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매우 흥미롭게 시청했고, 여러 가지 느낀 점이 있어 뒤늦게라도 글로 남겨본다.
'고려는 그런 나라이옵니다' 지속되는 전쟁과 민초들의 환란에 수심이 가득 찬 고려 현종의 한탄을 들은 신하인 김은부의 대답이었다.
* <고려거란전쟁> 中. (좌) 현종, (우) 김은부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필연히 개인 간 불평등과 계급 차이가 생겨나듯이 국제정세와 환경은 늘 야욕으로 점철되어 왔기에, 한 나라의 국경과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온전히 지켜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평화로운 현세를 사는 우리들은 이러한 '무게감'을 느끼기는 일은 쉽지 않은데 <고려거란전쟁>과 같은 역사물을 보면서 새삼 그것을 절감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특히나 국제 규범이나 질서가 부재하고 영토 경계 또한 모호했던 것이 전근대의 역사이기에 우리가 공부해 온 역사책 바깥에서도 무수한 민족들이 민족 정체성과 언어를 지키지 못하고 명멸해 왔다. 사실 작금의 시대에도 '소멸위기언어(Endangered languages)'라 불리는 종류가 수 백에 달하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기원전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이주해 온 이들을 지칭한 히브리인들에서 유래한 '히브리어'는 언어의 변용과 나치의 탄압 등 여러 위기를 겪으며 소멸에 가깝게 이르렀지만 민족성이 강한 이스라엘이 이를 끝끝내 지켜온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 또한 세계 역사의 중심이었던 강대국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바다 건너는 숱한 내전을 통해 군사력을 길러온 일본 사이에서 우리 고유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언어를 지켜왔기에, 나는 이따금 그러한 나라의 국민임에 자부를 느끼곤 한다.
<고려거란전쟁>은 제목과 같이 동아시아의 최강자 거란과 여러 차례 격돌을 벌인 '여요 전쟁' 시기(서기 933년~1019년)를 주로 다룬다. 여요 1차 전쟁은 우리가 역사 수업에서 익히 들어 익숙한 서희의 담판을 통해 마무리된다. 거란과 대치하던 여진족을 함께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군사적 요충지인 강동 6주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잇따라 벌어진 2차, 3차 전쟁에서는 두 나라의 명운을 건 대회전(大回戰)이 벌어지게 되는데, 드라마는 이 두 전쟁을 둘러싼 정치와 영웅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룬다. 이 드라마를 보며 개인적으로 느낀 소회에 대해 몇 가지를 써보고자 한다.
1. 우리나라에도 '삼국지(三國地)'에 못지않은 영웅들이 있다.
필자는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를 다룬 '삼국지'의 마니아다.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도서, 게임, 드라마 등 수많은 매체를 통해 삼국지에 심취했고 내 인생에 단연코 가장 큰 영향을 준 콘텐라고 생각하는데, 삼국지의 매력은 난세가 빚어낸 각양각색의 영웅들과 그 개별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위대하고 또 감동적인 서사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고려거란전쟁>을 보며 사실 반성한 부분이 있다. 삼국지를 통해 타국의 명장들에게는 그렇게 감탄을 느끼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영웅들에 대해서는 상대적 무관심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작품에서 나온 몇몇 특기할만한 인물들에 대해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 백전불패의 장수 '양규'
고려의 영웅 '양규'를 몰랐던 것은 아니나 이번 작품을 통해, 그리고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그는 정말 역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으뜸가는 장수가 아닐까 생각했다. 양규는 1010년 40만 대군을 이끌고 온 거란의 2차 침략에 맞서 100배 이상 열세 3천여 명의 군대로 전쟁 발발 초기 흥화진을 1주일이나 지켜냈다. 결국 거란은 고려의 핵심 전초기지인 흥화진을 포기하고 우회를 선택했고 곽주성을 함락시키고 개경으로 바로 돌진했다. 사실 전쟁에서 주요 기지를 함락시키지 않고 적의 종심으로 향하는 일은 매우 위태로운 일이다. 대군의 진군 길을 따라 주요 성을 우선하여 점령해두는 것은 추후 보급 가능 여부와 직결되고 감시 정찰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양규는 이러한 거란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수적인 불리함과 공성전이라는 열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습 공격을 통해 곽주성을 탈환하고 후방 보급을 끊어냄으로써 사실상 거란의 주력 부대는 결국 본국과 단절된 상태가 되어 버리기에 이른다.
<고려거란전쟁> 中 양규 장군의 모습
양규는 지속적인 게릴라 작전으로 남하하는 적의 후미를 공격해 수많은 적을 사살시키며 피로를 누적시켰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개경을 점령하고도 마침내 고려 정복을 포기한 거란은 퇴각을 결심하게 되는데, 양규는 거란 이들의 퇴로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수많은 고려 포로들을 구출해 낸다. 마지막까지 고려인 포로를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거란 황제의 친위 군과 대적하게 되었는데, 고려군은 도망가지 않고 항전하다 끝내 모두 전사하게 된다.
내가 이해하는 선에서 이 정도의 전공은 10배 이상의 중과부적을 극복하여 오나라 대군을 상대로 합비성을 수성한 장료나, 대군 사이를 바람처럼 헤집고 들어가 적장 안량의 목을 베며 관도대전의 흐름을 바꾼 관운장의 신화적 서사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양규 장군의 눈부신 게릴라 전술과 활약이 없었다면 거란의 2차 침공의 양상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 고려의 조자룡, '지채문'
<고려거란전쟁> 中
두 번째로는 지채문 장군 이야기 하 싶다. 지채문은 거란의 제2차 침략에 항복하자는 고려 장수들의 여론에 맞서 끝까지 항전을 주장했고 실제로 전장에서 큰 활약을 했다. 이후 거란의 공세가 거세져 수도 개경이 위협을 받자 고려 현종이 몽진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겁먹은 호위 무장들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고 한다. 지채문은 이러한 상황에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자처하여 왕의 호위무사를 도맡게 된다.
약 50여 명 밖에 안 되는 단출한 몽진 행렬은 매우 험난했다. 왕에게 적개심을 가진 지방 호족들이 급작스레 공격을 해오는 등의 연속되는 위기로 대열을 탈주하는 자들이 속출해 나중엔 왕의 곁엔 한 줌의 신하들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지채문은 좌절하는 현종을 끝까지 독려하고, 또 마침내 개경으로 환궁할 때까지 끝까지 왕을 보호하는데 성공해냈다. 지채문의 활약을 들여다보면 삼국지에서 죽음의 문턱에서 조조를 구해낸 호위 무사 전위나, 장판파를 누빈 촉의 조자룡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래의 역사 기록은 '영웅' 지채문에 대한 찬사로서 아깝지 않다.
"호종하던 신료들 모두 도망가 흩어지지 않은 자가 없었는데, 오직 지채문만이 바람과 서리를 무릅쓴 채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말고삐를 잡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끝까지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절개를 지켰다. 특출한 공로를 생각하면 어찌 남다른 은전(恩典)을 아끼겠는가" - <고려사절요>
* 험난했던 현종의 몽진 길
2. 무관(武官) 이 전쟁을 잘 지휘할까?
사실 거란의 마지막 침략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귀주대첩을 이끈 강감찬은 문관 출신이며, 종군 당시 70세가 넘는 노장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과연 '무력이 뛰어난 무관이 전쟁을 더 잘 지휘할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직제상 문관, 무관을 뚜렷히 구분할 수 없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사실 촉의 북벌을 이끈 제갈량이나 삼국지의 최후의 승자인 사마의도 문관의 성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중국사에서 손꼽히는 괴력을 자랑하던 항우에 대항해 최종 승리를 거머쥔 것은 유방이었다. 우리가 익숙한 임진왜란 당 조선군 총사령관이었던 권율조차도 사실 문 급제 출신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수 백, 천명 내외의 전투에서는 선봉장의 무력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대군(大軍) 간의 대결에서는 지형을 잘 활용하고, 진법을 펼치는 '전술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또한 군량미와 무기를 조달하는 보급과 병참, 심지어 기후까지 활용하는 총체적인 전략과 통솔, 소위 '판짜기'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로 친다면 기본유닛의 1개 부대 이하의 전투에선 유닛의 마이크로컨트롤이 중요하지만 인구수 200 vs 200의 싸움에서는 병력의 구성, 산개 방식 등 전술적 배치, 마법 유닛 활용 등 복합적인 통제 역량이 중요하듯 말이다.
3. 전쟁에 대한 고찰
'전쟁이 어찌 이리 길수 있는가. 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아버지가 되어도 끝나지 않으니 말이다'.
효종은 진실로 백성들을 걱정하고 사랑했던 훌륭한 군주였다. 드라마 속 효종의 한탄에서 전쟁의 비애는 잘 드러나는 듯하다. 극중 농사를 짓던 백성들도 무기를 집어 들고 아낙들이 수성을 위한 바위를 모으고 남편들의 갑옷을 꿰매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것들을 보면 전쟁의 참혹함은 성역이 없고, 민초들에서 비롯되는 체제의 보존과 승리는 곧 전쟁의 승패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전쟁사를 들여다보면 전쟁이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수 년간 이어진 왜란 당시에는 굶주린 부모들이 자녀를 서로 바꾸어 잡아먹을 정도의 생지옥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야말로 산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참혹한 지경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거란과의 전쟁이든 왜란이든 그 어떤 전쟁이라고 이와 다를 수 있으랴.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에, 결국 반전(反戰)은 인류가 급선무로 지향해야 하는 가치 중 하나라고 믿는다. 반전주의, 평화주의를 위해 투신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나 또한 미약한 힘을 보태고 싶다.
4. 결국엔 '사랑'
'사랑'이 바탕이 될 때 진정한 정치가 이뤄진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고려 현종은 역모를 일으키고 왕을 시해한 장수 강조의 처와 가족들을 벌하지 않고 그의 사후 뒤에도 편안하게 살게 도와주었다. 이후에도 난을 일으켜 자신을 겁박하는 대역죄를 저지른 고려 장수 최질과 김훈의 식솔들은 해하지 않았다. 그들이 고려라는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는 방법이 각기 달랐지만 그 모든 충정들이 얽히고설켜 고려라는 나라를 만들고 또 지켜온 것임을, 나는 성군이었던 현종이 알고 있었음을 믿는다. 그래서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현종이 궁에 들어갈 때 끝내 뜻을 같이하지 못한 이들 또한 고려를 지켜온 신하들의 대열에 함께 서 있는 모습이 참 좋았다.
일정 시간 이상 정치인들의 행보를 지켜보면, 그들의 진정한 동기가 '애민'인지 공명심인지 혹은 탐욕과 콤플렉스 등 부정적 기운인지는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고려의 현종과 같이 사랑과 애민의 가치를 지키는 목민관, 정치인들을 많이 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우리가 함께 지켜온 문화와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 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지난 역사 에세이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순신을 통해 삶을 생각하다) (https://brunch.co.kr/@workingthinker/41)
이순신의 '선승구전'에 대해 생각하다 (아산에서 충무공의 발자취를 좇으며 느낀 것들) (https://brunch.co.kr/@workingthinker/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