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작 훈련 비판

by jungsin



글쓰기에 있어 다작과 명작은 필연적 관계에 놓여있지 않다. 둘 사이에는 물리적인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다만 어디까지나 한시적이고, 개별적인 효용이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다작이 절대적 효용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다작은 양작을 위한 절대 신조가 아니다.


글쓰기 모임에 대해 회의를 가지는 것은 그런 지점이다. ‘매일 꾸준히 쓰다 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많은 글쓰기 리더들이 이 신조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이런 식의 담론을 가벼이 뿌려대는 듯하다. 그토록,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론을 기계적으로 보급하면서 응원하는 장면을 보게 될 때는 리더가 글을 바라보는 시선이 얕다든지 글쓰기의 동기가 어딘지 좀 뒤틀려있는 것이 아닐지 의심스러워진다.


송구하지만 교회의 언어로 말하자면 가령 이렇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성서나 하나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관용적으로 사용할 때, 사랑의 노예가 되어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제약시키신 하나님은 그늘에 가려진다. 인간에게 애걸복걸하시는 하나님, 부활을 위해 죽음에, 사랑을 위해 공의에 종속되시는 하나님의 특성은 잊혀지게 된다.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서가 표현하는 야웨 하나님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 야웨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나약하시기도 하다.


글쓰기도 응당 그렇다. 누군가에게, 어느 지점에서는 글을 안 쓰는 것이 오히려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할 수 있다. 삶이 깊어지면 시간의 뼈에서 글이 우러나올 수 있고, 그때 글에서 이전보다 깊은 육수 맛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카페에서 매일 같이 써대는 글이 시대의 정신을 신선한 문체로 반영할 순 있어도, 황현산이나 박완서 선생과 같은 분의 글을 흉내 낼 순 없다. 앞마당에서의 땀흘리는 연마의 시간으로는 채울 수 없는 뒷뜰의 고요가 있다. 양으로는 채울 수 없는 질이 있다. 신비롭게 숨겨진 뒷문을 열고 나가면, 시간의 숙성과 경험의 자극이 필요한 들판이 여전히, 끝도 없이 광활하게, 덩그러니 남아있다.


글쓰기 모임이 문장의 트렌디한 어떤 결을 살려주고 어떤 감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뚫어져라 흰 화면을 바라보면서 매일 씨름하고 무엇이라도 써서 다작을 쏟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좋은 글이 써지리라는 식의 이론은 단조롭고 얄팍한 아이디어다. 그런 마법의 수프 제조법은 스머프 만화 속의 가가멜에게나 가능할 일이다. 그렇게 정성껏 들인 노력과 시간의 씀씀이만으로도, 글솜씨는 물론 어느 정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공업적 과업이다. 문학과는 아무 상관 없다. 매일 거울 앞에서 경건하게 옷을 빼입고 나가 여자를 만나는데, 여자를 만나는 끼와 재주가 어떻게 발전하지 않으랴. 정직하지 않고, 깊이도 없는 얄팍한 태도다.


이쯤에서 커밍아웃하자면. 실은 지독한 편견이 전제가 되어, 작정을 하고 비판하고 있다. 기계적 훈련의 관점을 갖고 있거나 그런 태도를 인생의 진리인 것처럼 찬양하기까지 하는 이론이라면, 나는 무엇이든 기꺼이 편견을 가지고 미워하고 본다. 음악, 연기, 그림, 문학, 또 철학이나 신학. 그와 같이 궁극적인 무엇을 노래하려는 것은 어떤 것이든 기계적인 인과 법칙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것들 안에는 하나 같이 헤아릴 수 없는 신비가 숨겨져 있다. 그것들을 대하는 태도는 신비로움을 향한 경외와 진지함이어야 한다. 경박한 기계적 인과 법칙을 미학적 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인 것처럼 당당히 가르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한 대목이 의아하고 어딘지 한참 이상하게 느껴진다.


궁극의 세계로 가는 어떤 길에는 어디나 암표상이 들끓기 마련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순진한 기대와 정직하고 냉정한 현실 사이에서 시세 차익을 탐하는 글쓰기 훈련소 같은 곳이 정확히 그런 곳이다. 얄팍한 기대를 부추기고 칭찬과 응원의 인플레이션이 난무하는 그런 곳에서 진정 좋은 글의 씨앗이 잉태되는 것을 목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즐거운 대화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의미있는 논의를 주고받는 동안 충분히 좋은 사교와 일정한 동기 부여의 모먼트를 경험할 순 있으리라. 그러나 정말 좋은 글은 한낱 글쓰기 모임의 도움을 받아서 나올 수 없으리라. 글쓰기는 학문과 예술에 종속되는 무엇이라서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고독의 제물을 요구한다. 글은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삶,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에 관해 묻는다. 연장을 들이대고, 공학적 훈련을 반복하는 기름 냄새나는 공장에서 예술이 자신의 절정과 궁극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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