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데 퇴사하고 싶을 때, '질병으로 인한 퇴사'
우리 사회의 실업급여 제도는 자진 퇴사를 하더라도 근로자에게 발생한 질병으로 인해 업무가 어려워 퇴사하는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질병은 업무상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또 산재와 실업급여는 모두 회사가 아닌 고용부에서 승인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그 과정에서 스스로 보는 눈치는 어쩔 수 없었지만, 조금만 참으면 퇴사 후 ‘조금만 더 참을걸’하고 후회하는 대신, 그동안 고용보험에 가입해 일한 기간에 따라 주어지는 실업급여를 몇 개월간 받으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먼저 자신의 주소지 근처 고용센터에 가서 두 가지 서류양식을 받는 것이다.
하나는 ‘질병으로 인한 퇴사 확인서’이며 인사팀이 문항에 답하고 마지막에 회사 직인을 찍어줘야 하는 A4용지 1장 분량의 서류다.
‘질병으로 인한 퇴사 확인서’는 사업장에서 병가를 줄 수는 없었는지, 업무 전환은 불가능했는지 등 이 근로자가 질병으로 인해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묻는 문항이며, 내가 아니라 사업장 인사팀이 알아서 작성해야 하는 내용이니 걱정하지 말자.
또 하나는 퇴사 경위서인데 이것은 스스로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에 낼 필요조차 없다.
마지막 하나는 내 질병을 증명하는 의사 소견서이다. 허리 디스크나 손목 염증으로 수술을 하는 등 명확한 질병이라면 더 수월하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해당 질병으로 치료가 얼마 기간 동안 필요하다’는 내용의 진단서를 작성해주시면 이를 함께 고용센터에 내면 된다. 내 경우 정신적인 질병이었기에 조금 까다로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처럼 어렵지 않았다.
이 제도를 설명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망설이는 반응을 보이는데 대부분 병가나 퇴사라는 말을 회사에 꺼내가 껄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역시 마지막 용기를 짜내어 ‘질병으로 인한 퇴사 확인서’를 사업장에서 받았고 퇴사 경위서는 내가 직접 작성했다. 퇴사를 하면서 제일 잘한 것이라면 미리 이 서류를 받고 나온 것이다. 그러니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면 잠깐의 용기로 더 큰 것을 얻기를 바란다.
회사의 직인이 찍힌 질병으로 인한 퇴사 확인서를 넘겨받은 후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제 나는 업무 중 얻은 이 병을 이유로 산업재해 신고와 실업급여 수급 모두를 차례차례 할 수 있게 되었다. 산재와 실업급여는 동시 수급은 되지 않는다. 산재를 먼저 지급받은 후, 미리 고용센터에 가서 연기해 둔 실업급여를 잇따라 받으면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보이지 않는 정신적 질병을 꾀병 취급하는 회사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과 괴로움, 동료들의 외면까지 아픔을 겪어야만 했지만 결국은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는 점은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