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을 6개월 남기고 과감한 결정
친구 K와 의기투합하여 소꿉장난 하는 것처럼 꿍짝꿍짝 사업계획서를 쓰고 해야할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갔다. K는 아예 한국으로 나와서 결정 해야할 중요한 일들을 함께 처리했다. 사업계획서에 써 놓은 제품을 실제로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제조사를 비롯해 여기저기 찾아다닐 곳이 많았다. 때로는 지방에 있는 공장에 2시간씩 운전해서 다녀오기도 해야 했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한다는 것, 특히 창업을 한다는 것은 준비하고 체크해야 할 일들이 백만스물한가지는 족히 넘는 일인 듯 했다.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K역시 외국에서 데리고 온 아들을 한국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나와 함께 할 일들을 처리했다. 둘 다 기동력이 떨어지는 듯 하지만 우리는 '엄마'이자 '여성'인 장점을 살려 창업을 하는 거니 이런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감사하며 움직이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두명 모두 바쁘게 움직여야만 일처리가 가능한게 현실이었다.
몇 개월 동안 함께 몰입해서 일을 진행하다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제품들이 어느 정도 구현 되었다. 우리도 크라우드펀딩으로 사업자금을 더 모으고 소비자의 반응도 체크하기로 했다. 중요한 일들을 처리해 두고 다시 해외 집으로 돌아간 K와는 매일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크라우드 펀딩 하루 전 K가 말했다. "우리 사돈의 팔촌 그리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우리 제품의 크라우드 펀딩 사실을 알리자." 비장함이 느껴졌다.
한편 나는 다음 스텝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 상태에서 휴직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다. 육아휴직은 육아를 위한 휴직이거니와 이제 제품이 출시되고 수익활동을 시작하면 회사와 병행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육아휴직은 달콤한 '유예'같은 상태였는데 과감히 포기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승부수를 던지기로 한 이상 난 더이상 '휴직' 상태가 아니었다.'창업자' 상태인 것이다. 벼랑 끝에 몰려야 절실하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의지도 담겨져 있었다. 이제 뒤로 물러설 길이 없다. 휴직기간이 6개월이 남았지만 회사에 '사의'를 표명했다. 오랜만에 회사에 연락해서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얘기를 하려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마흔은 참으로 괜찮은 나이인 것 같다. 세상 어느 것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은 아닐지라도, 아직 젊고 튼튼하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남아 있다. '그렇다고 20대 처럼 서툴지도 무모하지도 않다'. ..고 말하고 싶지만 나의 선택을 무모하다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는 것을 안다.
나의 사표 소식을 전해들은 선후배, 동료들에게 미친듯 메시지가 왔다. '과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휴직 중 한마디 언급도 없이 사표라니?', '팀장은 어떻게 이런 일을 우리에게 공유도 하지 않고 인트라넷을 보고 사표 소식을 듣게 하죠.?', '이직 한건가요?' 등등의 메시지
나의 앞길을 나도 자신 할 수는 없다. 회사를 시작했다면 어느정도 경험치를 반영해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도전은 완전히 다른 길이었다. 물론 친구가 함께라 든든하고 의지도 되고 생각보다 일도 척척 진행되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겁도 났다. 아니 '후달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치만 나에게 더이상 물러설 길이란 없다. 주관식 인생을 살기 위해 이정도 도전은 준비가 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