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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다독 多讀의 힘

「저것들은 본래 내

  호주머니 속의 용돈이었다.    

  우리 아이들 과잣값이 되어야 하고

  아내의 화장품값이 되어야 하고

  음식값이 돼야 했을 돈들이

  어찌어찌 바뀌어 저기에 와

  앉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다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이렇게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멍하니 마주 보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 나태주, ‘서가의 책들’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중에서」     

  

  내 방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과 거실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을 보면 뿌듯하다. 물론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읽기 전인 책도 있고, 목차만 보고 발췌해서 읽은 책도 있다. 여러 번 읽은 책도 있고, 제목만 보고 아직 손이 가지 않은 책도 있다.    


  나는 중고서점에 가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이 정말 나한테는 정신적 허기를 채우는 것인지 몰라도 읽든 안 읽든 책을 사야 마음이 배부르다. 그런데 새 책을 계속 사다 나르는 것도 부담되는 때가 있었기에 그때부터 중고서점을 택했다. 물론 신간은 서점으로 향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비밀스레 말을 하자면 화장실에서 들어가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오기를 반복한 것이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대가족이 사는 집이라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어른들의 눈앞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미라야~ 이것 좀” 하고 부르시면 심부름시키는 게 다반사라 숨어든 곳이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적어도 나갈 때까지 부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참 좋은 선택이기도 했지만 난 화장실에서 책을 읽느라 다른 병(?)을 얻었다. 절대로 오래 앉아있는 것은 추천하지 않겠다.    


  책을 읽는 데 있어서 장르를 크게 따지지는 않는다. 다만 엄청 꾸며진 말로 가득한 글보다는 담백하게 읽어지는 책이 좋다. 그래서 한국 단편소설을 엄청 읽었다. 한국 단편소설은 대체로 길이가 짧고 덤덤한 듯 이야기한다. 슬픈 이야기도, 아픈 이야기도, 기분 좋은 이야기도 덤덤하게 이야기해서 독자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같은 내용을 내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도록 만들어준다. 내가 쓰는 글 대부분도 10번씩 읽은 한국 단편소설의 영향이 지대하리라 생각한다. 미사여구의 사용은 최대한 자제하고 짧은 문장, 최대한 덤덤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 걸 보면.    


  고전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내가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어서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많은 것을 배운다. 그것이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뭐든지 간에 하나라도 배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알아야 면장(面牆)을 한다.

  이 말은 다 들어봤을 것이다. 누가 그랬다. 많이 알고 똑똑해야 면장(面長, 면의 행정을 맡아보는 으뜸 직위에 있는 사람)를 한다는 뜻이 아니냐고. 과연 그런 의미인 걸까?     


  공자의 <논어 양화 편>에 보면, 공자가 아들이 공부를 너무 소홀히 하자 공자는 아들에게‘알아야 담장에서 얼굴을 면한다’라는 뜻의 ‘면면장(免面牆)’이라는 표현을 한다. 이 말은 지식을 넓혀 사람다운 행동을 하라고 충고를 하는 말이었는데, 이 ‘면면장(免面牆)’이 유래가 되어 앞글자가 빠진‘면장(面牆)’이 나중에 ‘알아야 면장(面牆)을 한다’는 말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알아야 면장’이라는 말은 담벼락을 마주 대하고 선 것 같이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즉 견문이 좁은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하지 않으면 담벼락 앞에 선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아 나아갈 수 없다. 글쓰기도 내가 무엇인가 알아야만 쓸 수 있고, 아는 것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넓고 다양해진다. 많이 알 방법은 책을 읽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책 추천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니 선뜻 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추천하는 책은 고전이다. <채근담>이나 <손자병법> 같은 고전은 한 번쯤 내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비교적 문장 자체가 길지도 않고 잘 읽어진다. 또 끊어 읽거나 부분적으로 읽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또 뉴스와 신문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회적,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 기본적인 내용은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어떤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할 수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조차 모르고 있으면 혹은 그 개념은 알아도 다른 개념과의 관계를 잘 모르고 있으면 문장을 만들지도 못할뿐더러 토론은 하지도 못한다. 적절한 때는 꼭 필요한 말이나 글은 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다독多讀의 힘이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은 누구나 하지만 나 역시도 다독多讀을 좋아하고, 다독이 글쓰기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은 어릴 때 이야기다. 성인이라면 인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정확하게 바른말과 문장을 사용하는 흥미로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지식은 물론 어휘와 문장까지 배우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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