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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Jun 07. 2024

바다 위의 집

드디어 동부

푸꾸옥 북부에서 먹는 마지막 조식은 역시 훌륭했어요.


여기 정말 쌀국수 맛집이라고, 연신 감탄하면서 먹었습니다. 체크인 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까 우리는 그랜드 월드에 잠시 가보기로 했어요. 환전이 문제였는데, 일단 빈펄리조트의 환율은 정말 좋은 편이었습니다. 한 번에 100달러까지 환전해준다 해서 열심히 하는데 문제는 가져간 돈의 절만도 환전을 다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접힌 흔적이나 점 하나 찍혀있는 것도 환전을 안 받아주더라고요. 다른 곳에서는 이 정도로 환전을 거부당한 경험은 없었는데.


어쩌지, 하는데 직원이 그랜드월드로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는 다 받아준다며 본인은 방침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직원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우리는 그랜드월드로 갑니다. 그런데 체크아웃은 12시란 말이죠? 커다란 케리어를 끌고 머리 바로 위에서 태양열을 느끼면서 그랜드월드를 누볐습니다. 거의 10미터 정도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한 것 같아요. 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와서 안쓰러웠는지 툭툭에 타라 시더라고요. 덕분에 무사히 환전소에 가서 나머지 돈을 환전했습니다.


그래도 낮에 보니 덜 무서운 그랜드월드


마지막으로 아쉬울 것 같았던 굴린 아이스크림을 먹고 생코코넛도 사서 먹었어요. 참, 우리가 먹는 생 코코넛은 열매가 아니고 씨앗이래요. 씨앗을 깎아서 안에 있는 씨앗의 배유를 마시는 거라고 합니다. 열매인 줄 알았는데 독특한 구조의 씨앗이었던 거죠. 아무튼 우리 부부는 이 생코코넛을 참 좋아한답니다. 이렇게 더울 때 수분 흡수가 아주 대차요.


코코넛 좋아요


그랜드월드 한가운데 앉아서 이제 동부로 넘어갈 준비를 합니다. 그래도 그랩으로 택시 한 번 잡아봤다고 아주 능숙하게 택시를 불러보았어요. 굉장히 쓰기 쉽고 직관적인 유아이여서 아주 편안했습니다. 멋진 모자를 쓴 기사님이 오시더니 차에서 내려 차 창문에 가림막을 붙여주었어요. 뒷좌석에는 본인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쓰여있었습니다. 빈센트라는 이름이었어요.


가는 동안 빈센트는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 호텔이 좋고 어느 지역이 좋고 음식점은 여기 몰려있는데 도착지랑은 거리가 좀 있고 이런저런 말들이요. 그러면서 지금 가는 동부는 참 좋은데 그랩이나 택시 잡기가 너무 어려울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이동할 때 힘들 것 같으면 자기를 부르라며 카카오톡 친구 등록 QR코드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우리는 빈센트와 친구가 되었어요.


한 40분 정도 내려간 것 같아요. 푸꾸옥은 전체적으로 개발이 많이 안 된 곳이다 보니 울창한 정글이나 흙밭, 비포장도로는 예사길이고 이런 길로도 차가 다녀? 싶은 곳들도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는 엄청나게 넓은 주차장 같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이게 뭔가 싶어 잘 보니 건물 큰 게 하나 폐가로 남아있고 그 주차장을 그냥 길처럼 쓰고 있더라고요. 신기하게 구글뱀 상으로는 아주 멀리 돌아가야 하는 길을 그 주차장 덕분에 가로질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빈센트의 에스코트를 받아 도착한 곳은 이름도 멋진 Freedom beach resort였습니다.


여긴 천국인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개가 짖으면서 뛰어나왔어요. 자이언트 푸들로 보이는 크고 검은 개 한 마리와 알 수 없는 종에 여러 크기의 개들이 꼬리를 치며 뛰어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고양이들이 섞여 한데 뛰어나왔어요. 개와 고양이가 서로 부대끼며 뛰놀고 사람 보이면 뛰쳐나와 애교 부리는. 세상에 여기가 천국이 아니고 뭐겠어요!


손님이 없었는지 도착시간이 많이 일렀는데도 바로 체크인을 도와주었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해변을 지나 바다 위에 나무 기둥이 서있는, 약간은 조악한 나무다리를 지나 바다 위에 있는 집 중 한 군데로 안내했어요. 가는 길에 해변에 있는 집에서 금발의 외국인이 선베드에 누워 멍 때리며 바다를 보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영화 같은 데서 본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어요.


안내받은 집은 너무 근사한 바다 위의 오두막 같은 집이었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이 집에는 나름 있을 건 다 있더라고요. 에어컨에 냉장고, 커다란 침대. 바닥도 나무였는데 틈 사이로 바닥 아래 바다에서 파도가 치는 게 보였습니다. 너무 낭만적인 숙소였어요.


푸꾸옥의 동부는 모든 것이 열악합니다. 마트도 교통도 식당도 관광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스쿠터를 빌리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이전에 스쿠터로 여행하던 경험이 너무너무 좋았던 우리 부부는 당연히 한 대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2박 3일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준 스쿠터를 얻을 수 있었어요.


새끼부터 어른고양이까지, 작은 강아지부터 큰 개까지, 모두가 한테 엉켜 노는 곳이었어요


양 옆으로 숲이 울창한 길 하나를 타고 아래로 쭉 한 30분 정도 내려가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트에 들어서서 헬로~ 하면서 두리번거리며 들어가다가 뭔가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어요. 카운터 뒤쪽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사람 다리가 보이는 거예요. 뭐지? 하고 쓱 둘러보는데 뭔가 마트 구석에서 표정이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우릴 발견하고 의자에 앉아있다가 쓱 일어나십니다. 저는 아주 태연한 척하며 밖으로 나가야 하나, 그러는데 카운터에 보이던 다리가 움직이는 거예요.


아저씨가 뭔가 짜증 내는 뉘앙스로 카운터에 뭐라 말하니 그제야 바닥에 누워있던 아주머니가 일어나는 거였어요. 너무 더워서 바닥에 누워있었나 봐요. 휴.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일단 제일 중요한 물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뭔가 맛있어 보이는 빵이랑 초콜릿이랑 음료수도 잔뜩 사보았고요. 주변에 식당은커녕 마트도 여기 가지 와야 하니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컵라면도 좀 사보았지요. 이 선택은 매우 매우 훌륭했습니다.


이것저것 잔뜩 골라서 가득해진 비닐봉지를 핸들 손잡이에 끼우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우리도 아까 그 금발의 외국인처럼 숙소 앞에 누워서 바다를 보고 싶었어요,


실은 얕은 바다입니다


잽싸게 숙소로 와서 선배드와 의자를 세팅하고 누워보았습니다. 아 이게 쉬는 거지. 햇빛 들어올 때 적당히 달궈진 나무 선배드에 길게 누워 마트에서 사 온 군것질 거리를 먹으면서 좀 쉬어보기로 했습니다. 가만 보니 집 밑에 바다가 바닥이 안 보여서 깊은 것 같았는데 앞 숙소에 어떤 외국인 커플이 체크인하고 들어가 보더라고요. 무릎까지 오는 바다에서 휘적휘적하길래 여기서 스노클링이 되려나? 하고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보았습니다.


그런데 깊어 보이는 건 이유가 있더라고요. 유속이 느린데 물 온도는 따뜻하고, 그래서 모래가 많이 일어나는 바다였습니다. 시야각이 안 나오니까 스노클링은커녕, 발 담그는 것도 무서워서 혼났습니다.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는 미지의 공포가 상당하더라고요. 종아리 정도까지 들어갔다가도 무서워서 으으으으으 하다가 나와버렸습니다. 그냥 바다는 눈으로만 감상하기로 하고요.


굉장한 비주얼의 숙소였어요


그렇게 있는데 앞에 야외 로비에서 봤던 고양이 중에 한 마리가 우리를 쫓아왔더라고요. 너무 귀엽게 생겨서 같이 놀아주는데 안 가고 비비다가 우리 숙소 안으로 들어오더라고요. 세상에 세상에 이게 말로만 듣던 접대냥이인가, 혹시 숙소마다 한 마리씩 넣어주나 하면서 먹을 거 하나 안 주는 우리 손에 사정없이 비비며 애교 부리는 이 고양이를 보면서 감탄해하고 있었습니다.


넌 이제 베트남 벼리다
침대를 점령한 고양이


베트남 벼리라고 부르는 이 고양이는 우리랑 같이 자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프리덤 리조트에서 우리의 숙소메이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어요. 특히 아침에 일어나 문 밖으로 나오면 이 친구가 앞장서서 달려 나와 반겼습니다. 볼 때마다 심장이 얼마나 아프던지요.


이 여유가 정말 행복했어요


그렇게 푸꾸옥 동부의 첫날은 여유와 힐링으로 부드럽게 지나갔습니다. 이게 여행이지 하며 노을을 감상하는데 생각해 보니 여기 동쪽이잖아요? 내일 꼭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식당은 없지만 숙소에서 운영하는 키친이 있어 피자를 주문해 먹어보았습니다. 맛집은 아니었지만 풍경이 이리 좋으니 나름 훌륭한 식사였지요.


바다 위 오두막들이 많았어요


밤이 되니 양 옆에 쭉 있던 선착장에서 작은 배들을 타고 나가는 사람들이 바다 저 멀리 둥둥 떠있는 배로 향하는 게 보였습니다. 하나 둘 불이 켜지는데 한 밤중에도 바다가 칠흑같이 어둡지 않아 참으로 낭만적인 모습이었어요. 가만히 밤바다 파도 부서지는 소리 들으며 밤을 보냈습니다.


아, 초콜릿은 너무 맛이 없었어요.


동부의 저녁입니다


별이 아주 많은 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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