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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May 09. 2024

신경질쟁이 로사

  또 엉켰다. 서영이가 껌을 붙여 떼려다가 빗 사이에 엉겨 붙어 풀어지지 않았다. 정말 짜증 난다. 쪼그만 서영이. 머리 뒷부분이 다 엉켜 큰 언니가 잘라주었다. 창피해서 학교도 가기 싫다. 이번 주말에는 서울로 공부하러 간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성당에 온다. 그런데 이 꼴이라니. 부모님은 왜 자꾸 서영이네와 한 울타리에서 사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서영이가 예쁘다면서, 우리 막내, 우리 막내 … 한다. 막내는 나인데.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죽은 듯이 있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 확실히 말하면 우리 집, 아니 우리 여섯 식구가 쓰는 방 두 칸 우리 집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밖은 시끌벅적하다. 언제나 그렇다. 서영이 떠들어대는 소리, 서영이 엄마 잔소리, 아이들 우는 소리, 이웃집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 대문간 아주머니 웃음소리 …. 나는 가만히 돌아누웠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천장 벽지 무늬가 깨끗하게 살아있다. 연두색과 분홍색이 촘촘하게 박힌 판화 같은 벽지다.      


  그때, 갑자기 마루문이 벌컥 열렸다.     


  “언니야!”     


  서영이다. 귀찮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왔는지 까만 두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괜히 심통이 났다.     


  “왜? 울보!”     


  그 소리에 서영이 갑자기 울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울보야! 입학식 날 온 동네 떠나가게 울었다며?”

  “내, 울보 아니다!”     


  앙칼진 목소리를 내지르며 서영은 휙 나가버린다. 벌써 눈물이 그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시 방문을 열었다.     


“엄마가 언니야 딸기 묵으러 오라 했는데, 안 묵는다 하께!”     


  혀를 쏙 내밀고는 나가버린다. 정말 얄밉다. 미워 죽겠다. 괜히 서영이 골려주려다가 맛난 딸기만 날린 셈이다. 아. 심심하다.     


  이 초록 대문 집 주위는 온통 지치고 힘든 사람들 투성이다. 그나마 학식 있고 배웠다는 사람도 아버지와 서영이 아버지뿐이다. 그래서 서류를 들고 서영이 아버지를 찾아오는 동네사람들도 있고 군 입대 문제로 우리 아버지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우리 초록 대문 집은 서울에서 대학생인 요한 오빠와 고등학생 마리아언니와 서영이 외사촌들 두 명이나 있다. 그래서인지 동네사람들은 초록 대문 집을 보고 학생집이라고도 한다. 학생들이 많고 책도 많고 관공서나 법원 대서방보다 더 해결이 잘 되는 집. 그렇게 부른다.       


  가만히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옆 벽면에 붙은 십자가 고상을 보았다. 외할아버지는 역사책에나 나오는 그 천주학쟁이였단다. 이 도시가 오래전에는 어촌마을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배만 타면 도망을 갈 수 있었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신자들이 마을을 둘러싼 바위산 한쪽에서 화강암을 채석해서 직접 날라 벽돌 하나하나 손수 올려 성당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느님은 인간을 이렇게 힘들게 할까? 외할아버지도 그렇게 재산 다 내놓고 성당 지었는데 집안이 망해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 힘들게 부둣가에서 손이 퉁퉁 붓도록 아귀 껍데기나 벗기고. 


  하느님을 제일 성실하게 믿고 따른 우리 외갓집이나 우리 집이 그럼 제일 부자로 살아야 되는 거 아닌가?      

  아버지도 퇴역 장교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군대에서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모르핀을 많이 맞는 바람에 겉으로만 멀쩡하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머니가 매일 돈을 번다. 아버지는 예비군 중대장 일을 한다. 가끔 예전 부하들이 군용 지프를 타고 찾아오기는 한다. 하느님이 왜 우리 집은 더 어렵게 만드는 걸까. 어머니는 항상 이유가 있다고 했다.      


  고난에는 하느님의 이유가 있다고 … 나는 모르겠다. 당장 내일 학교 매점에서 애들이랑 사 먹을 용돈이라도 넉넉했으면 좋겠다.      


  전축을 틀었다. 큰 언니가 첫 월급을 받아 장만한 것이다. 비틀스라고. 오빠는 가사를 전부 다 따라 부르는데 나는 아직 서툴다. 영어는 정말 어렵다. 그래도 오빠 말이 앞으로 영어를 모르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언니들처럼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취직이나 하는 인생은 절대 안 살 거다. 성당 언니들처럼 서울에 가서 대학교를 다닐 것이다. 프릴 달린 블라우스에 넓게 퍼지는 스커트를 입고 책을 아기처럼 껴안고는 예쁜 핸드백을 매고 명동이라는 데를 걸어 다닐 거다. 이 동네에는 여자 대학생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아니 이 집에 사는 여고생들은 전부 낮에는 학교 다니고 야간 고등학교를 다닌다. 끔찍하다.      


  문 밖에서 서영이 딸기를 씹으며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짜증 난다. 온몸을 길게 펼치며 방바닥에 들어붙어 기지개를 쭉 켰다. 


 그때 부엌문 쪽에서 서영이네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로사야! 공부하나?”     


  나는 엉덩이로 바닥을 밀며 부엌문을 열었다.     


  “이거 묵고 해라!”     


  하얀 사기 접시에 탐스러운 딸기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주머니는 피식 웃었다.     

  “서영이가 많이 까불면, 탁 뭐라 해라!”

  “아닙니더!”

  “공부하다가 저녁때 오너라. 밥 우리 집에서 묵자. 알았제?”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언니들도 오늘 다 늦게 오고 어머니도 늦을 것이다. 아버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속으로 좋았다. 혼자 밥 먹기는 정말 싫다. 하기야 이 집에 이사 오고부터 혼자 밥 먹는 날은 별로 없긴 했다. 부엌에서 그릇만 딸그락거려도 서영이가 귀신같이 방문을 박차고 달려와 밥상 위에 턱을 괴고 있었으니까.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서영이를 더 귀여워하고 말았다.     


  “참 기특 하제. 언니 혼자 밥 묵는다꼬 와서 있어주고. 속도 깊제, 쪼매난 기 ….” 


  부모님은 서영이가 뭘 해도 이뻐 죽는다. 내가 뭘 하면 잔소리만 하면서. 이제 겨우 일곱 살인 애에게 중학생인 내가 질투나 하다니. 앞니가 빠져 웃을 때 더 귀여운 건 사실이지만. 서영이네 아저씨가 늦게 아이들을 낳아 일곱 살 밖에 안 된 서영이를 입학시켰다. 부모님은 그것마저 너무 이쁜 눈치다.      


  다시 엎드려 딸기를 한 입 베어 물면서 수학 문제를 풀었다. 이차 방정식은 정말 짜증이 난다. 오빠 말로는 사차, 오차 방정식도 있다는데 …. 이 골치 아픈 걸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하지만 오빠처럼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가려면 전부 알아야 한다. 아! 천장을 보고 돌아누우니까 온통 방정식 기호가 눈에 아른거린다. 이번 학기 중간고사에는 꼭 십 등 안에 들어야 한다. 벌써 중학교 삼 학년. 도시에 있는 인문계 여고에 들어가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한다. 이학년 때는 … 겨우 십 오등 안에 들었는데 …. 그때 아버지는 내 성적표를 뚫어져라 살펴보셨다.      


  “공부를 하려면 확실히 하든지, 안 하려면 확실히 놀던지!”     


  야단맞고 종아리 맞는 거보다 더 무서운 말이었다. 삼 학년 때 십 등 아니 오 등 안에 들어 이 동네에는 아무도 안 다니는 인문계 여고 교복을 입고 등교할 것이다. 반드시. 그리고 오빠가 다니는 대학에 나도 들어갈 것이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지선이었다. 우리 반 일 등. 검은 다이얼 전화기 사이로 아이보리색 바탕이 눈에 들어온다.      


  “토요일에 학교 마치고 시립 도서관 안 갈래?”

  “그래.”

  “용돈 좀 챙겨 와라. 매점에서 계란 넣은 라면 사 먹자!”

  “매점 이모, 쫌 차별하더라. 고시생들한테는 계란 두 개씩이나 넣어주고.”

  “당연하지. 그 오빠야들이야, 고시 합격하모 바로 법관 되는데.”

  “흥. 우리 오빠야도 법대 거든!”

  “씰 데 없는 소리 고만하고, 용돈이나 두둑하게 받아 온나! 낼 학교서 보자!”     


  그리고는 전화벨이 띠---- 하며 끊어진다. 얄미울 정도로 야무진 지선이. 일 학년 때부터 지선이는 반에서 일 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지선이 말로는 내가 머리는 좋은데 끈기가 없단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귀에 못이 안도록 들었던 말이라,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지선이는 대학에서 정치 외교학을 공부할 거라 했다. 외교관이나 언론인이 되는 것이 꿈이란다. 그래야 외국에 자주 나갈 수 있다나 뭐라나. 대학에 가서도 유학까지 결심을 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아이다. 어떻게 인생을 그렇게 지도 만들듯이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왜 사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막연하게 다른 여자들처럼 다른 언니들처럼 살기 싫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내 인생에 대해 정해둔 것이 없는데.     


  쾅.     


  “언니야! 이거 엄마가 ….”     


  그때였다. 방문이 부서질 듯 열리더니 서영이 뭔가를 들고 들어오다 문턱에 걸려 확 넘어졌다. 순간 바닥에 물컹한 것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멸치젓갈. 생선만 한 생멸치 삭은 내장이 온 방에 나뒹굴었다. 오물 같은 거무퉤퉤한 색에 냄새까지 …. 이불이며 배게며 수학책과 공책까지 ….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 나가!      

  결국 폭발했다. 서영이는 자기가 더 놀랬는지 울상이 돼서 도망가 버렸다.

  김서영.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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