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텔라의 나 가거든을 듣다.
우두커니.
깊은 밤, 흘러나오는 이 간절함에 이끌려 모처럼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오래전 그 명성황후의 음악이 아직도 불러지고 있지 않은가?
내 첫 시나리오는 덕혜옹주 이야기였다. 아니 엄밀하게 따지면 덕혜옹주의 딸 마사에(정혜)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그걸 보물처럼 안고 살았다. 한참 후에 덕혜옹주 영화가 타인에 의해 나왔다. 나는 펜을 꺾었다.
그다음 시나리오는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였다. 쓰고 고치고 또 고쳐 썼다.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너무 화가 나서 주최 측에 전화를 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아주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한다. 한참 후에 귀향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내가 쓴 시나리오와는 접근부터가 달랐다. 나는 분노했다. 다행히 그 시나리오는 작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그러나 묻혔다.
지금 이 시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아리랑이 연주되고 있고 한국인이 당당하게 존재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좌절과 실망 속에 날개가 다 꺾인 채 일어설 힘조차 이제 없다.
덕혜옹주의 딸 정혜 이야기와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를 당당하게 쓰던 오래전 나는, 지금 이 늦은 시간, 포레스텔라의 명성황후 영화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우두커니, 정말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내가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쓴다면, 다시 패배하지 않을까, 다시 분노하지 않을까.
내 어설픈 객기로 지금까지 가족들을 힘들게 했는데, 이제 또 실패하면 나를 믿는 가족들과 나는....
이 깊은 마음에 있는 열정을 끊어낼 방법이 없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바보처럼, 다시 우두커니, 이 시간 속에 멈춰 서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