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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Nov 13. 2018

30대 초반 퇴사일기 (9)

입사 필기시험 장에서

  얼마 전 한 공기업의 채용 필기시험을 치르고 왔다. 전공분야도 잘 맞았고, 입사하면 엔지니어링에 대해 깊게 배울 수 있다는 현직자의 말을 듣고 메리트를 느껴 지원했다. 원서 접수를 하고 한동안 전공 공부에 열을 올렸다. 이 회사는 1차가 서류전형이다. 전공적합도와 자격증(기사 자격증, 전공과목, 한국사, 토익, 토익스피킹)을 기준으로 채용인원의 20 배수를 1차 서류전형 통과자로 결정했다.


   한참 도서관에 앉아 전공책을 뒤져가며 공부에 열을 올리는데 지원 회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예비합격자"발표와 전공 시험공부의 범위에 대한 공지였다. 전공시험 범위를 알려주다니 정말 친절한 회사구나 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예비합격자"는 뭘까? 홈페이지에서 내용을 확인하니, 서류전형이나 면접전형 응시자가 연락 없이 시험에 응시하지 않으면 그날 시험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비합격자가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제도였다. 내용을 보고 회사나 지원자 모두에게 이득인 제도라고 생각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힘들게 고른 지원자의 결시로 인한 손해를 면할 수 있고, 지원자 입장에서도 누구에게는 흔한 기회로 날려버린 채용전형을 겟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필기시험 날, 난 20 배수 안에 들어 바로 고사장으로 입실할 수 있었다. 예비합격자 제도가 좋긴 하지만, 당사자는 오늘 시험에 몇 명이나 빠질까를 계산하며 공부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시험 당일 내가 지원한 분야에 소수의 결시자가 발생했다. 30분쯤 지났을까? 감독관 한 명이 앳된 얼굴의 지원자들을 데리고 와 빈자리를 안내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졌다.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이곳에서 마주쳐야만 했을까. 너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요즘 공기업 채용에서 신입과 경력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경력직이 신입직에 지원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채용공고를 낼 때 회사 측에서도 신입과 경력을 구분하여 뽑는 곳이 많지 않다. 아예 신입직원이라는 말도 없고 "상반기 채용공고"와 같이 시기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막상 지원서를 적으려고 채용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경력"란이 존재한다. 경력 산정은 해주지 않으면서(경력을 반영하지 않고 신입 임금 적용) 경력을 우선해서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야 어찌 되었든 나이도 있고, 그만큼의 경력도 있다. 그 경력이라는 것이 '나는 아는 것이 많고 일을 잘해요'라는 척도가 아니라 우선 그 자소서에서 요구하는 '칸'을 채울 수는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이제 막 한 걸음 내딛고 싶은 저 앳된 지원자는 어떡하란 말일까. 누가 봐도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정말 애처럼 보이는 어린 지원자가 안타까워진다. 어린 지원자가 20 배수 안에 들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부족해서라기 보다 우리 사회가 정말 단 1점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못하는 또는 않는 상황에 놓인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또다시 씁쓸해진다.


2015년 이랜드 채용 필기시험 현장, 약 5000명의 지원자를 한 곳에 모아놓고 시험을 본 회사 (출처 : 조선일보)



나보다 나이 많은 지원자가 있는지, 찬찬히 지원자들의 얼굴을 둘러본다(당시는 코로나 발생 전). 내 나이 서른셋. 하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의외로 많다. 누가 봐도 중년인 사람들도 있다. 그들도 경력 인정 못 받더라고 안정된 직장에서 밥벌이를 하고 싶은 것이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쉬는 시간, 수험번호가 적힌 칠판을 바라본다. 유추해보건대 만약 원서접수 시간대로 수험번호를 산정했다면 이 고사실에 앉아있는 사람 중 가장 늦게 원서접수를 한 사람의 순서는 3800번째다. 나의 세부 전공은 전국을 통틀어도 3000명이 안될 거다. 고로 이 채용에 지원한 총인원이 약 4000명 정도 된다는 생각이 드니 더욱더 씁쓸해진다. 우리는 인생의 어떠한 목표가 있는 걸까? 이제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지니 다들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것일까? 나는 또 여기 왜 앉아있는 것일까?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유난히 춥고 씁쓸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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