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었다 놨다.
1
이즈음 밤공기가 환상적이다. 바이러스 규제 때문에 더 이상 불야성을 이루는 가계들도 없고 밤늦게 도로를 누비는 차들도 적어져서일까. 서울의 초여름 밤공기가 훨씬 더 싱그러워진 느낌이다.
초여름 밤공기 냄새를 맡으며 집에 들어오면서 문득 꼭 쓰고 싶은 글이 생겼다. 버스에서 내려서 바로 글쓰기 앱을 열어 집까지 걸어가면서 쓰고,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열어 한글 파일로 좀 더 써나가고 있었다. 쓰고 싶었던 내용이 생각한 만큼 잘 써진다고 느껴졌다. 금세 깊은 새벽이 되었다.
새벽 공기는 아직 찼다. 창문을 열어놓고 선풍기까지 틀어 놓아서인지 몸이 좀 으스스해졌다. 몸이 차가워지니 배고픔을 참기가 더욱 힘들었다. 채우려고 쓰는 것인데 쓰면서 소진되고 있었으니. 그건 어떤 치명적인 모순이었다.
허기짐을 참으면서 고통스럽게 글을 쓰는 것은 비인간적인 삶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글을 쓰는 사람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인간성에 대해,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인지,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데. 글을 쓰는 행위를 하면서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것은 글쓰기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었다. 악마와 같은 배고픔이 글쓰기라는 신성한 의식을 모독하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서둘러 한글 파일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잠재우고 좀비처럼 뛰쳐나가 라면을 끓였다. 결혼을 해본 적은 없지만 결혼 삼 개월 차 부부처럼 진라면 순한 맛 봉지를 정신없이 뜯었다. 물을 올려놓고 팔뚝의 잔근육을 사용해 눈부신 속도로 계란을 풀었다. 냉장고에서 두부를 꺼냈다.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 있는 채로 작고 네모나게 두부를 잘라 달궈진 작은 팬에 빠르게 올려놓았다. 나의 손길은 거칠었고, 한 순간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두부에서 수분이 날아가고 누런 끼가 돌 즈음 팬에 올리브오일을 둘렀다. 두부를 부치는 동안에는 수프들을 뜯어서 끓는 물에 넣고, 봉지들은 지체 없이 재활용 쓰레기통에. 적당히 부쳐진 두부는 팔팔 끓는 라면수프 국물에 입수시켰다. 그리고 이제, 아까부터 일요일 아침에 목욕탕 홀에서 탕에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쭈그리고 앉아 떨고 있는 남자애처럼 우물쭈물하고 있던 면의 눈을 가리고 탕에 담갔다. 조금만 참아. 뜨거운 거 알고 보면 다 잠깐이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팬에 계란을 둘렀다. 엔도르핀이 폭발하고 있었다.
내 맘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hey.
내 면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hey.
동그란 계란 지단을 가위로 반으로 잘라 라면 위에 먹음직스럽게 올려놓았다. 배고플 때 먹는 올리브오일 두부 계란 부침 라면의 테이스트. 주님만이 아시오니. 후- 슈루룩. 후루룩. 그렇게 한바탕 뜨거운 시간이 지나갔다.
2
책상으로 돌아와 곤히 자고 있는 노트북을 다시 켰다. 마지막에 쓰던 부분에서 생각하고 있던 대목에 집중하면서 차분히 저장했던 한글 파일을 찾아보았다. 대충 저장했던 제목이 뭐였더라. 어디 있을 텐데.
흠흠흠~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헤이~ 흠음~ - ...... - 있어야 맞는데. - 에이 설마. - 설마! - 에이! - 에헤이! 이 사람. - 몹쓸 장난 그만하고 나와. 하하. - 어? 왜 없지? 내가 분명히 저장하고 노트북을 꺼놓은 것 같았는데. - 어디 있니. 섬섬옥수 아로새긴 표현을 박아놨던 그 문단들? - 얘들아? 이러지 마. 어른한테 이런 장난 치는 거 아니야.
더 이상 혼잣말은 나오지 않았다. 곧 명상의 시간이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고민하며 쓴 문장들 다 어떡하지. 세상은 왜 이렇지. 왜 잘 써진 글만 에녹처럼 하늘로 들려 올라가지. 너는 제대로 하는 일이 도대체 뭐니 내 자아야. 아, 나는 결국 한낱 라면을 위해 이토록 달려온 것인가.
새벽은 신비로운 시간이다. 학창 시절에는 평소에 그렇게 늦게까지 말똥말똥하던 밤이었건만 시험 기간만 되면 밤잠이 쏟아지고. 어른이 되어서는 집에 가면 오늘은 해야 하는 일들을 열심히 해야지, 무엇을 하고 놀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집에 오지만. 굶주림의 혼령에게 홀려서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새벽은 늘 블랙홀 같은 시간이다. 밤에 집에 들어오면 수박 한개 정도, 수박 국물을 흘리며 우왁우왁 먹고, 머리 감고 양치질만 하고 바로 잠자리에 누워, 눈을 질끈 감고서 영원히 깨지 않을 강시 석고 미라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어떡하면 이 밤을 가둬둘 수 있을까.
내 삶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hey.
인생이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h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