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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7. 2024

내 책상 위의 지민

내 딸 지민은 99년생이다.

선천성 희귀 염색체질환을 가지고 2.2킬로그램 불면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존재로 태어났다.

지금은 한국 나이로 26살이다.

인지는 돌 정도 수준이며 어설프게나마 걷는다. 

미소가 너무 예쁘고 보조개와 쌍꺼풀은 선천성 이쁨으로 장착했다.

염색체 9번 트랜스다. 치료 방법은 없고 학계에도 보고된 바가 없다.

그래서 그냥 희귀 염색체질환이다. 

희귀 염색체 환자가 가진 전반적인 증상은 면역력결핍, 성장지연, 언어장애, 발달장애 등이라고 했다.

2돌 무렵 급성패혈증으로 아주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인형처럼 쪼그만 생명체였던 내 딸 지민이, 벌써 26세가 되었다.


그 간 가족 간의 불화와 오해와 갈등들을 나열하고자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지금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희귀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이제는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내 딸 지민이를 이제 세상에 알리고 싶다.

얼마나 천사 같은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얼마나 무해한 생명체인지를....


성장 속도는 아직도 초등학생으로 보일 만큼 체구가 작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당뇨가 왔고 어릴 적 먹고 끊었던 뇌전증 약을 다시 복욕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절 내 딸 지민이는 병원에서 검사를 할 수가 없었다. 코에 긴 튜브를 넣는 순간 발작을 하며 거칠게 뺐다. 보호본능이 강해 낯선 이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뭔가를 몸에 찌르거나 주입하는 자체에 거칠게 반응한다. 다행이긴 하지만 아플 때는 정말 쉽지 않은 노릇이다. 지민이가 발작을 하자 간호사가 아주 예민하게 화를 냈다. 


"이러니 검사가 안되죠!"


나는 또 한 번 상처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하던 아이인데, 그나마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에게 이쁜 지민이로 통했는데.... 코로나 시절 우리 지민이는 병원에서 경계 대상 1호가 되어버렸다.


이가 아파도 전신 마취를 해야 하고 작은 검사 하나를 해도 전신 마취를 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요즘은 최대한 병원 검사를 자제하며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잘 돌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작가가 꿈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첫 아이인 우리 지민을 낳고부터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애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삶은 그렇게 녹녹지 않다.

처음에는 가족이 나를 죄인 취급했고 그다음은 사회가 우리를 경계했다.

우리 가족은 이 난관을 극복할 힘을 점점 잃어갔다.


그러나 나는 항상 세상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단순하고 무식하며 저돌적이었다.

아래로 두 동생을 건강하게 낳았다.


바로 아래 동생이 어릴 적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언니는 왜 말을 못 해? 왜 못 걸어? 왜 아기처럼 기어 다녀?"

"우리 언니는 세상에 하나뿐인 아주 귀한 존재라서 그래. 조금 늦는 것뿐이야."

"그럼 나중에 나중에는 언니랑 나랑 대화할 수 있어?"

"그럼."

"아! 언니랑 빨리 말하고 싶다. 그러면 나 속상한 거 언니한테 다 말해주고 나 괴롭히는 애들도 언니가 몽땅 혼내주고 할 텐데!"

"응, 우리 언니는 말이야, 하느님이 우리 가족에게 아주 귀하고 소중한 선물을 주셨는데, 우리가 아직 그 포장지를 여는 법을 몰라서 뜯어보지 못해서.... 우리 언니 목소리는 아마 천사처럼 고울 거야!"


지금도 나는 소중한 선물을 손상하지 않고 포장을 잘 뜯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언젠가 내가 포장지를 잘 벗겨내어 내 딸 지민이의 숨겨진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이제 정말 용기를 내어 우리 지민의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일상을 여기에 기록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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