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 1

by mercioon

맥간으로 올 때 대부분의 일행들을 만났고 다들 여행 초짜였으며 정상이었다.


노블링카로 가기 위해 다람살라 버스 스탠드로 내려갔다가 일본인인 듯한 얼굴의 거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엉망으로 탄 얼굴에 검은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수염과 때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에다 옷은 얼마나 안 빨았는지 색이 모두 거무튀튀했다.


우리가 말을 걸기 전까지 안경 너머의 작은 눈은 뭔가 굉장히 지쳐 보이고 초점이 없었다.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고 맥그로드 간즈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랬다.


그는 우리와 노블링카로 같이 갔다가 일행이 되었다.


그 날 저녁 폐타이어 맛이 나는 올드 몽크(인도 럼)를 앞에 두고, 왜 이렇게 거지꼴이 되었는지에 대한 여행담을 듣게 되었다.


아직 티벳을 개인적으로 여행 할 수 있던 때였다.


수염은 길렀지만 아직 말끔했던 이 여행자는 기름을 가득 채운 통을 양쪽에 주렁주렁 달고 오토바이를 타고 티벳을 넘어왔단다.


티벳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산은 마을이나 주유소 없이 비포장 도로 밖에 없어서 오토바이에 달린 기름 2통이 생명줄이었다


숙소가 없으니 넘어오는 내내 자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해 속옷을 뒤집어가며 입었으며 배낭에 있는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넘어왔단다.


이 미친 일정을 한국인 2명과 함께했다고 했다. 세명의 한국인은 날이 지날수록 이 길 어딘가에서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몇 날 며칠 사람을 못 본 것은 물론이고, 추웠으며, 오토바이 기름이라도 떨어지는 날엔 그냥 얼어 죽을 만한 곳이니 그럴 수밖에.


이 이야기를 들으며 아껴두었던 소주를 깔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여행담은 쓰레기 같은 올드 몽크 따위를 마시며 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적어도 돼지껍데기에 초록색 소주병은 있어야 했지만, 탄두리 치킨에 손바닥만 한 미지근한 팩소주 몇 개로 만족해야 했다.


100일 동안 속옷 두장을 뒤집어가며 입은 사내의 여행담은 새벽 4시까지 이어졌지만,


그의 여행담은 아쉽게도 내 머릿속에서 세월과 함께 풍화되어 이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리고 여행 초짜였던 나에게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이란 느낌만 남아,


아직도 그 여행자가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이며, 두 딸의 아빠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제 나이를 많이 먹은 나에게도 그 맥간의 축축하고 낡은 방에서의 여행담이 가끔은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마날리에서 우리는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났다.


새카만 뱅 앞머리를 하고,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가는 까만 피부를 가진 예쁜 언니.


역시 티벳을 여행하고 왔다고 했다.티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 특이한 걸까? 아님 특이한 사람들만 티벳을 여행하는 걸까?


정상인 것 같아 보이는 단아한 언니의 방에 놀러 갔을 때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니는 대단한 맥시멀 리스트였다.


우선 히말라야 브랜드에서 나오는 모든 종류의 화장품이 간이 화장대를 튀어나와 낮은 서랍장 위에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히말라야 브랜드에서 그렇게 많은 종류의 화장품이 나오는지 처음 알았다. 내가 아는 히말라야 브랜드는 고작 230원짜리 립밤이 전부였으니까.


언니의 차분하고 느릿한 성격을 보여주는 아날로그한 물건들도 많았다.


스마트폰은 없었을 때지만 다들 하나씩 손가락만한 mp3를 들고 다닐때였는데


언니는 CD플레이어와 함께 고심해서 고른 듯한 두터운 책 한 권 두께의 cd들을 들고 다녔다.


카메라 역시 필름 카레마를 들고 다녀서 정말 찍어야겠다 생각한 순간을 기억에 각인하듯이 정성 들여 셔터를 눌렀다.


여행 중 찍은 필름을 인화한 사진도 한 뭉텅이가 있었는데 피사체가 된 티베탄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사진들이라 했다.


한창 ‘연금술사’란 책의 인기로 파울로 코엘료의 영문판 서적을 하나씩 사가는 여행자들이 많을 때였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영문판 책을 쉽게 구하기 어려운 때였다.


언니 역시 파울로 코엘료의 영문서적을 보일 때마다 수집해서 7,8권 정도가 들어있는 파울로 코엘료 영문서적용 전용 백이 따로 있었다.


우리가 만난 맥간의 어느 세컨핸즈 샵에서 한 권을 더 추가하기도 했다.


티벳과 인도 북부의 날씨는 꽤 추워서 두터운 담요 역시 기본 2장은 있어줘야 했다.


내가 언니의 방에서 파악한 짐은 겨우 이 정도.


이동을 위해 숙소에서 펼쳐져있던 짐들을 챙겨 나왔을 때 나는 언니가 짐에 파묻히는 줄 알았다.


양손에 발목에서 무릎까지 가득가득 찬 쇼핑백 여러 개를 양손에 들고 등 뒤로는 머리 위로 머리 하나 크기 정도 더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아니 저걸 어떻게 이고 지고 여행을 다니는 거지? 보기만 해도 내 허리가 아파오는 느낌이다.


여행 초짜인 나도 쓸모없는 집이 한가득이었는데 언니의 짐을 본 그 날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와인의 역사> 책을 미련 없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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