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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oy Oct 20. 2023

결심, 나로 살아갈 것

주관식으로 인생의 정답을 찾겠다

육아휴직을 했지만 나를 위해 쓸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육아를 위한 물리적 시간을 계산하지 못했던 것은 큰 착오였다. 가끔 주부를 노는 사람 취급하는 옛날 사람들 혹은 고지식한 남자 어른들을 볼 때 왜저러나 눈을 흘겼지만, 나 역시 직장생활만 하면서 무의식중에 가사와 육아를 쉬운 일로 치부하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아무리 기본만 한다고 해도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정서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그 일들은 결코 회사 생활을 하는 것보다 쉽지 않았다. 아니, 매우 어렵고 힘들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종류가 다른 어려움. 


그렇다면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오전시간, 그리고 아이들이 잠 든 밤 늦은 시간이라는 계산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래도 소소한 아이들의 일상을 챙기고 곁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잘 있는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일도 소중하고 경제적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생만 되어도 "엄마는 왜 회사도 안가냐?"며 타박을 한다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이러니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할 때는 회사가 나를 찾지만, 정작 아이들이 크고 나면 회사에서도 구닥다리 취급을 받으며 물러날 시간임을 알려줄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나의 커리어를 가꾸는 일이 절실했다. 다만 방식을 바꾸고 싶었다. 내가 일하고 싶은 시간에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 첫번째다.


커리어컨설팅을 받으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있었다면, 닮고 싶은 멘토를 찾는 시간도 있었다. 멘토는 직장생활부터 정말 찾고 싶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훌륭한 여성 선배들은 많았지만 제각기 상황이나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 회사의 유일한 여성 임원께 인사를 하러 잠깐 그녀의 방을 찾았다. 왠만한 남자들 보다 큰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S대에서 학사부터 박사를 끝낸 그녀는 누가 봐도 '넘사벽 엄친아'였다. 멘토로 삶고 싶지만 너무 완벽하기에 내가 닮고 싶다고 닮을 수 없을 것 같은, 간극이 큰 그녀였다. 하지만 후배를 챙기는 따듯한 그녀의 마음, 또 장성한 아이를 둘이나 둔 엄마이기에 나로 하여금 큰 결정을 할 때마다 의논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완벽한 스팩에 인성까지 좋은 그녀였지만, 유일한 여성임원으로 회사에서는 항상 견제의 대상이었다. 밀림의 왕국에서 군림하는 것은 백조와 같다. 외줄을 타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뒤에서 대놓고 "여성 임원을 무시하는 태도"는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임원들간 알력다툼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보였다. 


쭈뼛쭈뼛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왠지 휴직을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커리어에서 오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패배자가 된 마냥 마음은 복잡했지만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상무님, 저 육아휴직을 사용하려고요. 회사로 다시 돌아올지 말지, 정하지는 못했지만 휴직이 끝나면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그녀 앞에서 왠지 솔직한 마음이 튀어 나왔다. 휴직이 끝나고 회사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비춘 것이다. 그녀는 의외로 쿨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이에게만 충실한 것도 좋다.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면 충분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또 "쉼 없이 달려온 그녀의 삶에도 후회가 존재하기도 한다."는 늬앙스도 넌지시 비추었다. '백조는 우아하지만 발 밑에서 미친듯 물장구를 치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녀를 보니 그 진부한 이야기가 더 절실히 와닿았다. 그리고 결심을 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무언가를 하면서 살자." . 15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고,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이제 나를 충분히 알 나이가 아닐까


마흔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 되기에는 이른 나이일지 모르지만 경험도 충분하고 육체적으로도 젊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하기에 미숙하지도 늦지도 않은 딱 적당한 나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유예기간 동안 '내 방식대로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지' 비장한 각오를 가슴에 품고 나는 한박스가 되지 않는 8년간 회사생활의 짐을 싸들고 집으로 잠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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