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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방송작가 면접담

  대학교 4학년이 되면 2학기를 마무리할 즈음, 교수님들을 모셔놓고 사은회라는 행사를 한다. 4년 동안 많은 가르침에 감사함을 전함과 동시에 뒤로는 그렇게 열심히 배운 제자들이 졸업하기 전에 어디에 취직했노라 명함을 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공대는 울산에 대기업도 많고 회사가 많으니 취업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라 사은회가 꽤 신나게 진행된다고 하던데, 당시 사은회 때 우리 과에는 취업한 사람이 거의 없던 상황이었다. 거의 내가 유일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ubc울산방송 구성작가 하미라」명함을 교수님들께 드렸고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은 조금 씁쓸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일을 일찍 시작하고 정신없는 세월을 보내느라 과 동창들과는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동문은 학원 강사나 공무원, 학교 선생님이 된 사람들도 있고, 방향을 완전히 틀어서 일반 회사에 취직하거나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이 방송작가를 하는 선·후배도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아주 신기하게 방송작가에 입문한 케이스라 생각한다. 요즘 방송작가들은 기본적으로 방송아카데미에서 방송의 모든 것을 배워서 배출된다. 그리고 아카데미와 연이 닿은 방송사에 막내 작가로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 때도 그랬다. 나만 몰랐을 뿐. 대학교 4학년 2학기, 교육대학원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과사무실로 온 ‘ubc 울산방송 막내작가 구함’이라는 공문을 조교 언니로부터 건네받고 룰루랄라 방송국으로 향했다. ‘알바의 여왕님’께서 이제 방송국도 접수하는구나 하면서 백화점 위에 있어 신기한 방송국으로 방송에도 나왔던 ubc울산방송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 당당하게 편성제작국 팀장님을 찾았다.     


  “막내 작가 구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편성제작국 팀장님을 찾아 11층으로 올라가니 밤을 새운 듯한 행색의 PD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나를 앉혔다.     


  “몇 살?”

  “아부지 뭐하시노?” (마치 영화‘친구’ 속 대사처럼 말이다)

  “보일러 하십니다.”

  “그러면 파이프 이런 거로 맞아봤나?”

  “.......”

  “아, 맞아보고 와야 하는데~”  


  기가 막히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내가 아르바이트 면접을 그렇게 보고 다녔어도 이런 질문은 받아보지 못했는데 여기가 도대체 뭐 하는 곳인가 싶었다.     


  “ubc 방송 뭐 본 거 있나?”

  “.........” (정말 아무 생각이 없이 가볍게 가서 이런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야, 방송국에 면접 보러 오면서 우리 방송 하나 안 보고 왔냐?”

  “아.... 그거 봤어요.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노래 부르고 하는 거”

  “그건 MBC꺼다”    


  이게 내 방송국 첫 면접이자, 내 생애 첫 직장에서 PD들과 나눈 대화였다. 그리고 얼굴 뻘게져서 돌아가는 내게 팀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한테 좀 맞아보고, 밤도 좀 새보고, 체력을 키워서 나~중에 와라.”

  “나중에 연락해줄게, 가봐”    


  면접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던 내게 닥친 첫 번째 시련. 이게 뭐지?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저 사람들은 뭐지? 무슨 작가를 뽑는다더니 별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고 난 그걸 대답을 하고 있고. 또 슬쩍 봤던 프로그램이 ubc 건지 MBC 건지도 모르는 사람이 작가를 한답시고 들이대다니. 부끄럽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나 자신에게 화도 났다. 아니지, 내가 어리다고 지금 날 가지고 노는 건가? 무슨 이런 해괴망측한 면접을 보고.. 저런 곳은 불러도 내가 안 간다. 저런 인간들 하고 나는 절대 일하지 않을 거다. 오라고 사정해도 안 간다. 그랬다.


  그러고 3일이 지나도, 4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교육대학원 면접이 이틀 앞이었다.    


 “띠리링-”

 “여보세요?”

 “하미라 씨 되시죠? ubc 울산방송인데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실 수 있으세요?”

 “네!!!!!!!!”

 “그러면 월요일에 오전 6시까지 방송국으로 오세요”    


 불러도 가지 않겠다고 그렇게 욕을 했던 내가 저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대답했다. 아주 큰 소리로. 아직 아빠한테 파이프로 맞진 않았지만, 체력은 자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교육대학원 면접을 위해 보던 전공 책을 집어 던지고 신나서 날뛰었다.


  집에 가서 ubc에서 전화가 왔다고 자랑을 하고 엄마랑 서점으로 가서 ‘방송작가의 길’이라는 책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책을 열심히 봤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렴 어때~ 가면 다 되겠지!    


  방송작가가 왜 체력이 있어야 하는지, 왜 험한 꼴 다 당해봐야 했었는지는 나중에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후, 내가 어린 작가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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