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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심리 상담 센터 <12>

망각 (Oblivion)

by 쏘냥이

푸른 수염 심리 상담 센터 <12> Oblivion



https://youtu.be/dF-IMQzd_Jo?si=C1LeVFwhTRIg3X4M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사건이 미궁에 빠져들고 점점 미제 사건이 되는 것이 아닌가란 걱정조차 희미해지고 점차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듯한 눈길이나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 같은 느낌은 사라진 나날들이 이어져 갔다. 그렇게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마음과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것 같은 설렘이 이어지던 그 날, 정말 오랜만에 '푸른 수염 심리 상담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분, 이제 좀 괜찮으실까요? 퇴원하셨다는 소식 이후로 상담 예약도 안 잡으시고, 연락도 안 되셔서 좀 걱정이 되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사실, 이제는 그가 이야기하던 다섯 개의 방의 마지막인 수용의 단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해서, 이제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생각한 것도 있었다. 조금은 흥미를 잃었다랄까? 뭐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아... 선생님, 죄송해요. 그 사건 때문에 아무래도 바쁘던 일이 정말 바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제가 직접 찾아뵙고 감사 인사라도 전했어야 하는데.. 그런데 저는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담당 형사님께서도 신경을 써주시고... 저는 이제 상담이 더는 필요하지 않..."

"아니! 그건 아니죠. 저는 항상 금요일 18시를 비워놓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큰 일을 당하셔서 일종의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수도 있고, 뭐.. 스톡홀롬 신드롬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의존성이 높아진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이 가장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 걱정되어서 그래요."


내가 형사님에게 가지는 호감이나 동질감이 사건의 후유증일 수도 있다는 건가? 나는 덜컥 겁이 났지만 차분하게 마음을 달래봤다. 사실 나의 밑바닥이나 최악의 상황을 겪었을 때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심지어 도움을 줬던 사람이 푸른 수염 선생님 아닌가.. 이렇게 내가 피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나는 다음날 저녁 6시에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그 낡은 건물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내가 죽었다고 의심했던 '그' 젊은 남성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발견하고 목인사를 건냈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는 눈이 조금 커졌다가 나에게 역시나 까딱 인사를 한 후 급한듯 건물을 떠났다. 저 눈빛이 낯설지 않은 것은 여러 번 마주쳐서 그런거겠지? 그때 그 죽은 환자가 그 사람이라고 착각해서 망각의 세계로 빠졌던 때가 너무나 옛날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푸른 수염 선생님은 저 사람이 위험할 수 있어서 다른 요일로 옮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는 것은 내가 억지로 여기까지 와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초겨울 저녁의 서늘한 바람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가서인걸까?


똑똑...


"들어오세요"라는 푸르른 목소리에 또다시 홀린 듯 상담실로 들어간 나는 가운을 입지 않고 푸른 스웨터를 입고 편하게 앉아 있는 푸른 수염 의사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일찍 연락드리고 찾아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에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아닙니다. 이렇게 밝아진 모습을 보니 제가 다 안심이 되네요. 이렇게라도 아니면 환자분의 상태를 알기가 쉽지 않아서요. 오늘은 따로 상담이라고 하기 보다는 절 위해 시간을 내주신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아! 물론 상담비는 받지 않을테니 걱정마세요. 하하.. 혹시 뒤에 약속이 있으신가요?"


사실 형사님과 같이 저녁을 먹으려 했지만 급히 사건에 투입이 되어 약속이 파투가 나서 조금은 심술이 나있던 상황이라 푸른 수염 선생님의 이러한 제안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하~ 데이트 하자는 건 아니구요. 뭐 오늘은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 하루였거든요. 좀 복잡한 일도 있었고...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오늘은 제가 이 방들을 건너갈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배고파지면 뭐 시켜도 되구요."


아니, 이 선생님이 날 좋아하나? 착각은 자유고 망각은 나의 선택이니 오늘 저녁에 시시콜콜한 TV채널이나 돌리기 보다는 처음에 들었던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을 기회라는 별의 별 생각을 다하는 나의 표정에 안도한듯 푸른 수염 선생님은 자신의 다섯 개의 사랑과 다섯 개의 방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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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간 매일 글을 연재했었는데 10월 말~12월 초까지 본업 (연주 & 강의)가 매일같이 있고, 없는 날은 다양한 곡들을 연습해야하고 하는 이유(핑계죠..), 그리고 이제 5-6개 정도 남은 에피소드를 어떻게 더욱 스펙타클하게, 또 뻔하지 않게 진행해야할지, 떡밥 회수 등을 아직 명확하게 답을 내지 못해서 3-4일 정도 휴재하였습니다. 매일 연재는 조금 힘들겠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완결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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