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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Jul 24. 2024

초록대문집 여름

  영혼을 온통 다 두고 와 버린 초록 대문 집.


  낡고 오래된 그 철 대문 초록 대문 집. 작고 여린 여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 앉아 목이 쉬게 울어대고 있었다. 혼자 남았다고, 다 떠나 버리고 아무도 없다고 그렇게 울어만 댔다.     


  아이가. 울고. 있었다.          



  번쩍 눈을 떴다. 가위 눌린 아이처럼 서영은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또 그 꿈이다. 같은 장소 같은 느낌 똑같은 아이의 표정. 서영은 멍하게 한참을 천장만 바라보았다. 피곤하거나 지쳐 있을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똑같은 그 꿈. 처음 이 꿈을 꾼 것은 초록 대문 집에서 이사한 첫 날 밤이었다. 초록 대문 집을 둘러싼 오래된 주택 몇 채를 부동산 투기꾼이 헐값에 사들였다. 대학교 삼학년 봄이었다. 그 때까지도 서영이네 가족은 초록 대문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 동네를 가장 마지막으로 떠난 집이 서영이네였다. 그 후에도 가끔 서영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같은 꿈을 꾸곤 했다. 나이가 들어 이젠 장거리 여행이 힘든 걸까, 아니면 이 우울증이 더 깊어간다는 의미일까. 서영은 꼬리를 무는 잡념들을 즐기면서 상념으로 기억으로 추억으로 그렇게 이어가 보았다. 끝내 긴 하품이 상념을 한 순간에 몰아내버린다.     


  팔을 뻗어 협탁에 놓인 핸드폰을 집었다. 오후 네 시 이 분. 스물 두 시간. 오래도 잤다. 늦은 저녁 공항에 도착해서 곧장 집으로 와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역시 시차는 고질병인 불면증을 없애는 데 특효약이다. 핸드폰 수신함은 불필요한 스팸문자로 가득 차 있었다. 서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폰을 이불 위로 던지듯 놓았다.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삼 년 만이었다. 딱 삼 년. 아이들 얼굴을 못 본 지가 삼 년이 지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마음 먹고 한 달이나 집을 비웠다. 그보다 삼 년 만에 휴가라는 편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를 일이다. 서영이 삼 년 동안 단 하루도 글 쓰는 노동을 쉰 날은 없었다. 처음부터 전업 작가가 되지는 못했다. 결혼 십 년 만에 이혼하고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 계약직 직원부터 계약직 강사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아이들과 반듯하게 자리 잡으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손대는 것마다 손해를 보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사기꾼 아니면 협잡꾼들이었다. 서영은 지친 하루 일과가 끝나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대학 시절 자신이 염원했던 길은 작가였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모든 것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래도 서영은 늘 아이들을 제 손으로 키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결국 이혼 십 년 만에 빚더미에 앉았다. 길이 없었다. 길을 찾을수록 더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 때 서영이 생각한 것은 단 한 가지 뿐 이었다.  

    

  다시 글을 쓰자. 더 늦기 전에. 


  서영은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면서도 낮에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아이들도 십대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바닥나는 통장을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 지나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장편 소설 공모에 당선된 것이다. 서영은 처음에 또 사기꾼이다 싶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서영은 드디어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 나왔다. 소설이 책으로 발행되면서 인세가 들어왔고 출판사에서는 두 번째 작품을 원했다. 그 때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망설임도 잠시였다. 어차피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인생, 언제 해고당할 지 알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 때부터 서영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하루 열 시간 이상의 정신노동을 했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하루에 열 시간이 훨씬 넘었다. 그러기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산책이나 독서는 제외된 시간이었다. 글에 집중하는 동안 서영은 빚더미에서 해방되었고 아이들은 원하는 삶을 위해 조금씩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오 년 전 아이들은 유학길에 올랐고 아이들 얼굴을 보지 못한 지가 삼 년이 지났다. 그 삼 년 동안 서영은 단 하루도 글을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 정신적인 탈출구로 쓴 글이 밥벌이가 되었고 이제는 스스로가 만든 감옥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또 얼마를 잤을까. 이불 위에 던져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서영은 잠결에 더듬거리며 폰을 찾았다.      

  - 네.

  - 김 작가? 한국이요?

  - 네.

  - 잘 다녀왔어요?

  - 네.

  - 좀, 어때요?

  - 네.     


  출판사 편집장이었다. 그는 끝도 없이 물어댔고 서영은 답도 없는‘네’만을 반복했다. 피식 웃는 소리가 폰에서 들렸다. 서영도 누운 채 한쪽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알 수 없는 미소가 자꾸만 지어졌다. 그만 마주하면 이상하게 자꾸만 미소가 번져간다.     


  - 한 잔 어때요?


  그 소리에 액정화면을 다시 쳐다보니 저녁이었다. 약속을 잡고 그제야 천천히 몸을 끌다시피 일으켜 욕실로 갔다. 샤워기로 정수리부터 세게 물을 분사시켰다. 그래도 정신이 덜 차려진다. 다행이었다. 텅 빈 집에 혼자 돌아와 긴 잠에서 깨서 혼자 먹는 식사란, 정말이지 끝도 없는 사막 위를 맨 발로 걷는 것만큼이나 공허하고 난감한 일이다. 참 다행이다. 그런 상황에서 번번이 구해주는 그가 점점 마음에 들어가니 곤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튼 다행이다. 서영은 수건을 두르고 나오면서 또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술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는 먼저 와 마른 소주를 한 잔 하고 있었다. 서영이 들어서자 그가 한 팔을 들어보였다. 한 달 사이 얼굴이 조금 수척해보였다. 잘 다듬은 턱수염과 자연스럽게 넘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소재의 밝은 색 재킷과 썩 잘 어울렸다. 그 안에 적당히 바쳐 입은 블루 셔츠. 물이 잘 빠진 청바지에 캐주얼 가죽 신발. 어느 하나 두드러짐 없이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진 모습, 누가 봐도 근사한 오십 대 중년이다. 그런 그가, 카키색 티셔츠에 편한 면 소재 헐렁한 바지를 입고 단화를 신고서 걸어오는 중년의 서영을 눈부시게 쳐다보고 있었다.      


  - 오늘은 내 맘대로 주문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산물 한 접시가 나왔다. 깐 소라며 얇게 저민 전복에 개불까지 얌전하게 썰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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