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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Jun 14. 2024

현지 망고 찬양 증후군

동남아 여행객은 반드시 걸린다던

우리가 해외여행 중 음식점을 찾아가는 건 상당히 즉흥적입니다.


맛집을 검색해 보다가도 모두의 입맛이 다르고, 이 추천을 작성한 사람 역시 다양한 곳에서 안 먹어보았을 텐데 추천 몇 개 찾아보고 리스트를 만드는 게 과연 확률이 높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살고 있지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구글지도의 리뷰와 평점을 보고 선택하는 일입니다.


우선 구글지도를 열어요. 그리고 평점이 일정 수준 이하 되는 곳, 리뷰 수가 일정 이하 되는 곳을 거릅니다. 그런 뒤에 평점과 리뷰를 훑어보면서 서너 군데 정도 리스트를 만듭니다. 그리고 사진이나 다른 후기를 보고 교통편이나 근처 이동해서 즐길만한 거리가 있는지 찾아보는 편이에요. 우리의 여행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너무 낡은 정보 때문에 허탕을 치거나, 구글맵이 반영 안 된 길이나 뭔가 다양한 걸림돌이 우리의 여행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여행이라 생각해 보면 나름 낭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에게 운전할 줄 안다면 스쿠터 여행을 꼭 추천하고 있어요. 


그런 우리에게 동부에서의 첫 여행이 시작됩니다.


동부니까 우리는 해돋이를 보기로 했습니다


일단은 해돋이를 보았어요. 동쪽 바다다 보니 숙소 앞 선베드에 누워서 해돋이를 바로 볼 수 있겠더라고요. 일출 시간 전에 알람을 맞추어서 새벽에 어떻게든 일어나 둘이서 눈을 비비며 밖에 나가보았습니다. 다행히 날이 많이 흐리지 않아서 해가 보일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수평선에는 구림이 진하게 깔려있어서 계속 애매했습니다.


- 저거 해가 뜬 건가?

- 밝으니까 해가 뜬 거 아닐까?


하늘은 밝아졌는데 뭔가 동그란 해가 없습니다. 구름에 가려졌나 싶어 누워서 가만히 보다가 일출이 끝난 것 같아서 에이, 바다에서 나오는 게 보고 싶었는데, 하고 들어가서 더 자기로 했어요. 그렇게 철수하려는데 동그란 해가 뜹니다. 어엇 하는 동안 해는 순식간에 다 떠서 방긋하고 하늘로 올라왔어요. 해가 저렇게 빨리 뜨나? 멍하니 보고 있다가 내일은 좀 더 제대로 보고 카메라로도 찍어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자고 일어났어요.


이제 오늘의 여행 계획을 세워봅니다.


구글맵을 여니 길은 하나인데 근처에 식당은커녕 뭐 하나 갈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아래로 쭉 내려가보다가 우리가 어제 갔던 마트 주변에 뭔가 상호 같은 것이 많은 게 보였습니다. 이쪽은 점심 먹고 가보기로 하고, 윗길을 쭉 훑어보니 식당 하나가 나오더라고요. 로라스키친, 인프라가 부족한 동부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리뷰가 인상적이었어요.


정성이 한눈에 보이는 로리스 키친 입구


스쿠터를 타고 여행길에 오릅니다. 한국이 아닌 나라의 길을 달리는 일은 참 즐겁습니다. 풀 하나 나무 하나 이국적이지 않은 것이 없고 세상에 우리밖에 없다는 기분은 너무 행복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으니 낯선 곳에서 고립되지 않고 얻는 이동의 자유는 여행이라는 단어와 함께 굉장한 쾌적함과 해방감을 줍니다.


로리스 키친에서 점심을 먹고 윗길로 쭉 달려서 버블티 전문점에도 가보고 바다도 보고, 잠깐 숙소 가서 에너지 좀 충전했다가 어제 갔던 마트 주변을 구경하는 걸로 오늘의 계획을 세웠어요. 너무 훌륭한 계획입니다.


북쪽으로 쭉 달리다 보니 멋진 집들이 많더라고요, 돈 많은 사람들이 한적하게 집 지어서 사나 보다, 하고 구경하며 이동했습니다. 그러다 로리스키친이라는, 작은 나무 간판이 세워진 곳을 발견했어요. 누가 봐도 여기다 싶을 만큼 아주 멋지게 입구가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스쿠터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 보았어요.


주차장을 지나 아주 예쁜 터널을 지나면 작게 아주 잘 손질해 놓은 골프 코스들이 좁은 오솔길 양 옆으로 옹기종기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 참 예쁘다, 하면서 계속 걸어 들어가니 넓은 식당이 나오더라고요. 카운터 쪽 넓게 마련된 바에서는 외국인들이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고 식당 여기저기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 무리가 보였습니다. 아주 행복해 보이는 풍경에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어디서 왔냐 물어보시더라고요. 한국이라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하셨습니다. 본인도 한국인이라면서요.


한가함과 여유와 낭만 그 자체


한국이 고향이시고 아주 오래전에 호주로 이민을 가셨다 하셨습니다. 그러다 딸이 이곳 푸꾸옥에 땅을 사서 남편이랑 식당을 차렸다고, 본인은 호주와 푸꾸옥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며 너무 반가워하셨어요. 우리도 한국어로 소통하는 게 굉장히 반가워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당 여기저기를 소개받았어요.


너무 예쁜 식당 곳곳에는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불가능할 디테일들이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우선 배가 고파서 메뉴를 시켰어요. 파스타가 하도 맛있다고 추천하셔서 해산물 파스타와 코코넛 커리, 그리고 상큼한 게 먹고 싶어서 샐러드 파스타를 시켜보았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께서 한국인들만 특별히 내주는 거라며 김치를 한 접시 꺼내오셨어요. 


앞에 수영장에서는 외국인 꼬마가 카약에 누워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었습니다


음식이 제법 맛있었습니다. 막 엄청 맛집이다! 놀라운 맛이다!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맛있는 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그래도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면, 베트남의 메뉴는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파스타, 커리 맛집은 한국에도.. 사실 신혼여행 때 발리에서 무작정 들어간 노점에서 먹은 커리에 눈이 번쩍 뜨였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시켜본 커리였기도 한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그래도 이게 어디예요. 이 정도면 근처에 식당도 없는데 훌륭합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아주머니께서 오셔서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십니다. 앞에 수영장에는 바닷물을 채우고 해삼이랑 불가사리를 잡아서 넣어놓았대요. 불가사리 해변이라는, 불가사리가 아주 많은 바다가 있는데 그곳보다 더 많은 불가사리를 여기서 볼 수 있다고 자랑하십니다. 번식을 하도 많이 해서 보면 귀엽기도 한데 개체수를 좀 줄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하신다 했어요.


불가사리와 해삼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이제 슬슬 갈까 싶은데 벌써 가려고 하냐면서 붙잡으십니다. 그러면서 식당 여기저기에 있던 게임 테이블에 데리고 가 더 놀다 가라며 아쉬워하시더라고요. 우리는 그중에 컬링이랑 비슷한 셔플보드라는 게임을 배웠습니다. 굉장히 재밌고 좋은 공간이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다시 스쿠터에 올라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분명 밀크티 전문점이라고 귀여운 가게 로고도 있는 걸 확인하고 가는 건데 암만 가도 가게가 안 나오더라고요. 이쯤이면 나와야 하는데, 하고 구글맵을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데 여기가 맞을 텐데, 하고 고갤 들어보니 작은 남자아이가 뭔가 스낵카트 옆에 숨어서 빤히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엇 설마, 하면서 보니 카트 옆에 수줍게 붙어있는 작은 간판에 아까 본 가게 로고가 그려져 있더라고요. 세상에! 직접 그린 거구나!


드디어 찾았다고 좋아하며 밀크티를 주문하려는데 남자아이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여자아이가 뒤쪽 집에서 호다닥 달려 나옵니다. 그러고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더라고요. 목이 마를 대로 말라진 우리는 곤란해하다가 여자아이가 달려 나온 곳을 가만 보니 쇼케이스 냉장고와 스낵 진열대가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작은 슈퍼구나 싶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고개를 세차게 끄덕입니다. 기대하던 밀크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코코넛 음료 맛있었어요.


이제 숙소에서 조금 재충전하고 남부로 향합니다.


햇살이 매우 따갑기 때문에 꼭 긴 옷을 입어주는 게 좋습니다


남부로 3,40분 정도 쭉 내려가면 어제 갔던 마트가 나옵니다. 좀 더 가보니 사람들이 제법 있고 뭔가 구경할 거리가 점차 생깁니다. 나중에 보니 작은 어촌마을이더라고요. 말린 해마도 팔고 온갖 물고기를 팔고 있었어요. 너무 신기해서 쭉 훑어보다가 과일 시장을 발견했습니다. 


여기다! 했어요.


근처에 가자마자 달콤한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이거는 누가 봐도 과일 맛집입니다.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었어요. 홀린 듯 가서 가격을 물어봅니다. 1킬로에 2만 동, 대충 천 원 정도라고 했어요. 세상에 뭐가 이렇게 저렴하지. 비닐에 망고를 가득 담았습니다. 사는 김에 용과도 샀어요. 망고스틴도 사려는데 주인분이 말리십니다. 안된대요. 망고 사야 된대요.


망고를 한 아름 사고 마트에 들러 작은 과도도 하나 샀습니다. 나오다 보니 맞은편에는 코코넛도 파네요? 북부 가격의 반에 반도 안 했습니다. 세상에 우리는 왜 이곳을 이제야 왔나. 보따리에 과일을 가득가득 담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제처럼 바다가 보이는 평상에 앉아 과일을 먹기 시작했어요.


여태 먹어본 망고와 차원이 다른 망고였습니다


맛을 표현하기가 참 어렵네요. 막 겉이 단단해서 우리나라 마트에서 샀다 하면 아직 덜 익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망고인데도 칼이 막 녹은 버터에 들어가든 수욱 들어가고요.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망고의 단 향이 머리를 코를 지나 뒤통수 끝까지 간지러움을 태우면서 자극합니다. 어떤 꿀도 이렇게 달고 풍부한 향은 안 날 거예요.


막 행복해질 것 같은 느낌에 망고를 반으로 갈라 칼집을 내고 썰었습니다. 써는 동안 흘러내린 과즙을 입에 대보니 충격적인 맛이 났어요. 이건 설탕이나 시럽의 단 맛이 아니었어요. 그런 걸로는 이런 단맛을 못 만들어요. 엄청난 망고 특유의 향이 사람을 미치게 홀려버립니다. 그 향 사이에 단 맛은 향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버려서 입안 가득 단 향과 맛이 폭력적으로 퍼지고 입 점막 전체에 과즙이 미친듯이 번지면서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맛이었습니다.


우와, 진짜 행복하게 만드는 과일이었어요.


여행 막바지에 저는 망고 예쁘게 썰기 장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이건 어서 더 먹고 더 사야 한다며 정신없이 망고를 배부를 때까지 먹었습니다. 내일 체크아웃하기 전에 가서 또 잔뜩 사다가 먹어보기로 했어요. 과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은 어제 사온 컵라면을 먹기로 했는데, 이 컵라면 이야기를 또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소고기 쌀국수를, 아내는 똠얌수프 컵라면을 샀는데요. 둘 다 맛이 너무너무 훌륭했습니다. 여태 우리는 컵라면 하면 일본이 제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게.. 이야. 무슨 컵라면에서 이런 맛이 나나요. 고작 컵라면인데, 고작 컵라면인데! 하면서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컵라면에 고기도 들어있고요. 세상에 이걸 쓰다 보니 군침이 도는 걸 참을 수가 없군요.


드디어 그렇게 전설처럼 들어오던 현지망고를 먹어보았다는 충격과 행복 사이에서 푸꾸옥 동부 두 번째 밤이 찾아왔습니다.

내일은 일출을 제대로 보겠다는 일념과 함께 밤바다 구경을 했어요,


센스 있게 숙소에서 만들어놓은 전망대인데 밤에는 좀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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