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내가 지방에 있는 유기견을 구조하게 된 사연
소위 말해 똥개, 귀엽게 말해 시고르자브종 새끼 두 마리가 나에게 왔다. 시작은 작년 9월. 지방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오빠가 숙소 근처에서 유기견 한 마리를 발견했고, 밥을 주기 시작하며 인연을 맺었다.
서울에 사는 엄마와 나는 오빠에게서 그 유기견의 소식을 들으며 이름을 '설탕이'라고 지어주었다. 처음에는 곁을 주지 않아 멀리서만 봤는데, 밥을 주면서 점점 가까워지자 설탕이의 젖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오빠가 찍어서 보낸 사진을 보니 언뜻 보기에도 벌겋게 잔뜩 부어 있었다.
그제야 설탕이가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젖 상태를 사진 찍어서 우리 강아지가 다니는 동물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수의사는 유선염인 것 같다고 했다. 치료를 해야 하지만 모유 수유를 하고 있으니 약도 함부로 먹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설탕이가 숨어 지내던 풀숲 주변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 소음에 위협을 느꼈던 걸까. 주말에 오빠가 서울 집에 와 있는 사이, 설탕이는 돌연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설탕이의 상태가 걱정된 오빠는 그 일대를 며칠 동안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약이라도 먹일걸' 하는 후회와 자책이 밀려들었다.
한 일주일쯤 지나고 설탕이 찾는 걸 거의 포기했을 때, 설탕이에게 밥을 같이 주던 한 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설탕이와 새끼들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아이들이 있던 곳은 인적이 드문 다리 밑. 작년 그곳에서 유기견들이 많다고 신고되어 구청에서 한 차례 포획해 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근처에는 개농장도 있고, 큰 차들도 쌩쌩 다니는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끼들도 그곳에 있었다. 한 마리는 호랑이 무늬인 호구, 한 마리는 누렁이. 작은 소형견에 흰색 강아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입양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똥개였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설탕이는 백구인데, 너희는 어째 선호도가 꼴찌에 가까운 호구, 황구냐. 백구만 되도 좋을텐데.'
하지만 그런 생각을 오래 할 여유는 없었고, 그런 이유때문에 아이들을 그냥 놔둘 수도 없었다. 동물보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설탕이와 새끼들을 구조했고, 얼른 병원부터 데려갔다. 그게 유기견을 직접 구조하게 된 시작이었다.
그날 처음 본 아이들 이름부터 지었다. 호랑이 무늬가 있는 호구는 대박이, 짜장 입을 한 누렁이는 행운이. 다행히 아이들은 건강했다. 병원에서 나온 다음엔 당장 갈 곳이 필요했다. 가장 좋은 건 입양을 가기 전 가정 생활을 경험하며 적응하는 임시보호를 가는 게 최선이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임시보호가족을 기다리는 유기견들은 너무 많고, 동물보호단체가 구조한 것도 아니고, 개인이 구조한 경우 임시보호처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집은 가족 외 다른 존재가 집에 들어오는 걸 용납하지 않는 예민한 강아지가 있고, 나 또한 85세인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강아지 두 마리를 임시보호를 하는 건 여의치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 개인 돈을 들여서 아이들을 지방의 반려견 호텔에 위탁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추위와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서 지낸다는 안도감과 함께 저 멀리서 현실적인 걱정이 빠르게 달려왔다.
한 달에 두 당 35만 원. 게다가 접종비와 사료비는 따로 지불. 모견 설탕이의 중성화 수술까지. 지출되는 금액은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래도 애써 아이들이 아직 귀여운 새끼니까 금세 입양갈 거라는 근거없는 낙관으로 애써 염려를 덮어버렸다. 겁 없는 무모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아이들은 퍼피 단계를 지나 유치가 빠지는 개린이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제 5개월을 넘었는데 대박이는 10키로가 넘었고, 행운이는 9키로다. 그동안 SNS와 임시보호플랫폼, 입양플랫폼에 열심히 글과 사진을 올리며 홍보했지만 임시보호나 입양 신청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힘들수록 더불어 살기
기대와 낙심 사이를 오가다가 세 달이 지난 지난주에야 대박이가 겨우 임시보호처를 만나 떠났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과 품이 많이 들고, 마음고생을 했는지는 책 한 권으로 써도 모자랄 정도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강아지에게 그렇게 쓸 돈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라. 이 세상에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심한 갱년기 우울증을 겪는 과정에 지금의 반려견을 만났다. 당시 그 아이는 나에게 구원이었다. 나를 깊은 우울의 수렁에서 건져내 다시 웃게 해주었으니 구원이라는 말이 나에겐 과하지 않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한 존재가 소중해지다 보니 다른 강아지들에게도 눈길과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내 새끼가 귀한 것처럼 남의 새끼도 귀하게 여겨지는 심정이랄까. 나도 어떤 존재에게 구원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유기견 구조'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 힘이 닿는 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런 사람을 다 도와줄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사람,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 내 눈에 보이는 사람, 내게 와주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가 손을 내밀 때 잡아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나에게 구원이 되어준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는 임보와 입양, 구조를 기다리는 강아지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다. 그 강아지들을 내가 다 도울 수는 없다. 그 대신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강아지와 인연처럼 만나게 될 때는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설탕이, 대박이, 행운이처럼 말이다.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한다. 각자도생의 시대라고도 한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노력한다. 반면, 더불어 사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더불어 사는 존재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포함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운이와 대박이에게 최선의 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작은 일을 사랑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작은 일을 위대한 사랑으로 할 수 있다. – 마더 테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