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는 어디에

아닌 것 같아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나는 비겁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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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 다수가 하나로 입을 모을 때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목소리로 낼 줄 아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아, 부럽다'이다.


난 대체 언제부터 소심해진 걸까. 어린 시절 나는 스스로를 제법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아닌 것엔 아니라고 반기를 들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세상의 불합리함'과 '다수에 묻혀가는 것의 안정감'에 적응했기 때문일까. 나는 이제 주관이 뚜렷하기보단 주관은 속으로만 묻어두는 사람, 아닌 것에 반기를 들기 전에 주변의 눈치를 일단 한 번 살피는 사람이 된 지 오래다.




현재의 나는, 카멜레온처럼 발을 붙이는 조직의 색에 맞게 색깔을 바꾸는 일에 익숙하다. 백화점에 다니면서부터는 백화점 사람이라면 으레 하는 행동과 말투, 심지어는 생각까지도 내 몸에 깊이 배어간다. 나만의 감수성과 나만의 고집, 규칙 같은 것들이 하나하나 깨어지고 이 곳의 분위기에 따라 물들어가면서, 달라진 나 자신을 보고 문득 놀라곤 한다.


한 때는 그게 사회생활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는 이제 고유의 사고를 할 줄 아는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한 집단의 보편화된 일원으로만 존재하게 된 건가 싶어 기분이 찜찜하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나 그렇겠지만 이 곳 백화점에도 암묵적으로 정형화된 직원의 모습, 이른바 '스테레오타입'이 존재한다. 스트레오타입대로 라면 백화점 직원은 고객을 상대할 때 약간의 조증이 있어야 하고, 고객이 사라지는 즉시 급격한 시무룩함과 게으름 모드가 발동해야 하며, 이 두 가지 공통점을 교집합으로 항상 동료와 신세한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느낀 바로는 그렇다. 그 스테레오 타입 속에서 나도, 조증과 그로 인해 파생된 무기력증으로 버무려진 직원이 되었고, 나 개인 우듬지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말살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나는 분위기에 묻혀 할 말을 못하는 사람.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그러던 어느 날. 직원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서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직원들의 한마디>라고 커다랗게 메모보드가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백화점 측에서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각 매장마다 하고 싶은 말을 써붙이라고 한 모양이었다.


거의 모든 대답이 하나로 귀결되어있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올해에는 고객에게 더 친절하겠습니다", "매출에 더 신경 쓰겠습니다" 등등 회사가 좋아할 만한 입에 발린 말들. 진심이라고 보긴 무리가 있는 말들. 힘들어 죽겠는 와중에도 회사의 눈에 모나지 않으려는 그 마음들은, 어쩌면 힘없는 직원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었을까. 나라도 그렇게 썼을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시선을 사로잡는 단 하나의 말이 있었는데. 메모보드 끄트머리쯤에 위치한,


「고객의 VOC(Voice of customer)*는 있으면서, 왜 직원의 VOC는 없나요. 직원의 VOC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라고 당당히 적힌 말이었다. 풀어 말하자면, 왜 고객의 컴플레인에는 그렇게 집중하면서도 직원들의 컴플레인에는 무관심이냐. 우리도 사람이다, 힘들다. 우리도 불만표출의 창구가 필요하다. 이쯤의 해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너무나 당당해서 파격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말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맞는 말, 직원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던 말이기도 했다.


*VOC(Voice of Customer) : 관리 시스템 콜센터에 접수되는 고객 불만사항을 접수부터 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처리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처리결과를 관서별로 지표화하여 관리·평가함으로써 고객의 체감서비스를 향상시키는 고객관리시스템.



아닌 게 아니라 백화점의 서비스인에게 거의 매일같이 요구되는 슬로건은, 고객을 향해 무조건적으로 친절하라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엘리베이터와 직원이 다니는 통로 사방에는 친절을 강요하는 문구가 70년대의 정부 선전물처럼 붙어있었다. '먼저 인사해라',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아라', '최선을 다 해라' , '항상 웃어라' 등등.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쓰여있지만 미사여구를 빼고 나면 결국 언제나 닥치고 친절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극진히 고객을 위하는 것과는 달리, 역으로 고객이 직원에게 무례한 언행을 휘둘렀을 때에 대한 대처는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는다는 거. 슬로건 대로라면, 이런 상황에도 친절하라는 것이 백화점의 입장일까.


서비스직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점은, 어떤 상황이건 베풀어야 하는 일방적 친절이란 굉장히 불합리한 주문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할수록 고객은 점점 더 무례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고객 갑질 문화가, 무작정 직원의 친절을 강요하는 서비스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바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할 줄 알고, 무례한 고객으로부터 직원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알아야, 점진적으로 서로에게 옳은 서비스가 되지 않을까. 그런 양방향의 배려가 존재하는 서비스야말로 질적으로 우수한 서비스가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회사의 눈치를 보고 옳은 소리를 할 줄 모르는 것이 또 하나의 직장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참으로 슬픈 일이다. 뭐, 비단 백화점의 문제는 아닐 테지만.


하긴, 아흔아홉이 소리 죽여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한줄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그 게시판 앞에 서서 이름 모를 직원의 눈에 띄는 그 한마디를 꽤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마음이 이상했다. 이런 말을 용기 내어 할 수 있던 분은 누구였을까.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따라는 할 수 없고, 회사에 밉보이기 두렵고, 그래서 결국은 내 주관보다는 다수의 목소리에 편승하려는 나는, 비겁한 직원이겠지.



나는 오늘도 백화점이 원하는 직원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얼마만큼 나의 고유성을 죽이고, 얼마만큼 조증 환자를 연기한다. 그리곤 고객이 사라지는 즉시 밑도 끝도 없는 무기력증에 사로잡힌다. 무조건적인 친절이란 대체 뭘까. 그런 게 존재할 수 있기는 한 걸까. 모두가 한 방향의 목소리를 낼 때, 언젠가 나는 숨지 않고 내 진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있던, 내 심장을 툭 하고 건드린 그 직원처럼.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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