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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당신께 드려요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자.    


  유난히 더운 어느 날, 저녁에는 그녀와 데이트를 하기로 한 당신.

빨리 마치고 집에 가서 씻고 옷도 멀끔하게 갈아입고 데이트 장소로 가야겠다던 생각과 달리 갑자기 문제가 생겨 뒷수습하느라 약속 시각이 다 되어버렸다. 씻고 옷도 갈아입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 상태로 그녀에게 갔다. 땀에 젖어 얼룩까지 진 모양새가 너무 신경 쓰였지만, 그녀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저녁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근처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집에 가서 좀 쉬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녀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싸하다.     


  ‘그녀가 나와 빨리 헤어지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가?’ 

  ‘내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냄새가 나나?’

  ‘조금 늦더라도 씻고 오는 게 맞았는데…….’ 


  생각이 이렇게 가지에 가지를 치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이런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5월에 피는 장미꽃도, 천년 만에 피는 우담바라도 아니다.

    땀 흘려서 일한 그대 얼굴에 피어난 소금꽃이다.    

       -김영훈 <생각줍기> 중에서-    


    “오늘 열심히 일하고 달려와 줘서 고마워요. 참 멋진 모습이었어요. 푹 쉬어요.”       

 

  어떠한가?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 바닥으로 떨어졌던 나의 자존감은 어떻게 됐을까?

물론 이렇게까지 감성적인 문자메시지 혹은 카카오톡을 마구 날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짧은 몇 줄의 글이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어렸을 때는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짧은 내용이든 긴 내용이든 상대방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쓰는 글은 상대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나에게 휴대전화가 생기면서 편지를 대신한 건 문자메시지였다. 이제는 문자메시지를 카카오톡이나 SNS메신저가 대신한다. 사실 나는 전화보다도 이런 휴대전화라는 매체를 통해 글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문장 하나에 뜻을 담은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글을 쓰는 목적이 드러나기도 하고 나의 감정이 담기기도 한다. 쑥스러워서 선뜻 말로 나오지 않는 것을 글로는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보여준 예시처럼 그녀는 말로 하자면 참 오글거렸을 멘트를 적절한 문자메시지로 보내면서 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단어를 써서 상대방에게 그것을 전달하는가 하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에 따라 꼭 맞는 언어를 써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정확한, 앞뒤 단어들과 잘 어울리는 그런 단어. 이 시에 나오는 ‘소금꽃’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어휘가 부족하면 같은 단어를 반복하게 되고 그러면 이 글은 심심해진다. 마치 노래를 들을 때 강약 없이 부르는 감정 없는 노래처럼 임팩트가 없어진다. 영어도 단어를 많이 알아야 독해를 할 수 있듯이 국어도 마찬가지다. 어휘가 풍부해야 생각의 깊이도 깊어지고 전하고자 하는 뜻도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글을 쓰면서 그때그때 딱 맞는 단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 뜻은 비슷한데 느낌이 다른 말이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말과도 잘 어울리는 그런 단어가 있어야 한다. 나는 한 번씩 글의 제목을 적을 일이 생길 때 이런 고민에 빠진다. 숨겨둔 지난 과거를 말하는 글이라면 그것은 단순히 ‘고백’이 맞을까? 아직 말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의미의 ‘누설’이 맞을까? 대놓고 ‘공개’? 아님 덤덤하게 ‘진술’?진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사실’? 아니면 솔직하게 털어놓는 거니까 ‘실토’? 아니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다 드러내 놓고 말하니까 ‘토로’가 맞을까? 비슷하게 마음에 품었던 것을 죄다 드러내는 ‘토파’가 나을까? 나의 다른 책 제목으로 고민을 했던 부분이다.     


  요즘도 하루에 여러 명과 카톡을 주고받고 끊임없이 소통한다. 사람마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그들에게 내 마음을 보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받는 작업이기도 하다. 나의 소통 방법은 남녀노소를 떠나서 글로서 나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책 제목을 고민하듯이 평소에도 상대방에게 보내는 짧은 카톡 하나에도 여러 가지 단어를 고민한다. 가끔은 그 마음을 더 명확하게 전하고 싶어서 캘리그라피를 써서 보내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 이미지와 그 글이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아, 요즘은 이모티콘이라는 아주 좋은 표현 도구가 있어서 더 확실한 감정 전달에 도움을 받고 있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적는 자신을 생각해 보라. 뭐 굳이 분위기가 좋지 않아도 된다. 글 쓰는 것이 막연하다면 하루에 30분 정도 시간을 내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편지가 쑥스럽다면 문자메시지나 메신저를 이용해도 좋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것이 어느새 나의 글 쓰는 근육을 더 높여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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