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으로 향하는 열정

by jungsin




창문을 활짠 연다.

봄이다.

자유다.

활찍 핀 봄이다.


채, 아직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온전히 살아있지 못한. 그럼에도, 날은 이제 완전한 봄이다. 내가 언제나 관심있는 것은 자유다. 생에서 자유롭다고 느낀 순간은 그러나 드물었다. 자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아닌가. 그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흥청망청 해대는 것은 아니다. 소거법으로 자유를 찾아가자면 제일 먼저 지워야 할 오답이다.


부끄럽게도 실존주의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그냥 상당히 매력적인 무엇일 거라 짐작하고 있다. 실존주의적인 자유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염없이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이 진정한 자유에 다가서게 하리라는 것은 이미 어려서부터 느끼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늘 그 문제로 진동하고 진통을 겪으며 살았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었다. 봄처럼 한없이 밝고 유쾌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다. 실제로 가만히 두면 아마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즐겁게 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생각해야만 했다. 실존적 고뇌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자유로이 숨쉴 수 없겠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생의 환경이 어린 아이 같은 자아를 부득불 어른으로 내몰아갔다. 어른이 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 협박하는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되려면 생각해야만 했다.


자유는 틀림없이 나 자신이 되는 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쉽고 분명한 사실이다. 5초만 진지하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니체나 샤르트르나 하이데거나 헤르만 헤세, 그리고 키에르케고르나 불트만까지 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면 달리 어떻게, 또 어떤 기발한 방식으로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온전히 자신이라면 또 뭐가 그토록 더 많이 필요하며 자유롭지 않다 칭얼댄단 말인가. 자유는 자아의 핵심을 차지하려 하는 것이 분명하다.


자유는 악을 향해서도 선을 향해서도 갈 수 있다. 그것이 온전한 자유라면 말이다. 악을 행할 능력도, 악을 바라볼 수 있는 눈도 없이, 오직 선한 것만을 바라보고 그것만을 추구할 수 있는 상태는 온전한 자유의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것이 비록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유가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유는 모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자유는 모든 것이고, 따라서 자유는 자유 외의 모든 것의 질투와 유혹을 받는다.


나는 선한 것을 추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내가 선과 악으로부터 자력을, 부력을, 거스를 수 없는 중력을 동시다발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게 느끼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내가 현재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이고, 어쩌면 영영 온전히 선한 사람은 될 수 없으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적극적으로 파헤쳐보자면, 나는 악한 사람이기도 하고, 악한 것을 실제로도 좋아하고 있어, 어떤 중대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선한 힘은 너무나 가냘프고 위태롭게 느껴지는 데 반해, 악한 힘은 너무나 강해 악이 거의 본질적인 나의 정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선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날이 밝으면 악한 본성은 해안으로 밀려오는 하얀 파도 물결처럼 끊임없이 찾아오고, 선한 본성은 그것을 저지하려 하고,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것들은 매순간 짙푸르고 새하얀 물결을 일으킨다.


내가 드물게 자유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하면 그 새하얀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뜨거움을 느낄 때이다. 선한 것을 향해 나아가야겠다는 생각. 내 안에서 솟구칠 리 없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그런 미열 같은 것이 나의 영혼을 꿈틀거리게 하고, 그렇게 몸을 데필 때, 그때 자유롭다고,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내가 자유를 향해 돌아섰다고 느낀다. 마약 성분이 작용하는 진통제처럼 약간은 미친 듯한 상태로 그렇게 나는 선을 향해 자유로이 달려가는 것이다.


선한 것에 대한 열정. 선으로의 의지. 그것이 발휘되는 순간이 드물게 내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이른 아침 진한 커피를 마시고 단단한 구두를 팡팡 차 신으며 집을 나설 때, 찬 공기를 마시며 가방을 메고 또각또각 어디론가 걸어나갈 때, 어떤 미친듯한 미열이 나를 선으로의 광기로 몰아간다.


선함이나 정의로움, 사랑은 두려움과 의무로는 닿을 수 없는 자리에 있다. 힘과 에너지, 책임으로는 다가갈 수도 볼 수도 없는 고매한 자리에 있다. 두려움은 이해하지 못하는 데 기인하는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해서, 보이지 않아서, 캄캄캄 곳에서 움크리며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자유는, 그래서 이해와도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내게 주어진 감당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이 자유는 악으로도 선으로도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눈앞은 캄캄하고, 나 자신도, 내가 만나는 사람도, 내가 해야하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도 잘 이해되지는 않고,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선을 행할 힘도 의지도 없고, 그래서 자유롭지 않다.


내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거창한 물음에 당장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다. 봄날의 창문을 열고, 아침 찬 공기와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딱딱한 식빵이나 바게트 같을 것을 와그작 씹어먹는 때와 같은 작은 순간들에 생각한다. 나에게 선한 미열은 언제 다시 일어날 것인가. 언제까지 악에게,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거지 같은 욕망들에게 영혼을 내어주며 살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불안, 의무와 책임에 기인하여 다만 그것들의 힘에 짓눌려 쫓기듯 행해지는 선함은 너무도 빈약하고 부실해서 악과도 구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진정으로 선한 무엇은 애초 책임과 두려움을 연료로 해서는 온전히 이룰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그렇게 추구되는 선함에서는 진리의 아름다움도, 어떤 매력도 느낄 수 없다.


선한 열정. 미열. 그것들에 목이 마르다.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자유로이 뛰고 뛰어 미열을 일으켜 본다. 치졸함과 부끄러움과 불안과 두려움까지 사랑해보자. 내 영혼에게 속삭여 본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너는 그 일을 정말 할 수 있겠니. 피범벅된 의지에게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질문해 본다.


그리고 계절은 이렇게, 봄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떻게든, 다시 봄이다. 밤에도 창문을 열 수 있고, 완성되지 않은 웃음으로도 웃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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