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대학교에 있다. 이 곳은 한남동이다. 나는 지금 막 정문을 지나 왼쪽 갈래길로 돌아 들어섰다. 조금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한 오십 걸음쯤 걸어가자 마침내 오른쪽 저 높은 언덕 위에 학생회관이 보인다. 숨이 가빠진다. 등 피부의 땀구멍이 간질간질하다. 송골송골, 작은 땀방울이 차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이제 왼쪽으로 청록색과 회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는, 관료적인 분위기의 건물이 나오게 되어 있다. 전산 쪽인지 컴퓨터 쪽인지, 천상 문과인 나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미지의 이공계 전공과 관련되어 있는 듯한 그 건물이 보일 것이다. 온몸으로 떨어지는 햇살이 너무 따뜻해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니까 이런 방식으로. 이토록 눈부신, 봄의 방식으로 수천 번의 겨울이 끝장났구나. 이제 그 건물이 보인다. 그렇게 몇 걸음 더 걸어가다가 멈춰 선다. 이 자리다. 이 자리에 멈춰 서야 한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꽃향기다. 저 각진 건물처럼 이름을 알 수 없는 꽃 냄새가 난다. 아카시아 향일까. 라일락 향일까. 나는 이공계의 어느 전공에도, 이 세계의 어느 꽃에도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아는 꽃은 장미뿐이었다. 난 축구를 좋아하고 농구를 좋아하고 여학생을 좋아했다. 아침에 학교 정문 앞길을 따라 바삐 걸어 올라가는 여학생의 자취 뒤에 남은 아침 샴푸 향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 꽃은 무슨 꽃인가. 이 냄새가 나를 미쳐버리게 만든다. 4월. 땀방울이 차오르고 볼이 불그스레해졌다. 내가 서 있는 이곳. 싱그러운 풀잎 그늘을 관통하며 시원한 4월 바람이 파르르 지나간다. 위를 바라본다. 정수리 위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아름드리나무를 올려다본다. 큰 나무 위에 적당히 가느다란 가지들이 많이 갈래나 있고, 어여쁜 가지들에는 수많은 작은 꽃잎들이 매달려있다. 나는 미칠 것 같다. 너무나 짙은 꽃향기다. 어쩌라고. 날 더러 어쩌라고. 이 봄. 이 무명의 나무에서 나는 향기는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가. 미쳤으면 좋겠다. 차라리 미쳐버리는 게 적절하다. 이 냄새를 맡고도 미칠 수 없어 답답하다. 저 가지 위로, 숨 막히는 향기를 무자비하게 뿌리는 저 하늘 위에 매달린 꽃들 속으로 날아 올라가,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고 싶다. 봄. 꽃. 설렘. 무책임한 향기. 어쩌라고. 날더러 어쩌라고. 이 봄아. 이 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