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차나 Sep 11. 2021

선생님, 죽지 않아 다행인 날이 올까요?

Chapter 4. 정신과에 입원을 했습니다

나를 맡은 전공의 C 선생님께는 남몰래 가졌던 죄책감과 두려움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제가 예전에 사인이 쟁점이 된 사망 사건에 어떤 약물을 구해서 학생이 자살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법의학자 인터뷰를 인용해서 기사를 썼어요. 그런데 그 기사를 보고 그 약물이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용서가 안돼요. 제가 그런 식으로 자살을 부추기는 영향을 끼쳤다면요.”


……. 그런데  기사를 보고 누군가가 약물을 알아냈으니 죽겠다고 결심을 했을까요? 혹시 차나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스쳐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요? 나님이 지금껏 말했듯이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업무라서 어쩔  없이 쓰신 기사가 많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그런   하나 아닐까요.”


“그런데도 나쁜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불안해요. 그 사람의 저주처럼 제가 소중히 생각하는 가족이나 친구한테 불행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날까 봐 두려워요.”


“나쁜 생각이 스치는 건 어쩌면 우리가 어쩔 방법이 없어요. 그걸 막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머릿속에서 그냥 흘러가게 하는 건 우리가 할 수 있어요. 또 걱정이 있다면요?”


“저는 남에게도 못할 말을 스스로 너무 많이 해요. 전 회사에 대해서도 제 잘못이 아닌데도 결국 제 탓을 하게 돼요. 이런 저한테도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올까요?”


“그럼요. 자기 탓을 하는 건 예를 들면 어떤 거예요?”


“그러니까…그 회사가 나빴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아닌 거 알았으면 진작 그만뒀어야지.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다그치게 돼요. 사실 사건 있기 1년 반 전부터 회사는 그만두고 싶었거든요. 만약 바로 그만뒀다면 제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지금껏 괜차나님 이야기를 들었으니 할 수 있는 얘긴데요. 그때 차나님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어요. 차나님은 충분히 최선을 다한 것 아닐까요? 그리고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그만두신 것이 가장 빨리 그만둔 것은 아닐까요?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요. 또 미래에도 어떤 좋은 일이 생겨서 이때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모르죠. 혹시 돌아보면 이때는 이렇게 힘들어했었지 하고 넘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음 그럴까요? 저는 그냥 바보 같아요. 너무 심사숙고하다가 타이밍을 놓쳐 버리는걸요. 결심하고 저지르는 사람이 부러워요.”


“저지른다라, 충동적이고 싶으세요?”


“네. 회사도 아니다 싶으면 3일 만에 그만두는 친구가 제일 부러워요. 저는 끙끙 앓으면서 몇 날 며칠, 아닌 몇 년을 그렇게 있기도 하거든요.”


“충동적인 건 훨씬 쉬워요. 참고 견디는 게 더 어렵죠. 잘하신 거예요.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원하신다면 앞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네. 이젠 참지 않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행동할래요.”

“그래요. 그리고 괜차나님이 생각하는 평안한 날은 꼭 올 거예요. 할 수 있어요”


이런 대화를 통해 전공의 선생님은 사실을 바꿀 수 없지만 내 머릿속 기준과 생각은 바꿀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셨다. 가벼운 어조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괜차나님은 하실 수 있어요’라는 응원은 생각지도 못한 힘을 얻게 해 줬다.


반면 내 부모도 나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내 머릿속 자아는 어디서 이렇게 못된 말만 배워와 스스로 몰아붙이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전 13화 그 사람이 죽어도 슬플 것 같지 않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