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아가를 잃어버리다
책을 잃어버렸다. 지하철에 올라타고, 문이 닫히자 마자 느꼈다. 무엇인가, 중대하게 허전하다는 것을. 방금까지 손에 들려져 있던 책이 더 이상 내게 없다는 것을. 뒤돌아 출입문 유리창 앞으로 바싹 다가가 눈을 부릅 뜨고서 방금까지 앉아있던 의자를 노려 보았다. 승강장 의자 위에 예쁘게 기대 있는 책과 눈이 마주쳤다. 열차는 서서히 출발하고 있었다. 전쟁 통에 증기를 뿜는 피난 기차에 가까스로 올라타 기뻐하다가, 고사리 같은 내 아가의 손을 놓쳤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기가 차고 드라마틱한 모먼트였다.
바로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돌아와, 서둘러 그 승강장 의자로 가보았다. 자리에는 책 대신 풋풋한 분위기의 연인이 앉아있었다. “(조금 가쁜 숨을 쉬며) 혹시 의자에서 책 못 보셨나요?” “아.. 못 봤는데요? 저희 왔을 때는 없었어요..” 설컹설컹, 알콩달콩한 느낌의 남녀. 기대와 설렘, 행복이 뒤섞인 분위기의 그 커플은 밝음 반 걱정 반의 표정으로 내게 답했다. 내가 의자 주변을 어슬렁, 두리번거리는 동안 남자는 혹시 자신이 쇼핑봉투에 책을 넣었는지 찾아보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의 선하고 순수한 느낌 때문에 옅은 미소와 위로를 찾을 수 있었다. 허탈한 상실감은 계속 진행중이었다. 그 아가는 바로 엊그제 무척 추웠던 저녁, 샛노란 봉합비닐봉투에 담겨 차가운 습기를 표지에 머금고 내 품에 안겼었다(*via 출판사에서 얼마간에 한번씩 신간을 보내주는데, 그렇게 받은 두권의 책들 중 한 권.). 허겁지겁 4호선 지하철 고객센터에 가봤지만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분실한 장소에 가서 주변을 찾아보았다. 이번엔 다른 커플이 앉아있었다. 의자에도 쓰레기통에도 그 어디에도 책은 없었다. 역시는 역시인가. 교회는 이미 한참 늦었다. 4호선 고객센터로 가서 연락처까지 남겨두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2호선 고객센터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청소실이 보였다. 다급한 마음으로 안을 훔쳐보다가, 안에 계시는 분께 혹시 책을 습득하지 않으셨는지 여쭈었다. 청소 카트에서 스윽 뭔가를 꺼내신다. 콩닥콩닥.
“이거요?” 새하얀 책이 영롱하게 빛을 발하며 그대로 있었다. “아! 네 고맙습니다! 하...” 갓 수령한 책을 약간 읽어보았는데, 내용이 너무 좋은 거다. 제목은 ‘사랑했던 교회를 떠나 다시 교회로’라는 부제의, 「교회를 찾아서(Searching for Sunday)」다. 교회를 가다가 교회를 찾아서를 잃어렸는데, 다시 교회를 찾아서를 찾았다. 잠시였지만 그 책을 펼쳐보며 마음 잘 통하는 여자 사람 친구를 얻은 것처럼 마음에 잔잔한 기쁨이 일었었다. 글결이 아름답고 공감의 물결로 충만했다. 또 그 책은 하얗고 뽀얀 표지를 갖고 있었는데, 페이지를 넘길 땐 베이비 파우더 같은 새 종이 냄새마저 났다. 그 뽀얀 살결의 아기를 되찾은 안도감과 기쁨은 무엇을 의미했던 걸까. 잠시 상념에 젖게 되었다. 물질적으론 단순히 책이었다. 하지만 물질에 이런 나의 느낌들이 입혀지며 더욱 소중해진 것인데, 특히 교회에 대한 아련한 나의 속마음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던 것 같다. 물질로써의 책은 같은 책으로 다시 사면 되지만, 책을 잃어버린 사건에 내 마음 속의 교회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포개져서, 그 상실감이 너무 싫고 두려워서,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것 같다. 마치 ‘내 마음의 교회’를 찾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은 아신 것 같았다. 교회란 어머니의 품 같은 곳 아닌가. 사람, 사랑, 안식, 눈물 씻겨진 말간 웃음. 그런 것들이 있는 곳이 교회가 아닌가. 오늘도 난 뭔가를 찾아 헤메고 있었다. 아마 그건 그 무엇보다도, 결국 돌아가야 할, 항상 돌아가고 싶은 ‘교회’일 것이다. 책 내용 중엔 이런 인용구가 있다. “물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물은 항상 흘렀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영원히. - Toni Morr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