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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Sep 16. 2022

비워야 채울 수 있다면

마음의 창문을 열어라

발리에서 총 6박 7일을 보낼 예정이다. 첫 3일은 우붓이라는 작은 예술가 마을에서 요가와 명상을 하며 지낼 생각이었다. 그동안 여기서 지낼 곳은 원숭이 사원 옆에 있는 호텔이었다. 호텔이라고 하기에 숙소는 많이 낡고, 허름했다. 1박에 3만원 정도 하는 숙소이니 당연했다. 이곳을 예약한 이유는 요가반(Yogabarn)에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 접근성 때문이었다. 이곳에 와보니 외국인들도 스쿠터를 빌려 로컬처럼 다니기도 것을 보니 나도 도전해볼까 했지만, 걸어 다니는 것을 택했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느리게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이 숙소의 다른 장점은 발코니가 있다는 거였다. 사진으로 볼 때 발코니가 있어서 아침마다 그곳에서 명상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해 스텝이 말하길 절대로 발코니에 먹을 것을 두거나 물건을 두지 말라고 했다. 원숭이가 수시로 드나들기 때문에 집어간다는 것이었다. 창문도 열어두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을 보니 방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나보다. 도착하자마자 나의 작은 플랜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첫날밤, 숙소는 도로변에 있는 곳이라 새벽까지 상점들의 노랫소리, 오토바이 소리, 차 소리가 다 들어왔다. 결국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새벽에 30분마다 깨서 시계를 봤다. 외부의 소음 때문인지 나의 마음의 소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발리에서 첫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날이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미 정신도 들었고, 잠도 다 달아났지만 침대 위에 누워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원숭이 몇 마리들이 전깃줄을 타고 돌아다니고, 발코니 앞 작은 뜰에 앉아서 몸을 긁어대기도 한다. 정말 원숭이가 동네 고양이보다 더 자주 보인다. 오전 7시, 바로 앉아 아침 명상을 시작한다. 혹시나 발코니에서 명상을 하면 원숭이가 나에게 다가올까 봐 무서워, 침대에 앉아 베개를 세워 등받이 삼는다. 명상을 하면 외부를 차단하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고, 그때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여전히 내 마음은 불안하고, 가슴 중앙에 무엇인가 덩어리가 맺힌 느낌이 든다. 어서 이 느낌을 털어내고 싶지만, 쉽지 않다. 더 답답한 것은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이렇게라도 명상으로 조여 오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하루를 시작한다.


발리 우붓 숙소에서의 아침 풍경

식당으로 내려와 어제 주문한 오믈렛이 나올 동안 논밭을 바라보며 과일과 함께 커피를 마신다. 이 숙소는 전날 주문한 메뉴로 아침을 만들어 준다. 솔직히 음식은 맛이 없어 몇입 먹지 못했다. 어쩌면 요즘 식욕이 없는 나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곁들여 나오는 파인애플, 파파야, 수박 그리고 발리니스 커피는 아침을 달콤하게 시작하기에 충분했다. 멍하니 논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낀다. 지금 시기의 발리는 그늘 아래 있으면 선선하게 바람이 불어온다. 시원한 바람이다. 높은 건물도 없고, 사방이 트여있는 발리 건축 양식의 건물들은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바람을 불어다 준다. 삿구르가 몸을 정화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로 인도에 바람이 많이 부는 지방에서는 그저 바람의 자기 몸을 내 맡긴다고 했다. 그 바람에 자신을 정화시킨다고. 이 바람이 나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모두 정화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천천히 여유롭게 아침을 시작한다.


알록달록 달콤한 아침식사


요가반 앞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오토바이들로 빼곡했다. 마치 오토바이 판매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좁을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렸고, 데크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음악은 메인 건물 2층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2층은 개방형 수업공간으로, 벽이 없는 우리나라의 넓은 정자 같은 공간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춤을 접목한 요가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은 강사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요가 수업이 진행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요가와는 다르고 각 수업마다 콘셉트가 있다. 나는 1층에서 3회권을 결제하고, 오후에 내가 참가할 수업을 골랐다.


내가 참가한 수업은 Yin yoga라는 수업이다. Yin yoga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정적인 요가로, 특정 동작을 오래 유지하면서 깊은 호흡을 한다. 이 요가를 하면서 몸을 이완하고 스트레스를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수업은 요가강사 외에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2명과 함께 진행된다. 악기들을 이용해 특정 주파수를 만들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고, 노래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요가보다는 명상에 더 초점을 맞춘 수업으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었다. 수업은 오후 4시 30분에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 어둠이 깔리는 분위기에서 조용한 음악과 함께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공간은 꾀나 넓다. 그날 40~50명 정도의 사람들이 동시에 수업을 받았다.


요가반 2층 수업 장소, 누워서 찍은 사진

첫 동작은 이완된 상태로 누워 호흡에 집중한다. 강사에 설명에 맞춰 호흡에 집중하고, 내 쉴 때마다 스트레스가 나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완되고 편안해지는 감정에 집중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몸을 더 이완하고 열수록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은 더 많아진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시간이 좀 지나자 나는 강사의 설명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내 안에 무언가를 내보내기 바빴다. 어느 정도 고른 호흡을 계속하다 보니 가슴에 뭉처있던 그 덩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작은 그 틈새들로 미세한 바람이 조금씩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강사는 지금 나의 몸을 지구(earth, 땅인가?)가 지탱해주고 있다고 느껴보라고 했다. 제대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에 집중하면서 깊은 호흡을 계속 이어나갔다. 요가가 끝나갈 무렵 마음속 덩어리는 풀어진 채로 마음속에 남아 부유하고 있었고, 내 몸은 누군가 받쳐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한결 가벼워졌다. 무엇인가가 나를 계속 관통해 흘러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90분 동안 느린 호흡과 내 몸에 집중하며 수업은 끝났다.


수업이 끝나고 처음으로 그동안 느끼던 불안증이 가셨다. 물론 오래가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숙소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는 또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장 안정된 마음을 일시적으로라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느꼈고, 잘 모르겠지만 뭔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선은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기존의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을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들은 것 같다. Yin yoga는 나를 비워내는,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에 초점을 맞춘 수업 같았다. 변화를 찾아 이곳까지 왔다면, 내가 비워야 하고 새롭게 채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삿구루의 영상 중에 ‘수용성을 위한 20초 집중 훈련’이 있다. 그는 수용성을 가장 쉽게 설명한다.


‘방안에 햇빛을 들이고 싶다면, 큰 싸움은 필요하지 않다. 단지 창문을 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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