었다.


회의장에는 족히 10명의 산재판정위원회 의원들이 참석했다. 정 가운데에는 내 자리, 그리고 마주 본 자리에 판정위원회장이 있었다. 내 차례인 날은 머리가 희끔한 여성 위원장님과 젊은 여성분, 중장년의 남성분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자리했다.


위원회는 정신건강 전문의 너 다섯 명을 포함해 각 분야 전문인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검찰에서 벌금을 구형해 대법원 판결만 기다리는 상태였다. 즉 법적으로 증거 검토가 된 사건인 만큼 사실여부를 가리는 질문은 많지 않았다. 다만 왜 일이 여기까지 벌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던져졌다.


 “언론사에서 이런 일이 처음은 아녔을 것 같은데, 과거에는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사업장에서 어떻게 대처를 했습니까?”

 “네. 아시는 대로 기사는 법적 시비가 종종 붙기 때문에 회사에는 자문 변호사도 있고 법조담당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관련 문제가 생기면 이런 이들을 통해서 해결했는데요. 이거는 회사로 들어오는 공격이기 때문에 방어해야 하지만, 제 경우에는 제가 스팸처리를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왜 회사 차원에서 도와줘야 하느냐가 전 회사 팀장의 생각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드디어 나의 시간이었다.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선 방망이질이 시작됐다.


 “선생님들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산재 절차가 저한테도 힘들었습니다. 각오했던 것보다 여기까지 오기가 더 힘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돌아가도 저에게 백억, 천억이 있어서 지원이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산재 신고를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업장에서는 제 사건을 ‘악플러로 인한 우울증’ 즉 제삼자 가해로 인한 사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던진 돈, 물론 그 돌의 무게에도 아팠지만 상사고 동료라 믿었던 회사 사람들의 무관심, 무시, ‘그냥 얘 멘털이 약해서 일어난 일’ 정도로 여기는 과정에서 더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이 사업장에서는 또 다른 재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를 알리고 싶어 여기에 왔습니다.


벌써 1년 전이지만 저는 재취업은커녕 일상생활도 버겁습니다. 친구도 가족도 만나기 싫습니다. 제가 다시 사회로 나가기 전 회복할 시간을 갖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껏 가슴속에 간직했던 울분이 컸던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줄이고 줄였는데도 말은 유장하게 나왔다. 위원 회원 중에서는 눈빛 만으로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는 분도 계셨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한마디 말도 전하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돌아오는 길, 나보다 힘든 사람도 많을 텐데 내가 너무 징징거린 것이 아닌가 자기 검열의 늪에 다시 빠지긴 했지만 후련했다.


나는 내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여기 이런 일로 아파하는 사람도 있다고. 어떤 직업이라고 무지막지하게 돌을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회사는 적어도 직원의 아픔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외치기 위해. 이날 결과는 업무로 인한 중증 우울 에피소드, 산업재해 승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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