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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May 03. 2024

ENTP 남편과 INFP 아내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푸꾸옥 한 바퀴

나는 ENTP, 아내는 INFP입니다.


MBTI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라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벌써부터 뒷내용이 기대되는 조합일 거예요. 일단 맨 뒷자리가 둘 다 P입니다. 이게 어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서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 불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건데요. 쉽게 말하면 즉흥적인 사람들이다. 이 말입니다.


우리의 대화를 예로 들어보자면요.


- 여행은 어디가 좋을까?

- 요즘 푸꾸옥이 그렇게 이쁘대.

- 그러면 거기로 가자! 언제쯤 가볼까?

- 내년 4월? 5월은 우기라는데.

- 그럼 이번달쯤에 비행기표 알아보고 숙소 천천히 정해보자.


이것이 작년 겨울의 대화랍니다. 우리가 결혼한 지 만 1년이 되는 날,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여행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뭔가 정하지 않은 채로 해가 바뀌고 우리는 1월쯤 비행기를 예약했지요. 더 늦으면 안 돼, 안 돼, 하면서 미뤄진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비행기 일정, 날짜, 이런 걸 기억하지 못했어요. 어차피 뭐... 문자에 남아있으니까 필요할 때 찾아보면 되겠지 뭐, 하고 말았죠.


- 너네 푸꾸옥 간다며? 언제가?

- 몰라, 찾아봐야 하는데, 아 맞다 숙소 예약해야 돼.


이런 대화를 2월쯤 지인과 나누고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푸꾸옥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여행 일정이 14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가서 24일 밤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이라는 것도 머리에 각인했고요.


- 푸꾸옥은 북부, 중부, 남부로 나뉜대. 그러니까 각 지역에 숙소를 잡아서 한 바퀴 돌고 오자.

- 나는 여기 묵고 싶은데?

- 여기는 동부네? 음... 그래! 그럼 동부도 추가해서 일정을 나눠서 숙소를 잡아보자.


그렇게 우리의 푸꾸옥 숙소 일정은 북부에서 3박 4일, 동부에서 2박 3일, 남부에서 2박 3일, 중부에서 2박 3일로 짜보았습니다. 북부가 하루 더 긴 이유는 리뷰를 열심히 찾아보니 북부에 대한 이야기가 많길래 혹시 몰라 싶어서 하루 더 길게 잡았어요. 중부를 마지막으로 잡은 건 공항이 가깝기 때문이었고요. 남부는 스노클링을 다 그쪽으로 간다길래 혹시 몰라 남부 숙소도 잡았습니다.


자세한 건 일단 가서 묵어보면서 찾아보면 되겠죠.


보기만 해도 알뜰히 돌아다닌 흔적이


그렇게 우리는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하고 푸꾸옥 관련 영상이나 자료를 찾아보면서 너무 재밌겠다는 기대감을 부풀렸습니다. 사실 이거 두 개면 여행준비 다 한 거죠 뭐. 하필이면 출발일이 일요일이어서 환전을 미리 해야 된다는 걸 금요일에 알아버리고 부랴부랴 은행에 뛰어가서 달러로 환전하고, 그러는 바람에 더러운 100달러 지폐가 섞인 것도 모르게 된 건 덤이고요. 사실 더럽지도 않았어요! 빨간 점 같은 게 찍혀있었는데요.


- 이 정도면 깨끗한가?

- 거의 새 거지 뭐!


이랬거든요. 나중에 환전을 거부당했을 때는 둘 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 정도면 깨끗하지, 새 거지, 하고 둘이 서로 입 삐죽 나와서 돌아섰어요.

또 이런 일도 있었지요. 부모님과 식사하다가 문득 물어보셨습니다.


- 너네 저녁 비행기면 언제 도착하는데?

- 다음날 아침에 도착할 걸요? 체크인 시간이 많이 남아서 뭐 할지 고민 중이에요.

- 응? 그거보다 더 먼 인도네시아도 그렇게는 안 걸리는데?


찾아보니 세상에! 오후 여섯시 출발에 그날 밤 열시 도착이더라고요? 아니 나는 무슨 일정을 본 거야. 식은땀을 흘리며 내 한 몸은 상관없으나 아내를 노숙시킬 수는 없다는 일념하에 공항에서 가장 가깝고, 그러면서 예쁘고, 그러면서 가성비 좋은 숙소를 찾아냈습니다. 그리하여 첫 시작을 중부에서 1박으로 하게 되었지요. 정말 출발 전부터 좌충우돌이었어요.


짐 싸는 법도 나름 단순합니다. 빈 캐리어를 거실에 펼쳐둡니다. 그리고는 출발 전날까지 싸야 하는 짐을 고민하면서 생각날 때 하나씩 꺼내서 집어넣는 거예요. 그리고 출발하기 직전에 캐리어를 닫으면 이제 준비가 끝나는 거죠. 준비 내내 벼리가 캐리어에 들어가 있어서 자꾸 따라오려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콩콩이는 이게 뭔가 싶어 멀뚱멀뚱 보고 있는데, 이놈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우리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는 거겠지 싶어 연신 사과했고요.


아이고 이 핏덩이를 두고 내가 어딜 나간단 말이냐
혹시 인형인척 잘하면 데려갈 수 있을지도 몰라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저와 함께 고양이들을 돌봐주신 경험도 세월도 길고, 해서 여행하는 동안 부탁을 드렸더랬습니다. 밥이랑 물, 화장실을 최대한 신경 안 쓰시고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고양이들


이렇게 신혼여행 이후로 우리 부부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식이다 보니 사실 공항 갈 때도 뭔가 실감이 안 났지만 어쨌든 여행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지요. 그렇게 좋다는 푸꾸옥에서의 10박 12일, 푸꾸옥 한 바퀴 제대로 돌고 온 여행기를 한 번 남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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