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의 가족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을 수 있는 돈은 일단 받자
대한민국 경찰의 발빠른 수사 덕분에
오랜만에 발뻗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사람은 법이 심판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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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도 찾았겠다,
나도 미뤘던 배당금을 찾으러 법원을 다녀왔다.
배당표를 들여다보니 가장 후순위 임차인이었던
나와 옆집만 소액 임차인에 해당돼
그나마 변제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들어온 세입자가 전액을 수령했고,
나머지 집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결국 내가 임대인에게 돌려 받아야 할 돈은 5600만원이 됐다.
받은 변제금으로 대출을 일부 갚았고,
은행에는 이제 3800만원의 대출이 남았다.
합의 : 둘 이상의 당사자의 의사가 일치함. 또는 그런 일.
휴일 아침, 늦잠을 자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택배 올게 있었나..
"ㅇㅇㅇ씨 맞으시죠? 저 임대인 가족입니다."
생각지 못한 전화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애써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통화를 이어나갔다.
"네, 그런데요?"
"지금 상황은 알고 계시죠?
제 동생이 구속됐어요.
합의를 하고 싶은데....
저희가 돈이 정말 없어서,
가족들끼리 모은 돈을 우선 드리고
합의를 해주실 수 있는지 전화드렸습니다"
난 합의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얼마 주시려고요?"
"2천만원까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못 받은 돈에 비하면 한참 적은 돈이었다.
그나마도 가족들이 적금 깨서 마련했다는 말.
지금 안 받으면 앞으로는 더 어렵다,
변호사 선임할 거다, 재판가면 더 복잡하다...
온갖 압박까지.
"아침부터 너무 갑작스럽네요.
제가 생각을 해보고 연락을 드리던가 할게요."
전화를 끊고 묻어뒀던 한 숨을 내쉬었다.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상황에
약간 의기양양함도 생겼다.
하지만 2,000만원이라는 금액을 떠올리니 약이 올랐다.
원금의 반도 안되는 돈.
됐다고 해야지.
그런데,
정말 이 돈마저 거절해도 될까?
2천이라도 받고 나머지는 민사로 어떻게든 해보면 되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이 돈으로 '합의'는 할 수 없어.
주변에 물었다.
주변 의견도 정확히 반반이었다.
'못 받을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2000만원이 어디야.'
'원금 아니면 합의 없다고 강하게 나가야지.'
'원금에 피해보상까지 더 받을 수 있는데, 2천은 절대 안돼.'
그래, 내가 지금까지 노력한게 있는데.
당한게 있는데.
2천 받으려고 들인 시간과 마음이 아니잖아.
임대인의 가족에게 문자를 보냈다.
'제가 지금까지 들인 돈과 시간,
정신적 피해까지 생각하면 원금으로도 부족합니다.
제시하신 금액으로는 합의하지 않겠습니다.'
드디어 열린 심판의 날
시간이 흘러 형사 재판 1차 기일이 잡혔다.
프리랜서인 내겐 일 하나하나가 귀했지만,
오랜만에 연락 온 팀장님의 부탁도 거절하며 시간을 비웠다.
그런데 기일 하루 전,
형사사법포털을 확인하다가 재판이 미뤄졌다는 걸 알게 됐다.
임대인 측 변호사가 기일 변경을 신청했단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내가 오늘 못 번 돈이 얼만데.
변호사는 변호사의 책임을 다 하는거겠지만
내겐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농락처럼 느껴졌다.
다시 잡힌 기일.
엄마도 약속을 미루고 서울에 올라왔다.
우리 둘 다 재판은 처음이라
긴장된 마음으로 법정 앞에 서 있었다.
얼마나 뻔뻔한 사람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마음이었다.
차디찰 줄 알았던 법정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그 순간,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찬 임대인이
교도관과 함께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계약 당시엔 날카로운 표정이었던 임대인이
지금은 주눅 들어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묘했다.
분명 내가 꼭 보고 싶었던 장면인 것 같은데,
즐겁거나 통쾌하지 않았다.
한 인간이 무너져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라는걸 깨달았다.
그래도 임대인이 마음 편히 자진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 한켠은 시원했다.
내가 겪은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멜랑꼴리한 기분으로 방청석에 앉았다.
마주보이는 판사의 자리가 참으로 높아보였다.
판사는 공판을 개시하며 임대인에게
공소사실을 인정하냐고 물었다.
변호사가 대신 대답했다.
그 한 마디로 1차 공판은 바로 마무리 됐다.
판사는 그 자리에서 다음 기일을 지정했고,
두번째 기일.
나는 증인으로 재판부의 부름을 받았다.
지난주는 글을 쓰지 못했고, 이번주도 하루 늦게, 그것도 밤 늦은 시간에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
혹여나 기다려주신 독자님이 계시다면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드디어 글이 현 시점까지 왔습니다.
연재를 시작할 땐, 8월 말 쯤 글과 현실의 시간이 맞닿을거라 생각했는데 실화를 연재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함께 한 주가 미뤄지는 바람에 제 예상보다 글이 일주일 늦게 도착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나를 깊이 고민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참 많습니다.
이런 시간을 알아차릴 때 '오늘도 열심히 회피했구나' 깨닫곤 합니다.
하마터면 이번 주까지 글을 못 쓸 뻔 했지만, 주변에서 글을 기다린다고 응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직 2차 공판이 열리지 않은 상태라
제가 증인으로 나선 이야기는
글로 담아내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쓸 이야기가 있다면 가지고 오겠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