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선생각 Oct 08. 2021

기자가 되고 싶던 작가

작가가 되고 싶던 기자

  대학교 4학년이 되고도 난 여전히 학원에서 국어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고등학교 때 목표 했던 것처럼 국어 선생님이 되려면 학교 졸업 후, 다시 교육대학원에 가서 교직을 이수하고 시험을 쳐야 했다. 많은 동기가 그 선택을 했다. 정말 선생님이 되기 위해 그런 친구도,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 길을 따라간 친구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길을 가야 하는 건가 생각하며 교수님들과 상담도 하고 고민을 했다. 그 길을 가지 않으려면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교수님들은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학생’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셔서 교육대학원에 가서 교직을 이수하거나, 일반대학원으로 가서 국문학을 전공하시길 바라셨다. 실은 내 마음도 거의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4학년을 대상으로 무료 취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걸 알게 되었고, 같이 휴학하고 같이 복학하면서 더 가까워진 친구와 같이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각기 다른 과에서 약 10명 정도의 4학년들이 뽑혔다. 그리고 일주일간 모든 수업을 빼고 취업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다들 자신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고민했다. 전공을 살려서 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졸업을 하기 전에 취업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지?’     


  처음으로 국어 선생님이 아닌 다른 미래를 상상했다. 그리고 나의 성향과 나의 적성에 맞춰 나온 답은 TV가 됐건 신문이 됐건 내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자가 되자! 였다.   이 취업 프로그램에서는 기자가 되려면 어떤 걸 공부해야 하는지, 어디서 취업 정보를 얻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실제와 같은 면접 연습까지도 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졸업반 학생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수업이기도 하다.  


  당시 함께 했던 친구 지은이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얌전하고 예쁘장한 지은이에게 작가는 딱 맞다고 생각했고,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고 말하는 거 좋아하는 나는 기자가 딱 맞는다며 우린 서로 난리가 났다. 이미 기자가 되고, 작가가 된 듯이 좋아했던 우리였다.    


  우리는 일주일간 정말 열심히 참여했던 취업 프로그램 덕분에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다른 4학년들도 다들 원하는 곳에 취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 역시 그들처럼 꿈을 찾았고, 꿈을 꾸었고, 꿈을 이루었다. 정말 작가가 되고 기자가 되었다. 그것도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방송국의 방송작가와 지역 제일가는 신문사 기자가 되었으니 이보다 행복한 결말이 어디 있겠는가.     


  단, 작가가 되고 싶었던 지은이가 기자가 되었고, 기자가 되고 싶어 했던 내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둘만 기억하겠다.     


  작가가 되기까지 나를 만든 건 엄청난 아르바이트의 경험이었다. 나의 아르바이트 체험기는 내 삶의 기록이다. 방송작가를 하게 된 계기도 사실은 방송작가가 직업이라는 생각보다는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해서 찾아갔다.    

  평소 과사무실에서 조교 언니들과 친하게 지냈던 탓에, 방송국에서 막내 작가를 구한다고 과사무실로 전화가 왔고, 조교 언니는 ‘알바쟁이 미라한테 주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편성제작국 팀장님의 연락처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이 이렇게 인연이 되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 겁 없이 도전했다. 이렇게 말하니 아주 쉽게 방송작가가 되었구나, 싶을 수 있지만 그사이 여러 번의 시련이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주 운이 좋게 방송아카데미도 거치지 않은 나를 방송작가를 만들었다.     

  기자가 된 지은이는 울산에서 발 빠르게 기자로 활동하다가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을 만나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자주 볼 수도 없고, 연락을 자주 하진 않지만, 서로의 기억 속에는 최고의 파트너 정도로 남아있다.     


  시간이 벌써 18년쯤 지나고, 내 나이 마흔이 넘고 보니 아직 미래를 찾지 못한 어린 친구들이 이리저리 부딪히고 아파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잘 몰라서 못 하는 것인데, 안 한다고 욕을 먹고 있을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데 하는 방법이 없어서 버티고 있는데 그것 역시 한숨으로 바라보는 어른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진 않을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패기가 자칫 위험한 방향으로 이끌진 않을지도 우려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꿈이 있다면 조금 더 용기를 낼 것, 꿈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을 것.

이전 01화 인생을 바꾼 선생님의 한 마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