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체리 블라썸

by jungsin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린다. 아득하고 평화롭고 불안하고 괴롭고 향긋한 봄이다. 풀잎아 벚꽃을 밀어내지 마. 그렇게 부탁했건만 정작 벚꽃을 떨어트려 버린 것은 하늘에 모인 구름들의 작당이었다. 수증기와 공기. 차가움과 뜨거움의 작당. 어딘가 속이 상했는지 잔뜩 화가 난 뭉게구름들의 다툼과 긴장 또는 사랑 같은 것이 숨 막히는 사월 초순의 사쿠라 체리 블라썸을 우수수 떨어트려 버렸다.



1년 중 이 맘 때가 가히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 어렸을 땐 벚꽃이 뭔지도 몰랐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언젠가부터 그랬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벚꽃을 바라보며 널 바라보면 왜 이렇게 행복할까 고민도 해보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벚꽃 앞에서는 그냥 무너져내려 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벚꽃이 피는 3월 말에서 4월 초부터 벌써 벚꽃이 질까 아쉬워하며 벚나무 아래를 뜻도 없이 걸으며 설레 한다.



넋 놓고 벚꽃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그냥 인생이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도 많다. 끊임없이 소비와 어떤 결과와 풍요로움과 누군가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비교 우위를 점할 것을 강요당하지만 그런 것들 다 참 얄팍하고 얄궂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욕망과 죄의 향연. 그런 식의 파라다이스. 이제 좀 다 지겹다. 그런 강요. 그런 목소리. 이제 믿고 싶지 않다. 교실들이 줄지어 있는 차가운 복도의 시멘트 벽을 오동나무 막대기로 툭 툭 치며 걸어오던 학생주임 선생님의 공포의 사회 시간 같은 거짓말들.



봄이 오는 소리를 듣듯 가만히 귀 기울여 갈등을 일으키는 열등감과 욕망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어보자면 그런 것들 모두 두려움일 뿐이다. 인간의 죄일 뿐이다. 주변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어쨌든 벚꽃은 해마다 그 자리에서 정직하고 찬란하게 피는데. 나는 왜 그 자리에서 자기의 꽃을 피우지 못하는가. 내 자리는 어디인가. 있기는 한가. 처음부터 그런 거 있기는 했던 것인가.



돌아보면 가장 폭력이 심했던 때는 중학교 때였다. 남자들의 중학교 시절은 폭력의 역사이자 동물의 역사다. 나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고 더욱이 운동을 좀 했었다. 1층 아주머니가 서주우유에 다니시던 덕에 매일 배달되어 오는 신선한 오백 밀리 우유를 아침이면 원샷에 들이키고 학교에 가곤 했다. 건강하고 날렵한 몸과 찢어진 눈과 서주우유 덕분에 나에게는 또래 남자애들이 섣불리 엉겨 붙는 일이 적었다.



가끔 싸움을 걸어오는 친구들은 이미 몇몇 친구들을 호되게 패 놓고 싸움으로 전교를 평정한 친구들이었다. 중학교 때 그런 친구들은 대개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 도시락 반찬도 변변찮거나 아니면 아예 도시락이 없고 학원은 꿈도 못 꾸는 딱한 친구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눈빛 어딘가에 질투와 증오가 앙큼한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고양이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분주하게 교실과 복도를 날아다녔다. 그들은 온 영혼으로 가난함을 표현했다. 사춘기의 몸은 폭력의 고리로 더욱 단련되었고, 또다시 단련된 몸으로 친구들을 잔인하게 패곤 했다. 내가 기싸움을 하거나 긴장감을 느끼는 친구들은 주로 그런 친구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은 나도 좀 무서웠고 못되게도 그 아래로는 우습게 보곤 했다.



그렇게 학창 시절은 지났다. 이제 그런 폭력의 시절들 까맣게 잊어버렸고. 어른의 세계에는 이제 폭력과 질투와 못난 열등감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이 얄궂은 세상은 그 어린 학생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남긴 것으로도 모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폭력과 함께 더 견고한 위계 구조를 세우고 서로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불행한 순간을 겪도록 만든다. 나는 그 속에서 또다시 중학생이 되고 만다. 우리는 또다시 중학생처럼 기싸움을 한다.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니 무의식 간에 야비한 방식으로 비 물리적인 폭력을 행한다.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분노의 에너지를 표현한다. 우린 정녕 평화의 사자가 될 순 없는 걸까. 아름다운 어른이 될 수 없는 걸까.



원칙과 권리와 자존심을 내세우지만 융통성과 사랑과 조심스러운 배려와 공감 능력은 없다.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두려워한다. 그런 방식으로 오해하고 그런 방식으로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살아간다. 공포와 절망을 느낀다.



그런 모습은 전부다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으로 짧은 순간, 한철 며칠 피어나는 벚꽃의 아름다움도 심미안으로 감상할 줄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나와 너의 불행. 못난 기싸움. 어른이 되어서도 중학생처럼 기싸움이나 하고 있는 우리의 왜소한 실존.



어제부터 표정이 울상이 되어있던 구름은 사람들이 벚꽃에만 마음을 빼앗겨 하늘에는 시선을 안 두는 새 홀로 조용히 볼을 부풀리고 조금씩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결국 주룩주룩 울고 말았다. 볼 안에 한가득 담고 있던 불만과 슬픔이 서서히 긴장을 일으키더니 뭉게구름이 되고, 울며 엉겨 붙어 다투고, 그러다가 또 잠시 소강상태로 있다가, 다시 처음 본 구름들처럼 사랑하면서, 그렇게 다양한 비를 뿌렸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 봄비는 그렇게 잔잔하게 분홍 체리 블라썸을 우수수 떨어트렸다.



나 자신과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을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있고 근사한 일일까. 그러면 안 되리란 법도 없는데. 불안하여 그렇게 하지 못한다. 기싸움이니 경쟁이니 성과니 다 됐으니. 차근차근 하나하나 이해해 나가며 멋스럽게 웃고 싶다. 벚꽃처럼 빛나라. 자신으로서 찬란하고 옳게 빛나라. 아름답게 꽃 펴라. 짧디 짧은 순간 한철이라도. 사쿠라 체리 블라썸 흰 분홍 벚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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