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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Jun 21. 2024

지구가 평평하다는 말을
믿을 뻔했다

평평하게 생겼던데요

동부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제 푸꾸옥 남부로 내려가는 날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숙소를 바꾸는 날에는 따로 일정을 계획하거나 하지 않았었지만 오늘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숙소를 이동하는 사이의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는 남부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선셋타운이었거든요. 말 그대로 일몰에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생각해서 이 정도면 이동하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오늘은 일출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여전히 해가 너무 빨리 뿅 하고 나와서 여전히 어색하다, 싶었지만 아무튼 잘 보았어요. 그리고 어제 갔던 시장에서 과일을 후회 없을 만큼 사다 먹고, 그만큼 더 사서 이동해서도 먹고 틈틈이 먹기로 했습니다. 망고가 정말 너무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그러고 재래시장을 돌며 코코넛도 사 먹고 여기저기 구경도 해보고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돌아와서 숙소에서 점심을 먹고 동물들과도 인사한 뒤 떠나기로 했어요.


가장 여행 다뤘던 동부에서의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반미와 인심이 너무 넘쳐나는 볶음밥


체크인을 유연하게 받아주었던 것처럼 체크아웃도 유연하게 받아주었습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랩이 안 잡히는 거예요. 침대에 누워서 아무리 앱 버튼을 눌러봐도 돌아오는 응답은 없음이었습니다. 허허. 하지만 우리는 이미 동부에 올 때부터 이런 상황을 들어 알고 있었지요. 우리를 태워다 준 빈센트에게요. 연락하라며 카톡 아이디를 준 빈센트에게 카톡을 보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굉장히 반가워하더라고요.


동부에서 조금 먼 반대편 중부에 있는데 오려면 한 시간 정도는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랩으로 검색했던 가격보다 좀 더 높은 가격을 조심스레 말하더니 자기가 이동하는 거리가 있으니 요금을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솔직히, 큰 차이 없는 가격이었고 저는 이보다 두 배는 더 부를 줄 알았거든요? 뭔가 묘하게 양심적이다 생각하면서 당연하다며 부탁한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조금만 기다리랍니다. 그러고는 실시간으로 위치와 남은 시간을 카톡으로 손수 보내주더라고요. 


체크아웃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괜찮다는 호스트덕에 우리는 방에서 한동안 바다를 보며 따라 들어온 고양이와 함께 이 풍경을 오래오래 눈에 담으려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시간을 보냈어요.


아 좋다, 하는데 빈센트가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온 길과 반대로 캐리어를 끌고 나갔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고양이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빈센트는 능숙하게 차양막을 꺼내서 차 유리에 설치해 주고 아주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우리는 동물친구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하고 프리덤을 떠났어요. 갈 때가 되니까 동물들이 더 많아졌더라고요? 아무래도 동네 고양이 강아지가 몰려다니면서 모임이라도 갖나 봅니다. 날이 더운지 여기저기 널브러져서 자고 일어나면 ㄷ서로 뛰어다니고 놀고.


그런 동물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남부 숙소인 프리미어 레지던스로 향했습니다. 아침부터 일출 보겠다고 너무 일찍 일어나 설친 탓인지 가는 길에 꾸벅꾸벅 졸았어요. 3,40분 정도 달려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건물이 상당히 커서 놀랐습니다. 여러 호텔이 단지처럼 모여서 운영되고 있었어요. 로비로 들어가니 북부의 빈펄 리조트와는 비슷한 느낌의 세련된 공간이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북부는 조금 넓지만 어색한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넓은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쓰고 있다고 할까요.


잘 꾸며놓은 요소요소가 보기 좋았습니다. 체크인까지 또 시간이 남아 여기저기 구경하려고 둘러보는데 직원 한 명이 우리 주변을 기웃거리더니 조심스레 말을 걸어오면서 주머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내더라고요. 메모지에는 '식당은 저 쪽에 있습니다.'라고 쓰여있었는데 '저 쪽'부분을 가리키며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더라고요. 그만큼 한국인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어딜 가도 한국어가 엄청 들리더라고요.


숙소 앞 복도, 예뻐 보이지만 저 햇살은 살인적이에요


건물 여러 개가 한 단지처럼 운용되는 만큼, 수영장도 상당히 넓었는데 공간을 세세하게 잘 분리해서 좀 더 프라이빗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다. 바다가 너무 예뻤습니다. 동부의 물이 너무 탁해서 들어가기 무서웠다면, 여기 바다는 맑고 투명해서 들어가 놀기 너무 좋았어요. 물도 따뜻해서 너무 기분 좋았고요. 신기하게 엄청 차가워 보이는 색인데 막상 발을 담그면 따뜻하더라고요.


에메랄드 베이입니다. 어딜 찍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체크인을 마친 우리는 발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일단 남부에서는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8000미터가 넘는 엄청나게 긴 해상 케이블카래요. 저는 기억나는 인생에서 케이블카를 타본 적이 없었어요. 어릴 때는 타봤었다는데 기억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 신났는지 몰라요. 숙소에서 운영하는 셔틀을 타고 이동하면서 케이블카 주변에 더 할 것들이 없을까 싶어 열심히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알게 되었는데 이 케이블카가 내리는 곳은 혼똔섬이라는 다른 섬이라는 것과, 그곳에 썬월드라는 워터파크 관광지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음, 아무래도 우리가 도착하면 폐장 시간이 될 거라는 것도요. 어떡하지 생각해 보다가 어차피 물놀이 가려고 준비한 것도 아니고 원터파크를 좋아하지도 않거든요? 뭐 나쁘지 않지, 하고 냅다 가보았습니다.


그러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전세 낸 것 같은


케이블카를 타러 가니 직원들이 다들 물음표 백만 개 띄운 얼굴로 물어봅니다. 정말 타실 건가요? 하고요. 곧 폐장시간인데 시간상 건너편에 도착하면 바로 다시 돌아와야 할 정도로 시간이 얼마 없었거든요. 괜찮다고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가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아무도 없으니 줄도 안 서고 이 넓은 케이블카에 우리 둘만 이었어요.


인기가 없나? 하고 둘러보니 오는 케이블카에 사람이 빽빽한 게 보였습니다.

너무 잘 됐다, 우리 둘은 케이블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탁 트인 바다를 감상했어요.

너무나도 대단한 광경의 30분이었습니다.


아무도 없어 온전하고 쾌적하게 감상할 수 있었어요


30분 동안 탄 이 케이블카는 여태 타봤던 어떤 기구나 기계보다도 더 신기하고 진귀한 경험이었어요. 멀리서 보이는 일몰 전 윤슬을 보는 것 만으로 눈물이 날 것 같은 비현실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지구가 평평해 보이는 순간이었어요


왜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다 한 복판에서 이렇게까지 위로 올라와서 보니 이걸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봐도 사방 끝이 평평하게 보이는데 이걸 둥글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요.


보기만 해도 아찔하네요


도착해서는 시간이 아주 조금 남았길래 재빨리 훑어보고 다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썬월드에서는 이미 돌아가는 손님들이 많더라고요. 그 인파와 반대로 우리는 잽싸게 들어가서 컵빙수 하나와 아이스티 하나를 사서 알차고 잽싸게 요리조리 훑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온전히 케이블카를 둘이서만 타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오는 무리에 섞여 선셋타운으로 돌아왔어요.


북부의 그랜드월드가 베니스를 따라 했다면 남부의 선셋타운은 지중해를 따라 했다고 해요. 조금 다른 점이라면 스케일은 비슷하게 크지만 역시 남부가 요소요소에 아기자기함을 더 두었더라고요. 여전히 다른 도시를 따라 하려 한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케이블카와 뭔지 모르겠는 엄청난 건축물이 이 동네의 아이덴티티를 확 잡아주는 느낌이 있었어요.


이 건축물들은 키스 오브 더 씨의 공연을 위한 건축물과, 이곳의 상징적인 건물, 키스 브리지였습니다.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고 우리는 오늘 온 김에 공연도 보고 키스 브리지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저녁으로는 파스타를... 아 쌀국수 좀 많이 팔아달라고요
멀리서 보니 더 길어 보였습니다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어요. 사실 식당 찾기 정말 어려웠어요. 가는 곳마다 장사를 안 해서 열심히 발품을 팔다가 결국 선셋타운 끝자락의 어느 작은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햄버거랑 파스타를 먹었는데요. 아 진짜 쌀국수 맛집 하나 있으면 인기 정말 좋을 텐데. 아휴. 


저녁을 간단히 먹은 뒤 선셋타운을 걸었습니다. 괜히 이름에 선셋을 붙인 게 아니더라고요. 알록달록한 원색에 가까운 동네가 일몰의 햇빛을 먹으니 어딜 봐도 그냥 그림 한 폭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입니다. 난간에 서면 멀리 바다에 키스 브리지를 따라 설치된 조명이 꼭 빛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처럼, 야경을 해치지 않고 호화스러운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만들어진 느낌이 크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일몰이 훌륭한 선셋타운 이었습니다.


키스 오브 더 씨 쇼 관람권을 예매하려니 키스브리지 입장권을 끼워 팔더라고요. 쇼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아서 마땅히 할 게 없던 우리는 일단 키스 브리지도 가보기로 했습니다. 굉장히 멋진 다리였는데요. 엄밀히 말하면 두 개의 다리가 각각 한 쌍이 되어서 가운데가 분리된, 하나의 불완전한 고리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쪽으로 들어가면 다른 쪽으로는 갈 수가 없는 구조였어요.


뭔가 악수하는 손 같은 것들이 이 다리의 형태적 모티프가 되었다고 하는데 바다 위에 지어진 것도 그렇고 상당히 인상적인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랜드 월드의 뱀부 레전드가 네모나다면 선셋 타운의 키스 브리지는 동그란 느낌이었어요. 


검은 바다 위 다리를 걷다가 밤인데도 더워 지쳐가던 우리는 결국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입장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키스 브리지와 저 멀리 보이는 공연장
동부 생각하면 손이 떨리는 코코넛 가격이었지만 어쩌겠어요. 스탬프도 이렇게 귀여운데.


키스 오브 더 씨 공연은 솔직히 말해서 여행 와서 무슨 공연을 본담, 풍경 더 감상하고 푹 쉬면 좋지. 하고 말려고 했던 공연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빈펄랜드 폐장 쇼에서 한 번 깨 줬고, 생각보다 내가 직접 보고 놀랄 수 있는 것들이 많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생각은 키스 오브 더 씨 공연장을 보며 한 던 또 뿌리째 뒤흔들립니다.


저게 조명이야? 저게 빔이라고? 무슨 후레쉬맨이 모여 힘을 합쳐 쏘던 롤링 발칸처럼 생겼는데, 크기는 무슨 웬만한 픽업트럭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우람한 크기로 떡 하니 공연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공연장은 키스 브리지 같은 유선형의 구조물 여러 개가 크기순으로, 관객 쪽을 향할수록 큰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꼭 블랙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저 구조물들이 아무래도 레이어의 역할을 하고 물을 분사해 막을 만들어서 빛을 뿌리나 보다 하고 이해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쇼가 시작되었습니다.

너무 대단한 쇼였어요.


 물과 빛으로 할 수 있는 온갖 기술은 다 본 기분입니다.
이건 왜 귀여운데


모션의 퀄리티를 논하라 그러면 잘 만든 영상은 아니에요. 그런데 물을 분사해서 레이어를 만들고 거대한 공간 안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내는 영상들은 모션의 조잡함 같은 걸 신경 써가며 폄하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어요. 쇼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중간 감탄했고, 영상에 맞추어 무대로 나와 연기하는 연기자들, 춤추는 사람들이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나가는 게 너무나도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와 정말 넋 놓고 봤어요.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고요.


베트남의 넉넉한 불꽃 인심을 받아라


정말 잘 간 것이 특정 요일에 이렇게 키스 오브 더 쇼가 끝나면 불꽃놀이를 보여준다더라고요. 우리는 운도 참 좋다, 하면서 행복하게 불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터트려줘서 이러면 뭐 남는 게 있을까, 아까 트램펄린 타던 한 분은 잘못 떨어진 것 같던데 병원비는 주겠지, 하는 별 생각 다 하면서 한참 구경했어요. 불꽃이 정말 많더라고요. 참으로 넉넉한 인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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