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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bert 이홍규 May 11. 2021

대서사극, 헤리티지 시네마

〈레오파드〉 × 〈고스포드 파크〉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리티지 산업

시칠리아 섬, 팔레르모의 거리 [출처: Wikimedia Commons]


굳이 파리나 로마, 런던과 같은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유럽의 여느 도시를 거닐다 보면 마치 박물관 관람과 같은 낭만 섞인 감상이 차오른다. 물론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면, 오래된 건축물을 부수지 않고 보수해 가면서 사용하는 정책이 얼마나 비경제적인지, 수압은 얼마나 한심하며, 온난방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귀가 따가울 정도의 푸념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불평불만 사이에서도 선대의 유산, 헤리티지에 대한 묘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여행자의 착각일까. 그래서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이들 국가들이 무척 오랜 세월 동안 유산의 보수 및 유지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의 과거 유산에 대한 보호주의 기조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최근, 현대에 자리 잡은 개념이다.


영국의 문화사학자인 패트릭 라이트는 2003년, 당시 국영방송인 BBC2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던 〈복원(Restoration)〉이라는 TV 시리즈를 『더 가디언』지의 지면을 빌어 비평하며 과거의 유산을 영리화하는 헤리티지 산업(heritage industry)의 역사를 명료하게 정리했다.


라이트는 당시 시민 신탁(Civic Trust)의 국장이었던 마이클 미들턴을 인용한다. '헤리티지'라는 개념이 유럽의 건축과 도시계획에 소개된 시기는 1972년, 유럽 평의회(Council of Europe, 유럽연합보다 훨씬 앞선 1949년에 만들어진 국제기구로, 점진적인 유럽 통합을 목표한 첫 초국가 의회)에서 곧 다가올 1975년을 '유럽 건축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하고 회원국에 해당 주제를 기념할 수 있는 행사 준비를 요청했다. 이에 영국의 시민 신탁은 지역과 건축에 대한 역사 기록관을 '헤리티지 센터'라는 이름으로 각지에 설립한다. 다만, '시민' 신탁 국장이었던 미들턴은 '헤리티지(유산)'라는 단어 자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는데, 시민 신탁의 본질 목표를 흐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헤리티지라는 개념은 아직 왕실이 건재한 영국에서는 국책 사업에 사용되는 순간 상당히 복잡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영국 관광국(British Tourist Authority)의 이사회 멤버이자, '유럽 건축 문화유산의 해'의 영국 이사회장이었던 레인 스펜서는 이 '헤리티지'라는 개념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다름 아닌 젊은 시절부터 〈브리저튼〉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류층의 사교계 명사로 데뷔하여, 결국 스펜서 백작과 결혼해 다트머스 백작부인이 되고, 그녀의 딸인 다이애나 스펜서를 '세기의 결혼'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레인 스펜서 백작부인이다. 그녀가 '헤리티지'라는 개념을 기쁘게 받아들인 이유는 딱히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 생각된다. 그녀가 헤리티지를 통해 큰 이득을 취해왔으며 전통의 연장이 본인이 가진 사회 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레인 스펜서는 이 문화유산의 해를 기념하기 아나키스트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콜린 워드가 설립한 '도시학 센터 의회 (Council for Urban Studies Centres)'를 헤리티지 국가 산업 산하 소속으로 이관하려 했다. 여기서 문제는 아나키스트라는 정치 포지션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콜린 워드가 '도시학 센터 의회'를 만든 이유는 레인 스펜서가 목표하던 문화유산의 보존과 상극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左) 레인 스펜서, (右) 콜린 워드 [출처: Architectural Digest, The Alternative UK]


1970년대 도시계획은 오래된 건물과 과거 유산을 고루한 가치, 청산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는데, 이러한 트렌드가 가져오는 사회 변화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콜린 워드는 도시학 센터 의회를 통해 의무 교육을 받는 청소년을 '도시길(town trail)'로 이끌면서, 보통 자연경관을 걷는 '숲길'이라는 의미의 '트레일'을 도시로 개념 이전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아이들은 "건축 유산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심하게 파괴된 채로 남아, 주위의 현대 지역사회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역"을 거닐면서 도시 계획과 주변 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배우게 된다. 다시 말하면, 도시의 불균형한 발전으로 인하여 일부 지역의 오래된 건물은 제대로 보수가 되지 못하면서 주변 환경을 슬럼화 시키는 악영향을 가져오고 있었는데, 콜린 워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환기를 시키면서, 균형 잡힌 사회의 발전을 요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헤리티지'라는 개념에 주목하여 전통과 유산의 고부가 가치화를 노린 귀족 레인 스펜서가,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도시계획에서 소외되어 폐허로 남은 지역의 유산을 계기로 탑다운 방식의 건축허가 제도를 폐지시키고, 지역사회에 자주권을 부여하자는 아나키스트 콜린 워드의 프로젝트를 전유(appropriation)하려 시도한 상황이다. 워드와 도시학 센터 의회는 레인 스펜서의 지침에 반발하면서, 레인 스펜서가 목표하는 유산의 보존, 과거에 대한 낭만 섞인 향수가 바로 그들이 '도시길' 프로그램을 통해 타파하려는 관점과 제도 자체라고 항의하였다. '유산'을 바라보는 영국의 귀족과 사회운동가의 관점이 충돌하는 지점에 선 워드는, 이 기획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위해 1985년, 패트릭 라이트의 저서인 『오래된 국가의 삶에 대해 (On Living in an Old Country)를 평론하면서 '문화유산 산업 (heritage industry)'이라는 개념을 고안해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화유산 산업에 대한 워드의 해석은 본질적으로 비판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문화유산 산업에 대한 콜린 워드의 정의를 거칠게라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문화유산 산업이란 계급사회의 상류층에 위치한 이들이, 계급제가 사라진 20세기 후반에 와서도 사회권력을 전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물질 형태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보수함으로, 과거에 대한 낭만 섞인 관점을 국가성과 결부시키는 작업이다.


이러한 관점을 이해하고 본다면, 유럽의 도시를 거닐며 낭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유산 산업은 단순히 도시계획과 건축에 대한 담론을 벗어나, 다른 산업을 비평하는데도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영화 비평계에서도 '헤리티지 시네마'라는 개념이 소개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헤리티지 시네마는 감독이나 작가가 표방하는 창작 장르가 아니라, 비평으로 활력을 얻는 장르라는 사실이다. 이 차이는 물론 앞에서 설명했듯 문화유산 산업 개념의 태생에 비판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헤리티지 시네마라고 분류되는 작품들이 노골적으로 문화유산과 기득권의 보호를 위한 또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제작된다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같은 다분히 낭만 섞인 욕구의 충족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문화유산 산업의 보존에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떠나서도, 20세기, 21세기에 와서 봉건주의 계급사회에 대한 미화된 향수가 대중문화와 예술작품에 함유되는 순간 일련의 사회-정치 담론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빅터 플레밍 감독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가 시대를 대표하는 스펙터클을 담은 영상 작품이라는 평에는 보통 이견이 없다. 하지만 원작이 되는 소설부터 남북전쟁 이후 패전한 남부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노예제도에 대한 향수와 함께 자유민 흑인을 성범죄자로 묘사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을 변해가는 시대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을 가진 귀족으로 그려내, 한 세기가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작품을 둘러싼 사회-정치 담론에 대한 장을 제공하고 있다.


2020년, 미국의 스트리밍 플랫폼인 HBO 맥스가 론칭하면서 모회사인 워너브라더스 산하의 터너 클래식 무비 채널(TCM)에서 소유하고 있는 옛 헐리우드 작품들의 카탈로그를 서비스 목록에 포함 시키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노예 12년〉(2013)의 각본을 집필한 존 리들리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에 게재된 칼럼을 통해 TCM 카탈로그 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흑인 노예제도를 수호했던 남부를 긍정적으로 향수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작품이라 평했고, 당시 미국을 휩쓸고 있던 조지 플로이드 살인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와 엮이면서 HBO 맥스는 몇 주간 해당 작품의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국가의 탄생〉(1915),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리고 나아가서 헤리티지 시네마라는 산업 전반은 오늘날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두 영화는 영화 기술의 발전에 있어 혁명에 가까운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에 와서 보아도 몹시 세련된 연출을 보여주고 있기에 개봉 당시의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쿠 클럭스 클랜(KKK)의 단장(Grand Wizard) 출신으로 현재까지도 미국에서 백인 우월주의 사상 전파의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데이비드 듀크는 1970년대, KKK 단원들 모집을 위해 〈국가의 탄생〉 상영회를 열었으며, 마거릿 미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원작 소설에서 KKK를 "필요악(tragic necessity)"이라고 묘사한다. 과연 이러한 차별 문제 요소가 존재하는 영화나 예술 작품들이 탁월한 작품성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엄청난 흥행을 하고 시대정신의 조류에 흘러들어 간다면, 우리는 이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左) 〈국가의 탄생〉(1915), (右)〈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출처: FILMGRAB]


이 지점에서, 플레밍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기득권 보호라거나, 남부와 노예제도를 추억하는 차별주의자라는 비판을 가한다면 그들은 단순히 돌아올 수 없는 과거를 향수할 뿐이며, 영화를 상징하는 스펙터클과 드라마에 이끌림에 과대해석을 하고 있다고 반발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인 스펜서와 콜린 워드의 대립에서 보이듯이, '헤리티지'와 같은 모호한 개념에 대한 호감은 완전히 반대되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헤리티지 시네마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전복시킨 창작가들은 이 개념이 고안된 영국이 아니라 미국,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등장하였다. 미국은 노예제도와 남북전쟁, 그리고 할리우드 초창기의 흑역사 때문에,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스트 정권의 만행 때문에, 1960년대와 70년대에 와서 이 두 국가의 예술인들은 과거의 역사, 헤리티지의 어두운 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이는 아직도 국민 대부분이 왕실의 존재를 지지하고, 귀족과 일반 시민이 나뉘어 입법을 논하는 영국과는 사뭇 다른 태도이며, 과거에 대한 자성, 또는 헤리티지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1963)와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고스포드 파크〉(2001)는 문화유산 산업에서 파생된 헤리티지 시네마(에 대한 비판)를 재해석한다. 이 두 감독은 과거를 향수하는 렌즈의 필터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시선 자체로 귀족성과 계급사회에 대한 복잡다단한 사유를 풀어낸다.


비스콘티, 마르크시스트 귀족 패러독스

루키노 비스콘티 [출처: Wikimedia Commons]


폴린 카엘은 1983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 완전판의 미국 재개봉을 평하며 "[이 작품]은 내가 아는 한 유일하게 귀족의 삶을 내부에서 묘사했다"라고 말했다. 로저 이버트는 같은 작품을 "유일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의 손에 집필되었고, 유일하게 연출할 수 있는 이를 통해 감독되었으며, 유일하게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를 통해 연기되었다"라고 평했다.


영화 〈레오파드〉의 원작이 되는 동명소설은 작가이자 마지막 람페두사 공작이었던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사후 일 년 후에 공개되었다. 작가와 가문의 고향인 시칠리아를 공간 무대로, 이탈리아 통일 운동(리소르지멘토, Risorgimento)을 시대 배경으로, 자신의 조부 돈 줄리오 파브리치오 토마시 디 람페두사에서 영감을 받은 공작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그러한 배경을 가진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시선으로 몰락해가는 귀족의 삶을 다루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비스콘티 감독은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가문인 비스콘티 가문 출신으로 1900년대 초반 사교계에서도 유명했지만, 모국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자 그에 대한 반발로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한다. 실제로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고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 추축 열강의 일국으로 참전했다는 역사를 상기해보면, 그의 정치 포지션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위태로웠는지 이해할 수 있지만, 비스콘티는 예술계의 풍운아였다. 국가의 기조에 반발한다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출신과는 반대되는 정치 노선을 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영화와 오페라 연출, 클래식 음악과 같은 귀족 취미를 버리지 않았다.


장 르누아르에게 영화를 사사해 데뷔작인 〈강박관념〉(1943), 차기작인 〈흔들리는 대지〉(1948), 그리고 알랭 들롱을 주연으로 한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에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지평을 연 비스콘티 감독이었지만, 오히려 〈센소〉(1954)에서 보여준 퇴폐적이면서도 탐미주의적인 연출에 와서야 그의 연출 역량이 만개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센소〉에서 주세페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공연 장면으로 서사를 시작하면서 테크니컬러 필름의 호화로운 팔레트를 활용하여 유미주의의 극치를 선보이기도 하였고, 이듬해에는 20세기 오페라 최고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를 주연으로 한 〈라 트라비아타〉의 무대 연출을 맡아 극찬을 받기도 한다.


루키노 비스콘티, 마리아 칼라스 [출처: Wikimedia Commons]


비스콘티는 커밍아웃한 양성애자로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 헬무트 베르거, 〈로미오와 줄리엣〉(1968)의 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와 공개적으로 연인 관계였다. 비스콘티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청소년 시절, 이탈리아의 마지막 왕이 될 움베르토 2세와 동성 연인 관계였다 고백한다. 가문의 혈통, 예술 감각과 능력, 인맥 및 취향의 고상함까지, 귀족 중 귀족이라 불릴 수 있을만한 창작가였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이렇게 뼛속까지 귀족인 그가 왜 마르크시스트라는 노선을 택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루키노 비스콘티 평전을 집필한 제프리 노웰 스미스는 1966년 비스콘티가 BBC 텔레비전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의 대답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비스콘티는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도피해 프랑스에 도착해 코코 샤넬의 소개로 장 르누아르의 영화 제작팀에 합류했다. 그는 대부분이 공산주의자로 이루어져 있었던 예술계 인사들과 교류하고, 본인의 귀족 배경에서 벗어나 젊은 혁명가들과 함께 대등한 협업을 하면서 "인민전선(Popular Front)의 들뜬 분위기에 젖어들었다"라고 술회한다.


다만 이는 젊은 시절에 경도되었던 계기이며, 그가 나이가 들어서도 마르크시즘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로는 부족하다. 스미스가 평전의 서문에서 1966년 비스콘티를 인터뷰하기 위하여 그의 자택을 방문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한 의자에 놓여있었던 이탈리아 공산당 발간 일간지인 『루니타(L'Unita)』가 놓여있는 광경을 언급하기도 했을 정도로 비스콘티는 나이가 들어서도 마르크시즘과 공산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스미스는 비스콘티가 겪었던 사상 변화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그에게 영향을 준 두 명의 사상가를 언급한다. 먼저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개념을 가져온 이탈리아의 작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창한 "지식적 비관주의, 의지적 낙관주의"로, 비스콘티의 전기 작품군을 망라하는 '네오리얼리즘' 시기에 적용 가능한 구호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앨프리드 마셜의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과 같이 번역될 수도 있는 본 구호는, 세계와 역사의 흐름이 현재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관하되, 개선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년의 낙천적이고 열정적인 구호는 그가 태생으로 접해왔던 유럽의 문화 유산에 대한 이끌림과 양립하기 힘들었고, 때문에 헝가리 출신의 사상가인 루카치 죄르지를 접하면서 역설적 개념의 합일이 가능해졌다. 루카치는 부르주아 가치에 대한 가장 유의미한 비판은 부르주아 태생의 작가들이 그들의 삶을 내부에서 묘사한 리얼리즘 작품으로 전개되어왔다는 비평론을 펼쳤다. 19세기 프랑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오노레 드 발자크,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귀스타브 플로베르, 비스콘티와 동시대의 인물인 독일 부르주아 출신인 토마스 만과 같은 인물들은 본인들의 출신과 성장 경험을 적극 도입해, 부르주아 사회의 내부 모순을 묘사했고, 이는 비스콘티가 〈레오파드〉, 〈루드비히 신들의 황혼〉(1972)과 같은 작품에서 시대의 진보에 대한 갈망과 '헤리티지'에 대해 느끼는 본능적인 매력이 위태롭지만 조화롭게 공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左) 로맹 롤랑, (中) 안토니오 그람시, (右) 루카치 죄르지 [출처: Wikimedia Commons]


물론, 이러한 현학적 해석과 달리, 파시즘에 반대하여 마르크시스트가 된 동기도, 절대권력의 탄압에 대한 반발, 또는 국가 전체가 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반대를 논할 수 있는 긍지와 자존감의 일환으로 본다면 지극히 귀족스러운 가치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귀족 마르크시즘, 마르크시스트 백작이라는, 표면적으로는 모순어법으로 보이는 비스콘티의 자아는, 귀족성의 가치를 '역사의 변화에 맞서는 자립성'으로 정의하고 있다면 성립이 가능하다. 이런 비스콘티 감독에게 있어서 영화 〈레오파드〉는 원작의 작가에게 있어서 해당 소설이 그랬듯이, 자전적인 작품일 수밖에 없다.


〈레오파드〉는 여러 개의 판본이 존재하는데, 비스콘티의 작업 편집본인 205분 버전으로 시작했지만, 깐느 영화제를 앞두고 영화가 너무 길다고 판단한 감독 본인의 판단으로 인해 195분으로 줄었다. 하지만 깐느에서 공개 이후, 극장 개봉을 앞두고 다시 한번 편집을 통해 185분까지 줄었고, 이 버전이 유럽에서 상영되었다. 하지만, 영화의 미국 배급사인 20세기 폭스는 이렇게 긴 영화를 이탈리아어와 영어 자막으로 상영할 경우 흥행에 실패하리라 예상해, 비스콘티와 협의를 걸치지 않고 161분으로 줄인 후, 영어로 더빙을 했다. 스미스에 따르면 20세기 폭스는 비스콘티에게 더빙에 대한 연출권을 주는 대신, 영화의 주연인 버트 랭카스터에게 후시 녹음 총괄을 맡겼다. 실제로 스미스는 오리지널 버전을 보지 않았다고 술회하는데, 1983년 온전한 185분 판본이 미국에 재개봉된 이후에도 비스콘티의 평전에 수록된 원문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이유에 대해서는 그가 첫 출간인 1967년, 그리고 개정판이 나온 1973년에 본 평전을 구상한 이후, 비스콘티 감독이 추가로 연출한 3개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추가해 2002년 신개정판을 내면서 과거의 개별 비평을 수정하면 평전 전체의 흐름이 바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서, DVD와 블루레이 홈비디오가 대중화되면서 〈레오파드〉의 185분 판본 또한 리마스터 과정을 겪었다. 가장 먼저 이 작품의 리마스터에 돌입한 레이블은 고전 영화 복원의 명가인 크라이테리온으로 이들은 영국 영화 협회(BFI)와 협업을 통해 2010년 블루레이 버전을 공개한다. 그런데 같은 해 깐느 영화제에서 소니 산하의 컬러웍스는 패션 하우스인 구찌, 필름 파운데이션, 그리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의 협업으로 새로운 리마스터 프린트를 공개했다. 만약 두 버전의 차이가 컬러 그레이딩 정도였다면 큰 논란이 없었겠지만 (실제로 크라이테리온 판본의 화면이 조금 더 화사한 편이다), 크라이테리온의 판본은 2.21:1, 그리고 컬러웍스의 판본은 2.55:1로, 화면에 포함된 정보 자체의 차이로 블루레이 커뮤니티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레오파드〉(1963), (左) 크라이테리온 리마스터, (右) 컬러웍스 리마스터 [출처: CriterionCast]


아름다운 화면으로 유명한 대부분의 영화는 화면비, 판본의 길이, 컬러 그레이딩을 두고 '완전한 영상'에 집착하는 팬덤을 양산하기는 하지만, AVS 포럼, 크라이테리온 포럼 등지에서 레오파드를 둘러싼 논란은 무척 과열된 양상을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발견하지도 못할 요소들을 둘러싼 시네필들의 토론을 보면서, 〈레오파드〉라는 영화를 읽어가기 위한 두 가지 단서를 찾았다. 하나는 이 영화에서 '감독이 바라본 시선'을 온전하게 화면으로 옮기는 작가주의 영화론과, 다른 하나는 화면이 간직하고 있는 미려한 역사 유산의 소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레오파드〉는 〈센소〉에서 선보인 그의 귀족적이고 화려한 취향을 화면상에 아낌없이 담고 있지만, 마르크시스트 백작 비스콘티만이 연출할 수 있는, 폴린 카엘이 말했듯이, "귀족의 입장에서" 사라져 가는 귀족성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 또한 담겨있는 작품이다. 작가와 감독 모두 몰락해가는 귀족성에 대해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에 기반한 관점을 견지할 수 있었기에, 〈레오파드〉는 시대를 넘어서, '문화유산 산업'이라는 어젠다가 생기기도 전에 그를 전복하는, 탈시대 공감을 이끌어내는 걸작으로 탄생하게 된다.


귀족성, 안에서 밖으로

돈 파브리치오(버트 랭카스터), 〈레오파드〉 [출처: FILMGRAB]


〈레오파드〉는 1860년, 시칠리아의 살리나 공작인 돈 파브리치오 코르베라(버트 랭카스터)가 양-시칠리아 왕국의 국왕인 프란체스코 2세의 군대와 주세페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의 전쟁이 가문의 저택에까지 도달했음을 깨달으며 시작된다.


돈 파브리치오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이상주의 귀족 관념이 한 몸에 응축된 아바타로 묘사된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가족과 함께 미사를 지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공작은, 전쟁에 대한 소식 때문에 가문 내 혼돈이 커지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겁도 없이 전쟁의 무대인 팔레르모로 향해 자신의 정부를 만난다. 가족의 의심을 살까 봐 함께 대동한 살리나 가문의 신부인 피로네(로몰로 발리)는 본인들이 팔레르모로 향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본인의 안위, 더욱 나아가 종교라는 시스템 전체는 귀족의 지원으로 생존해왔기 때문에 그는 감히 돈 파브리치오에게 항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복귀한 후 다음날, 피로네 신부는 공작에게 고해성사를 권유한다. 돈 파브리치오는 자신은 아직도 정력적인데 비해 정숙하고 고결한 부인 마리아 스텔라(리나 모렐리)는 육체애를 죄로 여기고 있다며 항변하고 고해하지 않는다. 돈 파브리치오에게 있어 종교는, 마치 주세페 가리발디가 전복하고 있는 봉건사회라는 시스템과 같이 변화하는 가치이며, 변화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공작이 가장 아끼는 인물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외종질 탄크레디 팔코네리(알랭 들롱)로, 탄크레디는 공작이 귀족에게 바라는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미의 가치와 야망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공작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공작이 탄크레디의 행적을 존중하는 이유는 그가 내리는 결정들이 어딘가 천박하더라도 이성적으로는 옳기에 동급으로 존중한다는 독특한 관점이 드러난다.


탄크레디 팔코네리(알랭 들롱), 〈레오파드〉 [출처: FILMGRAB]


탄크레디는 그의 아버지가 유산을 모두 탕진하고 타계한 후, 빈털터리 명문가의 후손으로 삼촌에게 몸을 의탁한다. 오히려 그러한 그의 상황 때문인지, 공작의 직계 자녀들과 비교해 탄크레디는 야심이 넘치는 젊은이로 묘사된다. 그는 귀족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왕정에 칼을 겨눈 가리발디 장군의 붉은 셔츠단에 입대하기로 결정한다. 공작은 탄크레디를 나무라면서도, 떠나는 그에게 두둑이 여비를 챙겨주며 끝까지 배웅한다. 공작에게는 친척인 탄크레디 개인을 위한 결정이었을 수 있지만, 그가 챙겨준 여비는 가리발디 장군의 군대에 투자되면서 추후 그의 가문이 전후에도 살아남는데 일조하게 된다.


탄크레디가 참전한 이탈리아의 통일전쟁은 국왕군과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의 전투를 거대한 프레임에 담아낸다. 처음 보았을 때 장관에 가까운 전투 장면은 곧 도시 각지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행태를 비추기 시작하는데, 국왕군이 붉은 셔츠단 포로를 세워놓고 순식간에 총살을 하거나, 이에 분개한 시민들이 귀족들에게 복수하는 과정들이 가감 없이 담긴다. 이 전쟁에는 영웅도 없고, 위대한 장군도 없으며, 훈련이 되지 않은 두 군대가 전략도 없이 갈팡질팡하면서 싸우고 있을 뿐이다.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 〈레오파드〉 [출처: FILMGRAB]


하지만 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를 한 탄크레디는 전쟁 영웅이 되어 공작 가문에 복귀한다. 재미있게도 마치 모험 영화의 시작과도 같았던 탄크레디의 독립 장면과는 다르게, 그가 무사히 가족과 재회하는 장면은 바로 보이지 않는다. 공작은 탄크레디가 종군했던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의 승리가 귀족들, 자신의 가문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탄크레디와 가족들과 함께 돈나푸가타로 이주한다. 전쟁 장면 직후 돈나푸가타로 이주하던 중, 붉은 셔츠 군인들이 가문의 마차 길을 막자, 탄크레디는 말을 타고 달려와 자신이 팔레르모에서 함께 싸웠던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고압적으로 주지 시키며, 강제로 길을 연다.


이동 중간에 한 들판에서 가족들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던 공작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지역의 유지에게 탄크레디의 복귀 때 있었던 사건을 말해준다. 눈에 부상을 입고 명예 진급한 탄크레디는 가리발디의 군대에서 만난 동료 중 공작의 저택에 있는 천장화에 관심을 보인 장군과 함께 금의환향한다. 이 회상 장면은 영화의 초반, 젊은 병사의 시체를 바라보던 카메라처럼, 공작의 1인칭 시점으로 연출이 된다. 직전까지 공작의 가족들, 탄크레디의 종군, 팔레르모의 전투, 가문의 대이주 등 시칠리아 전역을 품던 서사가 한순간에 공작의 시점으로 압축이 된다. 이 장면부터 관객은 남은 서사를 (대부분) 공작의 관점에서 경험하게 된다.


탄크레디는 여정길에 공작의 딸인 콘체타(루칠라 모를라키)에게 남녀 간 애정인지, 아니면 사촌 간 친근함인지 구분이 어려운 관심을 보이지만, 공작 가문이 돈나푸가타에 도착해 시장 돈 칼로제로(파올로 스토파)의 딸인 아름다운 안젤리카(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만나게 되면서 그녀와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1960년대 유럽을 풍미한 섹스 심벌 카르디날레가 연기한 안젤리카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치명적이고 고혹스런 매력을 보여주면서도, 물질적이고 야망에 찬 탄크레디가 상징하는 새로운 시대의 남성에 비견되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육체미를 사회 지위 상승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는 여성을 그려낸다.


안질레카(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레오파드〉 [출처: FILMGRAB]


공작은 안젤리카와의 결혼을 중매해 달라는 탄크레디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신의 딸과 아내의 마음이 무너지는 모습을 매정하게 무시하고 안젤리카의 부친인 돈 칼로제로를 불러 결혼을 성사시킨다. 돈나푸가타 이주 직전부터 공작의 1인칭 시점으로 옮겨간 연출의 변화는 이 직후에 일어나는 탄크레디와 안젤리카의 결혼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 있어 공작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타인의 존중을 이끌어내는지, 가족을 아끼지만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자존심을 굽힐 때도 알며, 와중에 어떻게 실리를 취하는지, 다시 말하면 이상적인 귀족의 태도를 관객에게 전유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본 작품을 감독할 수 있었던 최적의, 아니 어쩌면 유일한 창작가인 비스콘티의 섬세한 연출이 빛을 발한다. 새로 들어선 정부의 특사가 공작을 방문하여 의원직에 출마하기를 권유하자, 그는 영화 내 깊숙이 품어왔던 자신만의 귀족관을 담담하게, 곧 열정에 가득차 토로한다. 공작은 시칠리아와 시칠리아 인들은 고집스럽고 게으르기 때문에 빠르게 다가오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이 섬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본인은 다가올 이탈리아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대답하며 그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특사가 공작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출마를 종용하자, 감정이 고조된 그는 자신의 유언과도 같은 고백을 꺼낸다. 이 땅을 지배하고 있던 사자와 표범들은 곧 다가올 자칼과 하이에나들에게 먹힐 운명이며, 그에 대한 회한과 그래야 마땅하다는 이해가 동시에 담겨있다. 만약 다른 감독, 다른 배우였다면 조야하거나 고루하게 연출이 되었을 이 웅변은 20세기의 마르크시스트 귀족인 비스콘티 감독의 자전적이고 진솔한 고백이자, 20대 초반부터 고전 할리우드를 대표해왔던 슈퍼스타이면서도, 가장 진보적인 행보를 보였던 배우였던 버트 랭카스터가 오욕에 가득 찬 영화사를 떠나보내는 헌정사로 거듭난다.


그래서 폴린 카엘의 말처럼 이 영화는 귀족의 삶을 안에서 밖을 향해 바라본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서 묘사한 영화가 아닐까. 단순히 카메라를 저택의 방 한가운데에 두고 방을 채운 귀족들의 모습을 담는 수동적인 묘사가 아니라, 귀족이 보일 수 있는 고아하고도 세속적인 가치를 함께 보여주는 돈 파브리치오의 시점에서 변해가는 세상을 담는다.


본 작품보다 1년 앞서 개봉된 존 포드 감독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에서도 무법적이고 육체적인 오랜 서부의 가치가 법과 명문화된 질서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이 묘사된다. 존 웨인과 버트 랭카스터라는 두 배우가 정치관에서는 가장 상극에 위치했고, 서부극의 대가였던 존 포드 감독과 네오리얼리즘과 바로크 시네마의 대가였던 루키노 비스콘티라는 두 감독도 연출 특징이 완전히 상반되는데, 같은 시기에 본인들의 젊은 시절을 상징하는 이미지에 대한 작별을 고하는 영화에 출연하고 연출했다는 사실은 시대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된다. 1960년대 초반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이 가져온 축제 분위기가 가라앉고, 인권과 여성 참정권 등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시민'이라는 의식과 권리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급 또는, 헤리티지에 의해 후대로 내려오는 권력은 과거의 전통,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 [출처: Wikimedia Commons]


〈레오파드〉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모두 과거를 돌아가야 할 방향으로 보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는 당연하며, 순응하지 못하는 종이 죽어가는 과정은 자연의 섭리이다. 돈 파브리치오는 작품 내내 변화하는 시대에 자신과 가문의 생존을 위한 실리 결정과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귀족 자존감 사이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그를 몹시 피로케 한다. 그는 자신의 자존감이 허용하는 내 최대한 순응하겠지만, 언젠가 축적된 피로감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리라. 새로운 시대는 탄크레디와 같은 젊고 야망이 넘치는 기회주의자들에게 열려있다. 그리고 그럼이 마땅하다. 표범이 죽어 마땅한 이 새로운 시대, 자칼과 하이에나를 위한 야생이 비스콘티 감독이 돈 파브리치오의 눈에서 바라보는 세계이다.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의 〈레오파드〉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화자의 눈으로 천천히 풍화되어가는 과거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으며, 시선에는 묘하게 후회가 결여되어 있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극도로 화려한 무도장을 가득 메우고 시종일관 땀을 닦는 귀족들, 그리고 사이를 걸어 다니는 지극히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노화가 진행되는 돈 파브리치오의 얼굴. 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옛날의 귀족 문화는 대단히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사라져야 마땅한 세계이다. 비스콘티 감독은 아름답고 화려한 축제를 호사스러운 테크니라마 필름에 담아내는 와중, 헤리티지에 대한 돈 파브리치오의 냉소적인 시선을 함께 잡아내는데, 여기서 오는 위화감은 반복되는 왈츠와 단체 무용 사이에서도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돈 파브리치오는 젊은 귀족 여성들이 거대한 응접실에 모여 파티를 만끽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다른 동료 귀족에게 어쩌면 몇 세기를 이어온 귀족 간 근친결혼이 그들의 외모와 지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듯하다며 우스갯소리를 펼친다. 귀족 영애들의 환희에 찬 비명소리와 교차되어 이야기되는 이 대사는 그가 느끼는 파티장 내 지엽적 상황에 대한 피로감과, 파티장 바깥, 젊고 똑똑하고 야심 넘치는 인물들에 의해 밀려나는 귀족들의 상황 전체를 익살맞게 요약하고 있다. 하지만, 탄크레디가 친척이자 돈 파브리치오의 딸인 콘체타가 아니라, 야심 넘치는 평민인 돈 칼로제로의 딸, 안젤리카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 농담 또한 너스레로만 받아들이기는 함의하는 바가 크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레오파드〉 [출처: FILMGRAB]


약혼자 탄크레디와 함께 춤을 추면서 시칠리아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안젤리카는 돈 파브리치오에게 다음 춤을 함께 춰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단순히 약혼자의 대부에 가까운 친척에 대한 예의뿐만이 아니라, 시칠리아의 유력 귀족이 평민 출신의 안젤리카를 사교계에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된다. 입술을 핥으면서 춤을 신청하고, 탄크레디가 불편해할 정도로 돈 파브리치오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안젤리카의 모습에서는, 첫 저녁 식사에서는 모두를 놀라게 만든 천박한 웃음소리 때문에 단순히 교양이 없는 평민 여성으로만 여겨졌던 그녀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 매력을 자각하고 있고, 신분의 상승을 위해서 매력을 휘두르는데 두려움이 없다. 진정으로 탄크레디와 어울리는, 아니, 탄크레디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여성이다.


탄크레디에 대한 예의상 춤을 거절했던 돈 파브리치오는 못 이기는 척 그녀와 함께 무도회장으로 나서고, 왈츠가 시작되면서 영화 내내 잊고 있었던 젊음의 기력을 되찾는다. 무도회장의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로 모이고, 돈 파브리치오에 대한 존경심 때문일까, 안젤리카의 아름다움에 대한 놀라움 때문일까, 무도회장 전체가 단 둘의 왈츠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한다. 이 순간만큼은, 영화 내내 돈 파브리치오의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던 시점이, 귀족 사회의 외부 시선에서 돈 파브리치오에게로 향한다.


완벽하다고 부를 수 있는 왈츠를 추고 난 이후 무도회장을 채우는 감탄사와 함께 그녀의 손을 탄크레디에게 넘긴 돈 파브리치오는 흡족하게 물러선다. 이후, 영화 내 어떠한 순간보다 노약한 모습으로 정처 없이 무도회장을 배회한다. 때문에 둘의 왈츠는 마치 안젤리카가 돈 파브리치오의 기력을 흡수하는, 뱀파이어의 흡혈과 같은 인상을 풍기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세대의 교체, 사회 권력의 이양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돈 파브리치오(버트 랭카스터), 〈레오파드〉 [출처: FILMGRAB]


하지만 비스콘티 감독이 서사 내 돈 파브리치오의 시선을 통해 본 자신의 운명, 헤리티지와 전통의 몰락에 대한 담담한 태도와, 본인의 입으로 기회주의자라고 부르는 탄크레디와 교양이 부족하다 판단한 안젤리카에 대한 애정 어린 배려는 등장인물들의 음흉함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돈 파브리치오의 딸을 유혹하다가 안젤리카가 등장하자마자 그녀에게 구애하는 탄크레디도, 약혼자를 옆에 두고 권력의 정점에 있는 그의 삼촌을 유혹하는 안젤리카도, 돈 파브리치오의 (비스콘티 감독의) 관점으로 보면 동물적 본능에 따른,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 파브리치오는 이들을 미워하지 않고, 돈 파브리치오의 눈으로 이들을 관찰해온 관객도 이들을 미워할 수 없다.


본능에 따른 행동의 결과로 바라본 이 일련의 과정은 곱씹어 볼수록 마치 자연의 섭리, 야생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으로 관객의 기억에 남는다. 한때 호리호리하고 늘씬한 몸매로 자연을 호령하던 표범, 레오파드는 어느새 노쇠해졌고,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지만, 마지막 순간, 전성기의 우아한 질주를 다시 한번 선보인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표범의 마지막 질주를 보며 매료되고, 두려워하며, 그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지만, 마지막 기력을 모두 소비한 표범은 홀로 걸어가 죽을 준비를 한다. 그의 시체는 자칼과 하이에나들의 먹이가 되리라.


그러나 꺼질 불꽃이라 해서 아름답게 타지 않을 이유는 없다. 비스콘티 감독의 패러독스와 같은 자아. 마르크시스트 귀족은 돈 파브리치오가 과거를 향유하고, 미래를 받아들이는 모습과 꼭 닮아있다.


올트먼, 매버릭

로버트 올트먼 감독 [출처: Wikimedia Commons]


로버트 올트먼 감독은 오랜 기간 동안 할리우드에서 '매버릭(maverick)'이라는 별명으로 불려 왔다. 한국어로는 독불장군 정도로 번역이 되는 '매버릭'은 19세기 텍사스 출신의 목장 주인 새뮤얼 매버릭의 이름에서 유래한 단어로, 그는 독특하게도 자신의 소들에게 고통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낙인을 찍지 않았다. 때문에 주변의 목장 주인들은 자신의 소 무리에 섞여 들어온 낙인이 찍히지 않은 소들을 매버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버릭"은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이들을 부르는 단어가 되었는데, 영화계에서는 〈탑건〉(1986)의 주인공, 톰 크루즈가 연기한 피트 미첼의 콜사인으로, 정치계에서는 2017년에 타계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이 별명으로 유명했다. 존 매케인은 자신의 신념에 어긋난다면 자신이 속한 정당인 공화당의 기조를 거스르는 발언 및 상원 투표권 행사를 했고, 심지어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2008년에는 자신의 지지자가 민주당 후보인 배럭 오바마가 "아랍인 (an Arab)"이라서 믿을 수 없다고 발언하자, 매케인 후보는 곧바로 반박하면서 주장은 거짓이며 오바마 후보는 "예의 바르고 가족애가 넘치는 인간 (a decent family man)"이라고 변호하던 순간도 있었다. 매케인이 했던 행동을 영화계로 옮겨본다면, 자신의 비전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제작자의 지시도, 관객의 호불호도 모두 거스를 수 있는 감독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올트먼 감독 본인은 그가 지금까지 작업했던 모든 영화가 비평, 흥행적 성공과는 관계없이, 모두 자신의 선택과 결정으로 제작되었다고 술회한다. 이와 함께 매케인의 일화를 상기해 본다면, 영화계에서 올트먼을 "매버릭"이라고 부를 때, 어떤 의미가 함유되어 있는지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아이러니한 면이 있지만 독불장군으로 유명한 올트먼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는 수많은 인물의 시점을 심도 깊게 조명하는 '군상극'이며, 그는 군상극이라는 서사 형태를 스크린 위에 가장 완벽하게 연출했던 창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쉬빌〉(1975), 〈숏컷〉(1993), 〈패션쇼〉(1994), 〈고스포드 파크〉(2001), 〈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 등의 작품에서 이러한 경향이 다분히 드러나는데, 다양한 시점에서 혼란스럽게 진행되는 다중 서사가 관객이 눈치채지도 못하는 순간에 어떠한 질서를 가지고, 마지막 순간 하나의 사건으로 뭉쳐진다.


(左) 〈내쉬빌〉(1975), (中) 〈숏컷〉(1993), (右) 〈패션쇼〉(1994) [출처: IMP Awards]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경우 〈부기 나이트〉(1997)의 대성공 이후 뉴 라인 시네마에게 받은 "연출 백지수표"를 로버트 올트먼 감독에 대한 헌정사에 가까운 가까운 〈매그놀리아〉(1999) 제작에 사용했고, 올트먼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의 예비 대리 감독으로 연출을 돕기도 했을 정도로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올트먼 감독과 『바비칸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스포드 파크〉에서 미국인 영화 제작자인 모리스 와이스먼 역할을 맡게 되는 밥 발라반이 그에게 다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일지 타진해왔고 그가 자신이 아가사 크리스티 스타일의 후던잇('whodunit': 'who has done it', 누가 살인사건을 저질렀는가의 줄임말)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밥 발라반은 자신이 알고 있던 작가인 줄리안 펠로우즈를 추천했다. 올트먼 감독은 줄리안 펠로우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는 몹시 탁월한 선택으로,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인 펠로우즈는 현재까지도 영국 의회 중 상원인 귀족원 소속이자 어린 시절 유명한 후던잇 작가인 클리포드 키친의 생가에서 자라기도 했다. 올트먼 감독은 줄리안 펠로우즈의 초고를 보고 가능성이 있다 판단했고, 영화 제작에 돌입하게 된다.


줄리안 펠로우즈 [출처: Wikimedia Commons]


[사족. 참고로 펠로우즈는 〈고스포드 파크〉의 성공 이후, 영화의 스핀오프 TV 시리즈를 기획하지만, 캐스팅과 같은 현실적인 한계 및 창작 자유도를 위해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완전히 새로운 시리즈를 제작하고, 이 TV 시리즈 〈다운튼 애비〉는 2010년 방영이 시작되어 영국에서 가히 사회 현상이라고 부를만한 인기를 끌게 된다.]


〈고스포드 파크〉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부터 기존 올트먼 감독의 군상극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지점이 크게 두 군데 있다.


첫 번째는 공간성으로 영화의 대부분이 한 장소에서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 수사물과 같은 밀실 살인극 미스터리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형태가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올트먼 감독의 특기인 다양한 장소에서 별개로 혼란스럽게 진행되던 서사의 줄기들이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는 구성이 빛을 발하기에는 어려운 제약이 될 수도 있었다.


두 번째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계급성인데, 〈고스포드 파크〉 이전 제작되었던 그의 영화들은 대부분 귀족적이나, 우아함, 화려함이라는 형용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작품에서는 육체, 정신적으로 보통의 인간 군상을 '벗겨낸다'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옷이 되었든, 아니면 부끄러운 속내를 감싸고 있는 허례허식이든. 이 작업을 올트먼 감독만큼 처절하고 정교하게 하는 창작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만약 그의 작품론을 하나의 차로 본다면, 군상극은 차체이며, '벗겨내기'는 엔진이다. 계급에 관한 담론이 〈고스포드 파크〉를 꿰뚫고 있음을 감안하면 벗겨내기를 통해 가장 보통의 인간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영화마다 독특한 사유에 도달해왔던 올트먼 감독이 귀족성을 벗겨내는 과정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귀족성, 관점 직조

〈고스포드 파크〉(2001), (左) 저택의 시종들 ("아래층"), (右) 저택의 귀족들 ("위층") [출처: RogerEbert.com, MoMA]


1932년 초겨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고스포드 파크 저택에서 윌리엄 맥코들 경(마이클 갬본)과 그의 아내 실비아 부인(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딸 이소벨(카밀라 러더포드)은 가족과 친지를 초대해 주말의 꿩 사냥 파티를 주최한다. 초대된 이들 중에는 실비아 부인의 고모인 트렌섬 부인(매기 스미스), 실비아 부인의 여동생인 루이사 부인(제랄딘 소머빌), 그의 남편 스톡브리지 공(찰스 댄스), 실비아 부인과 루이사의 막내 여동생 라비니아 부인(나타샤 와이트맨), 그의 남편 앤서니 메레디스(톰 홀랜더), 맥코들 경의 먼 친척인 프레디 네스빗(제임스 윌비), 그의 부인 메이블(클라우디 블레이클리)이 있다. 또한 맥코들 경의 먼 친척이자 초기 유성영화 시대를 풍미한 미국의 실존 유명 영화배우인 아이버 노벨로(제레미 노섬), 그의 친구로 영국 귀족 저택을 무대로 한 영화를 기획하고 있는 제작자 모리스 와이스먼(밥 발라반), 그들의 시종인 헨리 덴튼(라이언 필리피)이 도착한다.


한편 저택의 아래층에서는 저택의 시종들이 방문객들의 시종들을 맞이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고스포드 파크 저택의 아래층을 총지휘하는 인물들은 베테랑 집사인 제닝스(알란 베이츠), 시종장인 윌슨 부인(헬렌 미렌), 주방장인 크로프트 부인(에일린 앳킨스)으로,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수많은 시종들을 수족처럼 지시하며 다가올 식사, 사냥을 준비한다. 트렌섬 부인의 젊은 시종 메리(켈리 맥도널드)는 첫 번째 사냥 파티를 참가하면서 우왕좌왕하는데, 윌슨 부인이 룸메이트로 붙여준 저택의 하녀장 엘시(에밀리 왓슨)의 도움으로 큰 실수 없이 준비를 마치게 된다. 메리는 스톡브리지 공의 새 종자인 로버트 파크스(클라이브 오웬)와 함께 고스포드 파크 첫 방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일련의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엘시(에밀리 왓슨), 메리(켈리 맥도널드), 〈고스포드 파크〉 [출처: High-Def Watch]


귀족들의 유흥을 위한 주말로 수렴했어야 할 이 평화로운 작은 모임은, 귀족들 간 꼬여있는 관계 때문에 갈등상태가 심화된다. 꿩 사냥 이후 저녁식사 중에 자신의 남편인 맥코들을 놀리는 실비아의 모습에 발끈하고 나선 엘시가 자신과 맥코들 사이의 불륜 관계를 모든 귀족들 앞에서 밝혀버리면서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맥코들은 자신의 서재로 숨어 버린다. 저녁식사 이후 응접실에 모인 귀족들의 얼어있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아이버 노벨로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시작하고, 저택의 모든 시종들은 할리우드 스타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동안 꿈같은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곧 맥코들이 서재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저택은 다시 혼돈에 빠진다. 곧이어 저택을 방문한 경찰청 소속의 톰슨 경감(스티븐 프라이)은 살인사건의 해결을 위하여 저택에 모인 맥코들 경의 친척들과 저택의 시종들을 심문한다. 하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저택 아래 흐르는 불길한 조류를 느끼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톰슨 경감의 무계획적 수사가 진행되면서, 저택이 숨기고 있던 추악한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지난 이틀간 귀족 간의 대화를 통해, 관객은 맥코들에 대한 원한이 있는 용의자와, 범행이 벌어진 시간 중 알리바이가 없는 인물 세 명 정도를 추려낼 수 있다.


먼저 앤서니 메레디스는 맥코들의 도움으로 아프리카 지역에 사업을 벌이려 하지만, 맥코들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투자를 철퇴하기로 하면서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이다. 앤서니는 맥코들이 살해당한 시간대에 손님들이 모여있던 응접실에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심지어 꿩 사냥 도중 맥코들이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귀를 긁혔는데, 스톡브리지는 살인사건 이후, 막내 동서인 앤서니에게 직접 그가 맥코들 방향으로 총을 쏘는 광경을 봤다고 면박을 준다. 다만, 스톡브리지는 앤서니가 키가 무척 작기 때문에 실수일 수 있다면서 그를 놀린다.


스톡브리지에게 놀림당한 앤서니는 다른 귀족들이 저녁을 먹는 동안 사라진다. 아래층에서 부엌과 저택 양쪽을 오가는 유능한 시종 도로시(소피 톰슨)는 부엌에 들어왔다가 혼자서 잼을 떠먹는 앤서니를 발견한다. 도로시는 상냥하게 라즈베리 잼을 먹고 있는 앤서니에게 딸기 잼을 권하고, 그녀의 호의에 감사를 표한 앤서니는 왜 맥코들 같은 이들은 항상 성공하고, 자신 같은 이들은 항상 실패만 하는지 푸념을 한다. 집사장인 제닝스를 마음속으로 연모하고 있던 도로시는 자신만의 추리로 제닝스가 살인범이라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는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의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듯이 사랑만 있으면 성공이든 실패든 크게 상관없지 않으냐고 대답한다. 우문현답을 들은 앤서니는 부인 라비니아에게 돌아가 키스를 한다. 관객들은 그가 살인사건 당시에도 혼자 부엌에 내려와 잼을 먹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심적 알리바이를 굳힌다.


한편 프레디 네스빗은 돈만 보고 평민 출신인 메이블과 결혼했지만, 메이블의 집안이 자신의 예상보다 재산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그녀를 구박하는 인간말종이다. 프레디의 악행은 단순히 가정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그는 과거에 맥코들의 딸인 이소벨과 불륜 관계였고, 그로 인해 이소벨이 낙태를 했다는 비밀을 가지고 맥코들에게 협박을 하려 한다. 프레디 또한 맥코들이 살해당한 시간대에 응접실을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프레디의 알리바이는 이튿날 암시되는데, 이소벨은 자신의 방에 놓인 협박편지를 발견하고, 저택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엘시에게 고민상담을 한다. 관객은 이로 인해 전날 밤, 프레디는 이소벨에게 돈을 갈취하기 위한 협박편지를 그녀의 방에 가져다 놓기 위해 응접실에서 사라졌다는 알리바이를 깨닫는다.


맥코들 살인사건 직후 귀족들과 시종들, 〈고스포드 파크〉 [출처: High-Def Watch]


마지막으로 스톡브리지의 종자인 파크스도 메리와 함께 다니다가, 아이버 노벨로가 응접실에서 피아노 연주와 노래를 하는 광경에 저택의 모든 시종들이 정신이 팔린 사이 사라진다.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은 메리뿐으로, 그녀는 맥코들이 살해당하자, 저택에서 유일하게 파크스를 의심한다. 하지만 톰슨 경감은 저택 아래의 시종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위 층에 숙박하고 있는 귀족들의 동기에만 집중한다.


인물 설명만으로도 (심지어 몇몇 인물들은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이 영화의 분위기는 충분히 설명이 된다. 이 거대한 저택은 귀족들이 속한 위층, 그리고 시종들이 속한 아래층으로 나뉘어, 두 개의 분리된 사회를 담고 있는데, 두 사회 간 소통과 작용, 층을 넘어가는 다양한 순간들이 영화의 서사를 진행시키게 된다. 올트먼 감독의 군상극은, 적어도 본 작품 이전에는, 초반의 다양한 관점이 분리된 공간에서 일어나 개별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완전히 분리되어 보이는 인물들의 서사가 산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인지에 명료하게 담지 못하는, 계산된 혼란감을 조성한다.


반대로 닫힌 공간에서 진행되는 〈고스포드 파크〉의 경우, 올트먼 감독은 한 화면 안에 분리된 서사를 산발적으로 진행시킨다. 초반 혼란스럽고 무성의해 보이는 인물 소개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 느끼는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 같은 기분도 의도적으로 조성된 효과이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인물 관계를 끼워 맞추며 자신만의 추리극을 시작하게 된다.


영화에서 중요한 분량을 차지하는 귀족들의 식사 이후, 응접실에서 진행되는 애프터 파티는 한 화면 내에서 여러 가지 서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좋은 예로, 실비아 부인의 부탁으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 아이버 노벨로, 문 밖에서 숨어 노래를 듣는 시종들, 멀리서 브리지 카드 게임을 하며 타인을 욕하는 트렌섬 부인, 귀족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평민 출신의 메이블 네스빗 부인, 미국의 제작사와 국제 통화를 하면서 저택의 상황을 설명하는 모리스 와이스먼의 이야기가 동시다발로 진행된다. 카메라는 여러 인물들 사이를 숨 가쁘게 움직이지만, 클로즈업은 거의 없다. 때문에 다양한 인물들이 비치지만, 대부분의 씬에서는 여러 명 이상의 인물이 동시에 각자의 서사를 풀어나간다. 눈을 깜빡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는 이 연출은 올트먼 감독의 의도된 결과물이다.


아이버 노벨로(제레미 노섬)의 음악을 듣는 메이블(클라우디 블레이클리)와 부엌의 요리사들, 〈고스포드 파크〉 [출처: High-Def Watch]


올트먼 감독은 〈고스포드 파크〉를 촬영하면서 모든 배우들에게 모든 순간, 심지어 본인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고 있는 기분이 들어도, 인물 연기의 지속을 요구했다. 즉, 카메라 내 인물의 위치와 관계없이 인물의 서사가 진행된다. 그리고 6~7분 동안 이어지는 똑같은 장면을 다시 촬영한다. 배우들이 보기에는 카메라도 같은 동선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사실 올트먼 감독은 여러 번의 재촬영을 하면서 각자 다른 인물 세트를 담았다. 그는 이 작업 방법을 "항상 무대에 있는 듯한" 효과라고 말하는데, 이는 작품에 연극스런 감상을 더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보통 영화의 경우 카메라 외부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출의 공간은 카메라가 잡고 있는, 렌즈 안의 세계로 한정된다. 연극의 경우 무대 위 모든 부분이 상영 시간 내 연출의 공간이 된다. 〈고스포드 파크〉는 카메라가 배우를 잡고 있지 않을 때도 연기가 계속된다는 점에서, 바로 연극의 면모를 띄게 된다. 카메라가 계속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관객은 쉴 새 없이 화면 내 여러 명의 인물들 사이에서 시선을 움직이며,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개의 서사 중에 본인이 선택한 가지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관람 경험이 작품 내 연극 분위기를 드리우고 있지 않을까. 이러한 뒷 이야기를 모르고 있더라도, 영화가 중간까지 진행되었을 때, 관객은 저택 전체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카메라가 위층을 비추고 있더라도 아래층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리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저택 전체가 연극 무대가 되었다.


올트먼 감독은 배우들에게 연기를 완전히 일임하는 스타일로 유명한데, 인터뷰에 따르면 배우에게 연기 디렉션을 줄 경우 "360도로 열려있던 가능성이 6도까지 뾰족하게 줄어든다"라고 한다. 주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들만 20명이 넘어가고, 여러 주연들이 함께 카메라에 잡히는 숏이 많은 이 영화야 말로 올트먼 감독의 배우 일임 연기 접근 방식이 효율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렇게 화면 내의 모든 인물이 각자의 어젠다를 가지고 움직이는 연출은, '군상극'으로 수렴되는 올트먼 감독의 기획과도 어울리지만, 표면적으로는 '후던잇'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본 작품과 무척 훌륭한 궁합을 보인다. 영화, 소설의 화면과 서사가 어떠한 하나의 장소와 단서에 집중해 달라는 작가의 요구가 필연적으로 담겨있다면, 사실 추리극은 이러한 매체에 가장 특화된 예술의 형태는 아니다. 오히려 가장 만족스러운 추리극은 해답이 제시되는 순간, 관객이 무릎을 치면서, 해답을 위한 모든 정보가 이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장려해야 한다. 추리극에는 기본적으로 관객과 독자에게 보통 주인공의 역할을 수행하는 탐정이 얻는 모든 정보를 동일하게 제공하고, 각자의 추리를 통한 결론에 다다르기를 바라는 장르 특색이 잠재되어 있다. 때문에 〈고스포드 파크〉의 연극 연출은 '후던잇'에 특화되어 있다.


응접실에 모인 귀족들, 〈고스포드 파크〉 [출처: High-Def Watch]


개별 인물의 시점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가는 과정이 본 작품의 영화적 환희의 근간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올트먼 감독은 한 발짝 물러서 앞서 말했던 두 사회의 분리, 그리고 간간히 일어나는 접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고스포드 파크〉는 표면적으로는 위 층, 즉 귀족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그들의 시종들이 어떻게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서사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귀족들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는 항상 시종들이 존재하지만, 시종들끼리 있는 장면에 꼭 귀족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면, 이 작품은 귀족들의 삶을 외부에서, 시종들, 또는 미국인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시종들의 시선은 작품 중 엘시의 푸념인 "왜 나는 그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을 살아가려 할까"라는 대사를 통해 몹시 명료하게 표현되며, 또 아래층에서 시종들끼리 식사를 할 때도 본인들이 모시는 귀족의 지위에 따라 테이블의 배석을 정하는 관습에서도 확인이 된다.


감독 본인이 미국인이기 때문에 미국인 등장인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루한 가치와 체면, 허영을 붙잡고 살아가는 귀족들에게 어떠한 조소를 보내고 있는 감상이 든다. 시종들이 자신들의 삶을 바쳐가며 지키는 귀족들의 헤리티지, 과거의 유산이 얼마나 조잡하고 실체가 없는지에 대한 비판을 던지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영화의 제작자이자 미국인을 상징하는 모리스 와이스먼이 식사 후 아이버 노벨로에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랑 같이 지낼 수 있냐"라고 물어보는 질문은 영국 계급사회, 특히 허례허식에 찌든 귀족들을 바라보는 지극히 미국스런 시선이다. 이렇게 냉소적인 시선은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1976)과 같은 서부극을 통해 자신이 태어난 미국의 건국신화에도 거침없이 메스를 대 해부해왔던 로버트 올트먼 감독이기 때문에 더욱 신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귀족과 시종 간의 애증 관계, 시종에게 의지하는 귀족들의 태도가 반복되어 비치면서 이들의 역학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고 오히려 서로를 몹시 필요로 하는 공생관계라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계급 사회란 일방적으로 상위계급이 하위계급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해되기 쉽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양쪽의 암묵적 동의가 있어야만 성립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시종장 윌슨 부인(헬렌 미렌), 〈고스포드 파크〉 [출처: High-Def Watch]


〈고스포드 파크〉를 비평하는 많은 평론가들은 살인자의 정체는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볼수록 개인적으로는 해석에 동의하기 힘들다. 영화의 살인 사건은 계급 간 암묵적 동의가 깨졌음을 상징한다. 살인자의 정체가 밝혀지고, 인물이 자신을 어떠한 단어로 지칭하는지 곱씹어보면, 영국 사회를 압축한 이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계급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작은 혁명이자, 헤리티지에 대한 윤색된 기억을 깨부수는 망치로 해석될 여지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트렌섬 부인을 보내는 집사의 모습과 함께 시작하고, 모든 손님이 고스포드 파크에서 떠나고 저택으로 들어가는 집사장 제닝스의 모습으로 끝난다는 연출은 의미심장하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서사의 동력은 저택의 아름다움과 귀족들 간의 꼬일 대로 꼬인 관계이며, 이는 부르주아 데카당스로 말초적 유희를 제공하지만, 올트먼 감독은 화려함 뒤의 인간을, 귀족을 지탱하고 있는 시종들을 주시하라고 주문한다.


〈고스포드 파크〉는 영화 내 관객을 유혹한다. 저택은 웅장하고, 색채는 감미롭고, 인물들은 매력적이다. 가십은 미로와도 같은 저택 내부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방 하나하나마다 비밀을 숨겨 놓는다. 저택의 수많은 방들의 문이 열릴 때마다 계급의 벽을 넘는 육체관계가, 또는 한 꺼풀 벗고 추레한 모습으로 다투는 귀족들이 기다리고 있고, 관객에게 말초적인 흥분을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관객은 우리가 열지 않았던, 아니 열면 안 되었던 아래층의 두 방의 문을 열게 된다. 그곳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의 인간적 고난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떠난 저택을 다시 보자. 아직도 당신을 유혹하고 있는가?


마침

〈레오파드〉와 〈고스포드 파크〉라는 작품들 내에서 역사를 상품화시키는 헤리티지 산업화가 직접 경계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영화사의 거장이자, 작가주의 창작자라고 부르기 손색이 없는 비스콘티와 올트먼 감독이지만, 이 작품들도 상업 영화의 문법 내에 존재하고 있으며, 과거에 대한 향수와 낭만적 감상, 혹은 유산을 바라보는 유미주의 관점이 녹아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비스콘티 감독의 경우, 본인의 내부에서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자아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그람시와 루카치라는 사상가들로 대표되는 사상 투쟁이 합일되어 미심쩍은 공존에 이르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고 보아도 이상하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역사의 움직임의 변증을 연출해냈다. 올트먼 감독의 작품에서는 필름을 해부대 삼아 그의 날카롭고 해학적인 시선이 메스로 화해, 과거를 쥐고 놓지 못하는 계급사회의 썩어 문드러진 겉치장을 벗겨내 간다. 비스콘티 감독의 시선이 그가 원해왔던 부르주아 계급의 내부에서만 가능한 리얼리즘이라면, 올트먼 감독은 다양한 시선을 씨줄과 날줄 삼아 직조해 불편한 현실의 태피스트리를 만들어간다.


두 작품이 끝나면서 공통적으로 머리에 남는 물음표들이 있다. 가령 향유되고 있는 과거에 대한 수구적 감상이 과연 이성적 판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그리고 과거가 낭만화되면서 이익을 얻는 집단이 누구인지와 같은 질문이다. 두 작품은 역사를 상품화시켰음에도, 역사의 상품화를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기를 주문하고 있다.


(끝)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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