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많은 경험이 쌓여야 그만큼의 내공도 쌓인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운 좋게 방송작가가 되고 3년인가 4년쯤 지났을 때, 나는 다큐멘터리부터 시작해서 생방송 정규 프로그램, 캠페인 등 수많은 일을 쳐내는 나름 베테랑 작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23살에 들어온 방송국에서 어느덧 26살이 되고 나는 젊음을 잃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마 잦은 밤샘과 일의 강도에 지쳤던 것 같다. 문득 방송만 하다가 늙어버리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경험하러 내가 떠나자!
“저……. 유럽으로 떠나겠습니다.”
지금이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니, 상상이니 할 수 있을 법한 손에 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무작정 떠나기를 26살의 방송작가는 해냈다. 이렇게 뱉어내고 한 달도 안 된 크리스마스이브에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진짜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계획 세우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유럽으로 떠나면서 어떠한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모든 걸 정해놓고 부딪히는 재미없는 경기같이 느껴진다. 자고로 게임은 승패를 알 수 없어야 제 맛이니까. 다만 혼자 처음 가보는 유럽이라는 낯선 세상이 살짝 겁이 나긴 해서 항공권과 호텔만 예약해 두고 훌쩍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프랑스 드골공항에서 시내로 빠져나와야 하는데 그 어디서도 영어로 대꾸해주지 않았다. 영어로 물어도 불어로 대답하는 어이없는 상황만 이어졌다.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인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공항에서 3시간을 방황했다. 제길, 난 왜 제2 외국어를 독일어를 배웠던 걸까?
겨우 공항에서 호텔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의 유럽 여행은 제대로 시작됐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떠나와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유럽에서 맞이한 스물여섯의 겨울은 생각보다 아름답지는 못했다. 벌써 향수병인가? 물이 안 맞아서 그런가? 지독한 감기몸살로 아까운 시간을 호텔 방에 드러누워서 보냈다. 별다른 약도 없었고 몇 개 꾸역꾸역 넣어간 컵라면만 눈물과 함께 삼켰다. 그냥 서러웠다. 일도 때려치우고 떠나온 배낭여행에 이렇게 감기몸살로 드러누워 며칠을 보내다니.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고 그냥 다 속상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TV를 켜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하는 방송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여기는 저렇게 배치를 하는군, 저렇게 구성을 하는군, 이렇게 해도 되겠구나 하면서 혼자 그림을 그려대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인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겼다. 이유도 모르겠고 온몸이 너무 간지러웠다. 약도 없는데…. 그다음 경유국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였고, 이미 떠나기 전에 부다페스트의 온천은 나의 필수 리스트에 들어있었다. 추운 유럽을 돌아다니느라 지친 내 몸을 뜨끈한 온천에서 풀어야지, 생각하고 드디어 온천에 들어갔는데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었다. 맙소사. 그래도 어차피 혼자 떠나온 여행인데 뭔들 문제랴. 뜨끈한 온천물이나 즐기자고 물에 발을 담갔는데 물이 미지근했다. 탕을 잘못 고른 건가? 여기도 저기도 뜨겁거나 얼큰할 정도의 온도가 아니었다. 정말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돈을 내고 들어왔으니 조금은 있다가 나가야지. 호텔로 돌아와 잠을 자고 일어나니 두드러기가 다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인터넷으로 부다페스트의 온천을 치면 뜨거운 연기가 폴폴 올라오는 온천 그림투성이인데 내가 간 곳은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의 두드러기를 잠재운 아주 효능이 있는 온천으로 기억하고 산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필수품은 유럽 여행책이다. 이미 유럽 여행을 다녀온 수많은 사람이 쓴 책에는 유럽 여행의 꿀팁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각기 다른 2권의 유럽 여행책을 가지고 여행을 다녔다. 책에서 꼭 가보라는 곳은 들러보고 밑줄 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나도 언젠가 이런 여행책을 꼭 내야지 생각하면서.
스위스에 가서는 길거리와 도시 모두가 세계유네스코 문화재에 등재된 베른 구시가지에서 멋진 야경에 셀카도 찍고,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했던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스위스 여행으로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인터라켄에 가서는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융프라우에 갔다. 해발 4158m의 높이를 자랑하는 만큼 등산을 한 건 아니고 기차로 올라가서 전망대인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 야외전망대쯤에서는 우리나라 컵라면을 팔고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작은 컵라면 하나가 얼마나 비싸던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냥 내려왔다.
독일에 가서는 그 유명한 독일 하우스 맥주를 먹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코올이라면 쥐약인 내가 독일 뭰헨 호프브로이하우스로 가서 소시지에 생맥주를 시켰다. 술이 취해서 그랬는지, 시끄러워서 그랬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기억만 난다. 그래도 나 독일에서 맥주 마셨다~예!
중간에 북유럽과 동유럽 12개국을 돌았으니 엄청나게 움직였다. 먹는 건 친근한 맥도널드 가서 햄버거만 하나 사서는 세끼를 나눠 먹은 날이 많았다. 배고픈 여행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다이어트도 되고 좋았다. 마지막으로 간 나라가 영국이었다. 영국에서는 무조건 런던 웨스트엔드로 갔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오페라의 유령(Phantom of The Opera>을 보기 위해서다. 1986년 여왕 폐하의 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바로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1억 4천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는 엄청난 기록과 거대한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놀라운 연출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금액이 1층보다 2층이 더 싸서 돈 없는 나는 2층 좌석을 선택했다. 어디인 들 전혀 문제 될 리 없었다. 2시간 정도 홀린 듯 오페라를 봤다.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직도 <오페라의 유령 O.S.T>를 들으면 그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렇게 1개월하고도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유럽 12개국을 돌았다. 추운 유럽에서의 한겨울을 보내고 추위에 많이 지쳐있었던 나는 친구가 있는 따뜻한 태국으로 날아갔다. 무작정. 그리고 다시 3주를 태국에서 신나게 보냈다.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2달이었다.
그렇게 놀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됐다. 그렇게 당당하게 이제 작가는 안 한다고, 다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이제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하지? 작가는 내 손으로 때려치웠으니 다시 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이제 와서 새로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사실 방송이 싫어서 때려치운 건 아니었는데. 어쩌면 여행을 하는 2달 동안 나는 방송에 더 목말라졌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하지?
유럽과 태국여행까지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를 넘긴 2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새벽에 집에 도착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 아침 일찍 친구와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섰다. 방송국이 있는 백화점 근처를 지나려는데 방송국 편성제작국 팀장님이랑 딱 마주쳤다.
“하작가, 언제 왔어?”
“아, 오늘 새벽에요.”
“이제 다시 일해야지? 언제 올래?”
팀장님의 말 한마디에 잃었던 입맛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뛰고 숨쉬기가 편해졌다. 기뻐서 날뛰고 싶었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켜야지.
“오늘 돌아왔는데 좀 쉬다가요~”
아주 쿨하게 이렇게 말하면서도 다시 안 불러줄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나는 언제 유럽을 다녀왔냐는 듯이 다시 방송국에서 다크서클 흘려가며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 꿈같은 두 달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나를 한 뼘 성숙하게 했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