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연말이다 보니 송년회를 핑계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는 중이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동안 자신들의 삶에 충실히 살았던 얘기들도 함께 쏟아낸다. 누구는 내년에 결혼을 하고, 결혼했던 또 다른 누구는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다들 보지 못했던 그 시간들을 알차게 채워온 결과겠지.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마지막 이야기의 끝은 나를 향한다.
"너는 만나는 사람 있어?"
"너는 언제 결혼해?"
"나이도 있는데 서둘러야 마흔 전에 애를 낳지"
"이왕 할 거면 빨리하는 게 좋아"
"이제 우리 중에 결혼 안 한 사람은 너뿐이네"
지금보다 한두 살 더 어릴 땐, 저런 말들에 정색을 하거나 짜증을 냈다. 사실 지금도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있는 나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만 더 이상 그러진 않는다. 나는 고분고분한 성격도 아니고 무례한 말에 웃어줄 만큼 너그럽지도 못한 사람이다. 심지어 나의 부모님도 나에게 하지 않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어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남의 삶을 재단하고 참견하는 무례한 말들 내뱉는다. 화내기를 멈춘 대신, 나는 더 이상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요새 저런 가벼운 말들을 자주 들어서 그런지 나만 느리게 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미 이런 생각이 들면, 어느 정도 그들의 의도대로 나는 뒤쳐지고 있다는 패배자적 마인드를 갖게 돼버린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나는 결혼도 하고 애기도 있는데, '너는 인생의 과제들을 언제 다 할 거니?'라며 나에게서 뭔가 우의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친구(친구인지 모르겠지만)에게 말린 거다.
어떤 날은 그런 말 때문에 가던 길을 잘 가다가 잠깐 쭈그리고 앉아서, 나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상대방에게 내야 할 화를 나에게 내기도 한다. 아 저런 말에 흔들리는 것을 보니 아직도 단단해지려면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삶이 옳다는 기준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흔들리는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미개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화여대에 다니는 박경희 할머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화여대 3학년 재학 중, 결혼으로 그만둔 학교를 67세에 다시 복학해 졸업한 할머님이시다. 할머니 기사 중 인상 깊었던 말은 거북이처럼 기어도 정상에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반드시 이뤄집니다. 거북이처럼 기어도 정상에 갈 수 있어요. 천천히, 두려워 말고 시작하세요. 모두 행복하시고 자기를 사랑하길 바랍니다.
박경희 할머님이 67세에 대학에 다시 다니기 시작한 것은 할머니 인생이 잘못되서가 아니라 그게 할머니의 시간표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금혼교칙 (당시 이화여대는 재학 중 결혼하면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었고, 자식에 손자까지 보고 나서야 풀린 금혼교칙 때문에 늘 아쉬웠던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학교를 늦게 졸업해서 할머니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꼬였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타인과 그 삶을 평가하기 좋아한다. 내 일이 아니니까,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서, 사회의 낡은 고정관념과 통념에서 깎아내리고 가십거리로 만든다. 흔히 "네 나이 때는" 이런 말들을 많이 하지만, 누가 정한 기준인가. 또는, "평균적으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우매한 사람인지 짐작하게 한다. 평균이라는 것은 하나의 수치적 개념이지 개인의 상황과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정답이 아니다.
2018년 10월 연합뉴스 기사에 대한민국 성인의 평균 보유자산이 2억 원이라고 한다. 그 당시 나는 2억 원이 없었다. 많이 양보해서 1억 원도 없었다. 특정 누군가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서 나온 금액이 평균 2억 원인 것이다. 고루고루 2억을 들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균에 들지 못하면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가는 길에 늘 이런 사소한 이벤트는 존재할 거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정해진 루트대로 사는 게 정상이라고 믿는 기성세대와 그 기성세대를 따라가고 싶은 일부 지금의 세대는 늘 존재할 거다. 그러니 우리 그런 말에 흔들리지 말자. 누구나 각자의 시간표와 속도가 존재하는 법이니까. 너무 인생을 빨리 가려고 애쓰지도 말자, 그게 성공이든, 결혼이든, 출산이든 뭐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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