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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bert 이홍규 May 19. 2021

대서사극, 회화와 영상 - 찰나와 영원

〈결투자들〉 × 〈알라트리스테〉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이브 포토, 순간의 해방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 [출처: The Cultured Nerd]


극장에서 재개봉한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를 보면서 문득 이 시리즈가 처음으로 실사 영화로 개봉됐을 때 극장에서 느꼈던 경외감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 시리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마술적 개념은 '움직이는 이미지'였다. 호그와트의 회랑과 벽에 걸린 수많은 유화들 속 모델의 움직임, 세계관 내 마법사들을 위한 신문인 『데일리 프로핏』의 지면을 뚫고 나올 듯이 사납게 움직이는 시리우스 블랙의 머그샷. 바람에 날리는 릴리 포터의 머리카락과 아내를 끌어안는 제임스 포터의 미소.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개념 자체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먼저 영상화되었다. 물론 해당 작품에서는 당시 영상 기술의 한계 때문일지는 몰라도 그 움직임이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하게 표현되었지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에 와서는 몹시 실감 나는 CG 기술로 연출이 가능해졌다. J. K. 롤링이 이 개념을 고안했을 때 블레이드 러너의 움직이는 사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은 2014년 노키아에서 공개한 '리빙 이미지' 기능, 그리고 2015년 공개된 아이폰 6S의 '라이브 포토' 기능으로 우리의 현실에도 닥쳐왔다.


여기서 흥미로운 구상은 '리빙 이미지'나 '라이브 포토' 둘 다, 신기술이 아니라, 기믹이라는 점이다. 이 두 기능 모두 기술적으로 보았을 때는 사진 촬영 전 몇 초간의 영상을 사진과 함께 저장하는, 짧은 동영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능을 사용하는 이용자는 이를 영상과 다르게 인식한다. 사진은 하나의 순간을 잡아두지만, 영상은 움직임을 잡아둔다. '라이브 포토'는 사진이 촬영되는 순간의 프레임을 목적지로, 그곳까지 이르는 짧은 순간을 촬영한다. 그래서 '라이브 포토'는 '쇼트 비디오'가 아니라 '사진'으로 인식된다. 이 미묘한 차이는 '라이브 포토'가 '사진'이라는 개념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연결된다.


앙드레 바쟁은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에서 "사진은 회화와는 다르게 영원을 창조하지 않고, 찰나를 방부 처리한다"라고 논했다. 즉 사진이 마치 미라 제조법처럼, 어떠한 순간을 시간의 흐름에서 잡아 분리하려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면, '라이브 포토'는 이 방부 처리된 미라에게 잠시 숨결을 불어넣는다.


기술적으로는 단지 영상의 마지막 프레임이라는 사실은 잠시 잊어버린다면, 개념적으로는 2차원의 평면 위에 가두어진 3차원의 대상을 잠시 해방시키는 행위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즉, 원래 살아있었던 대상의 한 순간을 감금한 형태를 잠시 인공적으로 움직이는 작업이다. 왜 이러한 행위가 흥미로운지에 대해 논하려면 바쟁의 존재론을 조금 더 따라갈 필요가 있다.


아이폰 '라이브 포토' 기능, [출처: CNET]


바쟁은 사진 기술의 발명이 조형 예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언급하며, 사진으로 인하여 서양 회화는 현실주의에서 자유로워지고, 독자적인 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사진 발명 이전까지의 회화는 가장 현실에 가깝게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공간위에 사람의 손을 통해 옮기려는 목적과 족쇄가 동시에 작용했는데, 소실점, 명암, 발색과 같은 기술 발명은 이러한 목적성 아래 개발되었다. 이러한 회화 기술의 발전은 화가의 손을 통해 대상이 화폭 위에서 영원의 안식을 얻기 위한 다분히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즉, 회화에는 순간의 방부와 영생의 모방이라는 두 가지 목적성이 모두 존재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사람의 손보다 더욱 진실되게 대상을 시간의 흐름에서 낚아챌 수 있는 사진 기술이 발명되자, 과학이 주술을 대체하면서, 회화는 기존의 방향성을 상실하였다. 여기서, 북미의 유명 사변소설 작가인 닐 스티븐슨과 니콜 갈란드가 공동 집필한 『D.O.D.O.의 흥망성쇠 (The Rise and Fall of D.O.D.O.)라는 소설에서는 이 개념을 한층 더 끌고 나아가, 사진의 발명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마법(현대의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사라졌다는 매력적인 설정을 만들어냈다.


소설 내에서는 사진을 촬영한다는 행위 자체가 양자역학의 파동 함수의 붕괴(wave function collapse)를 일으키기 때문이라 설명하는데, 아주 거칠게 축약해보면 관측을 하는 순간 100%를 제외한 다른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의미로, 슈뢰딩거의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행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사진의 발명 이전에는 대상을 시간의 흐름에서 낚아채, 복사된 형태로 남겨놓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마법이라는 반-물리적인 개념도 가능성의 범위 안에 존재했다. 하지만 사진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대상에게도 1 또는 0 둘 중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기를 요구한다는 의미다. 존재할 수 있는 상태의 가능성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에서도 사진은 구속적인 기술로 표현된다.


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그릴 수 있는 그 어떠한 창작물보다 더 완전한 현실의 복제'의 발명, 그리고 그로 인한 기존 회화의 목적 상실은 화가들에게는 해방 선언과도 같았다. '현실에 가까워야 한다'는 제약이 없어지면서 대상을 화폭에 옮겨야 한다는 목적과 족쇄가 사라지고, 화가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화폭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회화가 주술적인 가치를 포기하는 순간, 미신(종교적 영생)이 존재하던 자리가 공석이 되고, 그 위치를 화가 자신의 자아가 차지하게 된다. 사진과 예술의 관계를 과학의 발전이 종교적 가치를 파괴하고, 그 잿더미가 헤게모니 변화의 장을 마련했다고 해석해본다면, 이는 예술 역사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부를 수 있다.


'움직이는 이미지'는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구속된 찰나를 해방하는 작업이며, 《해리 포터 시리즈》와 〈블레이드 러너〉의 움직이는 사진, 그리고 '리빙 이미지'와 '라이브 포토' 모두 감금된 대상에게 잠시나마 자유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행위에 가깝다. 나무 위에 올라가 내려오지 못하는 고양이, 하수구에 떨어진 강아지를 구하고 싶은 충동과 비슷하지 않을까.


같은 선상에서, 기술적인 면에서는 1초에 최소 24개의 사진을 고속 영사하면서 사진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영상 또한 해방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오히려 개념적으로는 움직임, 일련의 사진을 2차원에 가두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해본다면, 촬영 되기 전의 피사체의 움직임은 어떠한 형태로든 움직일 수 있지만, 영상에 담기는 순간 하나의 움직임만을 반복하게 된다. 이는 '라이브 포토'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적어도 개념적인 면에서는 '라이브 포토'는 우리가 '정지'라는 형태로만 인지했던 사진을 움직이게 만드는 기믹이다.  영화를 다시 본다고 해서 등장인물들이 다르게 행동하지는 않으니 존재론적으로는 갇힌 형태이며, 유한한 의미를 담고 있다.


만약 '영화'에 '라이브 포토'같은 개념을 적용하고 싶다면 필름에 기록된 움직임의 반복을 끊을 수 있어야 한다. 동명의 보드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미스터리 영화 〈클루〉(1985)는 영화 개봉 시 세 개의 다른 엔딩을 만든 후, 영화관에 따라 하나의 버전만을 보냈다. 즉, 만약 이 영화를 극장에서 한번 관람한 후, 엔딩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다른 영화관에 가서 관람했다면 그 경험이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또는 상극처럼 보이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홍상수 감독의 작품세계도 영화의 닫혀 있는 구조적 한계와 의미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접근하면 느슨한 연결점이 보이는 듯하다.


플럼 교수(크리스토퍼 로이드), 미스 스칼렛(레슬리 앤 워런), 이베트(콜린 캠프), 〈클루〉(1985) [출처: iMDB]


다시 바쟁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회화는 사진과 대비되어 영원을 창조한다고 했는데, 이는 사진의 발명 이전과 이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말이다. 물론, 사진 기술의 발명 이전의 예술가들이 현실적인 묘사라는 딜레마와 씨름해오기는 했지만, 결국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그 대상을 완전히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화가도, 피사체도 모두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예술의 목적은 대상 그 자체 형상의 복제가 아니라, 대상이 죽고 사라지면 대신 영원을 경험할 수 있는 오브제의 창조이고, 대상은 이 오브제로 인해 발생되는 타인의 기억에서 영원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사진과는 반대되는 해방적인 움직임이다.


달리 말하자면, 오래된 영상과 사진, 그리고 오래된 회화를 보았을 때, 오래된 영상과 사진은 풍화가 심하지 않다면 대상이 어떠한 형태였는지 정확한 (그렇기 때문에 유한하고, 상태 변동성이 부재하는) 정보를 제공하지만, 오래된 회화 작품은 그 대상을 본뜬, 심지어 초상화라면 그 초상화의 대상이 요구했거나, 화가가 대상에게 가진 감정이라는 필터를 거친 묘사만을 보여줌으로, 대상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게 만든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대상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다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회화의 대상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상상하는 형태대로, 무한하게 살아간다.


때문에 회화를 다루거나, 그에 영감을 받은 영화는 두 가지 목적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만약 회화를 사진 발명 이전, 피사체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로 이해한다면 '라이브 포토'처럼 그 피사체를 해방시키기 위한 작업이며, 회화를 무한한 가능성이 살아있는 탐구의 대상으로 이해한다면 그에 깃든 영원성을 빌려오기 위한 기획이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바론의 대모험〉(1988)에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그대로 재연되는데, 이는 전자의 목적성에 가깝게 보인다.


(左) 산드로 보티첼리 作, 〈비너스의 탄생〉(c. 1480), (右) 테리 길리엄 감독, 〈바론의 대모험〉 [출처: Wikimedia Commons, YouTube]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퍼시픽 림(2014)을 제작하기 전 프란시스코 고야의 제자가 그렸다고 추정되는 거인(El coloso)을 보고, 인지를 초월하는 거대한 물체가 움직이는 광경에 대한 경외감을 영상에 담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후자의 목적성에 가깝다 판단된다.


(左) 작자 미상, 〈거인〉(c. 1808-1812), (右)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퍼시픽 림〉 [출처: Wikimedia Commons, Film Grab]


그리고, 몹시 드물게, 어떤 영화들은 두 가지 목적성을 동시에 달성한다. 대상과 영감이 되는 미술 작품을 그 감금된 찰나에서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그곳에 깃든 영원성을 영상에 담아내는데 가까스로 성공한다. 굳이 '가까스로'라고 단서를 다는 이유는 이러한 야심 찬 기획이 목표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애초에 창작가들이 그러한 기획을 했는지도 물음표가 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화 작품이 가진 영원성을 잠시나마 영상에 잡아두는 데 성공한 작품들은 그 몇 개의 장면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다. 해당 작품들의 예시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결투자들〉(1977)과 어거스틴 디아즈 야네스 감독의 〈알라트리스테〉(2006)를 제시하고 싶다.


리들리 스콧, 일루셔니스트

(좌→우) 톰 후퍼, 대니 보일, 쿠엔틴 타란티노, 리들리 스콧, 스티븐 갤러웨이 (사회자),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데이비드 O. 러셀 [출처: YouTube]


미국의 연예잡지 『할리우드 리포터 (THR)』에서는 매년 그 해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감독과 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아 프레스 정킷에서는 들을 수 없는 깊은 사유가 담긴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한다. 2015년 라운드테이블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톰 후퍼,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리들리 스콧, 대니 보일, 데이비드 O. 러셀이 초대되었다.


이 자리에서 스콧 감독은 마션(2015) 촬영 중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는지 질문을 받았는데, 각본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으쓱해 보인다. 그러자 보일 감독이 끼어들어 선샤인(2007) 촬영 후,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다고 토로한다. 보일 감독은 작업을 마치고 다른 감독들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는데,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은 감독은 다시는 우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말하며, 그런데 스콧 감독은 아무렇지도 않게 에일리언(1979) 이후 마션으로 우주로 돌아가고, 그 경험이 힘들지 않았다는 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농을 친다.


 스콧 감독은 우주 촬영의 특수함을 이야기하면서, 큐브릭 감독과의 인연을 밝힌다. 스콧 감독이 세 번째 작품인 블레이드 러너(1982)의 촬영을 끝내고, 후반 작업을 마무리할 때 스튜디오인 워너 브라더스는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데커드가 종이접기 유니콘을 집어 드는 장면으로 영화를 끝내면 안 된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스콧 감독은 전작 에일리언 개봉 후 갑자기 큐브릭 감독에게 체스트버스터 신을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해하는 전화를 받았는데, 그 이후 지속적인 교류가 있었는지, 큐브릭 감독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큐브릭 감독은 다음날 가장 최근에 개봉했던 샤이닝(1980)의 오프닝 장면인 헬리콥터로 촬영한 콜로라도의 전경을 담은 17시간 분량의 필름을 스콧 감독에게 보내주면서 사용을 허가했고, 해당 장면은 블레이드 러너의 엔딩으로 사용이 되었다. 이는 영화계 외적으로는 처음으로 밝혀진 일화로 그 라운드테이블에 있던 자타공인 걸어 다니는 영화 사전인 타란티노 감독도 놀라워했다.


(左) 〈샤이닝〉(1980), (右) 〈블레이드 러너〉(1982) [출처: YouTube]


이 일화는 거의 무협지의 기연, 또는 선대의 의지를 잇는 후기지수의 성장기처럼 읽힌다. 두 번째 작품에서 대선배이자 살아있는 영화계 전설이 촬영 방법을 궁금해하는 전화를 받고, 세 번째 작품에서는 아예 그의 촬영분 사용을 허가를 받아냈다는 경험은, 심지어 그 대상이 큐브릭인 경우는 스콧 감독 외에는 비슷한 일화를 입에 올리기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스콧 감독은 SF와 역사극의 팬들에게는 큐브릭 감독의 후계자와도 같은 감독이다. 굳이 둘의 개인적 인연을 차치하더라도 큐브릭 감독의 후계자라고 꼽은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느슨하게나마 큐브릭의 각 대표작과 연결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검투사를 다룬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1960)에 대응하는 스콧의 글래디에이터(2000), 큐브릭의 코스믹 호러이자 SF 스릴러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대응하는 스콧의 에일리언블레이드 러너, 큐브릭의 호러 시계태엽 오렌지(1971)에 대응하는 스콧의 한니발(2001), 큐브릭이 결국 만들지 못한 대하 사극 나폴레옹에 대응하는 스콧의 〈나폴레옹(제작 중) 등, 스콧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큐브릭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드러내거나, 그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거론하기도 한다.


스콧 감독의 데뷔작인 결투자들이 이미 큐브릭 감독의 배리 린든(1975)에 대한 헌정사와 같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둘의 인연은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런던의 왕립 예술 대학을 졸업한 스콧 감독은 BBC에서 다양한 촬영 현장 실무를 배우게 되고, 그의 동생인 토니 스콧과 함께 광고 감독으로 데뷔한다. 30대 후반, 그가 첫 번째 감독 데뷔작을 준비하였을 때 조지프 콘래드의 『결투(The Duel)』를 선택한 이유는 이 작품의 원작이 저작권이 만료되어 원작자에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과 더불어, 이미 제랄드 본-휴즈라는 작가에 의해 각본이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동성 있는 제작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보다 훨씬 작은 스케일인 광고 현장에서 시작했기 때문인지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작품 외적으로 제작의 현실적 상황에 대해 몹시 유연한 대처를 보여주는 비화를 많이 남긴다. 영화계에서 들려오는 스콧 감독의 소식을 듣다 보면 일단 어떻게든 제작을 마치고 개봉을 하는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단적인 예로 석유 재벌 게티 가문을 둘러싼 영화 올 더 머니(2017)에서 주연인 진 폴 게티를 맡은 케빈 스페이시가 성추행 파문에 휩싸이자, 스콧 감독은 이미 촬영이 끝났음에도 과감하게 주연인 케빈 스페이시의 분량을 모두 삭제하고, 88세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주연으로 대체해 노령의 배우와 함께 9일이라는 거짓말 같은 스케줄 안에 재촬영을 끝낸다. 스콧 감독은 크리스마스 시즌 개봉을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를 그렇게 제작할 수도 있는지 (그렇게 제작해도 되는지)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낸 스콧 감독을 현실 영화계의 마술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업적이다.


묘하게 정주영 회장을 ("해보기나 했어?") 떠올리게 만드는 스콧 감독의 추진력 넘치는 제작 스타일은 다만 그에게 '감독판'의 거장이라는 묘한 별명을 남기게 만드는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극장 개봉판과 추후 공개되는 감독판의 수준 차이가 심하게 나기 때문이다. 아마 그의 제작 성향 상, 어떻게든 시간에 맞춘 극장 개봉을 최선의 목표로 삼기 때문인지, 어느 정도 작품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후회가 많이 남는 모양이다. 물론 이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원작이 수작에 가깝다면 다양한 편집본이 존재하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각 편집본에 대한 작품 외적인 설화가 영화 관람 경험 자체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감독과 관객 양쪽에 '반복된 움직임'에 갇힌 영화 서사를 자유롭게 제공하고,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左) 존 콘스타블 作, 〈옥수수밭〉(1826), (右) 스탠리 큐브릭 감독, 〈배리 린든〉(1985) [출처: YouTube @ BFI]


〈결투자들〉은 미적으로는 바로크 회화를 적극적으로 응용한 큐브릭 감독의 배리 린든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서사적 배경은 큐브릭 감독이 만들고 싶어 했던 나폴레옹의 시대인 1800년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콘래드의 원작은 실제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복무했던 두 장교인 프랑수아 루이 푸르니에와 피에르 듀퐁의 일화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두 장교는 사소한 악연으로 시작하여 약 20년 사이 총 17번의 결투를 치르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 스콧 감독은 원작을 읽으면서 약 80페이지 안에 어이없는 인연을 계기로 20년 동안 만날 때마다 서로를 죽이려 들고,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악연의 계기를 잊었다는 이야기가 몹시 공감이 갔다고 말한다.


결투자들은 데뷔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원숙한 연출로 몹시 간단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큐브릭 감독에게 시작되어 스콧 감독에게 이어진 진전이 있다면, 장르에 관계없이 창조된 세계관에 설득력을 불어넣는 영상 미학이 아닐까 생각된다. 작품의 평에 기복이 있지만 스콧 감독의 작품군에는 세계관의 완성에 대한 고집이 존재하며, 독자적 미학의 관철을 통해 영화라는 환영에 핍진성을 더한다. 그를 일루셔니스트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캔버스에서 필름으로

시장의 조카(매튜 기네스), 가브리엘 페로(하비 카이텔), 〈결투자들〉 [출처: Bluray.com]


〈결투자들은 1800년, 나폴레옹의 제3, 제7 후사르 연대가 주둔 중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시작된다. 제7 후사르 연대 소속이자 뛰어난 검객인 가브리엘 페로(하비 카이텔)는 결투에서 시장의 조카를 거의 죽일 뻔하고, 이에 군대의 준장은 제3 후사르 연대 소속인 아르망 뒤베르(키스 카라딘)를 보내 영장 발부를 지시한다. 스트라스부르 사교계의 유명 인사인 마담 데 리옹의 저택에서 페로를 발견한 뒤베르는 예의 바르게 소식을 전하지만, 페로는 뒤베르가 마담 데 리옹의 면전에서 본인을 모욕했음을 이유로 결투를 신청한다. 뒷마당에서 벌어진 페로와 듀베르의 결투는 페로가 팔을 다치고 정신을 잃자 흥분해서 결투에 끼어든 페로의 부인 때문에 무승부로 끝나게 되고, 16년에 걸친 둘의 악연이 시작된다.


뒤베르와 페로의 결투는 두 장교가 속한 연대가 유럽 전역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복된다. 뒤베르는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점점 악화되어가는 관계에 부담감을 느끼지만, 결투가 벌어질 때마다 둘 중 한 명이 간신히 죽음을 피할 정도로 부상을 입어 계속 무승부로 끝나게 된다. 둘의 질긴 인연은 나폴레옹 군대의 진격과 함께 아우크스부르크, 뤼베크, 러시아 등 유럽 전역을 거쳐 다시 파리로 복귀해, 나폴레옹이 실권한 이후에도 계속되고, 어느새 그 원인은 잊힌 채 증오만이 서로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뒤베르는 16년간 페로라는 인물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본인의 죽음을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두고 살아간다.


고루하거나, 평범할 수도 있는 이 서사는 사극적 발성을 최대한 줄이고, 현대적으로 대사를 소화한 택한 두 주연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공감의 폭을 넓힌다. 단순히 뒤베르가 나쁜 소식의 전령이었다는 이유로 그를 괴롭히는 불리(bully) 페로, 젊은 시절에는 패기로 인해 페로와 검을 부딪혔지만 점점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결투를 앞두고 공포감에 사로잡힌 뒤베르의 모습은 현대극에 가까운 연기로 인해 시대와 배경을 넘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했을만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결투자들을 탁월한 시대극으로 승격시키는 영화적 특성은 바로크 회화에서 영향을 받은 프랭크 타이디 촬영감독의 프레임, 그리고 그를 가득 채우는 미장센으로, 이 작품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콧 감독이 인터뷰 중에 언급한 카라바조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카라바조 作, 〈자화상〉(c. 1621) [출처: Wikimedia Commons]


16세기 말 - 17세기 초에 활동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는 명암을 이용하여 입체적인 효과를 내는 회화 기법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의 대가로 여겨진다. 그는 기존 회화에서 자연법칙이나 배경 정도로만 여겨지던 빛과 그림자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 이를 회화의 분위기와 인물 대상의 감정을 지배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명암"의 재발견은 카라바조의 후대 미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 루벤스나 렘브란트와 같은 화가를 통해 바로크 미술의 시대를 열게 된다. 한편, 카라바조는 작품뿐만이 아니라 좋은 말로 하면 풍운아, 나쁜 말로 하면 불한당과 같은 개인사로도 유명한데, 30대라는 젊은 시절에 이미 유럽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았음에도 결투를 빙자한 폭행과 살인 때문에 지중해를 떠돌고, 결국은 객지에서 38세라는 나이로 요절한다.


〈결투자들에서 보이는 뚜렷한 명암으로 대비되는 촬영이 카라바조의 작품세계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가브리엘 페로의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성격은 화가의 개인사에서 기인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실제로 영화의 서사에 긴장감을 더하는 활력은 수동적으로 도망치는 뒤베르가 아니라, 그를 볼 때마다 이성을 잃는 페로가 보여주는 호승심이다.


하지만 〈결투자들에 숨어 있는 미술적 기원은 카라바조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결투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곤봉 결투 (Duelo a garrotazos)〉를 떠올리게 만든다. 푸른 하늘 가운데 입체감 있게 배치된 구름 아래, 목가적 초원 위,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은 뒷전으로 하고 서로를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결투자들의 모습은 꼭 닮아있다. 〈곤봉 결투〉는 두 결투자들의 다리가 수렁에 빠진듯한 형상을 보이는데, 그곳에서 빠져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에 대한 적의만을 불태우는 두 사내는 서로의 목을 졸라가며 함께 고통받는 페로와 뒤베르의 관계와 같다.


(左) 프란시스코 고야 作, 〈곤봉 결투〉(c. 1820-23), (右) 〈결투자들〉 [출처: Wikimedia Commons, YouTube]


영화의 두 주인공은 공개적으로는 악연의 이유를 '명예'에 관련된 다툼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결투가 끝난 후, 연인에게 도대체 '명예'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자, 뒤베르는 검상에 고통스러워하면서 "명예는 설명할 수 없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가치"라는 무의미한 대답을 한다. 영화의 마지막 결투에서는, 뒤베르와 페로가 나누는 대화 중 서로 생각하는 명예의 가치가 심각하게 다르거나, 더 나아가 뒤베르 본인은 명예에 대해 귀족 사회가 군인에게 요구하는 가치 이상을 두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곤봉 결투〉의 최근 연구 결과는 두 결투자의 다리가 진흙이 아니라 높은 풀에 의해 가려졌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영화를 연출하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약 참고를 했다면) 이해한 고야의 곤봉 결투〉는 진흙 수렁에 무릎까지 빠진 두 결투자들의 모습이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두 번째 결투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올라, 이 악연이 다가올 16년 동안 승부가 나지 않은 채 본인들의 삶을 지배하리라는 상상은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관객들은 도대체 왜 시작되었는지도 불분명하고, '명예'라는 정의하기 어려운 가치 때문에 벌어지는 이 결투가 마치 늪에 빠진 두 결투자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결투자들의 서사적 긴장감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페로를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예상의 범위 안에 두고 살아가는 뒤베르의 스트레스와,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자신을 결박하고 있는, 주술적 저주와도 같은 페로의 그림자에서 기어이 벗어나는 그의 몸부림에서 기인한다. 이는 영화 내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다양한 회화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화면들에서도 나타난다.


두 번째 결투 이후 연인에게 간호를 받으며 욕조에 누워있는 뒤베르의 모습은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1793)을 닮아있으며, 검상 또한 윗가슴이라는 비슷한 곳에 위치해 있다. 다비드의 회화 작품이 너무나도 유명해서일지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욕조에 뉘어진 뒤베르가 화면에 들어오는 순간, 관객은 불현듯 그의 죽음을 의심한다. 카메라는 아주 잠깐, 〈마라의 죽음〉이 겹쳐 보일 만큼 시체처럼 정지되어 있는 그의 몸 위에 머물고, 욕조에 약초를 넣는 그의 연인의 모습을 비춘다. 잠시 후 뒤베르가 욕조 내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 살아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회화 작품 속에 죽은 상태로 감금되어 있던 대상이 영상적 이미지를 통해 해방되는 순간이다.


(左) 자크-루이 다비드 作, 〈마라의 죽음〉(1793), (右) 〈결투자들〉 [출처: Wikimedia Commons, YouTube]


〈결투자들은 또한 정물화와 같은 프레임에서 줌아웃을 하면서 그 주위의 인물을 담는 렌즈의 움직임을 여러 번 보여주는데, 여기서 보여주는 대부분의 정물화는 반쯤 먹다 남겨진 빵이나 과일 조각들을 비춘다. 카라바조나 장-시메옹 샤르댕의 작품과도 같은 분위기에서 보이는 파손된 음식, 찢어진 빵조각은 사물의 비영구성, 시간의 흐름, 그리고 피하지 못할 죽음의 상징물처럼 보이며, 후반부에는 정물화처럼 남겨진 음식을 쥐가 뜯어먹는 장면을 통해 음식물을 시체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카메라는 죽음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움직이며 화면에 삶을 담는다.


(左) 장-시메옹 샤르댕 作, 〈정물화〉(1731), (右) 〈결투자들〉 [출처: Wikimedia Commons, Wordpress]


이렇게 죽음을 연상케 하는 회화적 프레임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생기를 불어넣는 연출은 이미지적으로 죽음과 삶에 대한 이미지를 교차적으로 전달하면서 서사적 주제에 활력을 더한다. 배우의 연기와 서사뿐만이 아니라, 카메라가 배우를 담지 않고 있을 때도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탈출하는 뒤베르의 삶이 은유되고 있다.


〈결투자들은, 마지막 결투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로 결론이 난 이후, 절벽 위에 올라 쓸쓸하게 강을 내려다보는 페로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페로가 쓴 모자부터, 그의 자세까지, 이 장면은 나폴레옹의 마지막을 다룬 다양한 회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유명한 예로 프란츠 요제프 산드만의 〈세인트헬레나의 나폴레옹〉(c. 1820)이 있다.


(左) 프란츠 요제프 산드만 作, 〈세인트헬레나의 나폴레옹〉(c. 1820), (右) 〈결투자들〉 [출처: Wikimedia Commons, Why So Blu]


영화 내 죽음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회화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어 긴장감을 고조시켜온 스콧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지금까지의 움직임을 반전시켜 연출한다. 평생을 세상과 투쟁해오던 페로는 마치 자신이 충성을 바쳐왔던 나폴레옹처럼, 절벽 위, 막다른 길에서 더 이상 갈 곳을 잃는다. 페로를 따라 움직이던 카메라는 그와 함께 멈추고,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는다. 페로는 회한이 담긴 듯한 한숨을 쉰다. 하지만 섬길 군주를 잃은 군인, 평생의 라이벌에게 추방당한 결투자에게 이 한숨은 마지막 숨결이자,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


유러피안 블록버스터

〈알라트리스테〉 [출처: Tumblr @ Lobby Cards]


제작 당시만 해도 스페인 영화 사상 가장 대규모 자본인 2,400만 유로라는 제작비가 투입된 〈알라트리스테〉가 촬영에 돌입했을 때 감독 어거스틴 디아즈 야네스는 그 규모에 대한 환상이나 자부심 같은 가치는 일찌감치 버린 상태였다.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해당 투자액이 스페인에서는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규모이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의 영화계,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딱히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특히 원작 소설인 스페인의 국민 작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알라트리스테〉가 스페인 제국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었던 17세기 유럽을 무대로, 20년에 가까운 시대(1623년부터 1643년)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과, 주인공인 알라트리스테 대위가 직업 군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설득력 있는 전쟁 장면을 찍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비슷한 시기에 촬영에 돌입해서 1년 먼저 개봉한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2005) 같은 경우, 〈알라트리스테〉의 4배~5배에 가까운 1억 3천만 달러가 투입되었다. 〈알라트리스테〉의 주연배우로 캐스팅된 비고 모텐슨의 차기작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걸작인 〈이스턴 프라미스〉(2007)는 현대극임에도 불구하고 〈알라트리스테〉의 2배에 가까운 5천만 달러라는 예산으로 제작되었다.


〈알라트리스테〉는 야네스 감독이 이러한 제약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며, 그만큼 몹시 독특한 대서사극으로 제작되었다. 감독은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에 활동한 화가로, 실제로 서사 내 두 번 정도 작품이 직접 언급되는 스페인의 국민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회화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본인의 영화 커리어 파트너와도 같은 파코 페메니아 촬영감독과 함께 바로크 시대의 유화가 화면에서 움직이는듯한 효과를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원작상 액션 히어로에 가까운 직업군인, 암살자를 주인공으로 함에도 제작비의 제한 때문에 비교적 정적이고 차분하며, 다소 파편화되어 불균형한 호흡을 보여주는 서사는, 유럽 영화사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고 감각적인 미술과 촬영 때문에 (만약 이러한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2시간 반이라는 긴 상영 시간을 잊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느릿한 액션, 움직이는 유화, 조각난 서사 등 모순어법(oxymoron)으로 가득 찬, 불완전하고 자기모순적인 대서사시 사극 영화라고 부르기에는 그 저변에 깔려 있는 뚜렷한 가치, 특히 감독과 작가가 보여주는 국가관이 몹시 매력적이다. 스페인은 한 때 전 세계를 호령했던 제국에서 물러나, 어느새 유럽의 종주국이라고 부르기에도 어려운 큰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알라트리스테 대위가 활동한 시대는 스페인 대제국의 황혼기였다. 과연 현대의 스페인 국민은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벨라스케스와 〈시녀들〉, 영웅의 반대편

디에고 알라트리스테(비고 모텐슨), 〈알라트리스테〉 [출처: YouTube]


영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거칠게 요약했지만, 사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세계'가 무엇인지 이 짧은 글 안에서 정의하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의 대표 작품 〈시녀들(Las Meninas)〉은 미술사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소개되고는 하며, 현대에 와서도 미술사 전체의 흐름에 엮는 비평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바로 다음 시대의 화가인 프란시스코 고야의 대표 작품 중 2개가 〈시녀들〉의 직접적 영향 아래 있으며, 현대에 와서도 피카소는 1957년 한 해에만 58개나 되는 〈시녀들〉의 모방작을 그렸고, 살바도르 달리 또한 같은 해에 〈시녀들〉을 그리고 있는 벨라스케스의 모습을 독특하게 해석해 낸 작품을 공개했다.


〈시녀들〉이 〈알라트리스테〉의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고민하기 전에, 당연히 〈시녀들〉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앞서 말한 '벨라스케스의 작품세계'의 근간이 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몹시 조심스럽다. 때문에 작품에 대한 해석은 아마 더욱 저명한 학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김이 더 수월한 이해를 돕지 않을까 생각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作, 〈시녀들〉(1656) [출처: Museo del Prado]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에서 다음과 같이 상상을 한다. "벨라스케스는 카메라가 발명되기 훨씬 전에 실제 순간을 캔버스 위에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어쩌면 국왕과 왕비가 초상화의 모델이 되기 위해 가만히 앉아있는 지루한 시간을 해소해주려 어린 공주가 도착했고, 아마 왕, 또는 왕비는 벨라스케스에게 지나가듯이 화가의 붓에 어울리는 대상이 이곳에 있다고 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군주의 말은 항상 명령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가 이 걸작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오직 벨라스케스만이 충족시킬 수 있었던 가벼운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술을 어떠한 거대한 사회 변화의 틀에서 이해하는 방법론을 몹시 혐오했던 곰브리치다운,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한 서술이지만 한편으로는 〈시녀들〉이라는 작품이 가져다주는 독특한 서사적 영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여행 에세이, 미술비평 작가 마이클 제이콥스의 유작은 『모든 일이 일어난다: 그림으로 향하는 여행 (Everything is Happening: Journey into a Painting)』이라는 제목으로 〈시녀들〉 한 작품만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논픽션이며, 한국에서는 박민규 작가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판하며 표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시녀들〉에는 뭐라고 꼭 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미술에서는 고야, 피카소, 달리 같은 거장들에게도, 문학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창작을 하고 싶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달리 말하면 〈시녀들〉을 바라본 창작가들은 '라이브 포토'처럼 작품 전후의 서사를 상상함으로 그를 해방시키거나, 그를 모방하여 작품에 부여된 영원성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디아즈 야네스 감독, 〈알라트리스테〉 [출처: YouTube]


〈알라트리스테〉 또한 〈시녀들〉의 영향을 인정하고 있으며, 특히 해당 미술 작품에서 오히려 주인공인 공주보다 더 유명한 난쟁이 시녀, 마리아 바르볼라가 연상되는 인물을 한 장면에 등장시키거나, 주인공 알라트리스테가 직접 참전한 전투를 그린 〈브레다의 항복 (La rendición de Breda)〉 사건과 해당 작품이 모두 영화에 등장하는 등, 이에 대한 직접적, 간접적 묘사가 영화 내 보인다.


(左) 디에고 벨라스케스 作, 〈브레다의 항복〉(1634-36), (右) 〈알라트리스테〉 [출처: Wikimedia Commons, YouTube]


영화는 길다면 몹시 길다 할 수 있는 2시간 30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알라트리스테와 그의 양자 이니고 발보아의 20년 인생을 그려내지만, 실제로는 원작이 되는 소설의 5권에 가까운 분량을 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에피소드에 깊게 집중하지 못한다. 때문에 사건들은 파편적으로 느껴지며, 해당 시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거나, 주요 대사를 잠시라도 놓치면 서사를 따라가기 힘들다. 이를 감독의 의도라고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어차피 스페인의 베스트셀러 작품을 영상화했기에, 대부분의 관객이 해당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있으리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영화의 미장센, 촬영, 그리고 호흡을 전체적으로 묶어서 보았을 때 대단히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민망하지만, 굳이 이 경험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프라도 미술관을 거닐며, 벨라스케스가 그린 유화를 감상하는데, 각 작품을 5초-2분 정도 살아 움직이는 모양새, 문자 그대로의 동화(動畵)처럼 경험할 수 있다면 이 영화가 화면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 미술적 특징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술관의 모든 작품이 호그와트의 회랑에 전시된 마술적 유화들처럼, 더 나아가서는 영화 전체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해방시킨 '라이브 포토'로 이루어져 있다면 과장일까.


물론 벨라스케스라는 작가를 영화의 미술적 영감으로 삼은 이유는 당연히 해당 인물이 원작 소설에 등장하고, 배경으로 한 시대를 상징하며, 나아가서는 스페인 예술 전체의 거장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의 예술적 특징 또한 영화의 핵심 주제에 작용하고 있다. 영화 초반에 알라트리스테의 후원자인 과달메디나는 벨라스케스의 초기 작품을 지나가듯이 "얼굴만 잘 그린다고들 하는데 잠재력이 보여서 샀다"라고 평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벨라스케스가 미술사에 남긴 자타공인의 업적은 초상화가로서 해당 미술 장르에 제시한 신기원이다.


벨라스케스 이전의 화가는 왕족, 또는 귀족의 후원을 통해 작품 활동을 했으며,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이 중요한 이익 수단 중 하나였다. 사진 기술의 발명 이전, 귀족들은 자신의 형상이 자신의 죽음을 이겨내기를 기원했기에, 이때의 초상화는 순간의 감금과 영생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었다. 자신의 물주의 형상을 그리면서 그들의 추한 점을 그리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초상화는 미화를 목적으로, 화가 자신이 보는 대상이 아니라, 대상이 화가에게 원하는 형상의 창조가 목적이었다. 벨라스케스는 처음으로 대상을 대상 그대로 그린 초상화가로 평가되고 있고, 이는 곰브리치가 〈시녀들〉을 평가하며 사진기의 발명 운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라트리스테〉의 화면을 수놓는 아름다운 예술성 때문에 잊기 쉽지만, 영화를 집중해서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들을 포함하여 주요 등장인물들의 추하거나, 한심한 인간적 모습과 그에 기반한 결정들이 서사를 진행시키는 주요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장 알라트리스테만 해도, 알량한 물질적 자존심 때문에 평생의 사랑인 마리아 데 카스트로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함정을 파놓은 귀족들의 금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자신을 섬겨온 부관을 죽이기도 한다. 이니고 발보아는 아버지와도 같은 알라트리스테의 정치적 라이벌과 사랑에 빠졌다가, 그녀에게 실연당한 충격으로 도박 빚을 안고 알라트리스테의 부관인 세바스티안이 퇴직을 위해 모아 놓은 금으로 대신 지불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리아 데 카스트로(아리아드나 길), 디에고 알라트리스테(비고 모텐슨), 〈알라트리스테〉 [출처: YouTube]


인간의 미추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초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벨라스케스처럼, 시궁창과도 같은 주인공들의 인생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이 영화는 때문에 반영웅 서사에 가까우며, 그런 의미에서는 수정주의 대서사극(revisionist historical epic) 장르로 분류할 수도 있다. 또한 알라트리스테로 열연한 비고 모텐슨이 이 작품 바로 직전에 《반지의 제왕 3부작》(2001-2003)에서 인간을 대표하는 영웅인 아라고른 2세 역할로 유명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캐스팅 의도에도 인물 묘사의 반전을 위한 노림수가 존재했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알라트리스테〉에서 주인공의 친우로 등장하는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는 실제 역사 상 인물인데, 뛰어난 검객이자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은 동시대의 대문호인 세르반테스도 극찬하였을 정도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예술의 후원자 펠리페 4세가 왕위에 등극하자 케베도는 정치적으로, 문학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게 되지만, 점점 더 강력해지는 스페인 종교재판과 가톨릭 교회의 정치 간섭에 반발하며 스페인의 기득권에 대한 풍자시를 발표했다. 그가 영화에서 읊는 시는 한때 자신의 후원자였던 오수나 공작 돈 페드로 기론이 정적들에 의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죽자, 그를 기리기 위해 발표한 시였다.


「감옥에서 죽은 오수나 공작 돈 페드로 기론을 기리며」

그의 조국은 위대한 오수나 공작을 버렸을지라도,
그는 조국을 수호하기를 꺼리지 않았으며,
스페인이 그에게 죽음과 감옥을 선물했지만,
그는 행운의 여신을 조국에게 선물했네.
외국과 조국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질투하며 눈물을 흘렸네;
그의 무덤은 플랑드르의 격전지였고,
그의 묘비에는 붉은 달이 그려져 있네.

(후략)

[역주: 크리스토퍼 존슨이 영역한 시를 다시 한국어로 중역하였습니다.]


땅에서는 플랑드르 군대를 떨게 만들고, 바다에서는 오스만 제국군을 (붉은 달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상징이다) 격퇴한 기론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정치적 암투 같은 시시한 일 때문에 저버렸다는 사실은 케베도에게 있어 스페인 제국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예고와도 같았다. 물론 영화 내에서 이 시의 등장은 플랑드르에서 조국을 위해 5개월간 급여도 없이 싸워온 자신의 친우 알라트리스테와 그의 동료들을 기리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 영화 내에서는 아직 살아있는 친구를 위해 묘비문을 사용했다는 점을 보아도, 〈알라트리스테〉가 스페인 제국과 주인공의 죽음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렇게 망조가 들어가고 있는 스페인 제국의 황혼은, 〈알라트리스테〉의 마지막 장면, 스페인 제국이 쇠퇴를 전 유럽에 알린 로크루아 전투를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프랑스 군대와 대치한 스페인 보병대, 테르시오는 수적인 열세에 밀리게 되고, 결국 프랑스 군대의 총사령관인 앙강 공작에게서 항복 권유를 받는다. 물론 전투 자체는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지만, 스페인 병사들의 용기에 감동한 프랑스 지휘관은 스페인 군이 깃발까지 챙겨 평화롭게 로크루아를 이탈할 수 있도록 협상을 제시한다. 이에 알라트리스테는 몇 남지 않은 스페인 군을 대표해 대답한다.


이니고 발보아(유나 유가데), 디에고 알라트리스테(비고 모텐슨), 〈알라트리스테〉 [출처: YouTube]


"앙강 공작에게 그의 권유는 감사하지만, 우리는 스페인 연대라고 전해주시오."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300〉(2007)의 "This is Sparta!"처럼 연출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 전체의 분위기에 어울릴 정도로 몹시 담담하고 차분하게 전달된 이 대사가 어쩌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커다란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대제국이 몰락해가면서 한 때 영광을 누렸던 시민들은 귀족들이 앞장서 군인들과 평민들을 착취하는 행태에 실망하고, 본인들이 자랑스러워했던 영웅들과 가치들이 사라져 가는 광경을 목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이라는 정체성을 사랑하고 있다. 고집과 회한에 찬 죽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알라트리스테〉의 마지막 장면은 〈결투자들〉과 닮아있다.


〈알라트리스테〉가 〈300〉이나 〈킹덤 오브 헤븐〉처럼 연출되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제작비의 한계라는 외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이러한 한계는 오히려 몹시 대담한 예술적 시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원작에서 디에고 알라트리스테가 참가하는 대부분의 대전투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조각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관람객이 직접 맞추어 나가야 하고, 결국 진행의 호흡 또한 할리우드의 서사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대부분의 평론가와 관객들은 실패한 모험 영화라던가, 예술영화와 전쟁영화 사이에서 정체성을 잃었다는 평을 내렸다.


이는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반만 옳은 평이라 생각한다.


마침

아직도 야네스 감독이 벨라스케스의 회화 작품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듯한 연출을 통해 목표한 기획이 과연 표면적인 유미주의를 넘어선 지점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알라트리스테〉를 촬영하면서 미추를 모두 담는 벨라스케스의 작품과, 영웅들의 한심한 삶을 그려내는 레베르테의 원작에서 연결성을 찾아냈는지도 의문이다. 적어도 영화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하면서 찾은 인터뷰를 보면 오히려 야네스 감독도, 마치 데뷔작에서 예산 절약을 위해 원작을 선택했던 스콧 감독처럼, 할리우드와 다른 유럽 영화계의 현실적 한계에 대한 이해와 수용, 그 안에서 가능한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방법론, 또는 베스트셀러인 원작을 어떻게 영상화할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이는 〈결투자들〉에 관련한 스콧 감독의 인터뷰들도 비슷하다. 이들이 유명한 회화 작품들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대상이 되는 시대를 인지하고, 이미지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매개체가 이러한 회화 작품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들이 미술적 영감과 철학적 연결점에 대해 설마 의도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를 논하고 싶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에게 미술적 영감을 제공한 카라바조, 고야, 다비드,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드리우고 있는, 사진 기술의 발명 전에 회화가 목표했던 두 가지 목적성이 무엇인지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목적성 때문에 단순히 그 표면을 모방하는 행위만으로도 관객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두 가지 욕구가 깨어난다. 감금된 찰나가 움직이는 순간의 해방감, 영원으로 남겨진 시간에 들어가는 주술적 환희.


(끝)


참고자료

Bazin, A. (2005). The Ontology of the Photographic Image. In H. Gray (Ed. & Tr.), What Is Cinema? (Vol. 1, pp. 9–16).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Gombrich, E. (1950). The Story of Art. Phaidon Press.

Quevedo, F. (2009). Selected Poetry of Francisco de Quevedo. C. Johnson (Ed. Trans.). (A Bilingual Edition). The University fo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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