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적립 무료음료쿠폰 사건

결핍 혹은 그리움에 관하여

by jungsin

그제. 깊어가는 밤 느지막이. 하루 종일 집에 있기만은 싫어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 나가 동네 서점에 들렀다. 짧은 시간에 두 권의 책을 고르고는 계단을 따라 올라 나왔다. 나는 언제나처럼 문 닫기 직전 서점을 나온, 거의 마지막 계산 손님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계산하면서 사소한 실수들을 했다. ‘죄송합니다.’ 소심한 목소리로 경직된 사과를 연발했다. 그래도 좋은 책을 고른 것 같아 뿌듯했다.

계단을 올라와서 서점 바로 위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을 보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에게는 무료음료쿠폰이 있었지. 아직 며칠은 유효기간이 남았을 거야. 그래도 한번 확인이나 해보자.

앱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리 12월 17일, ‘오늘 만료’였다. 시간은 하필 9시를 금방 지나가고 있었다. 스타벅스가 바로 등 뒤에 있었지만 이제 막 영업시간이 끝난 것이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문을 밀고 들어가 보았다. 엉거주춤하고 딱한, 서비스직 아르바이트 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저 혹시...’ ‘저희 영업 종료되셨어요 고객님.’ 온 세상의 애절함이 담긴 한 문장의 주어도 채 등장하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나 단호했다. 빨리 마감 정리를 하고 집에 가야 하는데, 또다시 새로운 고객이 한가하고 게슴츠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일초라도 더 빨리 퇴근해서 걸어 나가고 싶은 그 문을 밀고 들어왔으니, 표현은 못해도 일순간 내적 짜증이 들끓었을 것이다. 나도 입장이 있었다. 미루고 미룬 무료음료쿠폰 사용 기회를 다시 또 잃게 생겼다. 그동안 이런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값의 크고 작음을 떠나 그 상실의 느낌이 너무 싫었다. 좋은 책을 골랐다는 뿌듯함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생겼다. 나에게도 한 마디 정도는 더 물어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테이크 아웃도 안 되나요?’ 비논리적인 되물음이었다. 영업이 종료되었으니 테이크 아웃이든 테이크 인이든 안 되는 게 당연했고, 애초에 그녀의 말이 그 무엇이든 안 되니 당장 나가라는, 바로 그 말이었고, 또 코비드 일구 이쩜 오 단계로 낮에 갔더라도 원래 테이크 아웃 밖에 안 되는 것이니 더 불필요한 질문이었다. ‘네. 다 끝나서 안 되세요.’ ‘아, 네, 죄송합니다. 수고하세요.’

보통 때 같으면 나의 욕망의 전차는 이 정도를 달리다가 프스스- 하고 증기의 압력의 빠지는데, 어제 따라 이 비극적인 현실이 쉽게 인정되지 않았다. 요즘 크고 작은 돈을 아끼기 위해 난 얼마나 동분서주했는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녔는가. 스벅 매장 앞에 세워둔 자전거 옆에 어정쩡하게 기대 서서 더 늦게 마감하는 매장이 있는지 검색해봤다.

무려 십 분이 넘도록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나의 집착은 멈출 줄 몰랐다. 집에 가는 길에 근처에 있는 나머지 두 군데 매장도 모두 들려보았다. 더 굳게, 더 격렬하게 잠겨 있었다. 신은 왜 내게 이런 경험들을 반복적으로 선사, 아니 허락하시는가. 해석해보고 싶었지만 생각이든 기도든 잘 집중되지 않고 속만 상했다.

집 인근 스벅 매장 앞에 또다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서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대기 안내 음악을 들으며 거의 오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연결되었다. 사정을 설명하는 내내 창피했지만 창피하지 않은 척, 다만 근처에 문 연 매장이 있다면 들려서 사려고 한다는 뉘앙스로, 쿨해 보이려 애쓰며 물어봤다.

“아, 혹시 인근에 아홉 시 넘어서까지 열려있는 매장이 있으면, 제가 직접 (따릉이로) 갈까 하고요.” 마치 지금 나는 괜찮은 차 운전석에 앉아 전화를 걸고 있기라도 한 듯. 드라이브 스루로 커피 한잔 좀 마시려 한다는 듯. 극강의 짠내가 나는 노래라는 윤종신의 이별 택시의 가사처럼(‘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어디로 가야 나의 아까운 무료음료쿠폰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죠 하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으면서.

상담사는 친절했다. 인근에 아홉 시 넘어서까지 하는 매장이 없느냐, 쿠폰의 유효기간을 연장해줄 순 없는 거냐, 집요하지 않은 듯 결국 집요하고 구질구질한 물음을 하는 내게 일일이 답해주었다. 상담사가 직접 몇 개 매장의 영업시간을 찾아봐 주었지만 하나같이 모두 아홉 시에 문을 닫는 매장들 뿐이었다.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녀가 전화를 끊기 전 그다지 희망 없어 보이는 말을 했다. ‘그럼 잘 찾아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아, 네. 그럼 수고... 그... 사실은 제가 검색해봤었는데, 아홉 시 이전에 모두 닫더라고요.’ ‘네 맞아요 고객님. 그렇기는 한데요. 간혹 드라이브-스루 매장 같은 곳은 조금 더 길게 여는 경우가 있기는 하거든요. 한번 잘 찾아보세요 고객님.’

끈적끈적한 집착의 힘으로 먼 여행을 떠나 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두 번쯤 더 찾아보는 일이 대수랴. 또다시 스타벅스 앱을 열어 드라이브 스루로 옵션을 체크하고 검색해보았다. 땡땡 DT점. 07:00~22:00.

장쾌한 바다 수평선 저 멀리서 어슴프레 붉은 태양빛이 비추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 가까운 매장은 아니었다. 자전거로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시간은 9시 30분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소털같이 많은 날 길고 긴 인생 중에도, 신께서는 왜 이토록 내게 품위 있는 여유와 충분한 게으름을 허락하지 않으시는가.

그래도 열 시 안에 도착은 가능할 것 같았다. 또다시 선택해야 했다. 이 추운 겨울밤 자전거를 타고 달릴 체력과 의욕이 있는가. 그럴 만한 기회비용의 가치가 있는 일인가. 고냐, 스탑이냐. 잠시 갈등했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결론지을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고.

커피를 조금 마시고 싶긴 했으나, 물론 그렇게 매달릴 정도로까지 간절히 마시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커피 드라큘라도 커피 좀비도 아니었다. 그럼 비용과 이익의 문제였을까. 돈은 좀 그랬다. 돈이 아까웠다. 그러나 그건 평범하거나, 또는 조금 유별난 정도의 애착과 같은 감정들이었다. 그 단서들만으로 이렇게 행동하는 자신을 설명하기에는 좀 불가해한 측면이 있었다. 추리소설을 보면 개연성은 있지만 필연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논리의 마디에, 그럴듯한데 어딘지 찝찝하고, 아귀가 대충 맞는데 어딘지 설명이 불충분해 보이는 그 빈 공간에 사건의 열쇠가 숨겨져 있고는 하다.

이 반복되는 패턴을 보면. 카페든 레스토랑이든 서점이든, 나는 무의식 중에 한 곳을 엄청나게 드나든다. 어느새 회원 등급이 올라가고 수중에 각종 쿠폰이 모여들게 된다. 이제 꽤 여러 개가 쌓인 각종 할인쿠폰과 무료 이용권을 태연하게 여기며, 거의 없는 셈 치고 잊어버린다. 같은 카페나 레스토랑이나 서점을 또 가지만 계산은 돈으로 하고, 가능하면 쿠폰의 사용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그리고 마침내, 유효기간 마지막 날 헐레벌떡 뛰어가 문 닫기 전 5분을 남기고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사용하거나, 1분이 지나 각종 쿠폰이 무참히 소멸된다. 그러면 나라를 잃은 것처럼 망연자실해하고, 말미잘 아메바 거칠게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한다.

이 패턴에 어떤 암호가 숨어있다고 보는 것은 허무맹랑한 관점이 아니다. 독특한 선택과 감정들에는 일대일 호응하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순수한 꿈, 결핍, 상처, 혹은 강렬한 열망이나 그리움 같은 것이다. 나의 마음에도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이 있어 보였다. 어떤 상실감에 대한 분노와 집착이었는데, 급기야 막막하고 공포스러운 두려움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무엇보다 상실의 느낌이 싫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잃어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 앞에 속수무책이 되어야 한다는, 어떤 절대적인 운명을 순응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더 이상 아무 희망도 없는 무기력한 그 느낌이 끔찍이도 싫었다.

궁극적으로 영혼의 가난함 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성취와 관련된 것일지도. 성취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의 조각들이 아직도 내 영혼 안에서 굴러다니는 것일지도. 아니면 그것들과는 전혀 다르게, 혹은 그것들과 함께 경험에 관한 집요한 욕심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보고, 닿아보고, 느끼고, 확인해야만 정확히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점점 더 경험에 집착했다. 무리해서라도 어떤 경험의 끝에 닿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살며 만나는 작은 결핍이나 욕망은 부유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종이컵 전화기처럼, 무언가와 각각 가느다란 실로 기다랗게 나풀거리며 연결되어 있다. 크고 작은 사건과 선택은 더 궁극적인 것과 제휴되어 있다. 얇은 샤프심이든, 쓰다 만 지우개든, 연애편지든, 사진이든, 작은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왜 그토록 발을 동동 구르며 찾는가. 왜일까. 무엇이었을까. 아마 교실 마루 바닥에서 작은 지우개 가루를 찾아 쓸어 담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결국 찾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결에 흔들리는 촛불을 들고, 그것들을 더듬어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 작은 영혼의 고사리 같은 손을 꼭 붙잡고.




그리고 궁금해하실 이후 스토리. 위의 사진으로 답을 대신한다. 찬 겨울 바람을 가르며 따릉이 패달을 맹렬히 굴렀다. 롱패딩 안에서는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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