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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Sep 13. 2022

삶이 내게 보내는 신호(1)

내가 날지 않으면 삶이 강제로라도 날게 할 것이다

  동안 나는 많이 불안했다. 불안감을 느끼고 가슴 떨리는 증세가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회사생활과 연애로 불안증이 생긴  같았다.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연애는 마침표를 찍을 수라도 있지만, 회사생활은  욕을 하거나 버티는  외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운동을 해서 풀곤 했지만, 이것 어느덧 한계에 달한 듯했다.  이상 아무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았다.  놓아버리고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안정제를 처방 받아 먹어보아도 기운만 빠질  증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명상을 하고 효과를  적이 있었기 때문에 명상에 공을 들였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증세는 심해져서 무기력증까지 오게 됐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망가진 삶을 되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저 마음만은 이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집착했던  같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나는 방향을 잃은 채로 표류하는 선박과 같았다.


무기력증으로 고생하다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선 호르몬 이상이라는 결과를 받고, 정밀검사까지 받았다. 정밀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아침, 병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젊은 사람이 아침부터 병원에 가냐며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말을 거는 기사님이 귀찮았겠지만, 아무 의욕 없는 그때의 나는 자기주장을 드러낼 만한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기사님의 말을 이어 검진 결과를 보러 간다고 했다. 기사님은 족히 일흔이 넘은 것 같아 보였다. 내 대답을 듣고 본인 얘기를 시작한 기사님은 십 년 전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검사를 받았고, 간단한 병이라는 진단에 수술을 결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메스를 데어 몸을 열어보니 암이었고, 수술할 수 없는 위치라 그대로 몸을 닫은 채로 눈을 떴다고 했다. 다행히 기사님은 방사선 치료만으로 완치를 받았다고 했다. 그동안 택시로 번 돈을 모두 치료비로 내고서 말이다. 그전의 삶에 회의를 느낀 기사님은 돈을 모으면 사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녔고, 그 덕분에 안 가본 대륙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이 나라, 저나라 얘기를 한참 늘어놓으셨다. 병원에 도착해 내릴 때 우리는 서로의 건강을 빌어주며 헤어졌다. 검진 결과가 좋을 테니 걱정 말라며 나를 다독여주셨다. 그때 나는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결과가 좋을 거라는 것을 느낌 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택시 안에서 기사님의 얘기를 들으며 생각한 것은 삶이 내게 지금 떠나라고 알려주려 이 기사님의 택시를 보내준 게 아닐까 하는 거였다.


결과는 느낌 그대로 좋았다. 다행히 기능상의 문제는 아니었다. 담당의사는 스트레스가 심해 수치가 일시적으로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라고 했다. 병원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항공편을 알아보았다. 지난 3년간 학업과 일을 우선시했고, 휴가도 2~3일씩 나눠서 쉬곤 했다. 이번엔 추석 연휴를 껴서 열흘 동안 휴가를 냈다. 이직하고 이렇게 길게 쉰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택시 기사님이 삶이 내게 던지는 신호라고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베트남과 태국을 생각했지만, 나는 작년에 명상을 하면서 즐겨보던 영화를 떠올렸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인 영화 Eat, Pray, Love(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어릴 적 줄리아 로버츠처럼 활짝 웃는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좋아한 배우였다. 난 입이 엄청 크다. 웃을 땐 입이 귀에 걸린다 것이 뭔지 실제로 보여줄 자신이 있을 만큼 크다. 줄리아 로버츠는 주인공 리즈 역을 맡아 8년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기존의 삶을 모두 뒤로 하고 이탈리아, 인도, 그리고 발리로 떠나 자신을 찾는 과정을 연기했다. 생활력 없이 이기적으로 사는 남편에게 맞춰 살며 그녀 자신을 잃은 리즈는 불행하고 슬펐다. 그녀의 연기는 나의 마음을 진동하게 할 만큼 진심이었다. 리즈는 영화 제목처럼 이탈리아에서는 자신을 잘 먹이고, 인도 아쉬람에서 명상을 하고, 발리에서는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그 발리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순간적으로 스쳤고 나는 비행기를 타기 4일 전, 9월 5일 발리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왜 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발리였다. 발리에서 명상과 요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런 곳이 발리 우붓에 있었다. 그동안 심심할 때, 마음의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보던 그 영화가 삶이 내게 주는 또 다른 신호였을까.

삶의 방향을 잃고 신에게 답을 달라고 애원하는 리즈, 출처: Eat, Pray, Love

발리 여행 준비를 하면서 나는 새로운 명상 책을 사고, 유튜브에서 삿구루 영상도 보며 여행의 목적에 맞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초등학교 6년 때부터 좋아하던 류시화 작가님을 떠올렸다. 그의 신간이 나오면 산문집이던, 시집이던 가리지 않고 구매해서 보던 나인데.., 그 사람은 지금 어디 갔나 싶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그의 전자책을 다운로드하면서도 2년 전 신간을 내가 구매했는지, 읽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동안 내가 알던 나는 정말 어디에 있는 건가.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고1 때 그의 책 내용 중 심취한 글이 있었다(정확한 기억이 아니라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인도행 비행기에서 창문 밖으로 정장을 입은 신사가 구름 위를 뛰어다니며 류시화 작가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더란다. 계속 구름을 뛰어다니며 자기를 따라오던 그 신사는 본인에게만 보이는 듯했다고 한다. 그는 류 작가님의 수호신이었고, 그동안 본인이 겪어야 했던 일들의 이유와 앞으로의 일을 얘기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도 나의 수호천사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글의 푹 빠져 살던 그때, 어딜 가다 그 얘기만 했었다. 그렇게 마음에 품었던 그 작가와 그 얘기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진 걸까.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저>


다시 그의 책을 펼친 순간, 나는 이 발리로 가야 하는 이미 정해진 어떤 수순을 밟은 느낌이었다. 삶이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날지 않는 매를 날게 하는 방법은 그 매가 앉아 있는 가지를 베어버리면 된다는 옛 우화가 그의 2년 책의 첫 글이었다(‘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 저, 2020). 삶이 나의 가지를 부러뜨려 더 이상 버틸 기운도 없게 만들고, 나아갈 방향을 잃은 채로 부유하게 만든 것 아닐까. 지금 내가 떠나야 하는 마지막 신호가 ‘류시화’라는 작가가 아닐까. 내가 발리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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