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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Jul 24. 2024

어둠을 밝히는 소녀

 

  숨 쉬기가 힘들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버스 안 공기는 더 이상 들이마실 산소 절대 부족이다. 창밖은 깜깜한 어둠이고 창안은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차서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졸음이 쏟아졌다. 버스 안내양은 뒷문에 붙어 서서 아까부터 졸고 있었다. 버스 안에 가득 찬 야간 학생들도 손잡이를 겨우 붙들고 서서 절반은 졸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매달리면서 다른 손으로 영어 사전을 들고서 외고 있었다. 늦은 밤 버스 안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그때,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졸고 서 있던 학생들이 무더기로 앞으로 막 쏟아지면서 넘어질 듯 아찔했다. 짧은 비명소리들. 나도 겨우 몸을 추스르며 버티고 서 있었다. 뒷문이 열리면서 급하게 사내 둘이 뛰어 들어온다. 졸던 버스 안내양이 언제 깼는지 어둠 속을 잠시 훑어보더니 급하게 문을 닫았다.   

   

  “오-라이!”     


  버스가 다시 움직였다. 어두운 창 밖에 뭔가 검은 그림자들이 꿈틀거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뭔가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버스 안에 들어온 사내들은 벌써 교복 입은 학생들 틈에 섞여 숨어버렸다.      


  어디쯤일까. 자동차 불빛이 번쩍이는 걸 보니 마산 수출자유지역 앞인가 보았다. 고단한 몸에 갑자기 긴장이 풀렸다. 낮에는 여기서 일하고 저녁에 창원군에 있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닌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기가 어렵다. 아직도 시골집에 있었으면 지금쯤 아마 언니처럼 시집가서 애가 두셋 되었을 거고 아니면 골방에서 새끼나 꼬고 있었을 거다. 다행히 마산 고모 댁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이런 생각들을 꼬리 물고 있는데 버스가 다시 정차했다. 자동차 불빛들이 눈부시게 발광했다. 나는 교복 소맷자락을 빼서 창에 낀 성에를 닦아냈다. 전경들이다. 무섭다. 이 늦은 밤에 전경들이 수출자유지역 입구에 진을 치고 깔려 있다. 검열이다. 버스 앞문이 열리고 얼굴에 보호막을 쓴 전경 두 명이 올라탔다.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학생들 안탔나?”     


  버스 안은 온통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생들은 서로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이 시간에는 야간 고등학생들 뿐이라요!”     


  버스 기사가 쉰 목소리로 가래 뱉듯이 내뱉었다. 전경들은 고개만 쭉 빼서 두리번거리더니 내린다. 버스는 다시 움직였다. 까만 교복 입은 학생들 사이에 숨어 있던 사내 둘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섰다. 키가 컸다. 버스 기사 쪽을 보면서 고개를 숙이면서 눈인사를 했다.     


  “고등학생들이 교복도 안 입고 잘- 한다!”     


  하면서 피식 웃는 버스 기사. 다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두 사내. 버스 안내양도 자꾸만 그 사내 둘을 흘금흘금 쳐다보면서 배시시 웃는다. 그중에 키가 더 큰 사내가 뒤를 돌아보는데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나는 고개를 들어 곁눈질로 살짝 다시 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 놀라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 덥다. 온몸에 열이 확 달라 올랐다.     


  “희덕아! 니 오데 아프나? 얼굴이 벌-겋다!”     


  재순이가 눈치도 없이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이런 상황이면 집까지 고개도 들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막 부끄럽고 겁도 나고 무섭고, 가슴까지 콩닥거린다. 왜일까. 그래도 부럽다. 대학생들 같은데. 아마 시내 끝에 있는 대학교 학생들일 거다. 데모꾼들인가. 좋은 부모 만나서 대학까지 다니면서 데모는 무슨. 우리 같은 공순이들이야 당장에 밥줄 끊기지 않으려고 한다지만, 대학생들이 하는 데모는 이해가 안 된다. 부모가 주는 학비 받아서 따뜻한 밥 먹고 공부하다가 졸업하면 좋은 취직자리가 널렸는데 왜 저러는지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된다. 오늘도 낮에 작업반장이 다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수출자유지역 안에 있는 공장에서는 노조도 안 되고 파업도 안 된다고. 자유무역지역 안에 있는 일본인 사장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노조에 가입하는 순간 사표 쓰라고.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 말은 달랐다. 경제는 발전했는데 정치는 구한말이라고. 그것도 다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열여덟 살 밖에 안 된 내 인생은 벌써 온 집안 가장 노릇을 한 지 오래다. 손가락 마디마디 대나무 마디처럼 갈수록 굵어지는 아버지 손, 귀머거리 어머니, 야밤에 보쌈당해 열여섯에 시집간 언니와 절름발이 형부, 아래로 다섯 명 동생들. 이게 내 현실이다. 그나마 고모가 마산에 살고 계시니 이렇게 일하면서 학교라도 다니는 거다. 시골 마을에 다른 또래 계집애들은 절반 이상이 벌써 시집을 가거나 부산이나 서울에 취직한다고 올라갔다. 그러다가 잘못 풀린 애들은 술집으로 흘러 들어갔다. 희자와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마산은 서울이나 부산만큼은 아니어도 알차게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 이번 달까지 지금 다니는 공장에서 일하고 다음 달부터는 친구 말숙이가 일하는 공장으로 옮길 거다. 적금 부은 거랑 퇴직금이랑 모아서 시골에 보내서 암소를 한 마리 사 드릴 거다. 할아버지가 탕해 남의 손에 넘어간 그 많던 논밭을 쳐다보며 매일 아버지는 한숨을 내쉰다. 오늘도 남의 땅이 된 논두렁을 지나 남의 논 경작하러 나가셨을 거다. 우리 논이라야 손바닥 만 한 것뿐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한 번도 할아버지 원망을 한 적이 없다. 고모는 한 번씩 나를 앉혀놓고 하소연을 늘어놓을 때가 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얼마나 재주가 많았는지, 또 얼마나 방탕했는지도. 덕분에 우리 아버지만 늘 고생이라고. 남의 집 논은 경작 해도 남의 집 소라도 더 이상 빌리지 않게 우리 소를 꼭 사 드릴 거다.     


  “공동탁주 양조장, 나온나!”     


  재순이가 인사를 하며 내렸다. 이제 학생들이 제법 많이 내렸다. 다시 버스가 출발했다.      


  “남향 탕 나온나! 그다음은 교도소 입구다!”     


  버스 안내양이 찢어지는 소리로 외쳤다. 나는 안내양이 서 있는 문 옆으로 갔다. 그런데 아까 그 키 큰 대학생이 내 뒤에 따라 섰다. 여기 내리나? 어디 살지? 갑자기 겁도 나고 호기심도 발동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바로 골목만 들어가면 두 번째 대문집이 우리 고모 집이다. 첫 번째 검은 대문 집, 그다음 초록 대문 집. 나는 벌써부터 뛸 자세를 취했다. 버스 문이 열렸다. 나는 얼른 내려 뛰려고 했다. 그때였다.     


  “여기 사니?”     


  돌아보니까 그 대학생이었다. 맑게 이를 드러내며 웃고 서 있다. 정류장 가로등에 오뚝한 콧날이 더 오뚝해 보였다.     


  “아, 예!”

  “골목 안?”

  “예, 초록 …….”

  “아! 김 소장님 댁?”

  “예!”

  “난, 여기다!”     


  그는 골목 입구‘포항 집’ 간판을 가리켰다. 아! 고모가 말한 그 대학생. 고모 말에 의하면 포항 댁이 복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배다른 아들이 둘인데 큰 아들이 얼굴도 잘나고 머리도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도시 끝에 있는 대학교 법대생인데 장학금 받고 다닌다고. 그 사람이 이 사람인가 보았다. 잘 생긴 정도가 아니라 완전 텔레비전에 나오는 탤런트 같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대충 인사하고는 골목 안으로 내달렸다. 교복 치마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한 손에 책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정신없이 뛰었다. 초록 대문 집. 휴- 그제야 숨을 고르고 섰다. 골목 안은 캄캄했다. 초록 대문 집 옆으로 길게 난 골목들 사이에 집이 몇 채 더 있었다. 더 지나면 빨래터고 더 지나면 밭이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바람이 불고 맞은편 무당집 대문 옆에 꽂힌 대나무가 스스스- 바람에 소리를 냈다. 아. 뒷목이 뻣뻣했다.     


  “고모, 고모!”


 녹슨 대문 틈으로 작은 소리로 외쳐댔다. 제발, 빨리 좀 나오기를. 그때 식당방 불이 켜지더니 신발 끄는 소리가 났다.     


  “인자 오나?”     


  희자였다. 졸린 눈을 비벼대며 문을 열어주었다. 집 안은 캄캄했다.     


  “니, 오늘 학교 안 갔나?”     


  어둠 속에서 돌아보면서 나를 보더니 이를 하얗게 드러내면서 웃는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나는 부엌 아궁이 연탄불부터 확인했다. 저녁에 고모가 갈아준 모양이었다. 밤새 잘 타겠다. 아랫목에는 밥도 한 그릇 묻어 놨다. 희자가 한 모양이다. 희자는 아까부터 내 눈치만 흘금흘금 보더니 부엌으로 뛰어나간다.     


  “저녁 차리께!”     


   희자 하는 꼴을 보아하니 또 학교 안 가고 결석한 모양이었다. 속상하다, 정말. 아버지는 여자애들 가방끈 길어봤자 팔자만 사납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고등학교는 여자가 가서 뭐 하냐는 아버지를 고모가 겨우 설득해서 야간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따도록 허락받아 놓은 건데 도대체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나하고는 머리통 속이 완전 반대인 동생이다. 대학을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낮에는 공장 다니고 밤에 학교 다니겠다는 거니까 결국 아버지도 큰 명분이 없어 반대하지 않으신 거다. 그런데 희자는 자꾸만 내 의지를 꺾으려 한다. 공장에서 하루 종일 기계 앞에서 기계처럼 단순 작업만 하다가 기계한테 완전히 기 다 뺏기고 파김치가 돼서 퇴근하면 춥고 배고프고 딱 죽을 맛이다. 그런 꼴로 바람 숭숭 들어오는 교실 나무 책상에 앉아 있으면, 어떨 때는 무슨 호강을 받을 라고 이렇게 억척을 떠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가도 교실에 나와 같은 처지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고 그래도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완전히 내가 다른 존재가 된 느낌이다. 그 좋은 느낌 때문에 춥고 배고프고 졸음이 쏟아져도 참을 수 있다. 내가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피로를 단번에 몰아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동생 희자는 정말 나와는 정반대인가 보았다. 교실에 앉아있기가 죽기보다 더 싫다고 했다. 그래도 언니라고 내가 무서워 그나마 가끔 내 눈을 피해 결석도 하지만 이 년이나 꼬박꼬박 다니고 있는 거다.      


  “잡채, 묵어 봐라, 언니야!”     


  동그란 쇠판으로 된 밥상 위에 김치, 잡채, 된장찌개, 계란 프라이까지 푸짐하다. 희자는 구들에 묻어둔 밥그릇을 꺼내 빈 그릇 두 개에다가 주걱으로 퍼 담았다.     


  “저녁 안 묵었나?”

  “같이 묵을라꼬 기다맀지!”     


  그래도 화가 난 척했다. 이참에 희자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 한다. 한참 동안 후루룩 쩝쩝하는 소리만 계속되었다. 허기가 져서 일단 먹고 봐야 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그제야 내 눈에 갑자기 잡채 그릇이 보였다.     


  “이거 오데서 났노?”

  “고모부 손님 오시가, 고모가 우리 묵으라꼬!”

  “이 밥도, 고모가 했나?”

  “뭐, 고모가 조카들한테 그 정도도 몬 해 주나?”     


  이제는 정말 화가 치밀었다. 나는 숟가락을 탁 놓고 밥상을 밀었다.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 희자는 다시 내 눈치를 본다.     


  “니, 촌에 가서 하루 종일 밭고랑이나 매면서 평생 갈래? 언니 맹쿠로 처녀 보쌈이라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나? 어이?”

  “잘 몬 했다!”

  “고모 집도 오데 넉넉하나? 고모는 출가외인이다! 그런데도 조카들 끼고 산다꼬 뒷말 없는 줄 아나? 고모부가 아무도 입도 뻥긋 몬하구로 하니까 이래 살고 있는 기다! 알것나?”

  “안다꼬!”

  “아는 기 맨날 학교나 빠지고 고모 신세 질 궁리나 하나?”

  “알았다! 자꾸 큰소리 내모 다 깬다!”     


  성이 덜 가라앉아 가슴이 두근댔다. 이럴 때는 정말 희자를 정신 차릴 만큼 두들겨 패 주고 싶다. 희자는 자꾸만 잡채 그릇을 내 쪽으로 밀면서 살살 웃어댄다. 아무리 그래도 밉지 않다. 애교도 많고 손재주도 많은 희자. 키도 나보다 훨씬 크다. 아버지는 늘 가시나가 야무딱지지 못하고 선머슴 같다고 한탄하지만 부끄러움 많고 내성적인 나보다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희자가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덜렁대고 실수투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예민하고 꼼꼼한 내 성격이 나도 가끔은 싫을 때가 많다. 너무 다른 성격이라 항상 어른들에게 “언니 좀 배워라”하면서 비교당하고 살아왔지만 그래도 희자는 한 번도 설움을 탄 적이 없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힘든 생활을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도 동생 희자가 항상 옆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혼자였다면 너무 힘들고 지쳐서 벌써 도망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니, 진짜 학교 안 갈 끼가?”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내보았다.     


  “갈 끼다!”     


  희자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뱉었다.     


  “내도 바보 아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간호학원 다니가꼬 간호사 할 끼다! 돈 벌어서 언니야 대학교 등록금 내가 델 끼다!”

  “가시나, 미쳤나? 내가 무슨 대학이고?”

  “와? 지금 언니가 전교 1등 아이가?”

  “야간고등학교서 전교 1등 하모 뭐하노?”

  “우리 담임이 언니 정도면 대학 가고도 남는다 캤다!”

  “지랄 고만해라! 기훈이, 기철이, 기태. 동생들 대학 안 보낼 끼가?”

  “아! 새끼들!”     


  갑자기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가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누워 버리는 희자. 이 모습을 아버지가 봤으면 체신 머리 없다고 당장 머리채 뽑혔을 건데. 그런데 나도 가끔은 희자처럼 저렇게 좀 자유롭게 벌렁 나자빠지고 싶을 때가 많다.     


  “똑바로 들어라! 이번 달까지만 다니고 양숙이 다니는 공장에 입사할 끼다. 퇴직금 하고 적금 든 거 털어서 다음 달에는 무조건 아버지한테 황소 한 마리 사 보낼끼다!”

  “그라모 나도 같이 옮기모 안 되나?”

  “까불지 마라!”

  “언니야! 내 고마 학교 때리 치아고 공장만 다니모 안되나?”

  “그라모 바로 짐 싸라! 촌에 내리 가서 어무이 농사일 거들어라!”

  “싫다!”     


  희자는 기가 푹 죽었다. 나는 일부러 더 화난 척 눈을 흘겨보았다.     


  “알았다, 고마!”

  “기철이 이번에도 군 전체에서 일 등 했단다! 대학은 기철이가 가야지!”

  “참말이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나와 우물가에서 그릇을 씻었다. 사람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씻었다. 멀리서 통금 사이렌이 울렸다. 대충 정리하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희자는 벌서 곯아떨어져 코를 드르렁 거리며 자고 있었다. 세상에서 우리 희자가 제일 태평스럽다. 나는 가끔 그런 희자가 많이 부럽다.     


  책상 위에 놓인 라디오를 조심스럽게 켰다. 자정이 넘어 가방 정리를 하고 과목별 숙제를 하려고 책을 펼쳤다. 그때 통금 사이렌이 온 밤을 뒤흔들며 울려 퍼진다. 오늘은 영어 작문 숙제와 수학 미분 숙제가 있다. 어려웠다. 그래도 이 시간이 하루 중 제일 좋다. 공장에서 하루 종일 똑같은 나사만 쪼고 앉아 있으면 어느 순간 내가 사라진다. 거대한 기계 부품이 된 것만 같았다. 하찮은 부품 쪼가리 …. 


  그런데 이렇게 늦은 밤 숙제를 하고 있으면 내가 마치 부잣집 여고생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일 해 가야 할 숙제가 있고 안 하면 선생님에게 혼도 나고 …. 이런 따위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주간에 학교를 다니는 애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다. 미로 같은 수학 문제를 풀고 알 수도 없는 기호들로 가득 찬 영단어를 보면서 그런 책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을 느끼고 사는지 ….     


  늦은 밤이다. 마당에 셰리가 가끔 컹컹- 거린다. 다들 잠든 고요한 이 밤. 라디오에서는 에띠뜨 삐아쁘 샹송이 천천히 울려 퍼졌다. 온 방안이 샹송으로 물들고 있다. 아 … 이 밤이 영원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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