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NA May 16. 2020

어느 재수 없는 금요일의 기록

정말 재수가 없는 날이었습니다.

어금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쇠 못이 박혀있다. 정확히 말하면 못은 아닌 작은 쇠붙이. 임플란트를 박는 게 이런 것인가? 나는 손으로 쇠붙이를 움직여 보았고, 건드리자마자 잇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맞은편에 있던 엄마에게 "어마, 나 피나?"라고 물음과 동시에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찔한 통증이 전달되었다. 피는 선명한 빨간색이었다.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58분. 해가 길어져서 그런지 창문 너머로 날이 밝고 있었다. 서둘러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이가 빠지는 꿈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흉몽이라고 언젠가 들은 기억에 이가 빠지는 꿈을 꾸면 무조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엄마, 집에 별일 없어?"

"응, 없는데. 왜? 또 꿈꿨어?"

"어. 이 빠져서 잇몸에서 피나는 꿈 꿨는데, 꿈에서 엄마도 나왔고 그 통증이 진짜 꿈에서 생생하게 느껴졌어."

"너 또 이 꽉 물고 잔 거 아니야? 너 잘 때 이 갈지?"

"응.... 이를 꽉 물고 자서 그런가?"

"개꿈일 것 같은데..."


개꿈일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이 묘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안부를 확인하니 마음이 좀 나아질 무렵 엄마가 다소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화 들어온다. 엄마가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 나는 이 빠지는 꿈 해몽을 검색했다. 정확하게는 이가 빠진 것이 아니라 임플란트 같은 철심이 빠지는 꿈이라 해몽이 조금 난해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가 빠지거나 잇몸에서 피가 나는 꿈은 죄다 흉몽이었다. 가족에게 나쁜 일이 생기거나 재물을 잃거나 건강상 해가 올 수 있다는 뜻을 갖는다고 했다. 기분이 나빴다.


이내 전화기 벨이 울리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네가 그 꿈꿔서 그런가? 수정이 전화 왔는데 (수정이는 내 동생의 부인, 즉 올케), 영석(남동생)이 회사, 코로나 때문에 문 닫을지도 모른다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연락 자주 안 하고 사는 동기간이라지만 그래도 혈육은 혈육인지라 항상 마음이 쓰이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두 번째 조카가 태어나면서 세 식구를 유일하게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다. 그런 동생의 일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니 좋은 소식은 절대 아니었다. 가슴 한 편이 무거워졌다.


더불어 엄마의 목소리도 한층 어두워졌다.

"그러게 부모가 공부하라고 할 때 공부했으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잖아."


짜증 섞인 듯한 탄식을 내뱉는 엄마의 마음은 오죽하랴. 생각하니 더 마음이 쓰였다. 가까이 살면 자주 신경이라도 쓸 텐데 머나먼 미국까지 나와 살고 있는 딸로서 엄마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슬프지만 내가 선택한 결정인 것을...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걱정하지 말라며 어서 더 자라고 전화를 끊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걱정이 묻어 나왔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 꿈 때문인가... 내가 꿈을 꿔서 나쁜 소식이 일어난 건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과 함께 '왜 그런 꿈은 꿔서 대체 이 난리인가?' 하는 난데없는 꿈을 원망했다. 행여나 좋은 소식을 나타내는 길몽의 풀이는 없나 하고 다시 꿈해몽 풀이를 읽어보았지만 딱히 알 수 없는 풀이에 마음만 더 답답해졌다.



어느새 잠이 들었고 눈 떠보니 오전 10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새벽에 잠을 설친 탓에 10시가 되도록 늦잠을 퍼 잤다. 한심한 마음과 함께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근래 만나기 시작한 J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주 반 전쯤, 온라인 데이팅 앱에서 J를 만났다. 혼자 노는 것 그렇게 좋아하는 나도 두 달쯤 되니 다른 사람들이랑도 놀고 싶어 졌다. 그게 온라인 데이팅 앱을 켠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게 J와 매치가 되었고, 우리는 공원에서 첫 데이트를 했다.


주변 커피숍, 레스토랑은 모두 문을 닫았기에 생판 모르는 두 남녀가 만날 장소는 야외뿐이었고 마침 뉴욕에 넘쳐나는 것은 공원이었다. 어느 날씨가 끝내주게 좋은 토요일 오후에 우리는 공원에서 만났다. 첫 만남은 마스크로 얼굴을 반 가린 채 두 시간 동안 앉아있을 세 없이 미친 듯이 걸으며 대화를 했다는 것이 여느 첫 데이트와 다소 다른 점이었지만, 그간 사람과의 접촉에 굶주려하던 나에게 그 자체로서 나쁘지 않은 데이트였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을 것도 없었다. 소의 말하는 그 "필"이라는 게 통하지 않았다. 어렸을 땐 뭐만 해도 그렇게 잘 통하던 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바로 아무런 교감 없는 만남을 가졌을 때다.


잘 모르겠으니 두 번째 만나보기로 한다. 두 번째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두 번 만나는 거면 거의 초면인데 남의 집에 불쑥 간다는 것이 좀 거시기 하긴 했지만 이미 공원은 지난번에 세 시간 정도 걸었고 이제는 앉아서 대화할 공간이 필요했다. 영화를 보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1년 이상 사귄 커플들의 액티비티를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 전율하는 "필"은 두 번째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번 더 만나보기로 한다.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을 가는데 사람 만나는 것에 인색하고 싶지 않아 세 번을 채우고자 했고, 쇠붙이가 잇몸에서 빠져 피가 나는 꿈을 꿨던 그날 저녁 나는 그를 만날 예정이었다.


그렇게 잠에서 깬 나는 별거 아닌 내용이겠거니 하며 그에게서 온 문자를 열었다. 하지만 정신이 확 드는 한 문장이 있었을 뿐이다.


"I have shitty bad news." (나 정말 거지 같은 나쁜 소식이 있어.)


나쁜 소식....?

그런데 그냥 나쁜 소식도 아니고 거지 같은 나쁜 소식이라니...


문자 온 시간을 보니 정확히 10분 전이었고, 나는 서둘러 답장했다.


"뭔 일이야?"


곧바로 답이 올 줄 알았지만, 아니 오길 바랐지만 (궁금한 건 정말 못 참는 성격이기에..) 상대편은 고요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만드는 둥 부산을 떨었다. '이상한 악몽을 꾸고 난 아침에 왜 하필 또 이런 문자에 잠이 깼을까...?' 다시 꿈 생각이 났다.


20분이 지났지만 J에게서는 깜깜무소식이었다. 다시 한번 보채는 문자를 보냈다.


"??"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그는 답장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잠수를 탄 걸까? 그 나쁜 소식이라는 것은 무슨 일일까? 단순히 오늘 못 만난다는 것이었을까? 그딴 일로 사람 심장을 이렇게 철렁 이게 하나? 도대체 뭐지?'


아무리 생각해 보려 해도 명쾌한 대답을 예상할 만큼 나는 J를 잘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고작 두 번 만났을 뿐이고 그나마의 만남에서도 우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혹시라도 나를 놀리는 것이라면 나는 J가 엄청 매너 없고 예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한 시간이 넘었다.


나의 인내심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열이 받쳤다. 결국 다시 한번 문자를 했다. 이번에는 좀 성깔 있게...


"나쁜 소식 있다고 해놓고 이렇게 잠수 타는 매너는 대체 어디서 배움?"


혹시나 시비조로 말하면 바로 답장하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나 답은 없었다.


그렇게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한 시간 반이 지났을 가... 드디어 답장이 왔다.


"so I have shitty and bad news."


이 새끼가 사람 놀리나 싶으면서 열이 뻗쳐 핸드폰 자판을 두들 대고 있을 때 등장한 아이메시지 점 세 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전해지는 움직임이었다.


드디어 그에게서 나쁜 소식에 대한 내용이 왔다.


"I went to get tested for covid19 and they just told me I tested positive."

(나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트했는데 걸렸데.)


욕이 나왔다. 그리고 새벽에 꾼 꿈 생각이 났다. 이가 빠져 피가 나는 꿈. 흡사 이가 빠진 통증이 찌릿하고 전해지는 것도 같았다. 제정신이 돌아오고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건 문자로 할 얘기가 아니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그는 점차 덤덤하게 이야기 했고, 나 또한 애써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며 팩트만을 체크했다. 전화 통화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서둘러 근처 진료소로 향했다. 뉴욕주가 가히 코로나 에픽 센터로 등극하면서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근처 동네 병원만 가도 테스트를 무료로 해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젊고 건강하니까 절대 걸릴 일 없다고 남일 같이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저 누군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만 조심해야 하겠지 하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돌아가셔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걸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했다. 한편으로는 나의 이성이 '괜찮아 걸려도 건강하면 감기같이 낫는댔어.'라며 애써 나를 진정시켰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줄에 안도하며 진료소에 들어섰다.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억지로 발랄한 척 간호사 언니의 질문에 답했다. 검사는 총 두 가지였다. 기다란 면봉을 콧속에 넣어 샘플을 채취하는 Nasal Swab과 피를 뽑아 면역체가 있는가를 검사하는 Antibody test. 두 가지 검사는 삼십 분도 채 안되어 끝났고 유난히 바늘이 아프게 찔린 팔을 문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착잡했다. 코로나에 걸리고도 아무런 증상이 없을 수 있는가?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독해보지만 결과를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부디 나는 안 걸렸기만을 기도할 뿐.


어느새 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날씨 한번 기가 막히게 내 마음과 같네 하며 어둑한 거실에서 불도 켜지 않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모든 게 그 망할 꿈 때문이었다. 재물이나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더니 이제 건강을 잃게 생겼다. 울고 싶었다.




유난히 기분이 지옥 같았던 그 이가 빠지는 꿈을 꾼 금요일이 지났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었고 병원으로부터 검사 결과를 전달받았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월요일 검사 결과를 받기 전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검사 결과를 받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진료소 대기실에서 검사를 받기 전, 만약에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온다면 이건 정말 희극이라 생각했고 꼭 주변인에게 얘기해줘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결과를 음성으로 받고 나서도 주변에 얘기를 하면 다들 걱정할 까 봐... 혹은 생각 없이 요즘 같은 시기에 모르는 사람 함부로 만나고 다닌다고 겁 없다고 핀잔 들을까 염려되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주일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몸서리치게 싫었던 그날의 찝찝한 기분. 이 빠지는 꿈은 언제 꿔도 기분이 더럽다를 다시 한번 느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건강에 신경 쓰고 젊고 건강하다고 나대지 말아야지 하며 언제라도 내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J군과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어쩐지 배려 없는 그의 코로나 통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던가. 애초부터 마음에 없었던 것인가. 결론은 다시 원점이었고 나는 당분간 연애는 안 해야겠다고 아니,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