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천상과 같던 어느 날 (Un di, Felice, Eterea)
https://youtu.be/SXZNX32E3ew?si=_7qq8N0UqQSOr8-r
재미있죠? 제 직업이 누군가의 말을 듣는 건데, 환자분과 함께 있으면 희한하게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달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항상 떠올라요. 아! 오해는 하지마세요. 하하~ 플러팅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음..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사실... 사랑이란 건 시시콜콜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생은 더 큰 무언가가 있다고 항상 생각했으니까요. 원래 제가 피아노를 쳤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을까요? 아... 심리 쪽 공부도 함께 했지만... 뭔가.. 셜록 홈즈 같은 거죠. 공부가 힘들 때 피아노는 제게 탈출구같은 존재였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였던 사람도 잠시 만났었고.. 세상에 아쉬울 것이 없었죠. 하지만 그런 타인에게서 얻는 안정과 행복은 찰나의 것이더라구요. 뭐...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와 같던 그녀와의 이별은 저를 좌절로 이끌었고.. 그게 희한하게 음악을 멀어지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훅 들어온 푸른 수염 선생님의 첫 번째 사랑 이야기는 내 호기심을 확 끌어들여 조금씩 느껴지던 허기조차 잊게 만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혼자 견디던 내 곁에서 날 위로해주던 친구..는 저보다 조금 나이가 더 있어서, 이미 심리 상담사로 일을 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저를 다시 죽음과 같은 고통에서 삶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죠.
"아... 하지만 왜 그 분과는?"
저를 너무 많이 알았던 것이죠. 서로 가까운 사이에도 선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와 저는 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이라는 것조차 사라져버린 사이였어요. 그래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달까요? 사소한 차이에도 다툼이 커져버린 것이죠.. 하하... 하지만 지금의 제가 있도록 해준 사람이었으니 지금도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푸른 어항 쪽으로 잠시 고개를 돌린 그의 눈빛이 차갑게 느껴진 것은 착각이었겠지?)
세 번째는... 뭐 별볼일 없는 스쳐간 인연이었어요. 초짜배기 상담사가 환자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것은, 다섯 번의 사랑 중 그 사람이 제 악몽에 가장 많이 등장해요. 아! 네, 저도 사람이니 불안함을 가지고 있고, 악몽을 꾸죠. 그래서 그 이후로 환자와의 관계는 매우 조심한답니다. 배 고프지 않으세요? 그럼 뭐라도 시키고 이야기를 계속하죠..
...음...네 번째는.. 조금 환자분한테는 트라우마일 수 있을텐데요. 저한테 순종적이고 모든 것을 다 따르는 것은 물론이고..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싶어하고 그걸 거부하면 불안해하죠. 뭐든지 자신이 다 알고 있어야 하는... 하지만 사실 저는 편했어요.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알아서일까요? 하하! 농담이구요. 매우 충실한 비서를 한 명 둔 것 같았거든요... 흠흠... 죄송합니다. 아무튼... 다섯 번째는 모르겠습니다.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죠. 사람을 걱정되게 만들죠. 손을 뻗으면 도망갈 것 같아서 매우 조심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상처투성이인데 또 강인해요. 나비같은 존재이죠. 매우 복합적인, 흥미로운...
...그는 이 말을 끝으로 한참을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나를 바라본 것이라기엔 나를 통과해 멀리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거미줄에 붙잡혀 거대한 거미를 마주한 작은 벌레처럼 나는 전혀 움직이지도 그의 눈빛을 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마저 생기려는 순간!
"배달이요!"
푸른 수염 선생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으며 "아~ 저녁! 아주 좋아요. 오늘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거든요."란 말과 함께 음식을 배달기사에게 받았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후 익숙한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LP판 쪽으로 향했다. 뭔가에 홀린듯 나는 음식을 꺼냈다.
"오늘은 재미있게도 라 트라비아타가 그리운 저녁이네요. 저녁 식사 같이 하시고 더 늦기 전에 돌아가시죠. 우리 모두의 행복한 천상과도 같던 어느 날 중 하루가 오늘이면 좋겠네요. 그리고 환자분은 더 이상 내원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신 것 같거든요."
그렇게 나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푸른 수염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선물을 건낸 후 일어섰다.
"선생님... 이 모든게 선생님 덕분입니다. 마지막 상담, 감사드려요.. 이게 마지막 방일까요? 다음 방은 없는 거겠죠?"
미소 짓는 푸른 수염 선생님에게 90도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서는 내게 그가 한 마지막 말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음악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그리 신경쓰지 않고 홀가분하게 문 밖으로 나섰다.
.....이제 시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