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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bert 이홍규 Apr 20. 2021

대서사극, 서부시대의 그리스 비극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암살〉 ×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부극, 최종 결투, 마지막 탄환

모뉴먼트 밸리, 콜로라도 [출처: Wikimedia Commons]


서부극은 할리우드의 태동기부터, 황금기를 지나, 21세기까지도 미국 영화계를 상징하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물론 서부극 자체는 무성 영화의 시작부터 존재해왔지만, 유성 영화 시대가 열리면서 존 포드, 하워드 혹스, 세르조 레오네, 샘 페킨파, 앤서니 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이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감독들의 비전을 통해 말초적인 오락을 초월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미적 가치와 메시지를 부여받으며 지속적으로 재창조되고 변주되어왔다. 덕분에 21세기에 와서 서부극은 고전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왜 굳이 서부극이었을까.


모든 역사가 세세하게 기록되어, 어떠한 신화적 뿌리가 존재하지 않는 미국인들에게 서부극의 무대가 되는 개척시대와 총잡이들은 어쩌면 그들의 전래동화와 주술적 영웅으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이민자와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을 내쫓고 핍박하며 그들의 고통과 피눈물을 제물로 바쳐 만들어진 국가에게는, 〈국가의 탄생〉(1915)으로 대표되는 인종적 프로파간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 목적성은 희석되거나 전복되었지만, 서부극이라는 형태가 영화계의 DNA 깊숙한 곳에 희미하게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반대로, 미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태생에 〈국가의 탄생〉과 같은 부끄러운 오욕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원죄를 참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하며, 이번에는 제대로 하리라는 다짐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비평적 분석을 잠시 미뤄둔다면, 단순히 시장, 또는 시대정신의 수요에 대한 응답이라는 해석이 가장 직관적이기는 하다.


서부극의 인기를 시장논리로 접근하려면, 어떠한 상품인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고전 할리우드의 서부극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 몇 가지 다른 장면이 있으리라. 황야를 가로지르는 기차가 선, 개척지역의 작은 마을. 기차에서 내리는, 노동은 책에서만 읽은듯한 같은 아리따운 도회지 출신 여성. 흙먼지가 날리는 그곳에 나무로 지은 허름한 집채들과 그곳에 사는 광부들. 해가 지면 하루 종일 석탄 가루를 들이켠 그들이 고된 몸을 이끌고 향하는 마을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주점(saloon). 거나하게 취한 광부들이 너무 시끄러워지면 싸움을 말리는 보안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목장. 목장의 소떼를 지키는 카우보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마을에 들어서는 이름 없는 떠돌이 총잡이. 마을 밖에서 역마차를 습격하고 전리품을 가지고 들어오는 강도단.


그리고 이들이 모두 충돌하는 빅뱅, 극이 끝나기 직전의 결투.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1946)의 그 유명한 OK 목장을 무대로 한 헨리 폰다의 와이어트 어프와 클랜튼 가문의 결투도, 같은 감독의 〈수색자〉(1956)의 대미를 장식하는 존 웨인의 이든 에드워즈와 코만치 부족과의 전투도 이러한 결투로 끝난다. 〈수색자〉가 개봉한 지 60년이 지난 후에 극장에 걸린 〈레버넌트〉(2015)에서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휴 글래스는 톰 하디의 존 피츠제럴드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자연에 맞선다.


존 포드 감독, 〈황야의 결투〉(1946), 〈수색자〉(1956) [출처: IMDb]


액션 영화의 호흡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결투는 기실 당연하게 느껴진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빅 컨츄리〉(1958)에서 그레고리 펙은 영화 내 모두를, 심지어 자신을 모욕하는 이들에게도, 신사적인 태도로 대하는 제임스 맥케이를 연기하는데, 그는 마지막 순간 정말 그의 실력을 필요로 할 때 일당백의 실력을 보이며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서부영화에서 서사란 이 마지막 빅뱅을 위한 준비작업과도 같다. 관객은 영화 내내 서로를 향해 달리고 있는 기차의 점진적 가속을 보고, 곧 다가올, 피할 수 없는 충돌을 숨을 죽이며 기다린다.


개척시대는 두 개의 세계전쟁을 겪은 미국인들에게는 이상적인 옛 시절을 상징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벌어진 전쟁에,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받고 나간 전투에서 생지옥을 경험하고 살아 돌아온 이들에게는 세계는 너무나 빠르게 이해의 범주를 벗어났다. 두 개의 폭탄으로 도시가 잿더미로 변해, 끝나지 않을듯 했던 전쟁이 끝나는 순간을 실감한 이들에게 육체적인 힘, 정신력, 개인성은 허무한 가치로 전락했다. 50-70년대, 할리우드의 영화와 TV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쇼가 서부극인 이유는 바로 이런 허무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수요에 대한 응답이었다.


서부극이 개척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 이유는,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모든 사물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만 했던 제약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아닐까. 시드니 폴락 감독의 〈제레미아 존슨〉(1972)에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을 연기하는 로버트 레드포드는 실제로 멕시코-미국 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군인으로, 산으로 떠나 대자연의 속에서 자신의 손으로 삶을 직접 조형해가는 과정, 그 부산물만으로 생존하는 경험을 갈구한다. 이는 어떠한 개인의 인지를 벗어난 거대한 국가 간의 전쟁에서,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전투에서 살아남는 공허한 생존의 반대편에 서 있는 가치와도 같다.


서부극이 너무나도 작은 마을을 무대로 하는 이유는,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사회를 한 시야 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시적 사회 변화와 미시적 사회 변화가 겹쳐지면서, 마치 에코스피어(ecosphere)와 같은 닫힌 공간의 완벽함을 구현해낸다. 관객은 이러한 에코-소시오스피어(eco-sociosphere)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는 바깥 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서부극이 황야의 결투로 끝나는 이유는, 거대하고 복잡하게만 보였던 모든 문제가 하나의 점으로 압축되는데서 오는 쾌감을 꼽고 싶다.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총알 하나로,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1966)에서 서로와 지독한 악연으로 묶인 3인의 갈등도,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2010)에서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살인자를 찾아 나선 당찬 소녀의 복수극도 끝이 난다. 우정과 갈등, 사랑과 증오, 배경과 서사 모두가 마지막 결투의 순간에는 하나의 점, 하나의 탄환 위로 포개지고, 관객도 등장인물도 그 점 하나에만 집중한다. 이렇게 고밀도로 압축된 점은 몹시 명료하고 우아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어지러운 속도의 고속 성장, 이해할 수 없는 크기로 무한 확장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게, 서부는 변화하지 않는 기원과 이해와 인지를 가능케 하는 세계를 상징하고 있었다.


번개를 담아낸 유리병

제시 제임스(브래드 피트), 딕 리딜(폴 슈나이더),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2007) [출처: FILMGRAB]


2007년 개봉한 앤드류 도미닉 감독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2007)은, 그 제목만큼이나 긴 160분이라는 상영시간을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의 역작(magnum opus)이라 부를만한, 마술과도 같이 아름다운 촬영으로 담아낸 캐나다 야생의 압도적인 풍광, 배우로 완연하게 물이 오른 주연 브래드 피트와 케이시 에플렉의 연기로 빈틈없이 채워 넣었다. 또한, 기존 서부극의 관습을 모두 전복시키고, 지극히 미국적인 서사에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재연해내는 데 성공한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 제시 제임스 암살〉의 제작과정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이 작품이 마치 번개를 유리병 안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lightning in a bottle), 기적과도 같은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앤드루 도미닉 감독은 6년 전  데뷔작인 〈초퍼〉(2006)에서 호주의 유명 범죄자이자 작가인 마크 "초퍼" 리드의 역할로 코미디언이었던 에릭 바나를 캐스팅하는 모험을 하였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단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진지한 정극 배우로 거듭나는 데 성공한 바나는 초퍼 역할로 보여준 그 불안하고 폭발적인 연기를 인정받아 이안 감독의 〈헐크〉(2003)에 캐스팅되었고, 이듬해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그 원작의 스케일에 걸맞게 영상화한 볼프강 페테르젠 감독의 〈트로이〉(2004)에 더블 주연에 가까운 헥토르로 캐스팅되었다. 물론 그의 상대,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를 맡은 배우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이자, 주가가 최고로 오른 브래드 피트였다.


브래드 피트가 앤드류 도미닉 감독을 알게 된 계기가 바로 에릭 바나를 통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배우로는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고 있던 피트였지만, 본인의 연기 인생과 영화 산업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 부인인 제니퍼 애니스턴과 함께 세운 제작사인 플랜 B 엔터테인먼트는 이러한 고심 끝에 나온 결과물이기도 했다. 배우가 소모적인 부품으로 쓰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영화에 투자하고, 대담한 기획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런 플랜 B 엔터테인먼트에서 피트가 처음으로 제작자 및 주연배우를 동시에 맡은 영화가 바로 앤드류 도미닉 감독의 차기작인 〈… 제시 제임스 암살〉이었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초퍼〉로 영화계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던 그는 작가 론 핸슨의 1983년 동명 소설을 읽고 영화 각본으로 각색을 했는데, 그의 차기작에 출연하고 싶었던 브래드 피트가 투자 및 제작까지 약속한 상태였다. 도미닉 감독이 워너브라더스에게 배급을 위하여 각본과 세팅된 제작구조를 가져가자, 그들은 "각본이 약간 어이가 없다(fruity)"라는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워너브라더스는 브래드 피트와 오션즈 시리즈로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 제시 제임스 암살〉의 산정된 제작비는 굳이 말하자면 '인디 대작'에 가까운 (크게 부담되지는 않는) 3천만 불이었다. 각본만 보아서는 흥행성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을 수 없었지만, 만약 워너브라더스가 패스한 이 작품을 파라마운트에서 계약해 아카데미를 받는다면 그 또한 민망한 일이기 때문에 배급 투자가 결정되었고, 워너브라더스의 수뇌부는 곧 이 영화에 대해 잊어버렸다. 4개월간의 촬영이 끝나고 나서야 영화가 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신히 기억해냈고, 모두가 첫 번째 컷을 관람한 후 일제히 기겁했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가 2020년 본인의 팟캐스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영화의 첫 번째 컷은 4시간이었고, 도미닉 감독과 디킨스 촬영감독 모두 이 4시간 컷을 가장 완벽한 버전이라 여긴다 밝혔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워너브라더스는 어떻게든 이 영화를 극장에 걸 수 있을 정도의 길이로 줄여야 했고, 촬영 기간의 배가 넘는 9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240분에서 160분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편집된 후에도 워너브라더스는 〈… 제시 제임스 암살〉의 흥행성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제한 개봉된 극장가에서 제작비의 반인 1,500만 불을 회수하면서 작품은 흥행 실패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렇게 최종편집권을 둔 감독과 제작자, 배급사간 알력 다툼은 영화계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몰락한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은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밝혀졌듯이 '가위손' 하비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피터 잭슨, 제임스 카메론, 스티븐 스필버그, 팀 버튼, 클린트 이스트우드, 데이비드 핀처, 마이클 베이, 마틴 스콜세지, 리들리 스콧, 론 하워드와 같은 거장 감독들은 파이널 컷 권한, 즉 최종 편집권을 가지고 있다는 계약 관계까지 기사화될 정도로 대부분의 영화 제작 환경에서 편집권은 배급사의 마지막 보루이자, 작가주의적인 감독들에게는 성배와도 같은 가치가 있다.


물론 할리우드에 막 데뷔한 앤드류 도미닉 감독에게 최종 편집권은 주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 제시 제임스 암살〉은 불완전한 형태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 제시 제임스 암살〉이 번개를 유리병 안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하는 이유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고서 공개된 영화가 연기, 촬영, 미장센, 서사 어떠한 면을 보더라도 21세기의 서부극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야심차고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서부를 채우는 그리스 비극

제시 제임스(브래드 피트),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출처: FILMGRAB]


작품의 주연인 제시 제임스는 19세기 중반, 남북전쟁부터 전쟁 후까지 미국 중부를 무대로 활동한 실제 인물이자 범죄자로, 그의 형인 프랭크 제임스와 함께 마지막 남부 연합군을 자칭하며 은행과 기차 강도질로 살아간, 기존의 서부극에서는 악역을 맡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묘하게도 그의 활동 중이나, 로버트 포드에게 암살당한 후에도 제시 제임스는 부자들에게 훔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준다는, 개척시대의 로빈 후드와 같은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하였다. 실제 역사가들은 제시 제임스가 이러한 자선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고증을 지적하지만, 그의 인지도는 거의 미합중국 대통령의 수준으로 올라가, 범죄자로 활동 중일 당시에도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임 노벨(dime novel)이 출간되기도 했다. 그가 사라져 가는 서부시대의 가치 중, 느슨한 법치와 원석과도 같은 문명을 상징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전쟁에 패배한 남부의 회한과 고집을 대표하는 인물로 실제 삶보다 더 커다란 상징을 짊어지게 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유와 관계없이, 서부극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제시 제임스의 삶은 서부의 인물들 중 압도적으로 많이 영상화되었다. 수많은 작품 중, 제시 제임스를 연기한 대표적인 배우들만 꼽아보아도, 헨리 킹 감독의 〈제시 제임스〉(1939)에서는 떠오르고 있던 청춘 미남 스타 타이론 파워를 비롯해 2대 슈퍼맨인 조지 리브스(1943), 〈론 레인저〉로 유명한 클레이튼 무어(1947), 〈대부〉 시리즈의 로버트 듀발(1972), 90년대 대표 미남 배우인 롭 로우(1994), 2000년대 대표 미남 배우인 콜린 패럴(2001) 등, 이 무법자의 아이콘은 할리우드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위 배우들이 각자의 시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놓고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브래드 피트가 제시 제임스 역할을 맡은 캐스팅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 제시 제임스 암살〉은 서사적으로 몇 가지 지점에서 독특하다.


영화는 제시 제임스가 활개를 치고 다니던 그의 20대 시절이 아니라, 마지막 열차강도 작전인 블루컷 강도사건에서 시작을 한다. 실제 역사상 이 사건 이후 제시 제임스는 강도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본인을 추적하는 사법망을 피해 도주만을 계속하다, 약 1년 후 로버트 포드에게 암살당한다. 즉,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에서는 그의 범죄(또는 영화적 문법에서의 모험), 결투, 총솜씨 등을 볼 기회가 없다.


제시 제임스(브래드 피트),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출처: FILMGRAB]


은행을 털지 않고, 결투를 하지 않는 제시 제임스의 역할은 상당히 골치 아픈 연기였을 수도 있다. 물론 90년대 활동을 시작했을 때도 연기력이 떨어지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브래드 피트의 연기론은 이 작품에서 어떠한 하나의 방점을 찍는다.


〈델마와 루이스〉(1991)에서 젊고 잘생긴 방랑자인 J.D.를 연기했을 때부터, 톰 크루즈와 함께 세기의 미남 대결을 보여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자유로운 영혼의 트리스탄 러들로 역할을 연기한 〈가을의 전설〉(1994), 그리고 3개의 작품을 함께 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1995), 〈파이트 클럽〉(1999) 스크린을 압도했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브래드 피트는 육체적인 배우였다.


캐릭터에 대한 깊은 연구와 고민이 존재했는지와는 관계없이, 그렇게 완벽하게 생긴 외모로는 도저히 육체적인 연기를 벗어나기 힘들다. 도대체 어떠한 관객이 피트의 얼굴, 또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반항적이면서도 달콤한 분위기에 진정한 공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연기는 관망과 동경의 대상이지, 공감의 주체가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브래드 피트는 항상 주연 배우의 육체에 갇힌 캐릭터 배우였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은 〈… 제시 제임스 암살〉을 통해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의 올바른 사용법을 발견해냈는데, 바로 주연이 아니라, 주연에서 살짝 벗어난 주조연의 위치에 두고, 관객의 눈으로 그를 함께 관망하는 방법이다.


〈… 제시 제임스 암살〉에서 제시 제임스는 케이시 에플렉이 연기한 로버트 포드의 동경의 대상, 우상, 그의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그림자와도 같다. 영화는 로버트 포드의 불안한 시선을 쫓아 제시 제임스라는 인간을 조망한다. 인간 제시 제임스는 열차 강도 작전을 실행에 옮기면서 필요 이상의 폭력을 사용할 정도로 잔악하고, 자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자 동료들을 찾아 한 명씩 암살할 정도로 냉철하며, 허약해져 가는 육체로 불꽃이 꺼져가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필멸자다.


열차 강도 범죄라는, 제시 제임스의 삶을 정의하는 압축된 사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서사가 진행되면서 그 응집된 정수를 의도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로버트 포드는 제시 제임스의 삶에 들어왔다 나가는 사이, 제임스 갱과 관계된 인물들의 죽음을 하나씩 받아들여 나간다.


이 압축된 가치의 해체는 로저 디킨스의 촬영에도 자연스레 녹아있다. 스크린에서 묘사된 가장 아름다운 열차 강도 시퀀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를 여는 사건에서, 등장인물들을 비추는 조명은 열차에서 발하는 빛뿐이다. 관객의 시선은 그 빛이 비치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 하지만 사건 이후, 제임스 갱이 흩어지면서, 카메라는 설원, 밤길, 황야의 자연 풍경에 압도되는 인물들을 비춘다. 인물과 자연 사이 비어있는 거대한 공백은 인간이 느끼는 고독을 넘어, 범죄로 점철된 그들의 삶의 허무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제시 제임스(브래드 피트),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출처: FILMGRAB]


이 공허는 숏 안에서 마치 어떠한 질량과 부피를 가지고 있는 성질을 보유해, 에드 밀러를 찾아오는 제시 제임스의 작은 실루엣을 짓누르기도 하고, 얼어버린 호수 위에 서서 빙판에 총을 쏘아대는 제시 제임스를 에워싸 그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제시 제임스(브래드 피트),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출처: FILMGRAB]


물론, 이 대자연과 인간의 사이에, 제시 제임스의 사촌 우드 하이트(제레미 레너)와 그의 라이벌이자 동료인 딕 리딜(폴 슈나이더)의 다툼, 어린 로버트 포드를 놀리는 그의 친형 찰리 포드(샘 록웰)와 제임스 갱단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마사 볼튼(알리슨 엘리엇) 등이 복작거리며 군상극을 그려내기는 한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서사의 호흡,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촬영까지, 이들의 삶은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 인물은 등장했다가 허무하게 퇴장하고, 그 활기는 부지부식 간에 불이 꺼져 연기로 화한다.


이 감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우드 하이트와 딕 리딜의 마지막 결투로, 마사 볼튼의 여관으로 돌아온 우드 하이트는 딕 리딜이 위층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총을 들고 달려든다. 분명 여느 서부극이었다면 두 명의 총잡이의 결투처럼 연출되었을 수도 있지만, 딕 리딜은 추레한 내복을 입고 침대에 앉아 상대를 기다리고, 문을 박차고 들어온 우드 하이트는 바로 앞에서도 딕 리딜을 맞추지 못한다. 그리고 둘 다 서로를 죽이는데 실패한다.


제시 제임스는 폭력적이며 예측 불가능한데, 로버트 포드는 유약하면서 예측 불가능하다. 우드 하이트는 사촌의 명성을 권력으로 휘두르고, 딕 리딜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난봉꾼이다. 찰리 포드는 동생을 놀리면서도 아끼는 좋은 형이지만, 한편으로는 용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에드 밀러는 한번 잠자리를 같이 했던 창녀에게 연애편지를 쓰고 싶어 할 정도로 순박하고 잔머리가 없다.


관객은 작품을 관람하고 나면 응원, 또는 공감을 할만한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는데 놀라움을 느낀다. 이는 어쩌면 이 작품을 "서부를 무대로 한 그리스 저주"이라고 묘사한 감독 본인의 의도가 다분히 담겨있을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 저주, 즉 비극을 드리우는 숙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잠시 쇠렌 키르케고르가 고대 그리스 비극과 현대의 비극을 비교한 비평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키르케고르는 고대 비극의 특징을 "사건이 인물(인성)에서만 발생하지 않고 … 사건 자체에 고통이 혼재되어 있다"라고 평했다. 즉, 다시 말하면, "고대 비극에서 주인공의 몰락은 그의 행동뿐만이 아니라 그의 고통의 결과라고 평한다면, 현대 비극에서 주인공의 몰락은 고통이라기보다는 행위 그 자체"라는 의미이다. 현대적인 비극의 주인공의 서사 내 성공과 몰락은 온전히 행위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이에 대비되어 소포클레스의 『테베 3부작』이나,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등에서 보이는 올림포스 신들의 간교를 생각하면 키르케고르가 포착한 고대 비극의 특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고대와 현대 비극 사이 "죄의식"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을 비교한다. 만약 인물이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비극에 대한 관심은 무효화된다. 비극적 감성의 활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물이 완벽하게 죄의식에 잠식되어 있다면 그의 비극은 슬픔을 넘어 이미 속죄라는 단계로 넘어가 버린다.


비극은 인물이 죄의식의 양극 사이에서 움직이면서 활기를 얻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죄의식은 고통과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되, 슬픔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관찰이다. 죄의식이 커질수록, 인물이 겪는 고통은 커지지만, 인물이 겪는 슬픔은 작아진다. 이는 비극적 동기에 대한 인지와 이해가 커질수록 슬픔이 차지하는 공간이 작아진다는 의미이다.


만약 이 방법론을 고대 비극에 적용해 본다면, 비극의 연유에서 인물의 행위가 차지하는 비율이 작아질수록, 세계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비극적 운명론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게되며, 이 순간 인물은 자신에게 닥친 비극의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식 또한 따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물은 고통보다는 슬픔, 비통함을 느끼게 된다.


〈… 제시 제임스 암살〉에서 재창조된 앤드류 도미닉 감독과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의 서부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불한당들과 그들을 짓누르는 광활한 배경 사이 공간을 이 고대 그리스적인 비통함으로 채우고 있다. 이 비통함은 어떤 관객에게 전도되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슬픔이 아니라, 악당이 영웅시 되어가는 시대와 배경에 충만한 기운이다.


할리우드 황금기에서 그려졌던 서부는 무법적인 질서가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활력으로 이해하고 제공되어왔다. 모든 사건과 인과관계는 마지막 탄환이라는 점 하나까지 압축된다. 결투의 마지막, 그 점이 누군가의 가슴팍에 구멍을 뚫는다. 이는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랐던 순간처럼, 영화 내 압축되어왔던 인과관계를 순식간에 해결한다. 모든 비극은 꾸역꾸역 흐르는 선혈에 담겨 순식간에 해방되고, 카타르시스를 분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환원적 서사에서 미처 함께 압축되지 못한, 그 점 외부에 존재하는 서부는 인간의 목숨에 값을 매길 수 있고,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삶의 목적과 의미, 선의와 인륜이 유린되는, 문명과 야생의 경계선이었다. 탄환으로 해결되지 않는 비극으로 가득찬 곳이 서부였다.


찰리 포드(샘 록웰), 로버트 포드(케이시 애플렉),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출처: FILMGRAB]


〈… 제시 제임스 암살〉에서 보이는 허무주의적 감상은 조야하고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들이 복작거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중심에 배치하면서, 서부에 드리워졌던 이상주의적이고 서정적인 베일을 벗겨내기를 주문한다. 베일이 벗겨진 서부에는 영웅화된 악당 총잡이가 뒤통수에 총을 맞고 죽어가며, 그를 죽인 암살자는 그를 우상화하면서 자랐지만, 결국은 단순히 유명해지고 싶다는 이유였다라고 고백한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은 〈… 제시 제임스 암살〉에서 인물과 인물 사이의 소통, 사건과 사건 사이의 관계에서 합리성과 개연성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그 사이를 주술적이고 고대적인 비극적 저주로 엮어나가고, 비어 있는 공간을 초월적 슬픔으로 채운다. 제시 제임스를 짓누르고 있던 잿빛 하늘과 숨 막히는 야생은 그리스 비극에서 신들이 차지하고 있던 비극을 대신해 인간의 인지를 넘어서, 마치 올림포스의 신들이 인간의 생명과 운명을 희롱하였듯이, 서부 시대의 황혼기에 농담같이 오가던 인간 생명의 가치를 나타낸다.


앤드류 도미닉의 서부는 기원이 아닌 황혼에 위치해, 인지가 아닌 몰이해로 가득 차, 20세기가 추억하던 이상을 철저하게 해체한다.


안티-웨스턴

존 맥케이브(워렌 비티),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 [출처: FILMGRAB]


앤드류 도미닉 감독 본인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 제시 제임스 암살〉은 그가 레퍼런스 삼았다고 했던 큐브릭 감독의 피카레스크 시대극인 〈배리 린든〉(1975)보다는,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을 닮았다.


〈… 제시 제임스 암살〉이 론 핸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듯이,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또한 에드먼드 노튼의 『맥케이브』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두 영화 모두 감독이 직접 원작을 극본으로 각색해, 시대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피카레스크 서부극을 전개해 나간다. 리딩맨이 노년에도 꾸준히 연기를 이어가는 21세기의 할리우드의 풍조와는 다르게 워렌 비티는 2001년 연기를 완전히 은퇴했다가 15년 만에 감독-출연작인 〈그 규칙은 당신에게 적용되지 않아요〉(2016)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하지만 전성기의 워렌 비티는 21세기 초반 브래드 피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21세기의 관객에게 최고의 촬영감독을 꼽으라면 높은 확률로 로저 디킨스의 이름이 나오겠지만,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의 촬영감독 빌모스 지그문트 또한 70년대를 대표하는 촬영감독으로 〈미지와의 조우〉(1977)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다. 디킨스와 지그문트 모두 커리어 내내 독보적인 영상미를 완성해오며 비평적 성공을 이루어왔지만, 두 촬영감독 모두 이 비평에서 다루고 있는 서부극을 감독한 이후, 몇 년이 지나서야 SF 영화를 통하여 첫 아카데미 수상을 했다는 공통점도 흥미롭다. 디킨스 촬영감독이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로 첫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기 전 13번 후보에 오른 과거는 할리우드에서도 유명한 무관의 역사였다.


두 작품 모두 전문 영화음악 작곡가와 협업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 제시 제임스 암살〉의 서정적이고 음악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설적인 록밴드의 리더인 닉 케이브와 같은 밴드의 바이올리니스트 워렌 엘리스가 맡았다.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은 작곡을 하는 대신, 로버트 올트먼 감독이 데뷔 때부터 팬이었던 캐나다의 뮤지션, 20세기 최고의 음유시인이라고 평가받는 레너드 코헨에게 직접 연락해 그의 앨범 중 3개의 곡을 돌려 쓰기로 합의해 배경음악을 대신한다.


물론 이런 작품 외적인 요소의 공통점을 찾는 행위는 흥미를 위한 표면적 비교이지만, 두 작품이 기획 단계부터 기존 문법을 거부하는, 일종의 반(反) 서부극, 안티-웨스턴을 표방하고 있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리딩맨이 연기하는 악당 주연, 예술에 가까운 작가주의적 촬영, 뮤지션보다는 음유시인이라는 이미지로 더 유명한 비-미국 아티스트들과 만들어낸 음향. 〈… 제시 제임스 암살〉 개봉 시 작품을 리뷰한 평론가 로저 이버트 또한 자신의 평에서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과 테런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1978)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곳에 포주와 매춘부가 있었다

로버트 올트먼 감독,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출처: FILMGRAB]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은 장대비가 내리는 프레스비테리언 처치라는 개척 마을에 말을 끌고 중얼거리며 들어오는 맥케이브의 모습으로 시작이 된다. 추레한 마을의 주점으로 향한 맥케이브는 세련된 옷차림과 포커 게임으로 마을 사람들의 인기를 끈다. 그의 뒤에서는 맥케이브의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들이, 맥케이브가 빌 라운드트리를 죽인 바로 그 존 "퍼지" 맥케이브라고 쑥덕댄다.


맥케이브는 큰돈을 투자해 마을에 주점과 사창굴을 짓고, 순식간에 프레스비테리언 처치의 유지로 자리 잡는다. 어디선가 그의 이름을 듣고 나타난 밀러 부인은 그에게 자신이 사창굴을 운영하는 방법을 안다고 자신 있게 소리치며, 동업을 제안한다. 밀러 부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신과 함께 일하던 매춘부들을 부르고, 목욕탕을 건축해 지저분한 변경 마을에 우아한 유흥과 매춘을 제공한다.


그들의 사업은 순식간에 번창하는 듯 하지만, 곧 프레스비테리언 처치에서 채굴사업을 시작하려는 해리슨 쇼너시 회사에서 중개인을 보내 사업 인수를 제안한다. 맥케이브는 가격을 올리기 위하여 호탕하게 거절하지만, 중개인들은 순식간에 떠나버리고, 해리슨 쇼너시는 중개인 대신, 해결사들을 보낸다. 그들은 평화롭던 마을에 총을 쏘며 등장해, 맥케이브의 목숨을 노린다.


모든 사건이 일단락되고, 마을 전체를 뒤덮은 난장을 담고 있던 카메라가 다시 마을의 한 구석, 중국인 거주구역으로 들어가, 아편굴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 누워있는 밀러 부인의 눈을 극도의 클로즈 업으로 잡으면서, 영화는 종료된다.


콘스탄스 밀러(줄리 크리스티),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출처: FILMGRAB]


물론 이 서사는 작품을 선형적으로 해석했을 때 나오는 대략의 줄거리지만, 올트먼의 작품답게 서사 중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각자 다른 리듬으로 등장하고 퇴장한다. 처음 맥케이브가 데려 온 3명의 창녀들 중 가장 어린 알마는 손님을 칼로 여러번 찌를 정도로 큰 소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도 없으며, 복수극도, 찔린 사람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세 명은 밀러 부인과 그녀의 창기들이 도착하면서 부엌일로 재배정되고, 서사의 뒤편으로 물러선다. 밀러 부인과 함께 프레스비테리언 처치에 도착한 어린 신부 아이다는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밀러 부인의 초대로 사창굴에서 일한다. 아이다 또한 옷을 입는 장면이 나오고,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각 인물에 머무르다 떠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너무 무심하기 때문에 군상극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다. 하지만 개인사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서사의 부피가 확장되어가고, 관객은 모든 서사를 인지에 담기 위해 점점 뒷걸음질 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덩어리가 시야 안에 들어오는 순간, 관객은 깨닫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적어도 카메라가 담으려고 했던 객체는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이 아니라, 프레스비테리언 처치라는 마을 그 자체였음을. 그들은 단순히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했을 뿐이다.


〈… 제시 제임스 암살〉이 공간과 대사 간의 의도적인 공백과, 인과관계에 대한 개연성에 대한 무심함, 건조하고 느릿한 서사 호흡으로 서부시대의 비인간성, 비윤리적인 음험함을 자아내고 있다면,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은 시끄럽고 복잡하고 무규칙한 분위기를 통해 같은 효과를 얻고 있다.


프레스비테리언 처치는 우리가 서부영화에서 익숙한, 흙먼지와 건초가 날리는 건조한 개척 마을이 아니다. 서북부의 워싱턴 주에는 매일 비가 오고 있어, 마을은 진창이며, 건물은 지저분하다. 겨울이 되면 장대비는 폭설로 바뀌어 어디를 가도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 쌓여있다. 맥케이브는 처음 마을에 도착해 텐트를 세워놓고 매춘업을 시작한다. 현대적인 위생 관념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제거한 이 환경은 관객의 눈을 찌푸리게 만든다. 주연 워렌 비티는 이 작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로버트 올트먼 감독과 협업한 후 다시는 작품을 같이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척박하고 거친 환경이 무관하였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로버트 올트먼 감독,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출처: FILMGRAB]


서사의 호흡,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혼돈과 난장을 오간다. 인물들은 대사를 중얼거리거나, 무심하게 상대방의 대사를 가로채기도 하고, 두 인물이 동시에 말하는 일도 많다. 대부분의 대사는 인지되지 못하고 의미를 잃고 연기처럼 흩어진다. 물론 이 혼란은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연출 스타일의 매력이기도 하다. 물론 윤리의식에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워렌 비티의 혼잣말과 중얼거림은 감독의 차기작인 레이먼드 챈들러 원작의 〈긴 이별〉(1973)에서 엘리엇 굴드가 연기한 필립 말로에게도 반복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돈되지 않는 파편화되고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플롯은 〈내쉬빌〉(1975), 〈숏컷〉(1993), 〈고스포드 파크〉(2002) 등, 올트먼 감독을 대표하는 작품들에서 더욱 심화된다.


평론가 폴린 카엘은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을 평하면서 "몽상(pipe dream)"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꿈과도 같은 맥케이브의 사업 계획, 그런 맥케이브에게 생존을, 아편 연기에 정신적 치유를 의지하는 밀러 부인, 너저분하고 축축하지만 꿈꾸는 듯이 아름다운 화면, 그리고 작가적인 고집으로 이렇게 비극적인 서부영화를 만들어낸 올트먼 감독까지, 모두 몽상을 꾸고 있다.


물론,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은 그 이후 등장할 소위 "수정주의" 서부극, 심지어 〈… 제시 제임스 암살〉을 포함한 반-서부극과는 다르게 서사의 마지막 부분에 운명을 건 결투를 배치한다. 이야기가 사방팔방 흐트러져가던 이 영화에서도 맥케이브와 3명의 해결사의 대결은 대단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맥케이브가 알려졌던 소문과는 다르게 위대한 총잡이가 아니라는 진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수세에 몰리는 그의 최종 결투는 더욱 조마조마하다.


존 맥케이브(워렌 비티),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 [출처: FILMGRAB]


하지만 이 생사를 오가는 혈투가 오가는 와중, 마을 사람들은 화재가 난 교회의 불을 끄기 위해 달려간다. 두 사건은 동시에 일어난다. 맥케이브의 결투가 종료되어도, 마을 사람들은 그의 운명에 무관심하다. 단지 교회가 전소되기 전에 불을 끄는 데 성공했다는 공동체적 승리감에 프레스비테리언 처치의 주민들은 자축하며 자택으로 돌아간다.


관객이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에게 연민을 느낄만한 여지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30년 이후 〈… 제시 제임스 암살〉에서 보인, 키르케고르가 이야기 한 비극의 원형을 잡아내는 데 성공한다. 매춘부를 사랑한 포주의 죽음과, 포주를 잃은 매춘부가 아편에 취해가는 모습은 인물에 대한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진흙탕에서 피어난 들꽃을 짓밟는 서부의 무정함, 프레스비테리언 처치를 가득 채우고, 두 주인공을 숨 막혀 죽음으로 몰아가는 비극적 기운에 젖어있을 뿐이다.


사방팔방 펼쳐진 이야기의 타래를 모두 응집시킨 점, 최후의 탄환까지 도착한 이야기는 그 탄환이 발사되자마자 맥없이 풀려 버린다.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은 결국 몽상에 취했던 포주와 매춘부였을 뿐이다. 마지막 총알은 무엇도 해결하지 않았고, 명료하거나 우아하지도 않았다. 서부라는 이상 전체가 몽상이었을 뿐이다.


마침

올트먼이나 도미닉 감독을 위시한, 일견 "수정주의" 서부극이라 칭해지는 작품을 창작한 이들이 본인들의 작품을 고전 서부극이라는 틀의 의도적 해체, 또는 과거에 드리워진 낙관적인 감상에 대한 수정을 직접적으로 목적 삼았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굳이 수정주의 서부극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상이 있다면 서사에서 느껴지는 냉소적 시선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화면 상의 낭만적인 향수의 어색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공존이다.


서부에는 19세기 말,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에서 공연 되었다는 가공되고 위생 처리된 카우보이들이나, 현대에 와서도 계속되고 있는 돌리 파튼의 "딕시 스탬피드"에서 묘사되는 남북전쟁의 신사적이고 친절한 기병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 살아간 이들은, 여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복잡다단하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질 수 없는 꿈을 쫓은 몽상가들이었다.


(끝)


참고자료

Kael, P. (2016). Pipe Dream. In S. Schwartz (Ed.), The Age of Movies: Selected Writings of Pauline Kael: A Library of America Special Publication (Reprint ed., pp. 279–283). The Library of America.

Kierkegaard, S. (1987). The Tragic in Ancient Drama Reflected in the Tragic in Modern Drama. In H. V. Hong & E. H. Hong (Eds.), Either/Or, Part I (Kierkegaard’s Writings, 3) (pp. 139–164). Princeto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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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f, Z. (2020, November 17). Roger Deakins Reflects on Warner Bros.’ Problems with ‘Stunning’ Four-Hour ‘Jesse James’ Cut. IndieWire. https://www.indiewire.com/2020/11/roger-deakins-warner-bros-problem-four-hour-jesse-james-cut-1234599134/

Siegel, T. (2010, January 22). Fade-out on final-cut privileges? Variety. https://variety.com/2010/film/features/fade-out-on-final-cut-privileges-111801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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