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엄마가 되어 생각해보는 인간관계
'인간관계'라는 말은
애초에 누가 만들어냈는지 몰라도
당연하게, 널리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위의 단어는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누군가에게는 만족과 풍요, 감사의 이미지일수도있고
내향적이고 수줍은 어떤 누군가에게는 열등감과 후회, 결핍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
복합적이고 복잡한 단어인 듯 싶다.
더 나아가 인간관계가 '인성',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까지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어려운 단어가 되어 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간관계를 잘 쌓아간 사람들은 가족의 경조사에 당당한 모습이 되어 가고
인간관계를 잘 못쌓아간 사람들은 허전하고 휑한 경조사로 그 단면으로 드러나 보일 수도 있다.
인간 관계의 '계'를 의미하는 한자어는 繫 (맬 계)이다. 매어있다, 구속하다의 뜻이다.
인간 관계는 다른 말로 '관련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나는 아이 엄마가 되어(핑계인가?) 한없이 좁아지고 빈약해지는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관계의 '맬 계'라는 한자어 대신, 관련 있다의 '연이을 련(聯)'이
나에게 좀더 나은 표현인거 같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인간관계는 서로 매어있는 게 아니라 연이 닿다(聯) 로 생각한다면
인간관계라는 어려운 단어가 주는 부담에서 좀 헤어나올 수 있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직장이든, 학부모 관계이든 서로
'연이 닿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저 사람과 내가 '매어있는' 관계다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각자의 환경과 이해관계, 사정이 다 다름의 사이에서
서로 줄게 있고 연락할 게 있고 받을 게 있는 그 '매어있음'이 어느 순간부터 부담스러워진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소꿉 친구와의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사는 지역도 다르고, 직장이 있거나 없거나에 따라
혹은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에 따라
혹은 경제적 수준에 따라
하루의 리듬, 쓰는 언어, 사는 환경이 각각 다르기 때문도 있고,
만나야 할 시간대가 애매할 수도 있다.
친구가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 되겠고
어려운 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면 소중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친구라는 단어는 학교 다닐 때나 가능했던 단어같다.
직장에서 보게되는 사람에게 '친구'라는 단어는 보통 쓰지 않는다.
'직장 동료'가 '친구'가 되는 순간부터 직장 안에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동료 이상의 무엇이 거래되어야 한다는 그 느낌 부담감도 싫다.
매어있다로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아는 사람이 직장 내에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타인을 인생의 항해에서 '연이 닿게 된 고마운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나와 매어있는 구속되어 있는 사람'으로 보게 하는
'인간관계'라는 단어는
일상 생활에서 빨리 지워내야 할 나쁜 단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