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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Jan 30. 2018

동경했던 사람과 일한다는 것

내가 '싸인해 주세요' 라고 말했던-

나는 일찍부터 그의 '팬'이었다.


친구가 내 사진에다 받아다 준 싸인을 따로 보관해 두고, 함께 적어 준 문구에 감격해서 내 시나리오에 대사로 쓰기도 했다.

막연히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만 어슬렁하다가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고 몇 년 후, 그의 다음 영화에 작가로 참여하게 됐다. 그와 함께 일하기로 하고, 나는 당시 소속 돼 있던 드라마 제작사를 관두며 이렇게 말했다.


"저, 영화하러 갑니다."


그래놓고 막상 영화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지지리 고생하다가 십년을 방황하며 취직 할 나이도 훌쩍 지나버렸다는 어느 작가의 이야기냐....아니다. 나는 정말로 작품을 함께 하게 됐고, 차근차근한 수순대로 영화가 개봉하면서, 각본가로 크레딧에도 올랐다.

영화는 흥행이랄 건 없지만 손익분기를 넘어 다행히 손해는 안 끼칠 정도는 됐고, 나는 촬영 현장까지 가서 수정작업을 할 정도로 작업을 오래해서 그런지 오히려 별다른 감흥은 없었는데, 명동역의 전광판에 뜬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것을 발견하고 인증샷을 찍으면서, 아- 나도 좋긴 좋은가 보다 했다.


작가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작가들은 이런저런 제작사들을 거치며 일을 하게 되는데, 데뷔 전에 만날 수 있는 이런저런 제작사라는 게, 제작 경험이나 능력이 부족한 회사들이 많다 보니 헤매고 엎어지고가 부지기 수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헛도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기 까지, '시나리오가 좋은 것' 말고도 여러가지가 중요하겠지만, 경험 많고 입지 있는 제작사의 그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두는 작품이거나 주목 받고 있는 감독의 차기작이거나 하면 좋다. 게다가 전작이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다면 더더욱 좋다.

바로 그런 사람의 차기작에 참여할 수 있어서, 내가 그때 작가가 됐을 수 있다. 아니었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렸거나, 지금 여기서 다르게 얘기를 하고 있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작업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인사를 하는 것, 연락처를 주고 받는 것, 친구가 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어서, 동등한 작업자로 냉정하게 다시보기가 필요하다. 근데 그게 잘 안 됐다. 회사(돈을 주는 ‘갑’)와 신인작가(용역을 제공하는 ‘을’)로 오래 일하는 동안 서로에게 자주 섭섭했고 서서히 실망해갔다.

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깎아먹은 권리에 자주 억울했고, 회사는 변질된 팬심이 내내 괘씸했다. 하다못해 일이라도 잘됐으면 좋았을 텐데, (‘갑과을’이 잘 지내기 위한 제일 쉽고 유일한 방법은,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이다.) 회사가 무리하게 자체투자를 하면서 상황은 가중됐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라는 남의 영화 유행어가 우리 사이에 그럭저럭 잘 맞아떨어졌다. (진짜로 이렇게 말했다는 건 아니다. 전체적인 '톤앤 매너'가 말이다.) 즉-서로가 동료가 되지 못 했다.


오래 전 사람을 만나면 기분과 마음이 기억을 따라 재생된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기분과 마음은 그때와 같아지는 것이다. 때로는 말투와 걸음걸이까지 그때로 돌아간다. 그래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래서 다시 만나지 않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좋고 나쁜 것과는 다르다.

이제는 안부를 묻는 사이로 남아있다. 다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극복해야 할 문제 같은 것이 아니다. 그냥 지나 간 일이다. 그래도 함께 일하게 된 것은, 내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습하는 말 같은데 그런 게 아니다. 정말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아했던 사람, 만나 보고 싶던 사람, 만나면 얼마나 신기할까 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과 아는 사이가 되는 것과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은 다르겠지만, 그럴 기회가 온다면, 그래도 망설이지 말고 함께 일 해 보라고 하고 싶다. 


그래서 또 누구와 함께 일 하고싶냐고 한다면......글쎄, 일 보다도... 요새 인스타에 뜬 다는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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