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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차나 Sep 09. 2021

잠 잘 오는 정신과 병동의 밤

Chapter 4. 정신과에 입원을 했습니다

도착한 7인실에는 꽤 사람이 많았다. 심리적인 문제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아주머니, 우울증세로 보이는 할머니, 알코올 중독 언니, 그리고 나.


절반이 찬 병동은 꽤 활기찼고 티브이가 잠드는 시간 외에 늘 켜져 있었다. 다만 어르신들의 기상 시간은 5시, 잠드는 시간은 9시인 탓에 나는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틀어막고 시간을 보냈다. 지나가다가도 기자 일을 떠올리게 하는 뉴스를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가장 좋은 건 때맞춰 무릎 위에 놓이는 삼시 세 끼였다. 아침 식후엔 어젯밤 잠은 잘 잤는지, 밥은 얼마나 먹었는지, 화장실은 몇 번 갔는지 등을 체크하러 간호사님이 오시곤 했다.


나는 밥을 3분의 2나 전부를 먹어 그 병동에서 가장 잘 먹는 사람이었다. 대부분 식사를 옆에 치워둔 채 있거나 절반을 먹으면 많이 먹는 편이었다. 소화가 안 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밥 먹다가도 트림이 나고 체할 것 같아 복도를 서성이며 불편해 보였다.


병실에 온 후 눈에 띄게 컨디션이 좋아진 나는 눈만 뜨면 정갈하게 차려진 따뜻한 밥상이 눈앞에 놓이는 것에 조용히 환호성을 질렀다. 두부와 계란찜에 들어가는 간장 맛 당근의 크기가 똑같다는 것, 유달리 맛있게 무쳐진 나물의 양념이 무엇인지 등을 관찰하며 밥을 먹었다.

매일 무릎 위에 놓였던 따뜻한 밥

생일날에는 메뉴 이름이 적힌 종이에 ‘축 생일’이라는 글자가 함께 나왔다. 의도치 않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닭강정이 나왔다. 생애 최초로 거의 아무도 모르게 병원에서 맞는 생일이지만, 끼니마다 주어지는 따뜻한 밥에게 축하를 받는 것 같았다.


배가 차면 7층에서 꼭대기층까지 계단을 오르고 중간층에 있는 작은 정원에서 운동을 했다. 삶이 계속된다면 크라브마가는 여전히 내 일상의 중심일 테니 나는 근손실이 죽음보다 무서운 환자였다. 옥상에서 스쿼트, 런지, 팔 굽혀 펴기, 요가를 하며 햇볕을 쬐었고 매일 몸무게를 체크하며 그날에 오를 계단 층수를 결정했다.


따뜻한 밥과 넘치는 시간. 조금의 수고도 없이 매끼 밥상을 받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눈 뜨면 시간이 무제한으로 주어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때 누린 안정감은 병원신세가 그리움으로 남을 만큼 충만했다.

메모를 써놓고 자리를 비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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