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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Jan 27. 2019

30대 중반의 백수일기 (11)

카카오톡 삭제

먼저, 새해에도 백수다. 난 여전히 백수다. 백수 5개월 차.

글의 제목을 '3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바꿔야 될 것 같다. 올해의 나이가... 슬프다...

그런데 뭔가 즐겁기도 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많이 즐겁다. 가끔은 드디어 미친 건가 이런 생각이 들만큼 즐겁다. 선배가 새해 인사를 하면서 다시 퇴사하기 전으로 돌아가면 어떨 거 같냐고 물었을 때, 나는 단번에 "No!"를 외쳤다. 그때의 나는 명함도 있고 월급도 있었지만 불행했고, 지금의 나는 아무 타이틀도 없고 모아놓은 돈을 야금야금 빼서 쓰고 있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도 그만큼 공존한다.


작년 12월 20일,

나는 카톡을 삭제했다. 피씨 카톡도 삭제했다. 페이스북의 계정을 없애고, 인스타의 게시물도 모조리 삭제했다. 그리고 이 브런치, 페이스북, 인스타 앱도 핸드폰에서 지웠다.


새해를 한 달 남겨두고 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뭘 위해 살 것인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생각을 하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허접이로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학원을 마쳤지만 아직도 전문성이 부족하며 어설픈 면도 존재하고,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나는 어디에서도 존재감 없는 인물로 남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의 나는 차고 넘치는 게 시간이니 전공 공부를 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술사를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빠른 시험은 약 한 달 뒤인 오늘이었다. 오늘 시험을 치르고 왔다. 남들은 최소 3, 4년 또는 더 긴 시간이 걸려 합격한다는 기술사 시험을 한 달 공부해서 합격하겠냐만은, 한 달 푹 한번 그 공부에 빠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쓸데없이 낭비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시간낭비의 주요인은 바로 SNS와 카카오톡이었다.


백만 원에서 조금 빠지는 가격에 인터넷 강의를 등록하고 한 달 동안 학교 도서관으로 매일 같이 출근해서 9시간씩 앉아있었다. 9시간 동안, 풀로 공부하진 못했다. 그 대신 궁뎅이는 붙이고 앉아있었다. 엉덩이라도 붙이고 있는 자신이 대견했다. 사실 앉아있는 건 자신 있다. 실제 기술사 시험도 400분 동안 진행된다. 공부를 하면서 어설프고 모자라는 부분들을 조금씩 채울 수 있었다. 수수께끼 풀듯이, 퍼즐 맞추듯이, 가로세로 낱말 퍼즐 풀 듯이. 그동안 머릿속에 비어있던 공간들을 조금씩 채우고 그 내용이 서로 연결되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보일 듯 말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즐거웠다. 알아가는 즐거움에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이전에는 공부 좀 해볼까 하고 앉으면 카톡이 울리고, 인스타에 버릇처럼 접속해서 파도를 타고 타고 넘어가 남의 부러운 인생이나 들여다보며 허비했던 시간들이 먼저 생각난다. 그 시간들을 초반에 전부 빼기란 어려웠지만, 지금은 카톡, 인스타, 페이스북 안 해도 그 시간들을 공부와 책으로 잘 채우고 있다. 완전히 끊진 못하고 집에 와서 자기 전에 가끔씩 인스타를 들여다보곤 한다. 카톡도 내가 필요한 일 있을 때는 다시 설치해서 일만 보고 다시 지운다.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 <잘돼가? 무엇이든> 중에서, 나의 애장서


카톡을 지운 이유는 쓸데없이 수다 떠는 시간을 없애려고 한 부분도 있지만, 사실 그 쓸데없는 수다로 마음이 다치는 것이 싫어서다. 남들은 내 생각해준다면서 한 마디씩 하지만 그 한마디가 비수로 날아오다 못해 Bullet이 되어 내 머리를 관통하기도 했다. 백수여서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내 인생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의문도 들고, 나 역시 나를 믿지 못할 때도 있다. 그 불안을 내 인생의 파트너처럼 끼고 매일을 사는데 사소한 한마디에 휘청할 때, 그때가 나에게는 가장 큰 독이었다. 그런데 그 독을 날리는 사람들은 카톡이나 다이렉트 메시지에도 응답이 없으면 전화를 한다. 그래서 공부 중에는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설정한 뒤 공부를 한다. 앞으로도 카카오톡은 삭제하고 다닐 생각이다. 좀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 방법이 나를 지키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기술사 시험은 한 달 공부한 것치고 많은 내용들을 적을 수 있었다. 오히려 시험을 보기 전에는 마냥 두려웠는데, 시험을 보고 나니 더 자신감이 생겼다. 통과는 아닐 테지만 하나의 목표에 푹 빠져서 노력했고,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 올해 기술사 취득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볼 생각이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새해에는 소망하신 것 모두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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